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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 13화 (162/513)

8권 - 13화

화들짝 돌아서는 적을 향해 강성태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퍼억! 푸슝! 퍼윽!

이마가 터진 두 명이 쓰러지기도 전이었다.

강성태는 옆을 향해 몸을 던졌다.

타다다다당! 퍼버버벅! 타다다다당! 퍼버버버벅!

동료가 죽었다고 판단했거나 어쩔 수 없다고 여긴 비정한 총질이 강성태가 있던 곳의 나무들을 터트렸다.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일어난 강성태는 다시 힘껏 몸을 날렸다.

툭. 투둑.

예상대로였다.

수류탄 두 개가 돌에 맞아 이리저리 튀었고,

콰응! 콰으응!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돌가루와 터진 나뭇조각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잔해가 다 떨어지기도 전에 강성태는 바닥에 묻었던 고개를 들고는 소총을 겨눴다.

푸슈슈슈슝!

총알이 날아왔던 방향을 짐작해서 갈겼다.

“끄으.”

털썩! 콰드드득.

쓰러진 적이 능선을 따라 떨어진 모양이었다.

숲에 가려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였다.

총을 쏜 성태는 짐승처럼 기어서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타다다당! 퍼버벅! 타다당! 퍼버벅!

강성태의 발꿈치 부근의 흙이 사정없이 튀었다.

가까이 붙어서 쏴대는 총질은 누가 더 몸을 잘 숨기는가, 다음으로 누가 더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느냐로 삶과 죽음이 갈린다.

몸을 낮춘 강성태가 총알이 날아왔던 방향을 겨눌 때였다.

푸슈슝! 털썩.

키란의 총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아!’

당연하게 키란의 위치가 드러난다. 더구나 적들보다 아래에 있어서 훨씬 불리한 위치였다.

강성태는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자세를 잔뜩 낮춘 채 적이 있으리라 짐작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콰으응!

염려했던 대로 키란이 있으리라 예상된 곳에서 수류탄이 커다랗게 터졌다.

허리에 고개를 파묻었던 강성태는 우수수 떨어지는 돌과 흙가루의 소음을 타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나뭇잎 사이에서 또다시 수류탄을 꺼내 든 적의 뒷모습이 보였다.

강성태가 노리는 걸 빤히 아는 상황에서 대놓고 두 번이나 수류탄을 던지는 건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그러니까 가페 대원이 저 지랄을 하는 건 완벽한 함정이란 뜻이었다.

어딘가에 몸을 숨긴 적이 강성태가 총을 쏘기만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티잉.

작은 언덕 끝에서 몸을 낮춘 적이 안전핀을 뽑았다.

찾아, 강성태.

몸을 숨기고 소총을 겨누는 적을 찾으라고.

지금 강성태가 안 보이는 장소, 그러나 수류탄을 준비하는 적을 쏘면 바로 튀어나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곳.

빠르게 주변을 훑던 강성태는 바로 아래 잡목의 가지 틈에서 어색하게 뻗은 총구의 끝을 발견했다.

숨은 적을 먼저 해결하다가는 키란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철컥! 푸슝! 퍼윽!

강성태가 수류탄을 뒤로 젖히는 적의 목덜미를 뚫은 것과 거의 동시에 잡목 틈에서 소총의 총구가 불쑥 올라왔다.

동료였다면 칭찬했을 만큼 정확하고 민첩한 동작이었다.

와락.

강성태는 아래로 몸을 던지며 올라오는 총구를 옆구리에 끼웠다. 그리고는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왼팔로 시날로 후아스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기우뚱 기울었던 시날로 후아스가 강성태와 함께 뒹구는 순간이었다.

꽈으으응! 부스스스!

수류탄이 터지며 돌가루와 잡목들의 잔해가 진하게 떨어져 내렸다.

콰작! 콰자작!

강성태가 오른쪽 팔꿈치로 시날로 후아스의 턱을 갈겼고,

퍽! 퍼벅!

중지를 뾰족하게 세운 그가 강성태의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연달아 찍었다.

콰작! 퍽!

시날로 후아스의 입가와 볼, 왼편 턱 아래가 찢어져 피가 번졌고, 강성태의 옆구리와 허리 아래에서 붉은 피가 흠뻑 묻어나왔다.

이대로 더 맞으면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왼손으로 움켜쥔 목덜미를 강성태가 당기자 깔리지 않기 위해 시날로 후아스가 몸을 굴렸다.

둔덕을 데굴데굴 구른 강성태와 시날로 후아스는 작은 언덕의 끝으로 미끄러졌고, 그 직후에 몸이 붕 떠올랐다.

