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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 15화 (144/513)

7권 - 15화

눈을 뜬 조태완은 낯선 병실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듯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오세아를 오래 바라보았던 조태완이 힘겹게 오른손을 들었다.

“그냥 계시래요.”

오세아의 당부에도 조태완은 휠체어에 앉은 이병렬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서달수가 휠체어를 밀어준 뒤였다.

조태완은 다시 검지로 입을 가린 호흡기를 가리켰다.

“아직 그걸 벗는 건 위험합니다.”

지켜보던 의료진의 제지에도 조태완은 손을 움직였다.

저런 사람을 누가 말리겠나.

이병렬의 시선을 받은 서달수가 팔을 뻗어 호흡기를 벗겨주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힘겨운 조태완의 숨소리가 침대 주변에 흘러나왔다.

“어떻게 된 거냐?”

조태완이 어렵게 내놓은 질문이었다.

이병렬이 붕대와 거즈투성이로 휠체어에 앉은 이유를 알고 싶은 눈치였고, 태완이파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눈이었다.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주변 물리겠습니다.”

“병렬이만 남고…, 자리 좀 비워.”

조태완이 지시했고, 이병렬이 돌아보자 방에 있던 조철호와 오세아, 의료진, 서달수, 조봉진이 조용하게 방을 나섰다.

“호흡기 쓰시고 들으십시오, 형님.”

숨소리가 워낙 힘겨워서 억지로 팔을 뻗은 이병렬이 호흡기를 씌워주었다.

“저는 우리 보스를 모시고 형님 빌라로 갔었습니다.”

그런 뒤에 이병렬은 빌라에 도착해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굵직굵직하게 들려주었다.

**

간호사를 통해 스마트폰을 돌려받은 최치곤은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지…요?”

“뭘요?”

“카페 은주가 보낸 문자인데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일단 한번 봐.”

팔을 뻗지 못해서 최치곤은 스마트폰을 든 손목만 안다미를 향해 꺾었다.

강성태의 침대에서 다가온 안다미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액정에 올려놓은 문자를 읽었다. 잠시 후, 지치고 피곤한 얼굴에 걱정을 담은 안다미가 고개를 들었다.

“어쩌죠?”

“내가 전화하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려면 성태가 전화 못 받는 이유가 있어야 하거든.”

말문이 막힌 모양으로 안다미는 눈만 껌뻑였다.

“일단 둘이서 어디 여행 갔다고 하면 어때? 그쪽이 파견인가 가게 돼서 2박 3일로 여행 간 건데 지금 보니까 성태 전화기가 나한테 있다. 어때…요?”

안다미와 시선이 마주친 최치곤이 얼른 말끝을 붙였다.

“그럼 나한테 연락하라고 할 거 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 없어.”

“만약 통화해서 연락하라면 어떻게 감당하려고요?”

“이모는 내가 안다니까. 지금껏 여자에게 눈길 한번 안 주던 성태가 그쪽하고 여행 갔다는 건데, 나보고도 전화하지 말라고 다그치실 거…요.”

거짓말 한 번 안 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안다미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저러다가 이모란 분이 덜컥 안다미에게 전화해서라도 강성태와 통화하겠다고 요구하면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안다미가 강성태를 돌아볼 때였다.

침대의 머리 쪽을 세워 기대앉은 최치곤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룩. 뚜루루룩.

스마트폰을 들고 있기 불편한 최치곤은 다리를 덮은 병원 이불 위에 올려놓고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난데, 문자 지금 봤어.”

- 네. 매니저님과는 연락되셨어요?

뭐야? 이은주잖아?

이모인 줄 알고 긴장했던 안다미는 맥이 풀린 얼굴로 침대 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지금 성태가 전화를 못 받거든.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시작한 통화에서 최치곤은 조금 전에 세웠던 계획을 알려주었다.

“카페로 확인하러 가지는 않겠지만, 알고 있어.”

- 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그냥. 좀 다쳤어.”

- 괜찮으신 거예요?

“샌드위치 먹고 싶은 거 말고 없어.”

안다미를 힐끔 본 최치곤이 “나중에 보자.” 하고는 종료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이모 차례네.”

혼잣말을 중얼거린 최치곤은 검지를 움직여 번호를 찾았다.

뚜루루룩. 뚜루루룩. 뚜루루룩.

- 여보세요?

몸살을 심하게 앓는 듯 기운이 쭉 빠진 중년 여성의 음성이었다.

“이모? 안녕하세요? 치곤이요.”

- 그래! 성태는?

