소설리스트

천검지애-463화 (463/472)

<천검지애 463화>

463화. 기다림(1)

천호방 총단 정문 앞에는 원래 주루가 한 개도 없었다.

잠룡세가 시절 담무룡은 세가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당연히 출입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고 주루가 성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천호방으로 바뀐 후 상인들부터 무림인까지 출입에 대한 제한을 크게 낮추자, 주루가 순식간에 네 개나 생겼다.

그리고 모든 주루에는 언제나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순수한 손님들도 꽤 많았지만, 천호방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한 다른 무림 세력들의 감시인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원활한 감시를 위해 대단히 비싼 요리와 술을 시켰다. 당연히 주루의 주인들은 그들이 오래 앉아 있어도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영웅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네 개의 주루는 정말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언제나 만원이었다.

덕분에 새롭게 주루를 열기 위해 건물을 짓는 공사를 무려 세 곳에서나 할 정도였다.

천호방의 위세를 여실히 알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왜 이렇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거지?’

무림맹의 절강책임자인 백룡신권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거의 매일 같은 주루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천호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루 주인에게 이미 몇 달 치의 예약을 한 덕이었다.

무림맹에서는 악불군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원하고 있었지만, 영웅대회에서 돌아온 이후 악불군은 전혀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총단의 정문도 천호상단과의 거래를 위한 상인들만 드나들 뿐, 무림인들의 출입은 거의 없었다.

천호방에서 얼마간 무림인들의 출입을 금한다고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백룡신권도 악불군과 안면을 튼 후, 자연스럽게 천호방의 간부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간신히 소걸아를 만난 정파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악불군이 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지만, 소걸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도 모릅니다.’

악불군의 동정(動靜)을 가장 잘 안다는 소걸아까지 모른다는 말만 하자, 악불군이 영웅대회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요양을 하고 있다거나, 주화입마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무림맹과 구천마성 그리고 혈해마계까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혈교와 측천무후궁의 잔당들을 제거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면, 악불군이 조용한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기는 했다.

혈교와 측천무후궁의 타도에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이었던 사람이 악불군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신권은 작게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주루는 물론 그가 있는 주루의 창가에도 천호방 정문을 주시하는 무림인들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인 그들이 약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 * *

천호방 총단의 안채.

흑란이 뭔가 불만인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추국아, 방주님 너무하신 거 아니야? 설마 십왕이 됐다고 아가씨를 홀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쉿! 아가씨 들어.”

“사실이 그렇잖아. 영웅대회에서 돌아오시고 한 달이 됐는데, 곧장 연무장으로 들어가시더니 지금까지 아가씨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으신다는 것이 말이 돼? 요즘 아가씨가 얼마나 불쌍해 보이시는지 너희도 알잖아?”

천호방에 돌아온 악불군은 무슨 이유인지 곧장 비밀 연무관으로 들어가 거의 폐관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흑란은 요즘 담수련이 힘이 없이 시무룩한 것이 악불군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다고 판단되자 자신도 모르게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그녀의 불만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연화와 매향은, 누군가가 나타나자 급히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안에 있던 담수련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가씨, 어디 가시게요?”

사화는 급히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며 말했다.

누군가 그녀를 노릴 경우를 생각해서였다.

사실 주위에는 방주호법 네 명이 은신해 있었고, 천호특별단과 천호사기단 사십 명가량이 그녀의 처소 주위를 호위하고 있었다.

호위가 없다 해도 현 무림에서 누가 감히 천호방에 잠입해 담수련을 노릴 세력이 있겠는가마는, 사화는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했다.

“가긴 어딜 가? 너희가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은밀하게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나왔지.”

“은밀하게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요?”

“나하고 소군 험담.”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을 하세요. 저희가 어찌 감히 하늘같은 방주님과 아가씨 험담을 하겠어요?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흑란이 펄쩍 뛰며 부정하자 담수련은 고운 아미를 찡그리며 그녀를 주시하며 말했다.

“흑란, 네가 했구나?”

눈치 하나는 악불군도 인정한 신경의 경지에 든 담수련은 흑란의 행동을 보자마자 당장 알아맞혔다.

“아, 아가씨, 험담을 한 것이 아니라, 방주님께서 한 달이나 아가씨를 보러 오지 않으니까 좀 서운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흑란 말도 맞아요. 어떻게 한 달 동안 연락 한 번 없으실 수가 있어요? 저도 이번 일은 방주님께서 너무 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화까지 맞장구를 치자 담수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소군하고 나는 매일 밤 대화를 나누거든.”

“방주님께서 아가씨께 전음이라도 보내시고 있으셨던 거예요?”

“전음을 보낸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눈다니까.”

