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 11화 (181/513)

9권 - 11화

제5장. 너를 믿어도 돼?

최치곤은 이은주와 함께 ‘금동이네 집’으로 향했다.

“어이구! 어서 오세요!”

영업 방해를 막아준 데다 밀동의 오주환 일을 해결해준 터라 사장 진금동은 최치곤을 반갑고 극진하게 맞아들였다.

“삼겹살 좀 주세요.”

“그럼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은주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동안, 최치곤은 물을 따랐다.

“카페 일하는 건 힘들지 않냐? 혼자 하다시피 하잖아?”

“성안이가 잘해줘서 힘든 건 없어요.”

점잔을 떨고 싶은 최치곤이 입술을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일은? 고기 먹고 싶은데 혼자는 뻘쭘해서 함께 오자고 했던 거지.”

최치곤이 답을 할 때 불판을 깔아준 사장이 쟁반에 삼겹살과 버섯, 양파를 가져왔다.

“술은 어떻게 할까요?”

“오늘은 그냥 콜라로 주셔.”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던 사장이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는 콜라를 가져다주었다.

“왜 이래? 고기는 남자가 구워야 맛있어.”

콜라를 받은 최치곤은 이은주가 집은 집게를 가로채 고기를 얹었다.

“저녁은 매일 김밥만 먹는다며?”

“그게 제일 편해요.”

“가끔은 고기도 먹고 해.”

“혼자 먹기 그렇잖아요.”

“그런 거면 내가 생각날 때 부를 테니까 같이 먹자.”

고기를 뒤집은 최치곤이 생각난 듯 시선을 들었다.

“쉬는 날은 뭐 해?”

“그냥 집에서 밀린 일 해요.”

“우리 영화 볼래?”

슬쩍 질문을 던진 최치곤이 가위로 고기를 잘랐다.

고기 익는 소리가 좀 더 진해졌는데 이은주의 대답이 없어서 분위기가 어색했다.

“이건 대충 익었다. 먹어.”

집게로 삼겹살 한 점을 집은 최치곤이 얇게 자른 양파 접시에 올려주었다.

“불편해서 그런데요. 진짜 다른 뜻은 없는 거죠?”

“다른 뜻? 뭐?”

“영화 보자고 했잖아요? 그런 거 불편해서요.”

“아이 씨. 쉬는 날도 일만 한다니까 해본 소리지. 그걸 뭘 따져? 얼른 먹어.”

삼겹살을 듬뿍 집어간 최치곤이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적우적 고기를 씹는 최치곤 앞에서 이은주가 고기를 입에 넣었다.

“사장님. 공깃밥 하나 하고 고추장 좀 주셔.”

주문을 던진 최치곤은 깻잎을 한 장 집어서 이은주에게 건넸다.

“밥 나오잖아? 그럼 밥 한 숟가락에 고기 얹고 고추장 찍어서 먹어 봐. 이게 성태랑 내가 삼겹살 먹는 방식이야.”

“고추장을요?”

“일단 먹어 봐. 죽인다니까.”

사장이 가져다준 밥을 테이블의 가운데 놓은 최치곤이 젓가락으로 푹 떠서 이은주가 들고 있던 깻잎에 올려주었다.

이어 고기 한 점을 올려준 최치곤은 고추장까지 젓가락으로 떠서 위에 발라주었다.

“원래 이러세요?”

“뭘, 또?”

“다른 여자분들한테도 이러시나 해서요?”

“내가 여자가 어디 있냐?”

픽 웃은 최치곤이 이은주에게 해줬던 것과 똑같이 싸서는 입에 넣었다.

“묵어.”

입에 가득한 음식 때문에 최치곤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맛있어요!”

“그렇지? 하여간 고기 먹고 싶으면 언제고 전화해. 나도 혼자 먹기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기 먹자.”

밥 떠서 올려주고, 고기 집어주고, 콜라 따라주고, 최치곤의 서비스는 누가 봐도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동생 같아서 해주는 거야.”

주방에서 고기를 썰던 진금동 사장이 고개를 숙이며 웃을 정도로 최치곤의 말은 변명으로 들렸다.

**

이병렬이 탄 차가 주차장에 들어선 것을 확인한 강성태는 이성안에게 뒷일을 당부하고 카페를 나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서달수가 고개를 숙일 때였다.

“아저씨!”

카페 문을 열고 나온 맹인선이 강성태를 불렀다.

“어디 가세요? 저녁 드시는 거예요?”

이 정도면 더 알아듣게 선을 그어주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고맙다는 인사 하러 온 거면 아까 그 정도가 좋아. 민재가 좋아하는 요선 씨 동생으로 남는 게 나도 편하고. 카페에 오는 건 오늘까지만 하자.”

“그냥 커피 마시러 오는 건요?”