털썩! 털썩!

바닥에 떨어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누군가 코와 입을 틀어막은 듯 숨을 쉴 수 없었고, 왼편 옆구리와 겨드랑이, 허리에서는 생살을 칼로 가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이런 고통, 강성태는 지하차도를 건너며 여러 번 겪었다.

콰드득.

볼을 씹은 강성태는 몸을 세우며 쿠크리를 꺼내 들었다.

시날로 후아스는 만만치 않았다.

다부진 체형의 그는 코와 왼쪽 볼에서 흘리는 피만큼이나 붉게 물든 눈을 하고서 대검을 뽑았다.

휙휙! 휙!

핏물로 물든 눈을 치켜뜬 시날로 후아스가 위협적으로 대검을 휘둘렀고, 자세를 낮춘 강성태는 쿠크리를 오른손에 들고 기회를 엿봤다.

“더러운 아시안! 눈을 찢어주마!”

휙휙!

모욕적인 말을 던진 시날로 후아스가 대검을 앞으로 내는 순간이었다.

휙! 콰득.

강성태는 쿠크리를 뻗어 대검의 등에 박힌 톱날에 걸었다. 그리고는 달려들며 쿠크리를 잡은 손목을 아래로 뒤틀었다.

콰가각.

시날로 후아스의 대검을 아래로 밀어낸 쿠크리가 불쑥 위로 튀었다.

서걱. 서걱. 서걱.

단숨에 시날로 후아스의 오른손목과 팔뚝, 팔꿈치 안쪽을 가른 강성태는 쿠크리를 거꾸로 뒤틀어서 겨드랑이 양쪽을 위로 갈랐다.

서걱. 서걱.

“끅.”

팔을 길게 늘어트린 시날로 후아스의 머리를 강성태는 왼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엄지가 그의 오른쪽 눈알을 파고들 때였다.

남은 눈알을 들여다보며 강성태는 쿠크리의 구부러진 날을 그의 목에 걸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게 인종차별까지 해?”

“끄윽.”

왼손 엄지가 눈알을 파고들자 고통을 이기지 못한 시날로 후아스가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의 겨드랑이에서 뿜어진 피가 덜 잠근 수도에서 떨어지는 수돗물처럼 수류탄에 팬 돌바닥에 거칠게 떨어지고 있었다.

“지옥에 가면 소원대로 백인들 틈에서 지내.”

강성태는 시날로 후아스의 목에 걸었던 쿠크리를 깊고 길게 당겼다.

서거-억!

구부러진 날이 단숨에 뒷덜미를 파고들면서 목이 반쯤 갈라졌고, 곧바로 붙들고 있던 머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털썩.

손을 놓기 무섭게 바닥에 널브러진 시날로 후아스는 좀비에게 물린 사람처럼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리며 시뻘건 피를 간헐적으로 뿜었다.

“퉤!”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낸 강성태는 소총을 들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전에 굴러떨어졌던 적의 시체 옆이었다.

작은 언덕 아래로 드러난 나무뿌리 밑에 기대 있던 키란이 강성태를 올려다보고는 힘겹게 웃었다.

“허억. 허억.”

둘이서 거친 호흡을 주고받은 뒤였다.

“무전 먼저 하십시오.”

“다친 곳은?”

“인질들이 그리 가고 있습니다. 버트에게 무전 먼저 하십시오.”

오른쪽 어깨와 가슴, 허리, 왼쪽 허벅지가 피로 물든 키란이 강성태를 재촉했다.

**

홀로 머리를 쳐든 나무로 향하던 안다미 일행은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몸을 웅크렸다.

타다다다-앙! 쿠으응.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것처럼 총소리가 연달아 울렸고, 바닥이 우르릉 울리는 폭발음이 드문드문 들렸다.

그 와중에도 안다미는 용병들은 이런 삶을 살았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쿠으으응!

뉴스에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참혹하고 긴박한 순간들이었다.

홀로 뒤에 남은 강성태, 길을 열던 도중에 달려갔던 키란, 두 사람의 삶에서 저 끔찍한 폭발음과 총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저렇게 살아왔던 강성태가 안다미의 따듯한 손길에 차갑던 마음을 녹였다.

“안 선생?”

그나마 총을 받아든 박재구가 걸음을 재촉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안다미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연달아 들려오던 총소리와 폭발음이 잠잠해지자 숲을 차지한 침묵이 불안함과 공포를 세 사람에게 욱여넣었다.

홀로 남은 강성태와 비장한 표정으로 달려갔던 키란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함과 공포는 두려움을 불러들여 안다미 일행을 휘감았다.

