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16화
이병렬이 데려온 신월동 숙소 덩치는 모두 30명이었다.
거기에 다세대 앞에 있는 승합차에서 기다리는 숫자가 다섯, 이종환이 중국어 능통자 10명을 더 불러서 숫자는 단박에 50명 가까이 불어났다.
강성태가 보는 앞에서 이병렬은 능숙하게 덩치들을 지휘해 다세대 주택의 계단에 두 줄로 세웠다.
건물 안이고, 여차하면 거실이나 방 안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팔 길이보다 짧은 파이프나 몽둥이를 든 덩치들이 계단 난간과 벽에 바싹 붙었다.
“올라가야지?”
덩치들의 상태를 확인한 이병렬이 강성태에게 눈짓을 던졌다.
아가씨를 앞세운다고 문을 열어줄까?
이랬다가 일이 꼬이면 괜히 놈들에게 경계심만 바짝 올려주는 꼴이 될 텐데?
문을 잠그고 버티면 나올 때까지 밖에서 버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사이 삼합회에 연락하는 건 막지 못한다. 거기에 일요일에 들어온다는 특수부대 출신 놈들마저 몸을 사리게 돼서 오히려 손해가 막심했다.
잠시 다세대 건물을 올려다본 강성태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이병렬을 따라 걸었다.
이미 50명에 가까운 덩치들을 지휘한 이병렬을 지금 막아서는 건 그의 체면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아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간 이병렬은 먼저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준비됐어?’
뭐라 해도 일단 강성태가 뛰어들어가야 순간적인 제압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나온 눈짓이었다.
문이 열리는 방향에 선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병렬은 아가씨 두 명에게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긴장할 법도 한데 아가씨 둘은 거침없이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거실과 방에 불을 켜놓았지만, 잠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누구세요?”
그런데 답은 바로 있었다.
“마사지 불렀어요?”
아가씨 하나가 태연하게 질문을 건네자,
“안 시켰는데?”
안쪽에서 곧바로 답이 나왔다.
확실히 강성태가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서 오히려 맥이 쭉 빠질 지경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냐?
강성태가 이병렬을 돌아볼 때였다.
“워 샹 워 라이 추어 디팡러(我想我来错地方了, 잘못 찾았나 봐).”
“싀마(是吗, 그래?)”
강성태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를 능숙하게 쏟아내며 아가씨 둘이 툴툴거렸다.
안에서 들은 모양이었다.
“니싀 중궈런 마(你是中国人吗, 중국사람이오)”
“싀더(是的, 맞아요)!”
질문이 넘어왔고, 아가씨들이 반갑게 대꾸했다.
그 직후였다.
철컥.
거짓말처럼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병렬은 아가씨 둘을 당겨 뒤로 물러나게 하고 덩치 셋을 문 앞쪽으로 불렀다.
‘들어가?’
강성태가 돌아보자 이병렬이 아니라는 투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있어서 뒤로 물러난 강성태는 벽에 바싹 붙었다.
더걱.
문 안쪽에 안전 고리를 설치한 모양이었다. 한 뼘쯤 열린 문이 고리에 걸리며 멈췄다.
이걸 짐작했다고?
감탄하는 강성태 앞에서 이병렬이 팔을 뻗자 기다리던 덩치 셋이 달려들어 단숨에 문을 잡아챘다.
콰드득.
안쪽에 걸렸던 자물쇠가 뜯겨나가며 문이 벌컥 열렸다.
기다릴 것 없는 상황이었다.
쩌어어억!
훅, 달려들어간 강성태는 현관에 있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문을 열면서도 혹시나 싶었던지 흐물거리는 놈의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뭐야?”
야식을 먹은 모양으로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식과 술병, 잔들이 있었는데 세 놈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끌면 불리했다.
소란을 피워도 곤란한 건 이쪽이었고.
강성태는 가까운 곳에 있던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어억!
얼굴을 얻어맞은 놈이 뻣뻣하게 넘어질 때, 잽싸게 움직인 두 놈이 TV 진열장과 옆자리에 있던 칼을 집어들었다.
“뭐야, 이 새끼들아!”
그와 동시에 방 두 개에서 두 놈씩 모두 네 놈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새끼들이!”
부웅! 퍽! 퍽! 퍼억!
우르르 들어온 영등포 덩치들이 사납게 파이프를 휘둘러 방에서 나온 놈들을 두들길 때였다.
거실 구석으로 몰렸던 놈 하나가 독하게 회칼을 찌르고 들어왔다.
휘익!
망설임이 없는 칼질이었는데 혼자서 강성태를 찌르기에는 부족했다.
