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 15화 (205/513)

10권 - 15화

제6장. 이 정도는 해줘야 체면이 서지.

택시에서 내린 강성태는 복개천 아래로 늘어선 올망졸망한 다세대와 연립 주택을 따라 걸었다.

이종환이 알려준 훠궈 간판을 찾은 뒤였다.

“형님.”

승합차의 뒤에 몸을 숨긴 이종환이 속삭이듯 부른 뒤에 고개를 숙였다.

놈들이 지켜볼지 모른다는 염려에 강성태는 서두르자는 손짓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승합차의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뒤편에서 덩치들이 고개를 숙였다.

“주차장에 1톤 트럭 보이십니까? 그 옆에 있는 승용차가 형님이 말씀하신 B5 승용차입니다. 그 위로 2층에 불빛 보이십니까?”

승용차를 확인한 강성태는 이종환이 가리키는 다세대 건물 오른쪽으로 시선을 들었다.

“왼편 창이 거실, 오른쪽이 방입니다. 아까 창으로 몇 놈이 움직이는 걸 보면 온면이라도 끓여 먹는 모양인데 지금은 잠잠합니다.”

“안에 몇 놈이 있는지는 모르지?”

“그렇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에 이종환이 답을 내놓았다.

병원에서 보았던 놈들이 광룡과 합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이렇게 되면 잠시 지켜보는 게 현명했다.

다세대 주택의 창을 바라보던 강성태는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소위 ‘꼬마’라고 부르는 스물 초반의 덩치였다.

좁은 이마에 튀어나온 볼살이 눈을 밀어 올려서 최치곤에 버금가는 잔인한 인상의 덩치가 계면쩍은 눈으로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형님. 애들이 출출할까 봐 간식을 먹였는데 바로 치우겠습니다.”

“뭔데?”

“커피하고 순대입니다, 형님.”

강성태가 묻자 이종환이 미안한 음성으로 답했다.

“커피 남았어?”

“드시겠습니까, 형님?”

강성태의 질문에 덩치가 얼른 일회용 컵을 앞으로 내밀었다.

“순대는 다 먹었어?”

“아닙니다, 형님.”

부스럭거리며 순대를 예쁘게 추스른 덩치가 일회용 접시를 두 손으로 건넸다.

“이 정도면 돼.”

강성태는 일부러 서너 개를 집어서 입에 넣고는 우걱거리며 먹었다.

“숙소 생활이 배고픈 건 아니지?”

“아닙니다, 형님.”

커피를 마시는 강성태에게 이종환이 급하게 답을 내놓았다.

“신강남파로 통합된 이후에는 월급처럼 매달 용돈도 내려가고, 장 보는 비용도 따로 챙겨서 냉장고에 고기 떨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형님.”

이어서 자부심이 살짝 드러난 이종환의 설명이 있었다.

“아무리 공권력이 강해도 폭력조직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공권력을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두 가지는 지키자. 하나는 적어도 외국의 조직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를 빠는 일은 없게 하고.”

이종환과 덩치들이 숙연한 태도로 강성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조직을 상대할 때만 힘을 쓴다.”

말을 하던 강성태가 픽 웃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녁에 술에 약 탄 놈 둘을 내가 두들겼는데 조직원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웃었다.”

별거 아닌 설명이었는데 웃음을 가리기 위해 이종환이 시선을 창으로 돌렸고, 덩치들이 고개를 숙였다.

편안해진 분위기에서 한 시간 가까이 지켜보도록 거실과 창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덮쳐볼까 싶기도 했는데, 아무리 대림동이라고 해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문을 부수고 뛰어들면, 줄줄이 늘어선 다세대와 연립의 주민들이 연달아 신고하기 좋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

강성태가 다세대를 노려볼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바르지오 만시니의 전화여서 안 받을 수 없었다.

“Hello?”

이종환과 덩치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 자네 덕분에 큰 걸 잡았어! 하마터면 놓칠 뻔한 걸 잡아냈다고!

바르지오 만시니는 흥분한 음성이었다.

- 전에 삼합회에서 세타스 카르텔에 세 명의 해결사를 보낸 적이 있는데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움막을 내려다보며 저격용 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 그 라인이 움직였다. 가페 출신 대원 다섯 명이 중국인 여권을 소지하고 한국으로 입국한다. 한국 시각으로 이틀 뒤, 일요일 오전 7시, 인천공항, 정확한 이름과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지.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페 출신이 넘어오는 거라면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노리는 거 아닌가?”

-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그런 의심이 들기는 하는데 삼합회와 손을 잡았다면 자네를 타깃으로 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합회와 가페, 양쪽의 욕심이 맞아떨어진 건지도 모르는 거고.

