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 3화 (132/513)

7권 - 3화

강성태의 손을 받으며 정식으로 인사했던 김종수가 몸을 세우고는 뒤에 선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인사드려. 강성태 형님이시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김종수의 지시에 따라 뒤편에 있던 덩치들이 깊게 상체를 숙였고,

“여기는 이병렬, 내 또래니까 앞으로 나를 대하듯 모셔.”

“안녕하십니까, 형님?”

다음으로 소개하는 이병렬을 향해 비슷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긴박한 와중이었다.

그런데도 이병렬이 김진용과, 서달수, 최치곤을 소개하면서 상견례 자리도 아닌데 번갈아 인사를 주고받는 복잡한 절차가 있었다.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승합차와 승용차가 급하게 병원 앞쪽에 서면서 덩치들이 줄줄이 내렸다.

“대림동 동생들입니다, 형님.”

김진용이 나직하게 말한 뒤였다.

밖에서 서 있던 놈들의 언질을 받은 모양인지, 차에서 내린 덩치들이 주차장 안쪽을 향해 서열대로 인사하고는 입구 좌우로 퍼져 자리를 지켰다.

강성태는 김종수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빌라 수습은?”

“동팔이랑 안에 있던 애들 전부 깨졌습니다, 형님. 우선 복도에 있던 다른 동팔이네 숙소 애들을 영권이가 몰아뒀고, 업자 불러서 빌라 수리하고 있습니다, 형님.”

결국, 방 안에 있던 놈들이 모두 죽은 모양이었다.

조태완이 살아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겁게 숨을 내쉬는 강성태를 본 김종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님. 죄송하지만, 병렬이까지만 해서 조용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게 또 수작을 부리려 하는 건가?

사람 앞에 두고 따로 말하는 거 강성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김진용과 서달수, 최치곤에게 숨겨야 할 이야기라면 아예 듣지 않는 게 마음 편했다. 그런데 슬쩍 시선을 돌린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고개를 끔뻑했다.

일단 이병렬이 그렇다니까.

김종수의 바람을 거절하려던 강성태는 이병렬을 찾았다.

“셋이서 이야기 나눌 만한 곳이 있어?”

“태완이 형님 결과 나올 때까지 자리 지켜야 하니까 주차장 안쪽으로 옮기…시지요.”

김종수 앞이라는 생각에 급하게 말끝을 바꾼 눈치였다.

이병렬의 어색한 존대를 들은 강성태는 나오려는 웃음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이병렬과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주차장 구석으로 움직였다.

걸음을 옮기는 강성태의 뒤로 이병렬과 김종수가 순서대로 따라 걸었다.

이것들은 혹시 뒤따르는 것도 서열을 따지나?

궁금하기는 했는데 그런 사소한 걸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명에서 벗어난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강성태는 몸을 돌려 김종수를 보았다.

구석 자리까지 힘겹게 달려온 불빛이 강성태의 얼굴 반쪽을 겨우 비춰서 어둠에 잠긴 반대편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 보였다.

“태완이 형님이 저와 영권이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신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형님.”

기껏 구석으로 움직여놓고도 김종수는 주변을 한 번 더 확인한 뒤에 입을 열었다.

“태완이 형님께서 관리하는 VIIP 중에 검사장급이 여러 명 있습니다, 형님. 지금 변호사가 그쪽에 연락해서 수습하고 있는데 동팔이네 남은 숙소 애들만 해결하면 조용하게 넘어갈 것 같습니다, 형님.”

사람이 죽었는데 조용하게 넘어간다고?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김종수가 보는 앞에서 어수룩한 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강성태는 듣고만 있었다.

“그동안 짜모도 많이 먹였고, 은밀한 장소에서 접대도 여러 번 받아서 조직 내부만 단속할 수 있으면 적당히 넘어갈 겁니다.”

아무리 프로덕션의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았어도 깡패라는 출신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른손을 말아쥔 김종수가 왼손바닥으로 엄지 부분을 두 번 내리치는 것으로 여자와의 관계를 저속하게 표현했다.

“그 자리에서 약도 하나?”

“여자들은 무조건 합니다, 형님.”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염병할, 도대체 언제 대한민국에 이토록 약이 퍼진 건지, 소위 상류층과 지도층에 그 정도로 일상화되었다면 이미 약쟁이 국가가 되는 과정의 5부 능선을 넘었다고 봐도 충분한 수준이었다.

“클럽을 맡은 놈들은?”

“영권이가 불러모을 수 있습니다, 형님.”

“그런데 뭐가 문제야?”

질문을 받은 김종수가 아쉬운 얼굴로 머뭇거렸다.

“영권이가 클럽 대가리들을 누를 자신이 없는 거…지요.”

갑갑해서 못 참겠다는 투로 설명을 보충한 이병렬이 끝을 어색하게 마쳤다.

