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 17화
제7장. 이번은 네 말대로 다 하마.
인천공항에 안다미 일행이 도착한 건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활주로에서 벗어난 비행기는 공항 건물에서 떨어진 구석에서 멈췄다.
“위로금은 이미 입금됐습니다.”
안다미와 동료 두 사람을 배웅하듯 다가온 변호사가 인사처럼 건넨 말이었다.
“변호사님은 돈 외에는 할 말이 없어요?”
“물론 멕시코에서 소식이 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구조팀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변호사님은 정말 큰 실수하는 거예요.”
냉정한 안다미의 경고를 변호사는 사무적인 미소로 받았다.
먼저 안다미가 내렸고, 변호사와 악수를 나눈 동료 두 사람이 뒤따랐다.
가져갔던 짐을 모두 잃어버린 터라 손에 든 것도 없었다.
트랩을 내려선 세 사람은 기다리던 버스를 이용해 움직였고, VIP라도 된 양, 여권도 없는 상태에서 입국 신고서 한 장으로 절차를 모두 마쳤다.
입국장 문이 열리며 밖으로 나선 안다미는 초조함을 뒤집어쓴 안호상을 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다미야!”
조명을 반쯤 내린 공항 입국장에서 안다미는 안호상의 품에 안겼다.
부친의 수척한 얼굴과 마른 몸이 가슴 아팠고, 이렇게 돌아온 대신 총성과 폭발음이 가득한 멕시코에 남은 강성태와 키란이 떠올라 안다미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안다미는 부친 안호상을 이해했다.
그토록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면 부친은 절대로 안다미가 비행기에 타도록 지켜볼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가자.”
안다미를 이리 살피고, 저리 돌아본 안호상이 걸음을 옮겼다.
이승수와 박재구도 몇 명 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움직일 만큼 조용한 입국이었다.
지하를 통해서 주차장에 도착한 안다미는 안호상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멕시코에서 다른 소식은 없었니?”
“구조팀이 들어갈 거란 말을 들은 게 전부예요. 어떤 연락이든 오는 대로 전해주기로 했어요. 아빠. 전화기 좀 주세요.”
스마트폰까지 모두 뺏긴 안다미는 아쉬운 대로 안호상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화가 걸려오도록 바꾸었다.
“진짜 다친 곳은 없는 거지?”
“괜찮아요.”
어쩐지 대화가 엇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안다미는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빠. 나 아빠를 원망한 적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안다미가 안호상을 다독인 직후였다.
“내가 성태 그 친구에게 멕시코에 가달라고 부탁했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을 쏟아낸 안호상은 죄를 털어놓는 범인처럼 힘겨운 표정이었다.
“공항에 가는 앰뷸런스에도 함께 있었고, 비행기에 타기 직전에 진통제와 항생제, 그리고 유 원장이 준 영양제를 투여했다.”
운전이 힘겨운지 안호상은 규정 속도보다 느린 속도로 달렸다.
“떠나기 직전에 말이다. 이모란 분이 염려한다고 통화를 부탁했었다. 그래서 이모란 분과도 짧게 인사했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안다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안호상은 말을 이었다.
“강성태 그 친구가 트랩에 오를 때부터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는데,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나는 의사로, 한 사람의 아버지로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총성, 폭발음, 마지막으로 보았던 강성태와 키란의 모습이 떠올라 안다미는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부친 안호상의 당부를 받고 비행기에 오를 때 강성태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놓고 납치범들을 혼자 막겠다며 키란과 떠나보냈다.
강성태의 눈에서 단 한 조각의 원망도 보지 못했다.
원망이 아니더라도 스치는 빛처럼 서운한 감정을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함과 죄책감을 잔뜩 실어서인지 승용차는 공항도로를 무겁게 달렸다.
**
구조팀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한 강성태는 임시 막사 앞으로 나와 있던 버트와 합류했다.
“환자를 봐 줘! 서둘러!”
이미 무전을 통해 내용을 알고 있던 의무대원이 강성태의 독촉과 동시에 키란에게 달려들었다.
키란에게 혈액과 링거를 연결했고, 몇 가지 주사를 붓다시피 놓은 의무대원이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왼팔만 고정시켜 줘. 출발합시다.”
“미스터 강?”
“키란이 위험합니다. 나는 팔만 고정하면 되니까 병원으로 출발합시다.”
독이 오른 강성태를 버트는 말리지 못했다.
대원들이 달려들어서 뒤편을 개조해 간이침대를 놓은 승합차에 키란을 옮겼다.
“앞쪽의 지프에 타면 됩니다.”
