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 17화
제6장. 미안하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승합차 렌트카 기사와 통화한 이종환은 입국장 주차장에서 그와 만났다.
“이쪽은 우리가 직접 모시기로 했으니까 그냥 가시면 됩니다.”
“예?”
이종환은 계약한 금액보다 많이 담은 봉투를 내밀었다.
“우리가 다섯 장 더 넣었거든요. 가시다가 해장국이나 한 그릇 하셔.”
“아니. 뭘 이렇게? 그런데 무슨 일로 요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차를 바꾼답니까?”
마흔 초반의 승합차 기사는 이종환을 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으로 오해한 눈치였다.
“아시잖아.”
이종환은 손을 입으로 가져가 소주잔 털어 넣는 시늉을 서너 차례 보였다.
“아, 그리고 영수증하고 명함 하나 주쇼.”
“명함은 있는데 영수증은 따로 안 가지고 다닙니다.”
“그럼 여기 손님들 이름 적힌 종이는 가져 왔어요?”
“그건 가지고 있습니다.”
승합차 기사가 대시보드에 꽂아놓은 명함과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이종환에게 내밀었다.
“원래는 우리도 이렇게 후하게 계산 안 하는데 중간에 손님 슈킹 친 거라 좋게 가자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 웃돈 받았다고 떠들지 마셔.”
“그런 소리를 내가 뭐하러 하겠어요?”
“아, 참. 혹시 입국장에서 만나면 알아볼 다른 연락 받은 건 없으쇼? 특별하게 인사말을 한다든가, 그런 거?”
“그게 뭡니까?”
“없으면 됐어요. 워낙 어렵게 따낸 손님이라 실수할까 봐 물어본 거요. 조심해서 갑시다.”
기사를 돌려보낸 이종환은 받은 종이를 들고 주차장에 서 있는 또 다른 승합차로 다가갔다.
“받아왔습니다, 형님.”
“수고했어. 나머지는 알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형님.”
고개를 숙인 이종환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공항 청사 쪽으로 움직였다.
아르윈이 동원한 조직원 20명과 이종환이 데려온 숙소 덩치들 30명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차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인지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이종환밖에 없어서 대기하는 숙소 덩치들은 대강 눈치로 때려잡는 수준이었다.
**
체격이 작은 가디언스파 조직원이 입국장을 향해 종이를 높게 들었다.
통상 이런 경우는 대표하는 이름 하나만 사용하는데 사전에 정해놓았는지 종이에 빼곡하게 문평, 장곽, 서등, 양포, 신량의 다섯 이름을 모두 적어놓았다.
줄줄이 입국 게이트를 나서는 사람 중 선글라스를 낀 서른 초반의 남자 한 명이 필리핀 조직원에게 다가왔다.
그는 먼저 주변을 돌아본 뒤에 필리핀 조직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미스터 문평?”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또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디스 웨이 플리즈. 써.”
“아 유 코리안?”
“노 써. 아임 프람 필리핀. 위 온리 워킹 포 포린 투어리스트, 써. 비코즈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쉬, 써.”
필리핀 공항에 입국했나 싶을 정도로 뚝딱이는 영어를 구사한 조직원이 비굴한 표정으로 선글라스 낀 남자의 가방에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손을 홱 뿌리친 직후였다.
“쏘리, 써.”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린 조직원이 입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선글라스 남자가 움직이자 뒤편에서 지켜보던 넷이 천천히 합류했다.
“댓 카, 써.”
바깥에 세워놓은 승합차를 가리킨 조직원이 조심하는 태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입구를 나서서는 승합차의 뒷문을 열었다.
검은색에 노란 줄을 그어서 공항 픽업이라는 글자까지 쓰여 있는 승합차였다.
짐이라고 손에 든 가방이 전부였다.
안을 둘러본 한 명이 승합차에 오르자 그 뒤로 셋이 뒤따라 몸을 넣었다.
마지막까지 바깥에서 기다리던 한 명은 필리핀 조직원이 뒷문을 닫고 나자 조수석에 올라탔다.
바쁘게 승합차의 앞을 가로지른 필리핀 조직원이 운전석에 올라타고서 시동을 걸었다.
“싯 벨트 플리즈, 써.”
조수석에 탄 놈이 옅게 웃은 뒤에 벨트를 당겨 찰칵 소리가 나도록 걸었다.
승합차가 천천히 움직이자 다섯 놈은 긴장이 조금 풀리는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공항 청사를 빠져나온 승합차는 영종 IC를 향해 달렸다.
영종 IC를 얼마 두지 않았을 때였다.
“댓 이즈 영종 IC, 써.”