“그런 거면 그냥 불러.”

“그래도 되겠습니까, 형님?”

강성태가 픽 웃는 순간에 이병렬은 눈매를 찌푸렸다.

강성태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언짢은 건지, 토를 다는 게 불편한 건지는 분명치 않았는데 둘 중 하나로 보였다.

“저…, 형님.”

이병렬의 눈매를 피한 김종수가 또다시 강성태의 시선을 당겼다.

“클럽 중 하나만 영권이에게 맡겨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얍삽한 청이었고, 달리 들으면 조건을 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다.

이병렬의 눈매가 뒤틀리는 것을 본 강성태는 그의 욕이 튀어나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김종수.”

“예, 형님.”

“태완이파는 이병렬이 맡는다. 문도진을 깨부수면 그쪽도 병렬이가 맡을 거고. 그러니까 그런 문제들은 내부 단속을 마친 뒤에 병렬이와 의논해.”

김종수는 오히려 반갑다는 얼굴로 고개를 짧게 숙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병렬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한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이병렬도 저런 표정을 짓나?

강성태를 보던 이병렬이 정신이 퍼뜩 든 것처럼 표정을 바로잡을 때였다.

김종수는 만족한 느낌으로 그런 이병렬을 보았다.

나이가 같아서 적당하게 지지고 들어가기 편한 데다, 이병렬의 성격상 뒷수습을 맡은 정영권에게 클럽 하는 맡겨주겠지 하는 기대감이 김종수의 얼굴에 담겨 있었다.

“클럽 대가리들은 언제 모을 수 있어?”

“새벽 4시가 적당합니다, 형님.”

“장소는?”

“클럽 한 곳을 정해서 모일까 합니다, 형님. 그 자리에서 영권이가 형님을 소개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이 찾으셨던 분이고, 마지막에 응급실에 모셨다는 거로 명분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이병렬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미로 대놓고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해?”

“종수를 믿어주시지요.”

답을 들었고, 이병렬의 눈빛도 확인했다.

“응급실에서 결과 나오면 연락할 테니까, 먼저 가서 영권이랑 의논하고 장소 정해지면 병렬이한테 알려줘.”

“예, 형님. 그리고 혹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이번에도 이세종이라고 방송국 보도국장을 이용할까 합니다, 형님.”

반가운 내색을 감춘 김종수가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는 듯 덧말을 내놓았다.

방송국 보도국장까지 깡패들과 손을 잡는 세상이었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정을 꿀꺽 삼켰다.

“그건 알아서 해.”

“예, 형님. 그럼 장소와 시간 정해지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마지막으로 인사한 김종수가 차를 향해 걸었고, 짧게 시선을 던졌던 이병렬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차까지 걷는 동안 김종수는 고개를 기울인 자세로 이병렬에게 뭔가를 빠르게 말했다.

정영권에게 클럽 하나쯤 맡겨달라는 청일 테고, 본인의 노력을 알아달라는 공치사라는 것쯤 김종수의 아쉬운 표정과 눈빛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차 앞에 선 김종수가 불빛에 반만 드러난 강성태를 향해 깊게 고개 숙이자, 함께 왔던 덩치들이 줄줄이 인사했다.

김진용과 서달수, 최치곤이 다시 인사하는 번거로운 모습을 끝으로 승용차 세 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종수가 보여준 태도와 인사로 짐작할 수 있었다.

조태완이 살아난다고 해도 강성태에게 의지하지 못하면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을 말이다.

불빛에 드러난 매력적인 인상과 눈매, 어둠에 잠겨 강렬하게 빛나는 눈빛,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지닌 강성태가 두려운 듯 김종수를 태운 승용차가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카지노 VIP 고객을 위한 세븐 호텔의 라운지였다.

입구로 들어선 송대길이 빠르게 문도진에게 다가왔다.

화려한 강남의 밤을 품은 창을 배경 삼은 문도진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기름 초에서 퍼진 불빛을 조명처럼 받으며 시선을 들었다.

그런 문도진을 향해 송대길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조태완이 지금 방지병원에 있습니다, 형님.”

“아직 안 죽었어?”

“아직 죽었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형님.”

시선을 들어 송대길을 보는 문도진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키는 놈들은?”

“강성태와 이병렬이 영등포 식구들 불러서 지킨답니다.”

“병신 새끼들! 조태완이 당했는데 왜 영등포 강성태와 이병렬이 병원을 지켜?”

이건 송대길이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잠시 창밖을 보며 감정을 삭인 문도진이 다시 송대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완이파 내부는 어때?”

“그게 형님. 김종수가 작업 친 게 먹히는지 일단은 조용합니다, 형님.”

“김종수? 딴따라, 김종수 말이냐?”

“예, 형님.”

