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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 2화 (131/513)

7권 - 2화

강성태를 따라 점퍼의 갈라진 부분으로 시선을 내렸던 이병렬이 고개를 들었다.

“조태완이 김종수와 정영권을 불렀는데 동팔이네 숙소 애들이 빌라 입구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근처에 있었단다.”

“조태완이 불렀는데 그냥 갈 수가 있어?”

“전화를 안 받으니까 확인할 방법이 없었겠지. 정영권이 동팔이네 애들한테 달려들기도 버거웠을 테고. 애들 더 불러놓고 근처에서 기다렸다는 걸 보면 숫자 늘려서 밀고 올라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강성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깡패들만의 서열과 힘, 알력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죽어버리면 어쩌냐?”

몸을 돌려 트렁크를 짚은 이병렬이 응급실을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볼 때였다.

양손에 종이컵을 든 최치곤이 불 꺼진 로비에서 나왔다.

“커피 뽑아왔습니다, 형님.”

인상만 보면 이병렬을 찜 쪄 먹게 생긴 최치곤이 공손함을 담아 내미는 종이컵이었다.

“너는?”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돈 줄 테니까 가서 뽑아와.”

“돈 있습니다, 형님.”

“그럼 얼른 갔다 와. 사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리고, 이 새끼야! 성태 챙기라는 말이 우습게 들려?”

“예? 형님?”

“이 생각 없는 새끼야. 성태를 챙길 거면 최악의 상황에 빠져나갈 수 있게 차에 있어야지. 네가 달려가서 볼때기를 그렇게 처맞으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형님.”

고개를 떨군 최치곤을 보며 이병렬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달려들어서 가장 악착같이 버텼던 놈이 너다. 그래서 성태 맡긴 거고. 친구? 네가 허술했으면 내가 진즉에 밀어냈어. 알아?”

고개를 떨군 최치곤을 보며 이병렬이 픽 웃었다.

“가서 얼른 커피나 뽑아와.”

“예, 형님.”

고개를 숙인 최치곤이 제 몫의 커피를 뽑기 위해 병원 입구로 움직였다.

“김동팔이 깨진 데다 숙소 애들까지 아작 났거든. 지금 태완이파는 완전히 벌집 분위기일 거다. 다들 조태완이 죽은 뒤를 대비해 이리저리 뛴다고 보는 게 맞아.”

마시려던 종이컵을 트렁크에 내려놓은 이병렬이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때 올라서지 못하면 기회가 없어. 그래서 조태완을 데려가는 놈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해. 데려가서 명분 움켜쥔 뒤에 슥삭 해버릴 수도 있고.”

멕시코나 여기나 조직이란 건 비슷한 모양이었다.

바꿔서 말하면 조태완을 데리고 있는 강성태와 이병렬에게 명분이 있다는 말도 됐다.

“내부에서 힘이 부족한 놈들은 밖에 손을 벌리기도 하니까 조태완이 당했다는 게 소문날 거다. 문도진에게 기웃거리는 놈이 있을지도 몰라.”

이병렬은 무거운 얼굴이었다.

태완이파를 접수하니 뭐하니 떠들었지만, 막상 삼키려고 보니까 부담이 큰 모양이었다.

“김종수는 조태완 아래에서 생활했던 인간인데 업소에 출연하는 사람들 관리하다가 아예 그쪽으로 빠져서 성공한 케이스다. 칼질하는 싸움은 버거운데 머리는 돌아가는 놈이라고 보면 맞아. 힘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의리는 죽여준다더라.”

“정영권은?”

“동팔이한테 눌려서 작은 업소들 관리하는 정도? 동팔이 숙소 애들한테 밀려나서 고작 한다는 짓이 애들 불러놓고 기다릴 정도로 간도 작고.”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종이컵을 든 최치곤이 자동차를 향해 걸어왔다.

“커피 뽑아왔습니다, 형님.”

“기다리다가 다 식었다. 얼른 마셔.”

최치곤을 기다렸던 이병렬이 트렁크에 올려두었던 종이컵을 집었다.

말은 투박하게 했지만, 고생했으니 함께 마시자는 의미로 보였다. 그런 이병렬의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최치곤이 감동한 눈으로 종이컵을 들었다.

고작 몇 백 원짜리 커피를 함께 마시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 커피를 기다렸다가 마시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이병렬은 타고난 보스의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병렬이라면, 저 정도 판단력에 그나마 마약과 인신매매를 거부하는 의지를 지닌 인간이라면 강성태가 원하는 최소한을 지켜주지 않을까 싶었다.

“커피 맛있네? 너는 성태랑 있더니 이런 서비스는 좀 늘었다?”

“그렇습니까, 형님?”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마신 뒤였다.

승용차와 승합차가 병원 앞 도로에 멈추면서 덩치들이 줄줄이 내렸다.