“나는 키란과 함께 가겠습니다.”
강성태가 의무대원과 승합차에 오른 뒤였다.
“B팀이 선두를 맡고, A팀이 후방을 책임진다. 출발해!”
지시를 마친 버트가 승합차에 올라 강성태의 옆에 앉았다.
곧바로 앞과 뒤로 늘어선 차량이 일제히 출발했다.
덜컹! 덜커덩!
거친 도로의 진동이 울릴 때마다 키란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플라스틱 틀에 고정해 목에 건 강성태의 왼팔에서도 악랄한 고통이 올라왔다.
이를 악물면서도 강성태는 오른손에 MP5 소총을 놓지 않았다.
달리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버트가 연신 운전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런 길에서 속도를 더 올리기는 어려웠다.
“1시간만 가면 됩니다. 그곳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마치고 헬리콥터로 이동할 겁니다.”
세타스 카르텔의 영향력이 막강한 지역에서 병원에 들르고 헬리콥터까지 타겠다고?
강성태는 시선만 돌렸다.
“우리 쪽에 연결된 가페 지휘관이 직접 지휘하는 이송입니다. 경비나 이송 모두 현직 가페 대원들이 담당합니다. 이두안 회장이 충분히 경비를 지불한 거라 믿을 만합니다.”
가페 지휘관, 현직 대원, 둘 다 믿기는 어렵지만 이두안이 지불했다는 돈만큼은 신뢰할 만했다.
1시간만 달리면 병원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 뒤에는 헬리콥터로 이동하고.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서 흔들리는 키란을 내려다보았다.
“좋은 여자다. 나한테는 과분한 사람이고.”
우리말로 건네서 알아듣지 못하는 버트가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우리 이모도 만족해할걸? 이모부, 민재, 민정이 모두 좋아할 거고. 그런데 네가 못 일어나면 적어도 세타스 카르텔의 대가리를 죽일 때까지는 싸워야 하잖아. 그럼 결혼은 관두고 만나기도 어려워.”
세타스 카르텔이란 단어를 들은 버트가 갑갑한 표정으로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내용을 알아들었다면 아마 기가 막힌 얼굴로 고개를 저었을 거다.
“고맙다. 그리고 하나만 더 부탁하자. 일어나. 일어나 주라.”
말을 마친 강성태는 오른손을 들어 키란의 이마에 올린 뒤에 머리를 쓸었다.
**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대전의 조덕진은 룸살롱의 입구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성기는?”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은 조덕진은 웨이터가 열어주는 룸으로 들어갔다.
“신데렐라도 아니고 12시 땡 쳐야 오는 건 뭐야?”
상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서성기가 테이블에 오른팔을 걸친 채 던진 인사였다.
“뭔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거창한 데서 불러?”
“거창은 씨발. 룸에서 양주 한 모금 하자는 건데,”
30년산 양주병을 든 서성기가 조덕진 앞의 잔을 채워주었다.
“마셔.”
제 앞의 잔을 든 서성기가 권했으나 조덕진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아, 마시라고!”
“내가 널 모르냐? 무슨 일인지 말부터 해.”
조덕진의 대꾸에 픽 웃은 서성기가 잔을 내려놓았다.
“너, 병렬이한테 씹혔다며?”
“이 씨발. 어떤 새끼가 그런 헛소리를 해?”
“소문 다 났어, 이 새끼야. 종수 졸라리 터지는 거 꼼짝 못 하고 보고 있다가 미안하다고 손도 내밀었다며?”
“이런, 이 씨…….”
“야, 야! 일단 들어. 듣고 화내.”
조덕진을 달랜 서성기가 앞에 잔을 잡고는 단숨에 털어 넣었다.
“사실 말이다. 신호남파는 엄밀히 따지면 호남 거거든. 태완이 형님하고 도진이 형님이 치고받는 틈에 병렬이 새끼가 홀랑 주워 먹은 거지. 막말로 너도 병렬이가 무서운 건 아니잖아?”
조덕진의 반응을 살핀 서성기가 상체를 슬며시 기울였다.
“호남 형님들이 연락하셨더라. 어떠냐? 이참에 태완이 형님하고 병렬이 한 번에 해결하자.”
눈살을 찌푸린 조덕진을 향해 서성기는 은근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국 삼합회하고도 연결돼서 이번에 나선 조직들은 삼합회랑 연합회를 구성한단다.”
“연합회 같은 소리 하네. 그런 거 해서 뭐하게?”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간들이 있어요.”
“손가락 계속 까딱거리면 확 부러트린다.”