“그 새끼가 그 정도로 힘이 있어? 관리하는 숙소도 없잖아?”

문도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송대길에게 질문을 건넸다.

“정영권이가 빌라로 애들을 불러모은 게 컸습니다, 형님. 조태완이 직접 불렀다는 점이 먹힌 데다 숫자로 밀고 다니면서 김종수의 뜻대로 움직이니까 일단 지켜보겠다는 쪽으로 기우는 거 같습니다.”

고개를 갸웃한 문도진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조태완이 불렀던 놈이라고 해도 김종수는 간이 작아서 앞마이를 못 서. 정영권도 대가 부족하고. 혹시 김종수나 정영권이 강성태를 만난 적이 있는지 알아봐.”

“예, 형님.”

문도진이 고갯짓을 하자 고개를 숙인 송대길이 왔던 걸음만큼이나 빠르게 라운지를 빠져나갔다.

“뭐가 이래? 죽 쒀서 개 준 거 아냐, 이거?”

창을 바라보며 문도진은 혼잣말을 뱉었다.

통상 이런 경우에는 조태완이 입원한 병원으로 중간 간부들이 몰려들고, 그 와중에 알력 싸움이 일어나야 한다.

바로 그때가 문도진이 밀고 들어갈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잠잠하다고?

물론 조태완이 아직 죽었다는 말이 없으니까 지켜보겠다고 한발 물러설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태도고, 아래에서는 밀고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그걸 다른 사람 아닌 김종수와 정영권이 눌러서 조용하게 만들었다면 문도진이 모르는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김동팔, 이 병신 새끼.”

문도진은 일만 크게 벌여놓고 뒈져버린 김동팔을 떠올리며 욕을 뱉었다. 김동팔만 살아있다면, 알짜배기 조직 하나 먹을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말이다.

“하아, 씨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클럽 네 개와 꽉 움켜쥔 연예계를 먹으면 지금껏 조태완만 상대하던 동남아 거부들이 넝쿨째 손에 들어올 테고, 광룡도 문도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다.

태완이파를 먹으러 달려가?

아니면 일단 돌아가는 꼴을 지켜봐?

욕심이 불쑥 올라온 문도진이 창을 향해 입맛을 다실 때였다.

조금 전에 나갔던 송대길이 문도진에게 다가왔다.

혹시 조태완이 뒈졌나?

김동팔과 숙소 덩치들 여럿이 죽었을 정도라면 조태완도 뒈져야 맞다. 조태완이 죽었다는 소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문도진은 귀를 세웠다.

“김종수가 방지병원에서 강성태를 만났었답니다, 형님.”

“이런, 씨발…….”

“내일 새벽에 클럽 한 군데를 정해서 모이기로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형님.”

“강성태, 이 새끼가 모사친 거네. 씨발 새끼가 내가 차린 밥상을 가져가겠다고 나섰다, 이거지?”

내내 침 삼키던 스테이크를 눈앞에서 뺏긴 얼굴로 문도진이 거친 말을 쏟아냈다.

“내일 새벽이라고 했지?”

“예, 형님.”

강성태를 떠올린 문도진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문도진 앞에서 송대길을 두들겨 기절시키는 실력과 배짱, 깍듯하게 모시는 이병렬까지, 김종수와 정영권이 앞마이를 서고, 강성태와 이병렬이 밀고 들어가면 내일 새벽에 태완이파는 깔끔하게 정리된다고 봐야 했다.

김동팔이 건재하면 힘을 실어주면서 적당하게 먹어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조태완이 살아남은 탓에 문도진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조태완, 이 얍삽한 개새끼!”

생각을 이어가던 문도진은 뜬금없이 병원에 있는 조태완을 향해 욕을 뱉었다.

도대체 언제 강성태에게 연락해서 그놈 품에 안겨 병원에 처박혔는지 모를 일이었다.

“칼을 졸라 먹었으니까 조태완은 깨졌다고 봐야 하고.”

입술을 핥으며 계산에 바쁜 문도진을 송대길이 긴장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검찰이나 경찰에 찔러봐야 나만 양아치 될 테고.”

언론에 크게 노출돼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면 몰라도 이런 일을 검찰에 가서 아뢰오, 해봐야 문도진만 양아치로 낙인찍히는 꼴이 된다. 한번 그렇게 낙인찍히면 또 누구도 문도진이 건네는 돈을 먹으려 들지 않는다.

“강성태, 강성태, 이 씨발 강성태가 문제인데…….”

혼잣말을 뱉던 문도진이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조용하게 애들 모아 놔. 괜히 눈에 띄는 쇠파이프 같은 거 들지 말고, 제대로 된 연장 채워.”

“예, 형님.”

“김종수, 그 새끼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형님.”

문도진의 고갯짓에 깊숙하게 고개를 숙인 송대길이 바삐 몸을 돌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