유헌우 원장에게 한소리 듣겠는데?

강성태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 김진용과 서달수가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다친 애들은?”

“칼 맞은 애들 넷을 영등포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형님.”

이병렬과 김진용의 대화를 들은 강성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가뜩이나 강성태 문제로 불편한 안다미를 떠올린 까닭이었다.

“병원에는 연락했지?”

“원장님이 알아서 하신답니다. 그리고 형님. 광준이 형님하고 종환이 쪽에서 애들 보낸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형님.”

이병렬의 질문에 김진용이 묵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응급실 간판불이 밝혀주는 주차장이었다.

강성태만 해도 팔뚝과 옆구리가 갈라졌고, 이병렬은 상체에 잔뜩 묻은 피가 시커멓게 굳어 흉한 몰골이었다.

최치곤은 볼이 퉁퉁 부은 데다 소매가 뜯겼으며, 김진용은 머리 한쪽에 방울방울 피가 매달렸고, 서달수도 턱과 목에 상처를 달았다.

“진용이 너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괜찮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김진용이 별것 아니란 투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미용 제품 대신 기름을 발랐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김진용처럼 피를 발라 머리를 넘기는 경우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여간, 이럴 때 보면 김진용이 최치곤보다 무식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나저나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안 와?”

기다리기 지루하다는 투로 이병렬이 투덜거린 직후였다.

말이 씨가 된 건지, 태완이파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건지는 몰라도 주차장으로 승용차 세 대가 줄줄이 들어왔다.

검은색,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모습, 주차장 불빛에 드러난 승용차 안의 남자들까지, 태완이파 김종수가 분명했다.

김진용과 서달수, 최치곤이 뒤로 움직여 강성태와 이병렬을 뒤를 지키고 설 때 차에서 덩치들이 내렸다.

놈들은 한눈에도 ‘우리 건달이오.’하는 움직임으로 승용차 앞에 늘어섰다. 그런 뒤에 두 번째 승용차에서 거만한 표정의 남자가 내렸다.

매부리코를 중심으로 볼이 길게 이어졌는데 튀어나온 광대뼈 위로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강성태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함부로 대하자니 들은 이야기들이 부담스럽고, 고개를 숙이자니 그건 또 위치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딱 그런 얼굴로 강성태와 이병렬, 옆에 있는 최치곤과 김진용, 서달수를 돌아보았다.

“이병렬?”

김종수의 선택은 이병렬이었다.

나이나 조직 생활을 했던 경력을 앞세우려는 몸짓이었다.

“우리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 보스가 계시니까 인사 먼저 해.”

이병렬이 강성태를 가리킨 다음이었다.

“반갑다. 김종수다.”

김종수가 강성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김종수의 이런 행동을 이해한다.

나이 어린 강성태에게 대뜸 고개를 숙이기 어렵다는 것도.

“야, 이 개새끼야!”

그러나 이병렬은 전혀 이해할 마음이 없다는 듯 거친 욕을 바로 쏟아냈다.

“생활 접은 새끼가 병풍 친 것도 눈에 쥐가 나는 판인데 어디 보스께 손을 내밀어? 확 손모가지를 잘라버릴라, 이 개새끼!”

“야, 이병렬?”

“야, 이병렬? 화류계에서 화장 밥이나 처먹는 새끼가 어디에서 맞먹어?”

분통이 터진 얼굴로 이병렬이 한 걸음 나서는 순간이었다.

“병렬아, 잠깐만.”

강성태는 이병렬을 부른 뒤에 시선을 돌렸다.

“조태완이 말 안 한 모양인데 합의한 내용이 있어서 말로 하는 거다. 너를 불러달라는 말을 반복해서 오라고 했던 거고.”

강성태의 말에 대꾸는 없었다. 대신 김종수는 불편한 눈매로 입을 뒤틀었다.

“문도진이 김동팔을 꼬드겼던 모양인데 그건 너나 정영권이 직접 알아봐. 나는 아무튼 조태완이 도와달랄 때 도운 거로 끝내마. 이제부터 네가 맡아.”

조태완을 넘겨준다고?

김종수가 눈알을 굴려 이병렬을 빠르게 살폈다.

“조태완이 살아나든, 죽든, 나는 약속 지켰으니까 다음번에 보게 된다면 태완이파 접수하기 위해서다. 그때는 저런 놈들 믿고 설치지 마. 정말 죽는 수가 있다.”

말을 건넨 강성태는 차가운 눈매로 웃은 뒤에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조태완 넘겨줬으니까 우리는 약속 지켰다. 여기까지만 하자. 이다음에 태완이파가 엉뚱한 짓을 하면 조태완이 약속 어긴 거니까 문도진이 먼저 깨고 다시 온다.”

이병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김진용이 눈치껏 움직여 뒷문을 열 때, 최치곤은 빠르게 움직여 운전석에 올랐다.