듣고 보니 또 그렇다.

“명단은 바로 보낼 수 있어?”

- 통화 마치고 바로 보내주지. 어떻게 할까? 곤잘레스 회장의 경호책임자 존 보스만에게도 알려야 할 거 같은데?

“나한테 알려줬다는 말도 전해줬으면 싶다. 여차하면 존 보스만과 함께 움직일까 하거든.”

- 그 말을 전하면 존 보스만이 내 볼에 키스를 퍼부을 거다.

“나는 남자끼리의 사랑에 관심 없어.”

정보를 제대로 알아낸 것이 기뻤는지 과장된 바르지오 만시니의 웃음이 넘어왔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다세대를 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일이 점점 커지는데?

강성태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뜻밖의 번호가 스마트폰에 또 올라왔다.

“여보세요?”

- 뭐야? 함께 가기로 해놓고! 너 지금 어디야!

억울함이 가득한 이병렬의 음성이었다.

“혹시 몰라서 병원에 갔다가 수상한 승용차를 봤거든. 그걸 따라 왔는데 처박혀서 꼼짝도 안 해. 이 시간에 들이닥칠 것도 아니어서 일단 지켜보고만 있다.”

- 그러니까! 그런 건 나 같은 선수한테 맡겨야지! 지금 어디인지나 말해.

“잠깐만.”

말린다고 들을 인간도 아니어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이종환에게 내밀었다.

“병렬인데 위치 알려달란다.”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받은 이종환이 양손으로 귀에 가져갔다.

“이종환입니다, 형님.”

위치를 알려주는 동안 스마트폰을 뚫고 나온 이병렬의 흥분한 음성이 승합차를 가득 메웠다.

**

거구인 존 보스만이 어지간한 남자 허벅지 두께만 한 팔뚝을 접어 스마트폰을 귀에 대자 마치 미니어처 장난감 전화기를 든 것처럼 보였다.

“확실합니까?”

- 미스터 강이 의뢰하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루트였다. 중국 정부의 협조가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여권이었고.

“한국이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정말 운이 좋은 일인데 그렇더라도 다섯 명이라면 쉽지 않겠군요.”

반팔에 반바지, 편한 복장으로 움직인 존 보스만은 창으로 움직여 잠에 빠진 서울 도심을 내려보았다.

- 내가 충고 하나 해도 되겠나?

“곤잘레스 회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경호책임자로서 어떤 조언이든 고맙게 받겠습니다.”

- 미스터 강과 의논해. 레드워터 역사상 동양인 최초로 파이널 크루에 선발될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하지 않나? 언짢을지 모르지만, 그가 곤잘레스 회장을 경호할 때 평가도 들었으리라 믿는다.

입술을 늘인 존 보스만이 어련하겠나, 하는 투로 고개를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 그 모습을 상대방인 바르지오 만시니는 볼 수 없었다.

- 내말 듣고 있나?

“물론입니다. 다만, 미스터 강에게 협조를 구하려면 곤잘레스 회장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 그분을 설득하는 것도 자네의 역할이자 능력이 되겠지.

존 보스만은 쓴 입맛을 다셨다.

고집스러운 곤잘레스 이두안을 설득하는 일이 가페 대원 서넛을 상대하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져서였다.

“아시지만, 곤잘레스 회장의 뜻은 분명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도 보이고요.”

- 그야 이미 알고 있지. 그렇더라도 한국이다. 미스터 강만큼 현지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대응하기 어려워.

“내일 오전에 보고드리고 허락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존 보스만은 스마트폰을 침대에 툭 던지고는 창틀에 걸터앉았다.

한번 내린 지시를 바꾸자고 할 때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 그 요구를 건네는 순간, 존 보스만은 해고당할 수도 있었다.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 모르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

굵은 손가락을 들어서 커다란 턱을 긁은 존 보스만이 고개를 저었다.

숨겨진 조력자는 그만큼 힘이 되지만, 반대로 결정적인 순간에 동선과 동작에 혼선이 생기는 탓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가 곤잘레스 이두안에게 솔직하게 털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연달아 침대 위에서 울렸다.

**

강성태는 스마트폰 문자에 올라온 다섯 명을 차례로 보았다.

문평, 장곽, 서등, 양포, 신량의 다섯 명이었다.

여권에 붙은 사진을 보며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화교 출신 멕시코 대원들인가 싶을 정도로 스마트폰에 올라온 얼굴들은 분명한 중국인이었다.

강성태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 문자를 받았을 테니까 그에 관한 내용인가?