강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내가 방송국 관계자나 다른 회사 소개해 주길 바라서 이러냐?”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고마워서 그런 거면 말했던 대로 이 정도가 좋아. 네가 또 이곳에 오면 어쩔 수 없이 민재 통해서 언니한테 말할 거고, 다음은 부모님 뵙자고 해서 불편하다고 말씀드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꼭 그렇게 해야 돼요? 그냥 커피 마시러 오는 거잖아요.”

“검정고시 봐야 한다면서? 그거나 해결하고 와. 그 정도는 해줘야 나도 편하게 손님으로 받아들이지.”

“정말 검정고시 통과하면 돼요?”

바로 오간 대화의 끝이 이상했는데 이미 말한 터라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정고시 통과했다는 증서 가져오면 그때는 다른 말 안 한다. 됐지?”

말을 마친 강성태는 몸을 돌려 승용차로 향했다.

운전석 쪽 뒷자리에서 나와 있던 이병렬이 맹인선을 돌아본 뒤에 강성태와 함께 차에 올랐다.

“누구?”

“민재가 도와달라던 아이.”

서달수가 차를 움직이는 사이 강성태는 짧게 내용을 전해주었다.

“인물 뛰어나지, 아버지가 쩔쩔매던 일 단숨에 해결했지, 철없는 애라면 빠질 만도 하다. 깡패 중에는 그런 모습 보여서 마담이나 아가씨 꼬시려고 룸살롱에 동생들 부르는 인간도 있어.”

“그런다고 넘어오는 여자가 있어?”

“많아.”

강성태의 질문에 이병렬은 깔끔하게 답을 내놓았다.

더는 잇고 싶지 않은 화제였다.

표정을 바꾼 강성태는 병실에서 조태완과 나눈 대화와 이세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쩐지 느닷없이 강남의 클럽을 돌아본다고 하더라.”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일 때, 서달수가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또 육개장을 먹어?”

“병원에서 시켜 먹은 건 흉내만 낸 거고 여기가 진짜야.”

“전에 프리 스테이션에서 시켜먹었던 곳 아냐?”

“그때는 입에 상처가 있어서 맛도 제대로 몰랐다며? 일단 내려봐. 죽인다니까.”

혹시 깡패들은 음식 하나를 정해놓고 질릴 때까지 먹는 습성을 가르치나?

한숨이 푹 나왔는데 이병렬의 표정에 담긴 기대를 무시하기 어려워서 강성태는 차에서 내렸다.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제법 있었는데 사장은 이병렬을 극진하게 맞았다.

점심도 육개장, 저녁도 육개장이라 질리기는 했는데 이병렬의 말대로 병원에서 먹은 것과는 확실히 다른 매콤함이 있었다.

30분쯤 걸려 식사를 마쳤다.

“옷을 갈아입어야지.”

“집에 잠깐 들렀다 가자.”

식당에서 나선 강성태는 서달수의 차를 이용해 빌라로 향했다. 혼자 올라간 강성태는 양치를 하고 난 뒤에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친 강성태는 모처럼 거울 앞에서 눈을 들여다보았다.

먼저 삼합회를 해결한다.

다음으로 이병렬 일행과 최치곤이 칼 맞는 상황을 정리하자.

거울을 향해 다짐한 강성태는 몸을 돌려 빌라를 나섰다.

**

된장찌개까지 먹고 난 이은주가 만족한 듯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커피라도 마셔야 하는데?”

“카페로 가면 되죠.”

입맛을 다신 최치곤이 몸을 일으킨 뒤에 계산을 마쳤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배스킨 나빈스? 엄마는 외국인이라는 게 맛있다던데?”

“성안이 혼자 있어서 가봐야 해요.”

“에이, 재미없다.”

툴툴댄 최치곤은 이은주를 따라 카페에 들어섰다.

“오셨어요?”

“늦었지? 미안해.”

“안 바빴어요.”

이성안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넨 이은주는 다용도실에 들어갔다.

“차 드려요?”

“커피 주라.”

최치곤이 주문을 마쳤을 때였다.

유리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부동산 사장이 최치곤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들어섰다.

“마침 있었네? 매니저 오면 연락 좀 해달랬는데 요즘 많이 바빴어?”

“그럴 일이 있었어요.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

“억울한 일이 있어서 그렇지.”

최치곤과 함께 입구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부동산 사장이 급하게 내용을 전했다.

“개인택시를 하던 분이 밤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건데, 그건 경찰서에 연락하셔야지.”

“신고야 했지. 그런데 요 며칠 집에 들어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놈이 있다지 뭐야?”

“그럼 보호 요청을 해요.”

“왜 안 했겠어? 그런데 택시 영업을 마치는 시간이 새벽이라 그때마다 경찰을 부르기 어려워서 부탁하는 거지.”

“뒤통수를 맞은 양반이 무슨 택시를 몰아요? 불안하면 일찍 들어가든가.”