필리핀 조직원이 영종 IC를 가리켰다.
작업을 해야 할 때라는 신호였다.
가장 뒤편 짐칸의 사물함 안에 누워 있던 강성태는 덮고 있던 천을 당겼다.
빠르게 달리는 승합차의 가장 뒤쪽이었다.
귀신처럼 상체를 세운 강성태는 소음기 달린 권총을 바로 앞에 있는 놈의 뒤통수에 바싹 붙였다.
움찔.
놈의 몸이 짧게 굳은 뒤였다.
휘익.
총구에서 머리를 숙인 놈이 상체를 기울이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고민할 게 없었다.
푸슝! 퍽. 푸슝! 퍽.
강성태는 총구를 아래로 향한 자세로 가장 뒤에 앉은 두 놈의 가슴에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와락.
조수석에 있는 놈이 뒤를 보았다가 핸들로 몸을 던졌다.
끼이익.
승합차가 급하게 좌우로 흔들렸는데 다행히 안전벨트가 걸려있어서 조수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강성태는 주저하지 않았다.
푸슝! 퍼억.
조수석 의자 뒤편에 구멍이 나면서 앞쪽과 조수석 유리에 피가 튀었다.
몸을 뒤틀었던 중간의 두 놈이 강성태가 겨누는 총을 보고는 움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로변에서 이렇게 총질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데다, 여차하면 다 죽여 버리겠다는 강성태의 태도에 질린 기색이었다.
비상등을 켠 승합차가 바깥으로 움직여 멈추자 대번에 검은색에 노란 줄을 그은 승합차 두 대와 승용차 두 대가 다가왔다.
승용차 두 대가 먼저 앞뒤를 가렸다. 그리고, 달려온 승합차 한 대는 도로 방향을, 또 다른 승합차 한 대는 걸음만 크게 떼면 바로 건너갈 정도로 오른쪽에 붙었다.
드르륵.
뒷문을 열고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르윈이었다.
“오래 서 있으면 경찰이나 도로 관리 차량이 온다. 서둘러.”
아르윈이 승합차의 뒤에 올라타기 무섭게 줄줄이 달려든 필리핀 조직원들이 조수석에서 기울어진 놈을 모포로 덮어서 끌고 나갔다.
삽시간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또 다른 필리핀 조직원들이 조수석 앞과 옆 유리에 묻은 피를 닦아냈고, 그사이에 아르윈은 중간에 탄 두 놈의 손을 타이로 묶었다.
철컥.
반항하는 기색이 보이자 강성태가 놈의 목덜미에 소음기의 끝을 들이댔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아르윈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놈들이어서 여차하면 실제로 방아쇠를 당길 각오였다.
강성태의 태도에 질린 모양으로 두 놈이 끌려나갔고, 옆에 바싹 붙인 승합차의 옆문을 통해 실렸다.
다시 우르르 달려든 필리핀 조직원들이 이번에는 가슴이 뚫려 널브러진 두 놈을 모포로 담아 끌어냈다.
이쪽 승합차의 오른쪽 뒷문에서 발만 크게 떼면 저쪽의 왼쪽 뒷문으로 건너갈 수 있어서 그야말로 삽시간에 일이 끝났다.
“형님.”
아르윈이 부르는 소리에 강성태는 승합차의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내렸다.
아르윈이 옆 승합차로 옮겨 타는 동안, 강성태는 뒤로 빙 돌아 반대편 입구로 들어갔다.
공항 픽업용 검은 승합차가 먼저 출발했고, 다음으로 강성태가 탄 승합차가 출발했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 일이어서 차를 세우고 다시 출발하는 데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조수석에서 총을 맞았던 놈은 죽은 모양으로 모포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먼저 맞은 두 놈은 힘겨운 신음을 토해내며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 짧은 순간에 바닥에 피가 흥건해서 방향을 틀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핏물이 이리저리 흐르고 있었다.
강성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중간에 앉은 멀쩡한 두 놈이 강성태를 알아보는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가장 뒷좌석에 앉은 필리핀 조직원 둘이 수건으로 덮은 칼을 언제고 당길 수 있을 정도로 바싹 붙인 상태였다.
돌아가는 상황과 강성태를 보고 나서 멀쩡한 두 놈은 아예 포기한 모양인지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연수 JC에서 빠져나온 승합차가 약속한 장소에 멈췄다.
“아르윈. 혹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쏴 버려.”
“염려하지 마십시오, 형님.”
소음기 달린 권총을 건네준 강성태는 승합차에서 내려 뒤따라오던 승용차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종환과 덩치들이 줄줄이 인사하는 틈을 지나서 열어놓은 뒷문으로 올라탔다.