악불군이 있는 비밀 연무장과 담수련의 처소는 거리가 꽤 멀었다. 거기다 연무장의 특성상 방음이 완벽했기 때문에, 내공이 높은 악불군은 어떻게 전음을 보낸다 쳐도 담수련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군의 능력은 이제 나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 같아. 무슨 방법을 쓰는지는 몰라도 밤마다 내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어와. 내가 조그맣게 말해도 다 듣는지 답도 다 해 주고.”

담수련의 말에 사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악불군을 오랫동안 못 보자 환청이라도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아가씨, 혹시 몸이 허하거나 하는 느낌은 없으시지요?”

“뭐? 나 아주 건강하거든! 소군이 오늘 저녁쯤에 나온다고 했어. 그러니까 두고 봐.”

“방주님께서 정말 오늘 저녁에 나오신대요?”

“그래.”

사화의 얼굴에 불안감이 퍼졌다.

사실이라면 다행이지만, 진짜 환청이라도 들은 거라면 그녀를 잘 보필하지 못한 그녀들의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우선 안에 들어가셔서 좀 누우세요.”

“얘들이 진짜 대화한다니까 왜 이래?”

누우라는 말에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감한 담수련은 모두를 한 번 노려보더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은 매우 청명했다.

‘소군이 나오면 이제 마음 편히 여행 다녀야지. 중원 유람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악불군과 함께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 담수련의 얼굴에는 미소가 환히 그려졌다.

* * *

비밀 연무장에 우뚝 선 악불군은 손바닥을 편 후, 마치 검을 내리치듯 아래로 천천히 내렸다.

순간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벽이 검에 의해 잘린 듯 가느다란 선이 만들어졌다.

“이게 가능하구나…….”

벽으로 다가가 자신이 만든 자국을 손으로 만져 본 악불군은 스스로도 놀란 듯 중얼거렸다.

담수련과 함께 항주로 돌아오던 중, 악불군은 갑자기 며칠간 폐관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곧장 담수련에게 보고 올렸다.

물론 영웅대회 동안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직감한 담수련은, 악불군이 상처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폐관이라는 말에 걱정은 됐지만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깨달음은 왔을 때 즉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의 예상은 삼사 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동안 천호방의 대외 활동을 멈추고 무림인의 내방도 받지 말라고 간부들에게 명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폐관이 길어지면서 수많은 억측이 생길지는 악불군도 전혀 예상을 못 했던 일이었다.

원래 악불군이 폐관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측천무후의 천라섬전검식 때문이었다. 물론 악불군은 검식의 이름은 몰랐다.

혈우대마종과 측천무후 중 누가 더 강하냐고 묻는다면 악불군은 혈우대마종이라고 답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공과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결투의 운용 때문에 강한 것이었지, 초식만으로 말한다면 혈우대마종의 무공은 악불군의 흥미를 크게 끌지는 못했다.

천마혈강이나 그 외의 모든 무공들이 대단히 강한 절기임에는 분명했지만 악불군이 받아들이기에는 마기가 너무 강한, 말 그대로 마공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측천무후의 무공은 달랐다.

악불군은 그녀의 공격을 받으면서 우주십만검결을 펼칠 기회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왜 갑자기 검식을 바꿨는지 의아했었다. 그녀가 패배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검식을 막아 냈고 또 피하기도 했지만 반격의 기회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돌아오는 내내 어떻게 하면 그 검식을 막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방법이 생각났고, 그래서 폐관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폐관을 하면서 무공에 대해 새롭게 정리를 하면서 혈우대마종의 무공 중 흥미를 끄는 무공이 생겨났다.

바로 흡기마공이었다.

정파에서는 흡기마공의 원리에 대해 전혀 모르니 무조건 마공일 거라고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지만, 악불군은 흡기마공이 사실은 마공이 아니라 초절정의 심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흡기마공을 자신에게 맞도록 고치면서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그런데 두 무공을 수련하던 중 악불군은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서는 기연을 얻게 되었다.

‘수중무검 심중유검(手中無劍 心中有劍)’

바로 방금 그가 시전한 무형검(無形劍)을 완성한 것이다.

무형검은 신검합일의 궁극이라고 불리는 경지로, 이기어검보다 한 단계 위의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검이 없이 손이나 발 등, 신체를 이용해 검과 같은 위력을 보인다면 그거야말로 상대는 기함을 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만든 무형검의 흔적을 계속 만지던 악불군은 정좌를 하고 앉았다.

이제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운기조식과 함께 심상 대결을 펼쳐 볼 생각이었다.

이미 혈우대마종을 죽이면서 무황의 명성을 가뿐하게 넘어섰는데, 겨우 한 달 만에 또다시 무공의 경지가 올랐다는 것을 무림이 안다면 아마 모두 경악을 넘어 그를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정좌를 한 악불군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무공의 성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역시 드디어 출관하여 담수련을 만난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그린 것이다.

이 중요한 순간에 오직 그 때문에 절로 미소 지어졌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담수련의 존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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