안다미를 힐끔 본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성태 지금 천국에 있을 건데요.”

- 뭐?

“있잖아요, 이모. 성태, 아침에 의사 선생하고 2박 3일 여행 갔어요. 얼마나 들떴는지 전화기도 내 차에 뒀더라고. 새벽에 태워다주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까 민정이가 문자랑 전화 겁나게 했었네.”

최선을 다해 최치곤이 너스레를 떨었는데도 당장 건너오는 대꾸는 없었다.

숨 한 번 쉴 정도의 짧은 정적이 흐른 뒤였다.

- 치곤아. 이모한테는 거짓말하지 마.

차가운 장숙경의 음성이 스피커폰을 통해 넘어왔다.

화들짝 놀란 안다미가 시선을 들었는데 최치곤은 히죽 웃고 있었다.

“우리 장 여사, 또 나 의심하신다. 그럼 잠깐 기다려 보세요. 내가 지금 같이 간 의사한테 전화해서 성태더러 연락하라고 할게요.”

- 너 진짜야? 진짜 우리 성태가, 그러니까 2박 3일을…….

“지금 천국이라니까요, 이모. 잘못하면 이모 내년에 할머니 돼요!”

- 너는 꼭!

“솔직히 좋으시죠?”

- 진짜지? 이거 거짓말이면 나 평생 너 안 본다.

“이게 거짓말이면 내가 민정이한테 장가갑니다.”

- 뭐래, 얘가?

“어떻게? 성태한테 연락해요, 말아요?”

- 너, 쓸데없이 성태한테 연락하지 마.

단호한 반응에 최치곤이 히죽 웃었고, 안다미는 이상하게 한숨이 올라왔다.

“알았어요. 하여간 할머니 될 준비나 하고 계세요.”

- 끊어.

통화가 끝나자 지닌 힘을 모두 쏟아낸 사람처럼 최치곤이 머리를 베개로 젖혔다.

쿵.

“카흐, 씨…!”

침대 뒤의 쇠틀에 뒤통수를 찧은 최치곤이 단박에 욕을 뱉어냈다.

**

전화를 내려놓은 장숙경은 김민정에게 통화 내용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거 봐, 엄마. 이제 난 엄마가 무섭기까지 해.”

“뭐가?”

“진짜 이러다가 아들 뺏긴 시어머니처럼 구는 거 아닌지 무섭다고.”

삐뚜름하게 노려보는 장숙경의 시선에도 김민정은 밀리지 않았다.

“성태 오빠가 전화기 안 가져서 다행이지, 여행 갔는데 엄마가 전화해서 괜찮냐, 어디냐, 누구랑 있냐, 그러면 상대방이 뭐라 생각하겠어? 제발 이제 성태 오빠 놓는 연습을 해. 이러다가 엄마 때문에 성태 오빠 결혼 못 하겠어.”

“알았어.”

다른 때 같으면 발끈했을 장숙경이 이번만큼은 순순히 김민정의 뜻을 받아들였다.

“엄마가 이러고 있어서 나까지 체했나 봐, 이상하게 속이 머쓱 머쓱하네.”

찌푸린 얼굴로 듯 명치를 두드린 김민정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너, 이년, 혹시?”

“엄마!”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김민정의 눈매에 장숙경은 고개를 모로 틀었다.

“이게 다 치곤이, 그 새끼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래.”

그나마 마음이 놓였는지 장숙경은 거친 입을 되찾고 있었다.

**

처참했던 과정을 들려준 이병렬은 마지막에 조철호가 했던 제안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잠시 힘겹게 앞을 노려보던 조태완은 다시 입에 걸린 마스크를 가리켰다.

말려봐야 고집을 꺾을 사람이 아니어서 이병렬은 팔을 뻗어 마스크를 벗겼다.

“병원을 옮기겠다.”

그 직후에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조태완이 요구를 내놓았다.

조태완이 방지병원에서 나가면 태완이파가 어떻게 나올지 감시조차 어렵다. 강성태가 있다면 지시를 따르는 거로 끝날 일인데 막상 결정해야 할 위치에 놓이자 이병렬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병렬의 침묵을 충분히 짐작할 조태완이었다.

“조 변을 불러.”

그런데도 그는 한 번 세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태완이 힘겹게 눈알을 돌려 이병렬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형님. 보스가 제게 태완이파와 신호남파를 관리하라 하셨습니다.”

이병렬이 다부지게 뜻을 밝혔다.

퉁퉁 부은 데다 피멍이 올라온 입술로 조태완이 옅게 웃었다.

