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 16화 (165/513)

8권 - 16화

덜컹! 덜커덩!

어둠을 탄 지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그럴 때면 곧게 뻗은 라이트 불빛이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600미터쯤 남았다.

라이트의 위편으로 시선을 둔 강성태는 끈질기게 지프의 안쪽을 살폈다.

각진 몸통에 조수석까지 탑승자가 있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내는 사이 지프는 400미터 앞까지 와 있었다.

지프만 뺏을 수 있다면 키란을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함정인지를 악착같이 살피고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300미터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강성태는 라이트의 살짝 위쪽에 시선을 둔 채 지프의 몸통에 집중했다.

‘이런 양아치 새끼들!’

지프를 노려보던 강성태는 욕을 삼켰다.

크으응. 덜커덩! 덜컹!

함정이었다.

꼬드기는 듯 적당한 속도로 달려오는 지프가 흔들릴 때마다 운전석 문 쪽에서 소총이 함께 들썩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문을 잠갔을 테고, 매복한 팀과 저격수들이 강성태가 나오길 바라고 있을 상황이었다.

“키란. 네 말대로 함정 같다.”

힘겨운 얼굴을 한 키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구조팀이 있는 곳까지 달리면 대략 30분쯤 걸릴 거다. 분명히 버트가 기다리고 있을 거고.”

“알겠습니다. 출발하십시오.”

키란은 아무래도 강성태가 먼저 빠져나가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투로 강성태가 웃을 때, 지프는 200미터 안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걸 15분 안쪽으로 줄이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제가 이곳에서 지프를 막겠습니다.”

강성태는 말없이 키란의 방탄조끼에 걸린 수류탄을 붙들어서 당겼다.

“두 개 더 있습니다.”

“하나면 돼.”

강성태의 대꾸를 들은 키란이 지프를 향해 소총의 총구를 돌렸다.

강성태는 손을 뻗어 총구를 붙들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수류탄을 던지면 최대한 빠르게 도로를 건너. 그리고 등에 업혀.”

“형님?”

키란이 부르는 소리를 무시한 강성태는 바닥에 붙어서 도로 위로 올라갔다.

지프는 100미터 언저리까지 와 있었다.

“뭐 해?”

강성태가 독한 눈으로 으르렁대자 키란이 힘겹게 팔을 움직여 도로 근처로 올라왔다.

“3미터 도로다. 건너고 나면 바로 업혀. 시간을 줄일수록 살아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지프는 50미터 앞에 있었다. 고개를 처박은 강성태는 가슴 앞에 둔 수류탄의 안전핀을 조심스럽게 뽑았다.

크아앙. 덜컹. 덜컹.

처박은 얼굴과 돌바닥 사이로 지프의 불빛이 아련하게 파고들었다.

30미터, 20미터, 10미터. 5미터.

좀 더 강해진 라이트 불빛, 삐걱거리는 소리, 선명한 엔진음이 강성태와 키란이 고개를 처박은 바로 위에서 들렸다.

지프가 지나간 직후에 강성태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으로 지나간 지프의 뒤편 붉은 불빛이 멀어지고 있었다.

“준비해.”

10미터쯤 멀어졌을 때, 상체를 일으킨 강성태는 수류탄을 힘껏 던졌다.

폭발이 일어나면 당장 지프의 앞쪽을 먼저 노리지 강성태와 키란이 있는 뒤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수류탄을 던지기 무섭게 강성태는 키란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질질 끌다시피 도로에 올라갔다.

지프에 맞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도로 위에서만 터져라, 제발!

자세를 바싹 낮춘 강성태를 돕기 위해 목덜미를 붙잡혀 끌려가는 키란이 팔과 손을 버둥거렸다.

능선 위의 도로를 건넜을 때였다.

쿠으으응!

땅이 흔들리며 커다란 폭발음이 있었다.

돌덩이, 흙가루가 거칠게 날리는 틈에 강성태는 도로 아래로 내려가 몸을 낮췄다.

부스스! 부스슷!

비처럼 쏟아지는 가루들을 뒤집어쓰며 키란은 강성태의 방탄조끼를 필사적으로 당겼다.

등을 타고 올라온 키란이 강성태의 목을 크게 감는 순간이었다.

염병할! 젠장!

이를 악문 강성태는 능선 아래를 향해 몸을 쭉 폈다.