몸을 비튼 강성태는 독한 심정으로 주먹을 뻗었다.
쩌어어어억!
제대로 얻어맞은 놈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가 거실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졌다.
“칼 안 버려, 이 개새끼야!”
그리고 방에서 나온 네 놈을 으깨다시피 해결한 이병렬이 거실을 가득 메운 신월동 덩치들 앞에서 으르렁거렸다.
휙! 휙!
창으로 밀려난 놈이 강성태와 빙 둘러선 덩치들을 향해 칼을 돌려가며 눈알을 번득였다.
이렇게 된 거 한 명이라도 찌르고 당하겠다는 각오가 놈의 눈에 가득 올라와 있었다.
강성태는 구석에 서서 위협하는 놈을 향해 곧장 다가섰다.
이마를 겨눈 권총을 뺏는 것과 날아드는 회칼을 잡아채는 건 별로 다르지 않았다.
휙!
놈의 오른손 손목을 낚아챈 강성태는 엄지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힘껏 비틀었다.
콰드득.
손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 강성태는 기울어진 놈의 얼굴을 세차게 걷어찼다.
콰자작!
이미 일회용 그릇이 담겼던 국물들이 흥건하게 엎질러진 바닥에 놈이 엎어지자, 덩치들 셋이 달려들어 쇠파이프를 내리쳤다.
굳이 저럴 필요 있을까 싶은데 아무튼 지휘는 이병렬의 몫이었다.
“이 새끼들 진짜 별거 없잖아? 이런 놈들을 보내서 뭘 어떻게 하려고?”
아래층이나 위층에서 요란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이 정도면 신고가 크게 들어갈 일도 없었다.
그보다 강성태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해 이병렬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엇보다 어둠이 보여줬던 세 놈과 처음 서라대학병원 응급실 통로에서 보았던 두 놈이 이곳에 없는 게 걸렸다.
“아무래도 이 새끼들이 해결사 같지는 않지?”
강성태의 눈빛을 읽은 모양이었다.
덩치들이 가득한 다세대 안을 둘러본 이병렬이 갑갑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를 노렸다는 세 놈도 없는데?”
“나는 얼굴까지는 제대로 못 봤거든? 네가 어디서 봤어?”
“그게 아니라 그 정도로 강한 놈들이 셋은 있어야 하는데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별거 없었잖아.”
어둠이 보여줬다는 설명을 할 수 없어서 강성태는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런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이병렬이 몸을 돌렸다.
“이 새끼들 전부 차에 실어.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하고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하게 입구에 차 바싹 대.”
덩치들이 이병렬의 말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문을 열어주었던 놈 하나, 거실에 있던 놈 셋, 방에서 나온 놈 넷, 모두 여덟 명밖에 안 돼서 40명이 넘는 덩치들이 움직여서 깔끔하게 들고 나갔다.
“형님.”
그 뒤에 방에서 이종환이 덩치 둘과 나왔다.
“안쪽에 흥분제가 박스로 있습니다. 200개 들어가는 박스가 10개입니다, 형님.”
“다해서 2천 개 아냐? 가게에 만 원씩에 넘겨준다는 게 그거냐?”
“예, 형님. 파는 건 2만 원 받으라고 들었습니다.”
“하여간 씨발. 약을 만지는 게 저렇게 돈이 되니까 애새끼들이 눈이 벌게서 달려드는 거지. 저것도 모두 차에 실어.”
이종환에게 지시한 이병렬이 생각난 것처럼 시선을 주었다.
“보스는 이만 들어가. 그리고 부탁이니까 오늘은 종환이하고 함께 움직여.”
“너는 어떻게 하려고?”
“여기 있던 놈들 데려가서 족쳐 봐야지.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우리가 마약, 인신매매, 고리대금을 못 하게 한 건 이 바닥에 소문 다 난 건데 뭐. 막말로 광룡 애들이 대림동 들어와서 약 팔다 걸린 거니까 해결사가 없었더라도 와서 두들겼을 거 아냐?”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다.
“나 없어도 되겠냐?”
“아, 진짜! 보스 만나고 나서 찌그러져서 그렇지, 나 이병렬이야. 이병렬! 숙소 애들이 저렇게 있는데 세 놈이 나타난다고 아무렴 당하겠냐?”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이병렬이 강성태의 등을 다독였다.
어떨 땐 조직의 생리를 알려주는 선배 같고, 때로는 든든한 후견인처럼 느껴진 적도 있는데, 등을 다독이는 지금은 진짜 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이병렬이 씨익 웃었다.
능력이 뛰어난 동생을 대견하게 보는 형의 눈빛과 웃음이어서 픽 웃은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전화하고.”
