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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 1화 (233/513)

12권 - 1화

제1장. 이러고 진짜 무사할 줄 알아?

질린 얼굴의 태섭이파 덩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신호음을 듣지 못했을 만큼 시선 개발 윤중선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강성태입니다.”

- 예, 강 사장님. 매형에게서 말씀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세종 국장님, 아시지요? 저는 처남인 윤중선입니다. 전화로 인사드려서 송구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음성으로라도 납작 엎드린 모습을 증명하겠다는 듯 윤중선은 철저하게 저자세였다.

“여기 농성하는 장소에 왔는데요. 세 분이 식사를 못 하셨다니까 아침 좀 준비해 주셨으면 싶고, 태섭이파가 몰려와서 그중 성경일을 두들겨 놓았는데 뒤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 예? 성경일? 혹시 티에스 개발 성경일 상무 말씀하십니까?

“성경일이 상무인가요? 아무튼, 태섭이파 성경일이 둘이 아니면 이 인간이 맞을 겁니다.”

강성태는 상체를 기울여 아직 엎어져 있는 성경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가봐야 하는데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여기 세 분을 보호할 방법도 있어야 할 거 같은데요.”

- 그러시면 사장님. 제가 용역을 부를 때까지 만이라도 지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최대한 서둘러 가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시는데 여기 아침은요? 안 되면 이쪽에서 그냥 사다가 드시게 하지요.”

- 아닙니다! 제가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린 강성태는 1.5층에 있는 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시선 개발 윤중선 대표가 아침을 준비해서 온답니다. 그분이 오면 갈까 하는데 저희 믿고 내려오시면 어떠세요?”

“티에스 개발이 저희 이름을 막도장으로 파서 가짜 합의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건물이 철거되면 더는 버티지도 못합니다, 사장님!”

윤중선이 그러더니 세 남자까지 강성태를 졸지에 사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직전에 성경일을 두들겼던 강성태의 모습은 확실히 두려운데, 또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면과 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조심하는 태도였다.

“그러면 제가 같이 온 식구들 남겨놓고 갈 테니까 잠시 내려와서 식사하고 좀 쉬고 하세요. 억울한 거, 바라는 게 있으면 윤중선 대표에게 모두 말씀하시고요.”

강성태가 세 남자를 달래는 사이 골목을 막고 있는 태섭이파 뒤편에서 독일제 520 승용차가 도착했다.

윤중선이 확실해 보였는데 길을 막은 태섭이파 덩치들이 돌아보며 인상을 구기자 클랙슨 한 번 못 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섭우. 윤중선 대표인 모양인데 이리 모셔와.”

“예, 형님.”

짧고 굵직하게 답한 유섭우가 승용차를 향해 움직이자 덩치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구경 났냐, 이 새끼들아? 길 막지 말고 비켜!”

이미 박살 난 성경일이 강성태 앞에 엎어져 있는 상황이고, 서열 또한 유섭우가 위여서 태섭이파 덩치들이 주춤대며 길을 열었다.

“윤중선 대표님?”

운전석을 확인한 유섭우가 손으로 앞을 가리키자 승용차가 조심스럽게 강성태 앞으로 움직였다.

승용차에서 내린 윤중선은 이세종의 처남이 아니라 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인상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강성태와 문에 박힌 도끼, 바닥에 널브러진 성경일을 차례로 보았다.

이세종에게서 인상착의를 들었는지 윤중선은 곧바로 강성태 앞으로 다가와 상체를 공손하게 숙였다.

“윤중선입니다, 사장님.”

“반갑습니다, 강성태입니다.”

상체를 숙인 윤중선이 강성태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렇게 악수를 하고 난 뒤에 그는 재킷 안에서 명함을 꺼내 비슷한 동작으로 건네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수요일에 나누기로 하고, 우선 위에 세 분 식사하고, 여기 지킬 용역부터 부르시죠.”

“도시락을 가져왔습니다, 사장님. 잠시만요.”

승용차로 달려간 윤중선이 뒷좌석에서 하얀 비닐봉지를 두 개 내렸다.

“이거 좀 위에 올려드려.”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를 들은 덩치 하나가 비닐봉지를 받아서 부서진 담을 향해 움직였다.

윤중선은 뭔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문에 박힌 도끼와 바닥에 쓰러진 성경일을 확인했다.

“말씀하신 상무와 다른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사장님. 성경일 상무 맞습니다. 아!”

답을 한 그는 퍼뜩 떠오른 게 있는 것처럼 승용차로 달려가서 명품 브랜드의 종이 쇼핑백을 가져왔다.

