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68화 (468/472)

<천검지애 468화>

468화. 변화(2)

* * *

천중마도문이 있는 남령현은 옥화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옥화산은 규모도 컸지만 유난히 암벽과 낭떠러지가 많아 산 주위를 빙빙 돌아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덕에 천중마도문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하나 문의 발전을 막는 요인이기도 했다.

천중마도문에서는 옥화산에 동서남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지름길을 개발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은 어려웠다.

그동안은 방어에 유리해, 그들을 버틸 수 있게 했지만 십왕이 된 지금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천중마도문의 정문은 상당히 부산했다. 악불군이 도착하려면 최소한 두 시진은 더 있어야 할 것으로 계산했는데 갑자기 거의 다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이 그 뭐더라…… 천상차라는 마차를 끌고 다닌다고 하지 않았느냐?”

거의 다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천중신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악불군이 바쁘다고 지름길로 안내해 달라고 해서 빨리 온 것은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통 마차의 두 배는 됨직한 큰 마차를 끌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이 난 것이다.

“마차도 같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옥화산을 가로질러 오는 지름길은 말도 달릴 수 없어 끌고 올 정도인데 커다란 마차가 어떻게 넘는단 말이냐?”

“마차는 관도를 돌아서 오게 하지 않았을까요?”

냉혈마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당당주인 허량이 뛰어 들어왔다.

“악불군이 정문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합니다.”

“허 당주.”

“예, 왕야.”

“말 조심해라!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 분명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죄, 죄송합니다. 방금 악 왕야께서 일각 안에 정문에 도착할 것 같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천중신마는 잠시 고심에 빠졌다.

그는 악불군의 배첩을 받은 후, 왕들이 만날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본 바가 있었다.

정상적인 예법은 손님을 맞을 방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나, 악불군이 자신이 정문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불쾌해할 것이 걱정이 되었다.

자존심이 강해, 구천마황이나 혈해사황이 마의 종주로 자처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그였다.

상당한 압박을 받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그는 잃을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드디어 그토록 갈망하던 구천마황과 혈해사황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 겨우 한 달 전이었다. 거기다 왕의 칭호까지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았다.

그에게도 죽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 조금 더 멀리 마중을 간다 해서 체면이 크게 깎일 것도 아닌데 괜한 자존심을 부리지 말자.’

천중신마는 악불군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결국 몸을 일으켜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악불군을 영접하기 위해 정문 앞에서 서성대던 천중마도문의 간부들은 흑풍마자 유가위가 보이자 급히 도열을 했다.

그리고 곧 커다란 마차와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한 모습의 악불군이 나타나자 모두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저는 천중마도문의 수석 장로인 오대룡입니다. 악 왕야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오대룡의 인사가 끝나자 연습한 듯 모두는 한 목소리처럼 커다랗게 복창을 했다.

악불군도 말에서 내려 포권을 했다.

“천호방의 악불군입니다.”

그때, 안에서 천중신마가 냉혈마심과 친위무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하하하! 악 왕께서 이 구석진 곳까지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제가 사천에 볼일이 있어 가던 길에 문주님과 대화를 다 끝내지 못한 것이 생각이 나서 무례하게 닥쳐서야 배첩을 보냈습니다.”

“악 왕이시라면 배첩 없이 그냥 오셔도 전 환영입니다. 자,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천중신마는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깍듯이 존대를 하며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본 방의 방도들은 이곳 외곽에서 기다리게 하겠습니다. 제가 긴 시간은 있을 수가 없어서요.”

“이왕 오신 김에 며칠 푹 쉬다 가시라고 하고 싶어도, 악 왕께서 얼마나 바쁘신지 알기에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빈청까지 가는 동안 천중신마와 악불군의 대화는 마치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화기애애했다.

“유 장로,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어?”

악불군과 담수련이 천중신마와 함께 안으로 사라지자 수석 장로인 오대룡은 흑풍마자를 보며 물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름길이 상당히 험하기는 하지만 흑풍마자 같은 고수가 힘들어서 땀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대룡의 반문에 흑풍마자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그는 심지어 손까지 살짝 떨고 있었다.

무언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유 장로!”

오대룡이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치자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흑풍마자가 대답을 했다.

“예, 수석 장로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느냐?”

“수석 장로님, 악 왕야 하고는 절대 척을 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흑풍마자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뜬금없는 말을 하자 오대룡은 짜증스럽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뭘 봤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지름길을 원해서 옥화산을 태룡암을 가로지르는 길로 안내했습니다.”

“태룡암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험한데……?”

반문하던 오대룡은 갑자기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담수련의 마차를 흘깃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저 마차는 어떻게 왔다는 건가? 설마 수하들이 들고 왔다는 말인가?”

태룡암을 지르는 길은 실로 험해서 천중마도문에서도 고수급에 드는 자들만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외부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기는 했다.