강성태가 뒷좌석에 탄 다음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정말 이대로 가?

차에 탄 강성태와 밖에 선 이병렬을 살피는 김종수의 눈이 흔들렸다. 이병렬의 말대로 조태완이라는 명분을 잡았는데 지켜낼 자신이 없어 어쩌지 하는 느낌이었다.

“차 안 빼? 이 새끼들아?”

이병렬이 으르렁거리자 김종수 곁에 있던 덩치 하나가 움직여서 가장 뒤에 세웠던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건 덩치가 후진으로 승용차를 주차장 바깥으로 빼낼 때였다.

아쉬운 표정을 한 김종수가 이병렬에게 움직였다.

김진용과 서달수가 뭐야, 하는 의미로 눈을 부라리며 앞을 막자 김종수는 고개까지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병렬아. 내가 실수했다. 잠깐 말 좀 하자.”

“뭐야, 이 새끼야? 영업 끝났어. 문 닫았는데 뭔 약을 팔겠다고 셔터를 잡아?”

“병렬아.”

“야, 이 새끼야. 너도 생활했던 놈이니까 알 거 아냐? 영업 다시 하는 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보스가 결정하는 거야. 뭐 해? 차 뒤로 더 안 빼?”

이병렬이 고함을 치는 바람에 밖에 있던 영등포 덩치들이 불편한 얼굴로 주차장 입구로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병렬아.”

이병렬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는 투로 강성태가 앉은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함께 움직인 서달수가 운전석 뒤편 문을 열 때, 김진용은 강성태를 지키는 투로 조수석 앞에 있었다.

“내가 성태 형님께 사과하고 인사드릴 테니까 잠깐만 시간 좀 주라. 부탁한다. 병렬아!”

뒷좌석에 타기 위해 오른발을 넣던 이병렬이 문을 잡고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고영주라는 계집애 촬영할 때 태완이 형님이 전화하셨었다. 대강 내용도 들었고. 오늘도 고영주 데려오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우리 보스를 씹었어? 이게 개새끼인 줄 알았더니 개씨발 새끼였네.”

“성태 형님이 결정하는 거라며?”

“말 좀 예쁘게 못 해?”

“성태 형님께서 결정하시는 거라며? 그러니까 말씀이나 드려주라.”

김종수의 위아래를 훑은 이병렬이 자세를 세운 뒤에 상체를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성태야. 저 정도로 매달리는데 한번 기회 주자.”

이병렬이 얼마나 애쓰는지 분명하게 봤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병렬이 권하는 걸 거절할 마음 따위 없었다.

강성태가 픽 웃자 씨익 웃은 이병렬이 표정을 수습한 뒤에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조수석 앞을 지키는 김진용에게 눈짓을 전했다.

김진용이 뒷문을 열어준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 밑에 있는 김종수입니다, 형님.”

김진용이나 서달수, 최치곤처럼 깊게 숙이지는 않았지만, 깍듯하고 깔끔한 인사였다.

“태완이 형님이 오늘 저와 영권이한테 연락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형님. 고영주 일이 있을 때, 저와 영권이에게는 성태 형님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여전히 덤덤하게 김종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광룡이나 신호남파가 염려된다고 하시면서 급한 일이 생기면 성태 형님께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오늘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형님.”

그런데 왜 처음에는 그렇게 나왔지?

강성태의 표정과 시선을 읽은 김종수가 차마 말을 못 하겠다는 투로 머뭇거렸다.

답을 못 하겠다면 여기까지.

옅은 느낌으로 픽 웃은 강성태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어려 보이셔서 실수했습니다, 형님.”

김종수의 말 그대로 솔직한 답이 있었다.

그거야 뭐.

솔직한 답에 픽 웃은 강성태는 차에서 내린 뒤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다는 말이 뭐야?”

“태완이 형님 지켜주는 일과 조직 내부 정리를 도와주십시오, 형님.”

강성태의 질문에 김종수는 솔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클럽을 담당하는 숙소가 세 개입니다. 전부 들고 일어나려고 노리고 있고…….”

또 뭔데 머뭇거리지?

이병렬을 돌아본 김종수가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운영하는 프로덕션 노리는 애들이 둘 있습니다.”

센 척 오지게 하더니 결국 김종수도 제 밥그릇을 지키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 모양이었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문도진에게 붙어봐야 프로덕션 뺏기면 아야, 소리도 못 할 테고.

하여간, 조태완이 그러더니 밑에 있는 놈들도 얍삽한 점 하나는 줄기차게 지니고 있었다.

‘받아줘, 성태야. 이게 시작이다.’

시선을 던진 이병렬이 마른침을 삼켰다.

태완이파를 실질적으로 접수하는 과정이란 생각에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강성태는 픽 웃으며 김종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강성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이번에는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김종수가 강성태의 손을 공손한 태도로 잡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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