하늘을 날았나 싶을 정도로 능선이 저 아래로 보였고,

콰작! 촤아아악!

가파른 경사의 돌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강성태와 키란은 아래로 미끄러졌다.

콰으응!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보이는 모든 게 사정없이 흔들리는 가운데 잡목과 나무가 강성태와 키란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콰직! 촤아아악!

돌에 걸렸던 방탄조끼가 찢기는 데도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촤아아악!

잡목이 우거진 장소를 삽시간에 지난 직후였다.

정면에서 거대란 나무가 달려들었다.

강성태가 왼팔로 나무를 밀쳐내는 순간, 팔꿈치에서 울린 콰득 하는 소리가 뼈를 타고 올라와 뇌에서 들렸다.

촤아아악! 촤악!

그리고는 몸이 붕 떴고,

철퍼덕!

강성태와 키란은 비참한 꼴로 바닥에 처박혔다.

살았다!

살았는데, 강성태는 고개를 있는 대로 처박고 신음을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옆구리를 찍힌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능선 위편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는데 상황을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버둥거리며 시간을 끌 여유는 없었다.

‘끄으으.’

몸을 세운 강성태는 바닥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키란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핏물이 고였나 싶을 정도로 붉은 키란의 눈을 독하게 들여다보았다.

‘살자, 키란. 여기에서 살아나가자.’

키란의 눈에 독기가 스며드는 것을 확인한 강성태는 오른팔을 돌려 그를 등으로 당겼다.

달려서 15분 거리였다.

자세를 낮춘 강성태의 등에 키란이 힘겹게 매달렸다.

살자, 키란.

힘들다고 포기하는 순간 죽는 거, 용병이란 게 그런 거잖아.

또 어떤 벼락 맞을 길에 둘이 함께 설지는 모르지만, 당장은 악착같이 살아서 나가자.

몸을 일으킨 강성태는 짐작하는 방향을 향해 절뚝이는 걸음으로 움직였다.

절뚝거릴 때마다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울렸는데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팔꿈치가 부러졌는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뚝이는 다리보다 왼팔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더 끔찍했다.

게다가 엎을 때는 몰랐는데 키란의 다리를 붙들어야 할 왼팔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강성태는 소총의 고리로 왼쪽 손목을 휘감았다. 그런 뒤에 소총을 오른쪽 어깨에 걸어서 키란의 다리를 놓치지 않도록 당겼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피눈물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

지프 안에서 통화하던 버트는 급하게 다가온 대원을 보며 검지와 중지를 입 앞에 세웠다.

이쪽의 급한 상황을 알리지 않도록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교전은 인질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겁니다. 가페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전해주십시오.”

이쪽 편에 붙은 가페 지휘관을 향해 넉넉한 음성으로 말을 건넨 버트는 지프의 바깥에서 기다리는 대원을 돌아보았다.

급한 눈치였다.

“그럼 믿고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어쩐지 저쪽도 전화를 바삐 끊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에게 급한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버트는 바로 지프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1킬로미터 지점에서 폭발이 있었습니다. 수류탄이 먼저 터졌고, 이어 차량 한 대가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프에서 내린 버트는 곧장 임시 막사로 뛰었다.

중앙 탁자에 펼쳐놓은 지도에 붉은 깃대가 꽂혀 있어서 폭발 장소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세타스 카르텔의 모든 인원이 이곳을 향해 집결하고 있습니다. 지프와 트럭 11대가 움직인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버트는 컴퍼스를 들어 폭발지점을 기준으로 원을 크게 그렸다.

“이 반경 안에서 세타스 카르텔이 차지하지 못한 지역이니까, 이쪽으로 구조 A팀을 보내.”

“지금은 몰라도 조만간 교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교전은 일어날 정도면 철수하라고 지시하고, 혹시 미스터 강이 있을지 모르니까 오인 사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일러. 서둘러.”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으나 구조팀장은 바로 몸을 돌렸다.

폭발 위치를 다시 확인한 버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세타스 카르텔이 눈에 불을 켜고 수색하는 와중에 폭파지점까지 이동했다고?

버트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든 안다미는 터무니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앞도 뒤도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물이 왜 이렇게 더러울까.

엉뚱한 생각을 하던 안다미의 낚싯대를 무언가가 무서운 힘으로 끌어당겼다.