실제로 까딱거리던 손가락을 내린 서성기는 양주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웠다.
“연합회에 들어가면 업장 확보하라는 의미로 우선 큰 거 열 장씩 밀어준단다.”
“그냥 나서기만 해도 열 장을 준다고?”
“너는 더 받겠지. 종수한테 들은 얘기도 있고, 그쪽 애들도 달랠 수 있을 테니까.”
눈빛을 반짝이는 조덕진을 향해 서성기는 잔을 내밀었다.
“뭐 해? 팔 아파.”
결국, 조덕진은 잔을 잡아서 서성기와 부딪쳤다.
둘이서 스트레이트 잔을 비우고 난 뒤였다.
“삼합회가 왜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지난번 일이 터졌을 때, 삼합회 하부 조직이 깨졌단다. 거기에 병렬이 새끼가 생활하던 놈도 아닌 어린애 끌고 들어와서 주접떨었고.”
“강성태란 애가 워낙 대단하다던데?”
“말만 그런 거지! 야인 시대야? 주먹으로 싸우게? 연장 먹이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잖아!”
서성기는 말끝에서 검지와 중지로 목 근처를 홱 그었다. 그런 뒤에 양주병을 들어 빈 잔을 다시 채웠다.
“솔직히 나도 들은 게 있기는 한데 이게 당최 믿을 수가 없는 거야.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새끼도 있고, 혼자 40명을 쓰러트렸다고도 하던데, 그게 믿겨?”
떨떠름한 조덕진의 반응에 서성기는 미련을 버린다는 투로 상체를 뒤로 뺐다.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이참에 10억 받아서 식당 하나 장만할라니까.”
“내가 뭘 하면 되는데?”
기다렸던 질문이 나오자 서성기가 씨익 웃었다.
“일단 마셔.”
그런 뒤에 잔을 내밀었다.
**
집으로 오는 길에서 안다미는 강성태의 등장부터 뒤를 지키겠다며 홀로 남았던 상황, 그리고 키란이란 동료가 적을 향해 달려갔던 순간을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안다미와 안호상이 집에 도착한 건 자정이 30분쯤 지난 시간이었다.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처럼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안다미가 물을 마시는 사이, 안호상은 지친 얼굴로 주방의 탁자에 앉았다.
“뭐 좀 먹을래?”
고등학교 3학년 때, 의사가 되고 정신없을 때, 안호상은 저렇게 질문하곤 했었다.
“씻을게요. 라면 있어요?”
“꺼내놓으마.”
예전처럼 라면을 부탁한 안다미는 욕실로 향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축 처져 걱정만 한가득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먹고 강성태를 구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마음 같으면 뜨거운 물 아래에 오래도록 서 있고 싶었는데 먼지만 닦아내듯이 안다미는 간단하게 샤워를 마쳤다.
밖으로 나오자 안호상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두 팔을 짚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평생을 양심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부친이었다.
돈이 아니라 칼에 찔리거나 베이고도 치료를 망설이는 사람은 없게 하겠다며 깡패들까지 치료하던 의사였고.
안다미는 안호상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부친의 허리를 뒤에서 안았다.
“아빠. 기운 내세요. 그리고 내일부터 성태 씨 찾는 일 도와주세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안호상의 얼굴이 바로 돌아왔다.
“이번에 파견을 부탁했던 회장이란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나 봐요. 그곳에서 시작해 볼 생각이에요. 안 되면 국회든, 외교부든, 언론사든 찾아가 매달릴 거고요. 아시는 분들 있죠?”
힘들 텐데?
짧은 고민을 떠올렸던 안호상이 씁쓸한 느낌의 미소를 그렸다.
“오냐. 해보자. 그 정도도 안 하면 하루인들 편하게 살겠냐? 뭐든 하자. 이번은 네 말대로 다 하마.”
“고마워요, 아빠.”
몸을 돌린 안호상이 안다미가 여고생이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부드럽게 안았다.
“아차! 배고프다고 했었지?”
갑자기 생각난 듯 안호상이 몸을 돌려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아빠도 드세요. 그래야 내일부터 힘내죠.”
“그렇다면 나는 우유나 한잔 마실란다.”
“그러세요.”
우유를 꺼낼 생각으로 안다미가 냉장고로 향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식탁에 올려둔 안호상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바쁘게 달려간 안다미가 스마트폰을 들었고, 안호상이 식탁으로 다가왔다.
“국제전화예요.”
“받아봐, 얼른.”
부친의 재촉보다 더 빠르게 안다미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조심스러운 안다미의 음성이 잡음을 타고 건너갔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