떨떠름한 최치곤을 보며 부동산 사장은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마침 딸내미가 기다렸다가 소리 지르는 바람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말했잖아. 성실한 사람이라 원한 산 일도 없었거든.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주면 안 될까? 아니면 매니저라도 만나게 해주든가?”

“성태가 요즘 바빠서요.”

“그러니까. 지난번 노래방 도와준 것처럼 일단 만나서 들어보기나 해줘. 집에 들어갈 때를 노린다니까 치곤 씨라면 그때 잡을 거 아냐?”

최치곤의 표정을 살핀 부동산 사장이 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놓았다.

“이렇게 부탁할게. 고생한 비용도 낸다고 했고.”

개인택시라는 글자 아래로 ‘박용진’이라는 이름과 콜 대표 전화번호, 휴대전화 번호가 입력된 명함이었다.

다용도실에서 나온 이은주가 이쪽을 바라보자 최치곤은 떨떠름했던 표정을 거뒀다.

“알았어요. 연락해 볼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셔.”

“아후, 이제 마음 좀 놓이네. 내가 전화해 놓을 테니까 꼭 좀 부탁해. 그 집 부인이랑 딸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 죽겠다니까.”

인사를 전한 부동산 사장이 그나마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

트와일라잇은 처참했던 과거를 꿀꺽 삼키고 번쩍이는 불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서달수가 트와일라잇 앞에 차를 세운 뒤였다.

덩치 셋이 빠르게 다가왔고, 그 뒤에서 김정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차에서 내린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인사한 김정훈이 안쪽을 가리켰다.

“국장은 안에 있습니다, 형님.”

번쩍이는 조명이 강성태와 자동차, 아스팔트 도로의 색을 이리저리 바꾸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살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김정훈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성태를 따른다는 의미를 보이고 싶은 모양인지 이병렬은 반걸음 뒤에서 따랐다.

입구를 지키던 가드들이 팔을 늘어트리는 자세로 정말이지 90도로 상체를 숙이며 강성태에게 인사했고, 그와 동시에 줄을 서 있던 젊은 남녀들의 시선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이런 유치한 짓이 왜 필요한지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90도로 인사받는 게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조태완과 이병렬이 그토록 간곡하게 충고하는 일이라면 일단 따라주겠다는 심정으로 나섰다.

삼합회를 정리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한다는 각오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요란한 조명과 귀를 파고드는 음악이 먼저 달려들었고, 그 아래에서 리듬을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강성태.

강성태는 홀을 둘러보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쪽입니다, 형님.”

강성태를 계단으로 안내한 김정훈이 2층으로 올라가 중앙의 방 앞에 섰다.

강성태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돌려 난간을 양팔로 잡고는 홀을 내려다보았다.

신경 써서 차려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음악에 맞춰 일렁이고 있었다.

“약하는 애들은 없지?”

“없습니다, 형님.”

“미성년자 들이는 건?”

“입구에서 확실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형님.”

김정훈이 답을 했을 때였다.

아직 밤이 깊지 않았는데도 너무 흥분한 모양으로 중간에 있는 남자 한 명이 물병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물을 뿌려댔다.

눈짓을 받은 가드 둘이 홀을 파고들어 남자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강성태가 보기에는 충분히 예의를 갖춘 행동이었다.

“잘하네.”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김정훈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고영주를 구하러 들어왔을 때와 같은 구조였고, 집기와 내부 인테리어도 변함이 없었다.

강성태가 상석에 앉자 이병렬과 서달수가 오른쪽에, 김정훈이 왼편에 자리했다.

“국장은?”

“옆방에 기자들과 있습니다. 이왕 오는 거 회식이라도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부르면 와서 인사하겠답니다, 형님.”

갑갑한 표정으로 김정훈이 답을 내놓았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덩치 하나가 들어섰고, 뒤로 줄줄이 열 놈 정도가 들어와 세 줄로 섰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트와일라잇을 맡은 정소국입니다, 형님.”

유도 선수 출신인가 싶을 정도로 떡 벌어진 몸을 지닌 정소국이 인사하자, 뒤에 있던 놈들이 반 박자 느리게 차례대로 몸을 숙였다.

‘일어나서 악수라도 해줘.’

이병렬의 눈짓을 받은 강성태는 손을 내밀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

“여기 인사해. 병렬이 알지?”

이병렬과 서달수를 소개한 강성태는 다시 김정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훈이가 고생이 많다. 잘 따라주고 어려운 게 있으면 정훈이 통해서 말해. 정훈이 지시로 처리한 일에는 다른 말 안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숙인 정소국이 다부지게 답했다.

“정소국.”

“예, 형님.”

“병렬이와 정훈이 믿는 것만큼 너를 믿어도 돼?”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던 모양이었다.

멈칫했던 정소국은 감동한 얼굴이었다.

“맡겨주십시오, 형님.”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며 답하는 정소국을 이병렬과 김정훈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잘한다, 우리 보스!’

슬쩍 돌린 시선에서 이병렬이 더없이 만족한 눈으로 답을 건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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