“어?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야?”
강성태의 당부를 이병렬이 유쾌하게 받았다.
“내가 칼 든 놈들을 보스처럼 단숨에 해치우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한 방이 있어. 알지?”
안심하라는 투로 주먹을 들어 보인 이병렬이 멋쩍게 웃으며 다세대를 나섰다. 아무래도 프리 스테이션에서 얻어맞던 순간이 떠오른 눈치였다.
“종환아. 차 가져와서 보스 모셔다드려. 혹시 모르니까 너희 숙소 동생들 뒤따르게 하고.”
“예, 형님.”
강성태가 혼자 갈 것을 염려한 이병렬이 이종환에게 지시를 내렸다.
“강남에 집 하나 장만하든가. 아니면 방배동에라도 아파트 하나 사자. 언제까지 거기 빌라에 있을 거야?”
“돈이 있냐?”
“신강남파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걸?”
“그거 내 거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에효. 이러니 태완이 형님 속이 터지지. 얼마가 들어오는지는 알아야 중간에 빼먹는 놈이 있는지도 알지. 계속 이렇게 맡겨 놓기만 하면 욕심내는 놈이 나와.”
“네가 있잖아.”
“내가 빼 먹으면?”
“좋네.”
“에라, 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다가온 승용차가 멈추고 이종환이 문을 열었다.
강성태와 함께했던 시간이 좋았던 얼굴로 이병렬이 뒷좌석까지 함께 걸었다.
강성태가 뒷좌석에 오른 뒤였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주변에 있던 덩치들이 줄줄이 인사했고, 그 직후에 이종환이 조수석에 올랐다.
승용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깔끔하게 다세대 주택을 정리했지만, 끝이 찜찜한 하룻밤이었다.
어둠에서 보았던 세 놈과 병원 통로에서 마주쳤던 두 놈이 다세대에 없다는 게 걸렸다. 반대로 대림동에서 약을 팔던 광룡을 두들긴 것과 이를 통해 삼합회 역시 신강남파가 만만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을 거란 득이 있었다.
새벽의 한중간이라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다친 사람은 없지?”
“칼 든 놈들을 형님이 다 상대하셔서 오히려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이종환의 대꾸에 헛웃음을 쏟아냈다.
“뭐라 해도 대림동에 발 뻗던 광룡을 몰아낸 거라 내일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들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말끝에 상체를 옆으로 비튼 이종환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가볍게 웃은 강성태는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오늘 밤은 대림동에서 광룡을 몰아냈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조직의 생리를 아는 이병렬이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고, 안다미야 강성태가 지켜주면 되는 일이었다.
잠시 창밖으로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승용차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조심해서 가.”
이종환에게 손을 들어준 강성태는 빌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
다음 날, 일찍 일어난 강성태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안다미의 집을 향해 움직였다.
스마트폰의 번호를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성태 씨? 무슨 일이에요?
놀란 안다미의 반응이 있었다.
“출근 함께하기로 했던 거 잊었어요?”
- 진짜요? 지금 어디인데요?
“10분이면 도착합니다.”
- 알았어요. 아! 아침은요?
“함께 먹으려고 조금 일찍 나왔는데요.”
- 그럼 우리 아빠랑 같이 샌드위치 먹어요. 괜찮아요?
바쁘게 오간 통화에서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 있었다.
“첫 방문인데 어떻게 맨손으로 올라가요?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할 테니까 내일부터 하죠.”
강성태가 답을 하고 난 뒤였다.
- 내가 뭐 선물 바란다냐! 함께 먹는 게 제일 큰 선물이지! 에이, 서럽다!
장난스럽게 외치는 안호상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와서 강성태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미안해요. 성태 씨 전화를 받을 때 아빠가 옆에 계셨어요.
“올라갈게요.”
그렇게 안다미의 집으로 올라간 강성태는 안호상, 안다미와 함께 셋이서 아침을 먹었다.
“좋다!”
원래는 우유만 마신다던 안호상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연신 터트리는 웃음을 보며 강성태는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행복한 아침을 즐긴 강성태는 안다미의 차로 병원까지 함께 움직여서 응급실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 택시 타는 곳으로 움직였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빌라로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조금 이른 시간인데 지금 출발하면 40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 나야 상관없지. 아침은?
“먹었습니다.”
- 알았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병원 앞에 선 택시를 타고 조태완을 향해 움직였다.
어디선가 삼합회의 해결사가 지켜보고 있다면 강성태가 직접 출퇴근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안다미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길이 막혀서 느리게 움직이는 택시의 창밖을 바라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손에 들고 있던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