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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 10화 (159/513)

8권 - 10화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두둑.

발악처럼 터지는 소총 소리가 강성태를 급하게 만들었고,

부슈-웅. 부슈-웅.

연달아 이어지는 저격용 총이 침착하라는 키란의 외침처럼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 울려 퍼졌다.

이를 악문 상태에서 강성태는 움막을 향해 직선으로 달렸다.

아래쪽에 더 있을지 모를 저격수를 잡아주지 못했다.

다르게 말하면 키란이 언제 저격수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투두둑. 부슈-웅. 투두두두둑.

저렇게 연달아 방아쇠를 당기면 아무리 몸을 감춘 저격수라고 해도 장소가 드러난다.

키란은 길리슈트는 말할 것 없고, 위장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성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소총을 앞으로 든 강성태는 가파른 경사를 내려서 완만한 둔덕에 도착했다.

투두둑. 투두두둑.

왼편에 창고 용도로 보이는 움막, 오른편에 지프 두 대와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였다.

**

무전을 마친 시날로 후아스는 책상에 달린 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우우우-웅.

사이렌이 적막을 깨부수는 사이 그는 책상 옆으로 달려가 벽에 걸어두었던 코흐 G3 소총을 집어 들었다.

사각형의 탄창을 움켜쥔 후아스는 인생의 굴곡을 함께한 G3 소총에 끼워 넣었다.

철컥. 철커덕.

얼른 가서 괘씸한 한국놈을 죽여 버리자!

탄창을 넣고 노리쇠를 당기자 잠에서 깨어난 G3 소총이 후아스의 본능을 일깨웠다.

건물 앞으로 모인 대원들의 고함과 지프, 트럭의 엔진음을 들으며 후아스는 방탄복을 걸쳤고, 이어 탄창과 대검, 수류탄, 권총을 주렁주렁 몸에 걸었다.

그 직후에 그는 독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고작 한국인 하나에 동조자 한 놈이 시날로 후아스가 깔아놓은 가페 출신의 저격수를 뚫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인상을 버럭 찌푸린 그는 급하게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

소총이나 권총쯤이야 하던 사람도 바로 옆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귀청이 얼얼할 정도의 소리에 놀란다.

안다미와 동료들은 구석에 처박혀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런데도 직접 듣는 총소리가 주는 원초적인 공포를 이기기 어려워서 자꾸만 몸을 움츠렸다.

투두두둑. 투두둑.

산맥을 울리는 총소리는 귀를 타고 들어와 폐에서 울린 다음 심장을 흔드는 느낌이었다.

당장에라도 머리에 총알이 박힐 것만 같은 두려움, 인질이 된 이후에도 추상적으로만 떠올리던 죽음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검은 숨결을 귓가에 불어대는 듯한 두려움에 세 사람은 정말이지 넋이 반쯤 빠져나간 상태였다.

투두두두둑. 투두둑.

소리만으로도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데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을 강성태는 지금 어떨까.

무릎에 머리를 감싸며 안다미는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부슈-웅. 투두두둑. 투둑.

‘사랑해요! 성태 씨! 사랑해요!’

이렇게 구하러 올 거라 기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는 우습지만, 강성태는 목숨을 걸고 안다미를 구하러 온 남자였다.

강성태에게 더 바라는 거 없다.

지금 당장 돌아간다고 해도 손톱 끝만이라도 서운하지 않았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지 못한 동료가 몸을 더욱 움츠렸다.

**

강성태가 지프 아래를 살필 때였다.

위쪽에서 자동차의 엔진음이 또다시 들렸다.

‘염병!’

타다다다다-앙! 타다당! 타다다다-앙!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촘촘히 늘어선 나무 사이를 통해 언덕 위에 도착한 지프와 트럭을 발견했다.

부슈=웅!

키란이 소총을 발사하자 움직임을 멈춘 지프와 트럭에서 최소 20명은 돼 보이는 대원들이 뛰어내렸다.

완벽하게 훈련받은 동작이었다.

저쪽에서 움막을 겨누려면 상체를 드러내야 한다.

아니면 팔만 뻗어 대충 갈기거나.

그 총알에 맞아도 사람은 죽는다.

움막 앞에 세워둔 지프를 이용하려던 계획이 틀어졌으니 남은 건 원래대로 숲을 뚫고 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적들이 바렛이나 RPG-29라도 쏘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변한다. 그게 아니어도 한두 놈 아래로 내려서서 움막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인질의 생명을 담보하기도 어려웠다.

투두둑. 타다다다당! 투두둑.

상의에 매달아 놓은 수류탄을 꺼낸 강성태는 안전핀을 당겼다. 그리고는 아래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 지프 아래를 노려보았다.

툭. 투욱.

건네주듯 던진 수류탄이 지프 아래로 굴러 들어간 직후였다.

화들짝 고개를 돌린 멕시코 대원이 시선을 내렸다가 눈을 부릅떴다.

쿠으으응!