“수습은 내 돈으로 하면서 말이지.”

“뭐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말 하기 자존심 상하는데 너랑 나랑 둘만 있으니까…. 너도 알지? 연장 맞아 실려 오면 힘 빠진다. 동팔이 새끼 깨졌고, 웅진이, 은우 망가져서 힘 실을 곳도 없고.”

말을 하다 지쳤는지 힘들게 숨을 고른 조태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아를 감추려고 그런 거니까 병원 옮겨.”

어렵게 말을 건넨 조태완이 눈알만 굴려 이병렬을 보았다.

“이 새끼야. 나한테 마지막 남은 게 세아다. 그거 지키겠다고. 여기에서 살아나면 나는 고문으로 내려앉을 테니까 조직은 네가 관리해. 그리고…….”

목이 타는지 조태완은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내가 딴 짓 했다가 강성태가 깨어나면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 이민 가느니 여기에서 속 편하게 고문할란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옮겨.”

눈알을 돌리고 있는 게 힘겨웠던지 시선을 앞으로 돌린 조태완이 듣기 거북한 숨소리를 내며 헐떡였다.

이병렬은 팔을 뻗어 조태완의 코와 입에 마스크를 덮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제가 나가서 변호사에게 말하겠습니다.”

마스크를 씌워준 이병렬이 손을 내릴 때였다.

조태완이 손을 펼쳐 이병렬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내가 못 일어나면 세아만큼은 꼭 챙겨라. 다른 새끼 찝쩍대지 못하게 지켜보고.”

이렇게 좋을까?

나오는 헛웃음을 삼키기 위해 이병렬은 표정을 더욱 굳혔다.

“예, 형님.”

“강성태는 어지간하면 못 만나게 하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네가 해. 인물이 씨발, 너무 잘났어.”

조태완의 진심 가득한 당부를 들으며 이병렬은 결국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쉬십시오, 형님.”

이병렬이 고개를 짧게 숙이자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조태완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

간호사를 부른 최치곤은 화장실을 비롯한 온갖 핑계를 대고는 끝내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안다미와 함께 있는 게 뻑뻑해서 그런 것도 같고, 강성태와 둘만 있게 배려한 눈치이기도 했다.

최치곤이 병실을 나간 뒤에 안다미는 원래 앉아 있던 침대 옆에 자리했다.

안다미는 수술실에서 보았던 강성태의 몸을 떠올렸다.

전에 보았던 흉터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생겼을 거란 생각을 하자 강성태의 과거가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웠을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느낌도 들었다.

팔뚝에 매달고 왔다는 칼도 보았다.

“그래놓고 커피숍에서 잘도 그렇게 순박한 미소를 지었네요?”

강성태의 머리를 쓸어주며 안다미는 듣고 있다는 양 말을 건넸다.

“성태 씨, 나 있잖아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래서 꼭 아빠에게 인정받고, 축하받고 싶어요.”

머리를 쓸어주던 안다미가 이번에는 이마를 타고 흐른 눈썹을 따라 검지를 움직였다.

누가 봐도 강성태의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깡패 안 할 거란 말 믿어요. 마약 때문에 이랬다는 말도요. 왜 성태 씨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옳은 일을 했다고 믿을게요.”

팔을 내린 안다미는 침대 옆으로 놓인 강성태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나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러 멕시코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료 지원 가는 거 인정해 줘요. 멕시코 정부에서 안전을 보장한대요. 우리나라 건설사에서 숙소와 병동도 직접 세울 거고요.”

나직하게 바람을 전한 안다미가 강성태의 손을 좀 더 꼭 쥐었을 때였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와 함께 침대를 끄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혹시 환자가 또 들어오나?

“조심해! 이쪽으로!”

그보다는 안쪽에 있는 환자를 이송하는 소리로 들렸다.

누군가 깨어났다더니 병원을 옮기는 모양이었다.

기껏 위기를 넘겼더니 돈 되는 과정은 다른 병원으로 간다고 투덜댈 유헌우가 떠올라 안다미는 혼자 웃었다.

그 직후였다.

복도에서 좀 더 큰 소란이 있었다.

“뭐야? 어딜 들어와!”

이번 소란은 단순히 침대를 옮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 올라온 걸 막는 게 분명했다.

안다미가 문을 바라보는 사이 소란은 금방 줄어들었다.

어쩌면 병실을 착각한 사람들이 올라오면서 오해가 있었나 보다.

안다미가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병실 문에 꽉 찰 정도로 덩치가 커다란 흑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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