문을 닫아준 이종환이 조수석에 오르자 승용차가 바로 출발했다.
“장례식장으로 가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연수 JC를 향해 움직이는 승용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였다.
- 존 보스만입니다.
잠이 부족해 약간 껄껄하게 들리는 대꾸가 건너왔다.
“중국인으로 구성된 다섯 명도 모두 정리했다. 로라를 빌라로 돌려보내도 괜찮을 거 같은데 경호 동선은 한번 손보는 게 좋겠다.”
-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조금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차장 밖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
차 받침대에 놓인 찻잔을 들었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고개를 돌렸다.
“밤을 꼬박 새웠나?”
그는 유독 하얀 존 보스만의 눈에 선 핏발을 본 뒤에 찻잔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미스터 강이 러시아에서 입국해 있던 암살조 다섯 명과 중국인으로 구성된 가페 암살팀 다섯을 모두 해결했답니다.”
차를 마시던 곤잘레스 이두안은 멈칫한 뒤에 받침대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로라를 빌라로 보내도 괜찮겠다는 의견과 경호 동선을 한번 손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전해왔습니다.”
“경호 동선이야 자네가 나보다 전문가이니 알아서 판단하게.”
“감사합니다.”
책상으로 걸어가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강이 정말 오늘 입국한 다섯 명까지 모두 해결했다고 하던가?”
“그렇습니다.”
“아직 호텔에 도착하지도 못했을 시간인데?”
“공항에서 해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봐, 존. 이곳은 한국일세. 멕시코가 아냐. 공항에서 사소한 다툼만 있어도 바로 경찰이 달려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쏟아낸 곤잘레스 이두안의 말에 존 보스만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지. 그게 미스터 강이지. 멕시코에서도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물을 들고 오곤 했었지.”
혼잣말을 쏟아낸 곤잘레스 이두안이 시선을 들었다.
“비서실에 이야기하는 거보다는 자네를 통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군. 미스터 강에게 잠시 보고 싶다고 전해주게.”
“시간은 언제가 편하십니까?”
“이제는 내가 그걸 정하는 게 아니라 미스터 강의 시간에 내가 맞춰야 할 거 같은데? 비서실에 요청하면 변경하기 어려운 약속을 표시한 일정표가 있을 테니 그걸 참조해서 시간을 정해주게.”
고개를 숙인 존 보스만이 나가고 나자 곤잘레스 이두안은 버릇처럼 창가에서 강남의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지 모르겠군.”
자조 섞인 혼잣말을 토해낸 그는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혼란한 심정을 다스렸다.
**
서달수의 마지막 날은 지나칠 정도로 화창했다.
수많은 화환과 검은 정장의 덩치들이 함께했는데 그 어떤 것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지는 못했다.
서달수의 몸이 불길에 들어간 뒤에 그의 모친은 서글픈 곡을 토해냈고, 부친은 벽을 부여잡은 채 서러운 울음을 쏟아냈다.
친지들이 두 사람을 다독여 데려간 다음이었다.
불길을 가린 장막 안쪽의 공간에서 강성태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뭐가 좋은지 웃고 있는 서달수의 사진 앞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받는 과일 몇 개와 명태포, 술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미안하다.’
강성태가 할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강성태는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진용이 양손을 잡고 서 있었고, 그 뒤로 조봉진이 있었다.
저 두 사람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필요한 때였다.
강성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속에 많은데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어쩐지 사진 속의 서달수가 하는 인사말이 들리는 듯한 착각에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지켜봐.’
마지막 생각을 전한 강성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종환이와 움직일 테니까 따라올 거 없어.”
고개 숙이는 김진용과 조봉진을 말린 강성태는 그렇게 걸어 뒤편 공원으로 향했다.
유섭우와 이종환이 바싹 붙었고, 그 뒤로 십여 명의 덩치들이 따랐다.
이광준의 일이 있어서인지, 김정훈을 제외한 신강남파 거의 모든 인원이 서달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는 느낌이었다.
공원에 나온 강성태는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에게 이 짧은 여유마저 주기 싫었는지,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총에 맞은 세 놈이 모두 죽었습니다, 형님. 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남은 두 놈은?”
- 세 겹으로 묶었고, 조직원 여섯이 둘러싸고 지키고 있습니다, 형님.
“화요일에 쓸 거니까 잘 보관해.”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강성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몰려온 모양이었다.
유섭우, 이종환, 그 뒤로 십여 명, 다시 이백 명은 될 법한 검은 정장의 덩치들이 줄줄이 서서 강성태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