지프의 한쪽이 불쑥 들렸다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땅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에 강성태는 지프를 향해 달렸다.

타다다다당! 타다당! 부슈-웅!

위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지며 강성태가 달리는 주변의 흙과 나무가 거칠게 터져나갔고,

타다다당! 타다당!

강성태가 지프 뒤에 몸을 숨기고 나서는 문짝과 엔진 위의 철판에서 불똥이 요란하게 튀었다.

부슈-웅! 부슈-웅!

강성태를 잡기 위해 적이 상체를 세웠고, 그걸 노린 키란의 대응이었다.

꾸루루루룩.

강성태는 아래를 향해 새소리를 요란하게 질렀다.

‘키란!’

지프의 뒤에서 몸을 일으킨 강성태가 달릴 준비를 마친 순간이었다.

부슈-웅!

기다리던 총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에 강성태는 움막을 향해 뛰어들었다.

콰다당!

강성태가 문을 차고 들어갔을 때,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반발 늦은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소총을 겨눈 채 안을 훑은 강성태는 구석에 몰린 세 사람을 발견했다.

총구를 본 남자 둘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는데 안다미만은 멍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견뎠어요.’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강성태는 짧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당황하고, 놀라고, 한편으로 감동해서 안다미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부슈-웅!

서두르라는 듯 키란이 발사하는 소총 소리가 들렸다.

탄알도 얼마 남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강성태는 세 사람이 있는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잠시 나오세요!”

“한국 분입니까?”

볼이 퉁퉁 부은 남자 한 명이 놀란 음성으로 질문을 던져서 강성태는 짧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부슈-웅! 부슈-웅!

멕시코 지원군이 언덕을 밀고 내려오는지 키란의 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서두르세요!”

강성태가 구석을 가리킨 순간이었다.

벌떡 일어선 안다미가 강성태를 끌어안았다.

떨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 온기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잘 견뎠어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강성태는 소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왼팔로 안다미를 안았다.

“이쪽으로요!”

그리고는 안다미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안다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포옹하는 장면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동료 두 명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성태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다미 씨.”

강성태가 부르자 품에 안겨 있던 안다미가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

“이제 가야죠.”

안다미의 눈을 들여다보며 강성태가 건넨 말이었다.

숨을 짧게 뱉은 안다미가 구석으로 움직일 때, 강성태는 조금 전까지 세 사람이 있던 곳으로 가서 소총을 들었다.

푸슈슈슝! 푸슈슝! 푸슈슈슝!

샌드위치 패널의 한쪽에 연달아 구멍을 뚫은 강성태는 이어 발을 들어 세차게 걷어찼다.

쾅! 콰앙! 콰작!

“적의 지원군이 와서 차를 이용할 수 없으니까 이리로 갈 겁니다! 대기하는 병력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니까 서두르세요!”

강성태의 말에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안다미였다.

그녀를 믿은 강성태는 뚫어낸 샌드위치 패널 바깥으로 나가 주변을 살핀 뒤에 몸을 돌렸다.

“나오세요!”

안다미가 먼저 나왔고, 이어서 동료 두 사람이 순서대로 몸을 웅크린 자세로 밖으로 나섰다.

뒤편이라 키란이 충분히 볼 수 있을 장소였다.

강성태는 왼손을 둥그렇게 말아 입 앞에 세웠다.

꾸르륵. 꾸르르륵.

안다미와 동료 두 사람이 놀라고 신기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꾸르르륵.

키란의 답이 울린 다음이었다.

“저 아래 나무 보이죠? 먼저 거기까지 갈 겁니다.”

“혼자 온 겁니까?”

강성태가 지시하자 볼이 퉁퉁 부은 의사가 당황한 음성으로 질문을 건넸다.

“지금 그걸 따질 때예요? 얼른 가요.”

답은 안다미가 했다.

“준비됐죠?”

“예.”

안다미를 돌아본 강성태가 먼저 움직였다.

줄줄이 뒤따라서 내려설 때였다.

부슈-웅! 타다다다당!

키란의 총소리가 울렸고, 이어 소총 소리가 들리며 움막의 벽에 연달아 구멍이 뚫렸다.

숲으로 들어가면서 강성태는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조금만 서두릅시다.”

그렇더라도 산책하듯 걸을 수는 없어서 강성태는 안다미와 동료 두 사람을 재촉했다.

소총을 겨누며 길을 뚫고 있었다.

바로 곁에 안다미가 있는데 거친 숨소리만 들을 뿐, 눈을 마주치거나 손을 잡지도 못했다.

멕시코의 시에라 마드레 산맥을 뚫고 가는 길이었다.

꾸욱. 꾹.

아래쪽에서 새로운 새소리가 들렸고.

꾹. 꾹. 꾸우욱.

강성태가 곧바로 비슷한 소리로 답을 보냈다.

부스슥.

그런 뒤에 아래쪽에서 키란이 올라왔다.