“허흑. 하흑.”

한국에서 산을 오르다 들었다면 웃음이 터졌을 숨소리가 지금은 처절한 현실을 일깨우는 경고처럼 들렸다.

부서지는 흙에 밀렸던 발이 잡목의 아래를 디디며 멈출 때마다 팔로 무릎을 짚었고, 열이 올라 더 처지는 이승수의 팔을 교대로 당겨가며 세 사람은 그래도 악착같이 걸었다.

어디인지, 얼마나 왔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고, 멀리 돌아보기도 했는데 폭발음과 함께 올라왔던 먼지가 사라지면 정확한 장소를 알기 어려웠다.

“허억. 허억. 허억.”

입술이 바짝 마른 안다미가 서걱거리는 흙가루를 마른침과 함께 삼킬 때였다.

철컥! 철컥!

앞쪽 나무에서 십여 명이 총을 겨누며 나타났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손을 들 생각조차 못 했는데, 총을 들고 있던 박재구는 팔을 옆으로 길게 뻗었다.

“닥터 안?”

나를 불렀어!

안다미는 부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탄조끼, 캐주얼한 복장, 소총, 무전기, 권총, 그리고 미국 남자?

“내가 닥터 안이에요. 버트 그레인인가요?”

“그렇습니다.”

대꾸한 버트가 박재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권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리세요. 아니! 이렇게요. 그렇죠. 천천히 이리 주세요.”

손목을 들었던 박재구가 얼른 시키는 대로 권총을 넘겨주자, 곁에 있던 대원들이 물병을 건네주었다.

이승수와 박재구가 급하게 물을 들이켰다.

“강성태 씨와 키란 씨는요? 두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살았나요? 무사한가요?”

“부상자가 있다는 데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뒤에 하고,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무언가를 더 물으려는 안다미를 외면한 버트가 다급한 음성과 태도로 대원들을 재촉했다.

“움직여! 서두르라고!”

그나마 이승수를 부축해주는 사람이 생겼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안도감에 걸음이 조금은 편했다. 그제야 안다미는 들고 있던 물을 마셨다.

**

불과 이틀 사이에 안호상은 거죽만 남은 사람처럼 핼쑥하게 변했고, 눈 아래마저 푹 꺼지는 바람에 7년쯤 더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오전 10시, 원장실에 앉아있기는 했지만, 안호상은 진료를 보지 않았다.

환자에게 혹여나 잘못된 처방을 내릴까 걱정된 것이 무엇보다 컸고, 다음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기력도 달렸다.

안다미에 대한 염려만큼 안호상을 괴롭히는 건 멕시코로 가 달라며 강성태에게 매달렸던 자신의 이기심이었다.

강성태 정도의 환자라면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도 말려야 했다.

그런 환자에게 죽을 길로 들어가 달라며 매달렸었다.

책상에 올린 팔에 얼굴을 묻은 안호상이 “하아.” 하는 신음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책상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울었다.

번쩍 고개를 든 그는 스마트폰을 집어서 번호를 확인했다.

국제전화가 틀림없는 기다란 숫자가 늘어서 있었다.

제발 끔찍한 연락이 아니기를.

납치범들이 얼마를 요구하든 다 해줄 테니까 무사하기만 해.

수많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는 상태에서 안호상은 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두려움 가득한 그의 음성이 하울링처럼 울린 직후였다.

- 아빠?

“다미냐? 다미 맞아?”

- 저 무사해요! 성태 씨가 구해줬어요!

탄식과 동시에 짧은 울음을 쏟아냈던 안호상은 숨을 뱉어내며 감정을 추슬렀다.

“어디냐? 강성태, 그 친구는?”

-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른대요. 납치범들이 길목을 차단해서 이쪽에서도 도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냐? 뭘 해줄까?”

- 걱정하실까 봐 일단 전화 드렸어요. 상황을 보고 또 전화 드릴게요. 당분간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제가 받아요.

“알았다. 정말 다친 데 없지?”

- 괜찮아요.

누구보다 아끼는 딸의 음성이었다.

통화의 끝에서 안호상은 실제로 그녀가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안호상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 너, 뭐야? 오늘 온다고 했잖아. 어디야?

- 멕시코가 옆 동네도 아니고. 지금 어떻게 가?

- 성태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래? 잘못된 일이 있으면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 네에? 네. 저는 성태의 이모예요.

- 아, 예. 당황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그의 귓가에 공항으로 가며 통화했었던 강성태 이모의 음성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스마트폰이 장숙경이라도 된다는 듯 고개를 깊게 조아린 안호상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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