“이들은 분명 중국 사람들이다. 그걸 다시 조사해 줄 수 있나?”

- 가페의 기록을 모두 확인해서 그쪽 전산에 올라 있는 사진도 가지고 있어. 다만, 그걸 보냈다가 외부로 유출되면 문제가 커지니까 안 보낸 거지.

“화이트 테일.”

강성태는 나직하게 바르지오 만시니의 닉네임을 불렀다.

“나를 노리는 거면 중국인 다섯 명을 해결하는 거로 끝나. 하지만, 곤잘레스 회장도 노린다면서? 삼합회나 동양인이 곤잘레스 회장을 살해한다면 문제가 커져. 그런데도 이렇게 빤한 중국인을 보낼 만큼 저들이 허술할 거라 기대하지는 마.”

- 한국에서는 동양인이 움직이는 게 눈에 덜 띄어서 그런 게 아니겠나?

“삼합회가 이두안 회장을 노릴 이유가 있나?”

- 양쪽이 서로 원하는 걸 나누기로 했는지도 모르잖나?

곤잘레스 이두안에 관한 내용이라 그런지 바르지오 만시니도 강성태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뒤에 감춰진 게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거다. 만약 우리가 일요일에 들어오는 다섯 명에게 집중할 때, 다른 쪽에서 신분을 감춘 가페 대원이 움직인다면 돌이키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 알았다. 내가 내일까지 입출국 정보를 모두 확인해서라도 다시 알아 살펴보겠다.

“가페에 암살팀이 따로 있어. 그걸 집중적으로 파악해 봐.”

- 오케이.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렸을 때였다.

골목으로 이병렬과 서달수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문을 열고 내리는 이종환을 따라 강성태도 함께 내렸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종환과 서달수가 인사하는 동안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다가갔다.

“오늘 밤은 일단 지켜보기만 할 거라니까 뭐하러 와?”

“할 수만 있으면 밤에라도 덮치고 싶은 거지?”

“지금 새벽 한 시가 넘었어. 잘못하면 신고 들어갈 거고, 괜히 일만 커진다.”

“그런 건 선수한테 맡겨.”

강성태에게 짧게 답한 이병렬이 시선을 넘겼다.

“종환아. 중국어 할 줄 아는 애들 있냐?”

“승합차에 동생 한 명 있고, 부르면 10분 안에 열 명까지 모을 수 있습니다, 형님.”

“그럼 다섯 명 정도 불러.”

“예, 형님.”

거침없는 이병렬의 지시에 이종환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새끼들 있다는 곳이 어디냐?”

“저기 1톤 트럭 보이지? 거기 바로 위에 불 켜진 창 두 개.”

“괜히 이러다가 눈에 띌라. 일단 저쪽으로 가자.”

몸을 돌리는 이병렬을 따라서 강성태와 서달수, 짧게 통화를 마친 이종환이 따랐다.

골목을 비켜나나 싶었는데 의외로 이병렬은 대림역이 있는 복개천 큰 도로까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줄줄이 늘어선 승용차와 승합차 앞에 서 있던 덩치 서너 명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뜩이나 신고가 무서워서 밀고 들어가지 못하는데 숙소 덩치들을 줄줄이 끌고 와?

강성태의 시선을 알아챘다는 듯이 웃은 이병렬이 앞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뭐야?

앞쪽 승용차에서 내린 두 명의 여자를 보며 강성태는 눈만 껌뻑였다.

퇴폐적으로 느껴지는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 요란스러운 염색 머리를 한 삼십 대 초반 여자 두 명이었다.

“인사드려. 우리 보스시다.”

눈치를 살핀 여자 두 명이 강성태를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안마시술소 가지고 있는 거 알지? 출장안마사로 문을 열게 할 거다.”

여자 두 명을 보며 설명한 이병렬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 밖에서 중국말로 시끄럽게 떠들어. 마작하고 카드 치던 중에 싸움 난 거다. 그 정도면 알겠지?”

“예, 형님.”

이종환은 이병렬의 말귀를 대번에 알아들은 눈치였다.

“우리 보스가 아직 모르시나 보다. 신고 들어가서 경찰 달려오면 적당하게 돌려보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능숙하게 지시를 마친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신고 들어가면 5분 안에 순찰차가 와. 그 안에 끝내야 탈이 없다. 보스 믿고 밀어버려도 되지?”

그런 거라면야.

이병렬이 건넨 질문에 강성태가 픽 웃었다.

“그래, 씨발! 신강남파 보스가 직접 나서는 건데 이 정도는 해줘야 체면이 서지.”

만족한 듯 웃는 이병렬을 이종환과 서달수가 흥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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