“안심하세요. 함께 온 사람입니다.”

놀란 세 사람을 달랜 강성태는 키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을 맡아줘.”

“예.”

지시를 받은 키란이 앞으로 나서서 소총을 겨누며 길을 열었다.

앞을 키란이 뚫어준 덕분에 강성태가 뒤를 맡으면서 움직이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졌다.

비록 끔찍하게 오래 가야 하지만, 이대로만 계속 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거기에 시날로 후아스라는 세타스 카르텔의 지휘관이 길을 따라 먼저 가서 길목을 지켰으면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버트와 마주치게 될 테고, 양쪽이 교전을 벌이는 사이 비켜나가면 일단 끝이었다.

30분을 더 간 뒤였다.

“허흑. 헉.”

세 명 중 남자 의사 한 명이 더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거친 숨을 토해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험한 산을 한 시간이나 걸었으니 충분히 지칠 만한 상황이었다.

탈주한다는 절박함이 없었다면 아마 이미 퍼져서 늘어졌을 거리이기도 했다.

“키란. 2분만 쉬자. 앞쪽을 맡아줘.”

고개를 끄덕인 키란이 소총을 겨누며 앞쪽으로 움직였다.

영국식 영어였다.

동료 의사 두 명이 강성태의 얼굴과 몸에 걸린 무기, 키란을 보았다가 궁금한 시선으로 안다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무에 기대앉은 안다미는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 안다미를 눈에 담았던 강성태는 뒤를 향해 소총을 돌린 후에 무전기를 꺼냈다.

“화이트 테일. 코드 레드워터.”

강성태가 보내는 무전을 헉헉거리는 남자 의사 두 명이 신기하고 긴장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습게도 뭐가 저렇게 잘생겼어, 하는 감탄도 묻어 있었다.

“화이트 테일. 코드 레드워터.”

정적 속에서 강성태가 두 번째 무전을 보낸 직후였다.

치이익.

- 화이트 테일. 말해라. 코드 레드워터.

직직대는 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대꾸가 있었다.

“약속대로 도착한다.”

치익.

- 상황 파악했다. 코드 레드워터.

버트가 기다리고 있다.

적들이 추적해 오기는 하겠지만, 이대로 산맥의 중간으로 빠져나가면 구르카 용병인 키란과 강성태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무전을 모두 알아들은 눈치였다.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나무에 기대앉은 안다미를 보며 옅게 웃었다.

‘괜찮은 거죠?’

씻지 못한 얼굴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안마디가 강성태를 향해 미소 지을 때였다.

부슥. 부스슥.

아래쪽에서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내내 조용했는데 벌써 이 정도까지 다가왔다고?

강성태가 시선을 돌릴 때 키란이 날카로운 눈으로 앞쪽에서 다가왔다.

소리를 듣지 못한 안다미와 동료 두 명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하고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키란. 인질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해.”

나직하게 전하는 지시의 끝에서 강성태는 키란의 눈을 분명하게 들여다보았다.

“반드시 돌아간다. 그러니까 인질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해.”

“형님?”

키란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키란. 냉정하게 생각해. 내가 맡는 게 살아날 확률이 높아. 중간에 있는 여자 의사가 안 가겠다고 버틸지 몰라. 강제로 데려가.”

볼을 두어 번 씰룩인 키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오는 눈치거든요. 출발하겠습니다.”

강성태는 최대한 태연한 음성으로 세 사람에게 뜻을 전했다.

안다미가 가장 먼저 일어섰고, 이어서 낑낑대는 모습으로 두 명의 남자 의사가 몸을 세웠다.

“출발하세요.”

강성태를 돌아본 키란이 출발했고, 남자 의사와 안다미, 다시 남자 의사의 순서로 뒤를 따랐다.

나무가 무성한 곳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안다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원래 자리에 서 있던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왜 거기 있어요?’

그녀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일단 출발하세요.”

강성태가 나직하게 전한 말에 앞서가던 남자 의사가 걸음을 멈췄고, 그 뒤에 키란이 다시 돌아와 안다미의 곁에 섰다.

“뭐예요? 왜 그런 거예요?”

“뒤를 경계할 필요가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먼저 가세요. 금방 뒤따라갈 겁니다.”

확인처럼 안다미가 키란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당! 퍼버버버벅!

강성태의 앞쪽 흙이 사정없이 튀었다.

“키란!”

강성태가 고함을 지르자 키란이 안다미의 허리를 감아서 앞으로 움직였다.

“뭐예요! 왜 이래요!”

타다다당! 타당! 타다다당!

“놔요! 성태 씨! 강성태!”

요란한 소총 소리 사이에서 안다미의 비명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고, 그 직후에 앞쪽 아래에서 멕시코 대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철컥.

강성태는 MP5를 들어서 아래를 겨눴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지원이 더 왔나?

당장 보기에도 스물이 넘는 멕시코 대원들이 강성태가 있는 능선을 넓게 차지한 채 올라오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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