하나, 신법을 이용해도 가로지르기가 쉽지 않은 길을 보통 마차의 두 배는 됨직한 커다란 마차를 끌고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들고 운반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나무와 바위가 많아 마차가 지나가기에는 좁은 길이 많아서였다.

“저 마차를 허공섭물로 공중에 띄워 옮기더군요. 나무들이 많은 곳에서는 무려 십 장 넘게 띄운 적도 있었습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흑풍마자가 사람이 아니라고 한 의미가 와닿은 것이다.

마차의 크기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삼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다면 허공섭물로 공중으로 들어 올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심지어 꽃병도 아니고 마차를 옮긴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태룡암을 넘는 길을 계속 허공섭물로 띄워 옮겼다면……

모두의 표정은 차츰 흑풍마자와 같이 탈색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악불군이 안 좋은 이유로 와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모두의 전의가 사라지고 있었다.

악불군이 지름길로 가자고 한 것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 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수석 장로님, 오면서 악 방주의 표정을 봤는데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절대 좋은 말을 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혹 마음에 안 드는 말이 나오더라도 절대 척을 지면 안 되는 자라는 말을 전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아까 말씀드리지 모두 빈청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들어갈 때 봤잖나? 나쁜 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오대룡은 흑풍마자의 얼굴에 공포가 서려 있는 것을 보자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냥 떠는 게 아니라 공포에 절어 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떤 적이 없거늘…….’

그런데 다른 간부들 표정 역시 불안이 가득했다.

그리고 흑풍마자의 염려대로 빈청으로 들어간 악불군과 천중신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던 처음과는 달리 상당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 * *

빈청에 자리를 잡고 차를 한 잔 마실 때까지는 여전히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악불군이 본론을 말하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악 방주는 천중마도문이 우스워 보이는 모양이오.”

천중신마의 말투와 호칭부터 확 바뀌었다.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만약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냥 무시하지 직접 와서 이런 제안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면 이미 목을 잘라 버렸을 것이오. 악 방주이니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하나 더 이상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오.”

천중신마는 이미 매우 격노한 듯 말을 마치자 축객령을 내리고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문주님, 제가 너무 오만하게 행동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악불군은 급히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천중신마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주위에 있던 서 있던 이십여 명의 호위 무인들과 간부들이 상황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무기에 손을 갖다 댔다. 여차하면 당장 피바람이 불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자 담수련이 같이 배석하고 있던 냉혈마심에게 말했다.

“천중마도문의 군사님이신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대해 대처를 잘못하시네요? 이대로 만남을 끝내셔도 되겠어요?”

“왕야께서는 악 왕야와 같은 십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와서 지금의 세력 이상으로는 더 확장하면 안 된다고 명령하듯 말한다면 누가 웃으며 받아들이겠습니까? 왕야께서 이대로 나가시는 것만도 최대한 참는 것이라는 걸 알아 두십시오.”

“그래서 이대로 대화를 끝내실 생각이신가요?”

“대화가 될 수 있는 사안이 있고 없는 사안이 있습니다. 지금 그 일은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쉬운 일을 정말 어렵게 푸시려고 하시네요? 왕야께서는 남들은 가지지 못한 명예와 권력을 쥐신 지 이제 겨우 한 달 좀 지났어요. 그런데 조금 더 많은 힘을 가지시려다가 모든 것을 잃는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으시겠어요? 저 같으면 왕야께 가서 좀 더 대화를 하시라고 권할 것 같네요.”

냉혈마심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에 더욱 화가 난 듯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왕야께서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못 들어 본 모양입니다. 왕야께서는 구천마황과 혈해사황의 압박에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저희 방주님께서 구천마황이나 혈해사황을 두고 이곳을 먼저 찾은 이유가 그래도 대화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셔서입니다. 저희가 반 시진만 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안 오신다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반 시진이요? 그냥 돌아가시지요. 반 시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려도 왕야께서는 안 오십니다. 이미 축객령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기회를 드린다니까 무슨 기회인지를 이해 못하신 모양이네요? 반 시진은 천중마도문에서 방주님을 공격해서 죽일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방주님께서 여기서 죽지 않고 나가신다면 이후 천중마도문은 멸문하게 될 겁니다. 방주님께서 이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문파는 제거하시기로 결정하셨으니까요.”

순간 냉혈마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이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엄포가 아니라 선전 포고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도, 도발! 명분을 쌓기 위한 도발이야.’

담수련의 말의 의미를 눈치챈 냉혈마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너무 당황한 듯, 입도 열지 못했다.

악불군을 먼저 공격한다면 죽인다 해도 세상의 온갖 비난은 다 받게 될 것이며, 정파와 황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문을 나가 정말 수하들을 끌고 와 공격을 한다면 천중마도문은 멸문할 확률이 거의 십 할이었다.

그는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악불군은 기다렸다는 듯 벽을 향해 손을 살짝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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