안간힘을 써서 끌어낸 건 시커멓고 커다라며 못생긴 물고기였다.

거기에 못생긴 물고기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투로 안다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리 비켜!”

안다미는 거칠게 물고기를 때렸다.

짜악.

실감 나는 감촉에 퍼뜩 눈을 뜬 안다미는 뺨에 손을 올리고 억울하게 바라보는 박재구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이불 좀 덮어주려던 거야. 아무렴 내가 안 선생에게 이상한 짓 하겠어? 이 판국에?”

“미안해. 나쁜 꿈을 꿔서 그랬나 봐.”

말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뒤편에서 직원이 다가왔다.

“필요한 게 있으세요?”

“아뇨. 잠에서 깨어나서 잠깐 이야기한 거뿐이에요.”

안다미가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처음과 똑같이 깔끔한 복장을 한 변호사가 다가왔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겠습니까?”

그는 먼저 직원을 보냈다. 그리고는 안다미가 앉은 좌석의 등받이를 한 손으로 짚고서 상체를 기울였다.

“날이 밝으면 두 사람을 구할 확률이 그만큼 떨어진답니다. 새벽에 구조팀을 투입하겠다는 의견을 현지에서 전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구조팀을 투입하라고 할까요? 아니면 철수하라고 전할까요?”

“이 사건을 맡는 대신 얼마를 받으세요?”

대답 대신 변호사는 어깨를 들었다가 내렸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을 말할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세요.”

“충고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충고가 아니라 결정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구조팀을 보낼까요? 아니면 철수하라고 할까요?”

안다미는 입술에 힘을 꾹 준 상태에서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사인하죠.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계세요. 만약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지 못하면 내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이번 일과 당신의 행동을 밝힐 거예요.”

“사인은 현명한 선택입니다만, 뒤에 말씀하신 내용은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재수 없는 대꾸를 내놓은 변호사가 상체를 돌리고는 엄지와 중지를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직원이 곧장 펜과 서류를 가지고 왔다.

“왜 나만 하죠?”

“두 분은 이미 하셨습니다.”

쨍하고 돌아보는 안다미의 시선을 피해 이승수와 박재구가 커피잔을 들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구조팀을 보내야 한다는 심정으로 안다미는 펜을 집어 변호사가 지정한 세 곳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구조팀은 바로 출발하는 거죠?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위로금 입금만큼이나 확실하게 증명될 겁니다.”

서류를 받아든 변호사가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

강성태는 묵묵하게 걸었다.

달릴 수 있다면 15분쯤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길이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얼마가 더 걸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체온이 맞닿아서 땀이 나야 할 등이 서늘하게 느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악착같이 발을 내디디는 강성태의 목덜미로 키란의 얼굴이 툭 떨어졌다.

이게 싫었다.

하나둘 죽어가는 게.

키란을 내려놓으면 이곳을 빠져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모, 최치곤, 이병렬을 볼 테고 안다미와 함께할 수 있었다.

지금 놓아버린 키란의 무게를 평생 등에 짊어지고서 말이다.

물을 못 마신 게 얼마나 됐지?

갈증 너란 놈도 참 지독하다.

차라리 적이 나타나서 강성태와 키란을 향해 시원하게 방아쇠를 당겨줬으면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누르고 목이 마른 걸 느끼게 하는 게 그렇다.

아직 죽지는 않은 거지?

이렇게 죽으면 내가 어머니를 찾아가 뭐라고 하겠냐?

염소를 천 마리쯤 사드린다고 해?

아니면 한국에서 모실 테니까 함께 가자고 할까?

자고 있어.

무슨 수를 쓰든 여길 빠져나가면…….

절뚝이는 걸음을 옮기던 강성태는 왼쪽 손목에 묶어두었던 소총을 천천히 돌렸다.

분명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방아쇠에 검지를 건 강성태가 자세를 좀 더 낮출 때였다.

“코드명?”

영어로 건넨 질문이 날아들었다.

강성태는 소리가 난 방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남자의 MP5 소총과 방탄조끼도 봤다.

“코드명?”

“코드 레드워터.”

강성태가 나직하게 답을 건넨 직후였다.

“버트 그레인의 구조팀입니다.”

조금 전에 봤던 대원들이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부상자를 봐줘. 살았는지 먼저 확인해.”

구조팀을 확인한 강성태는 총구를 내린 뒤에 무너지듯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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