“명함입니다, 사장님. 대표이사 회장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제부터 회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차피 돈만 주면 원하는 대로 만드는 직함이지만, 회장은 좀 과하다 싶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뭐라 하기보다는 수요일에 의논하자는 생각으로 잠자코 쇼핑백을 받았다.

뜻밖에도 쇼핑백은 무거웠다.

강성태가 시선을 들자 윤중선은 ‘다 알면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시선을 내려 들여다본 쇼핑백에는 남성용 지갑, 5만 원권 돈다발이 여러 개가 들어 있었다.

“우선 함께 오신 분들 식사라도 하시라고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거기 지갑에는 법인 카드를 넣어두었으니까 편하게 쓰십시오. 뭐, 거의 무제한인데 혹시라도 한도를 넘었다고 하면 전화만 주십시오.”

“윤 대표님.”

“예, 회장님.”

“이건 불편하니까 가져가시고, 명함도 수요일에 만나서 다시 의논하시죠.”

강성태가 쇼핑백을 내밀자 윤중선은 사약을 받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이건 정말 경비로 책정된 겁니다. 회계상으로도 전체 공사비의 일정 부분은 경비로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회장님. 지금 뒤에서 티에스 개발이 보고 있는데 이걸 거절하시면 제가 힘을 못 씁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회장님.”

진짜일까? 아니면 닳고 달아서 강성태가 거절하지 못하게 수를 쓰는 걸까?

잠시 윤중선을 바라보던 강성태는 그가 했던 말 중에서 태섭이파 덩치들이 보고 있다는 말만큼은 믿어주기로 했다.

“유섭우.”

강성태는 유섭우를 부른 뒤에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여기는 시선 개발 윤중선 대표님. 여기는 유섭우라고 앞으로 이쪽 일을 볼 사람입니다. 인사하세요.”

유섭우와 윤중선이 서로 조심하는 태도로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도 윤중선은 악수를 먼저 한 뒤에 명함을 건넸다.

“그 안에 있는 거로 식사나 하라니까 알아서 처리해.”

“감사합니다, 형님.”

유섭우가 상체를 공손하게 숙인 뒤에 쇼핑백을 곁에 있던 덩치에게 넘겼다.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처 드려. 개발 관련해서 연락하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고.”

유섭우가 윤중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벨이 울리자 바로 끊었다.

대강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끄응.”

엎어져 있던 성경일이 팔을 움직여 바닥을 짚고는 힘겹게 상체를 세웠다.

“용역은요?”

“예? 아, 예! 이리로 오는 길에 불렀으니까 조금 뒤에 올 겁니다, 회장님.”

일어나는 성경일 확인하랴, 강성태의 질문에 답하랴, 윤중선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얼마나 빠르게 먹었는지 농성 중이던 세 남자가 그사이 식사를 마치고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미 안면이 있는 지 세 남자가 윤중선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씨발.”

상체를 세운 성경일이 습관처럼 욕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개발과 관련해서 얼마나 독하게 굴었는지,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윤중선과 농성하던 세 남자의 얼굴에 두려운 감정이 떠올랐다.

엉망이 된 다리를 내려다본 성경일이 턱을 좌우로 움직이며 얻어맞은 것에 대한 아니꼬운 감정을 드러냈다.

“이러고 진짜 무사할 줄 알아?”

강성태는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한 번에 안 꺾이면 두 번 때려주면 되고, 그래도 버티면 세 번 때리면 그만이었다.

강성태가 성경일을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한 유섭우가 대뜸 몸을 돌리고는 성경일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억. 콰등.

얼굴을 제대로 때렸는데 뒤로 밀려난 성경일은 등을 문에 부딪치며 버텼다.

퍼억. 퍼억.

유섭우가 둔탁한 소리를 울리며 두 번의 주먹을 더 꽂아넣고서야 성경일이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보스 앞이라고 조심하라니까,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은 참 못 알아먹어.”

말을 하다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휘익! 콰작!

겨우 상체를 세우는 성경일의 얼굴을 유섭우가 구둣발로 걷어찼다.

광대뼈나 턱뼈는 무조건 부러졌을 만큼 거친 발길질이어서 지켜보던 윤중선이 몸서리를 치며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까 여기 지키고 있다가 용역 오면 그때 나와. 봐서 문제가 있을 거 같으면 좀 더 있고.”

“예, 형님.”

강성태는 태섭이파 덩치들이 줄줄이 서 있는 근처의 승용차로 움직였다.

“비켜, 이 새끼들아!”

유섭우가 손을 좌우로 젓고, 신월동과 강서구 덩치들이 쇠파이프를 위협적으로 휘둘러 길을 열었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유섭우와 덩치들이 줄줄이 인사하는 사이로 움직인 승용차가 큰 도로로 나섰다.

**

불과 얼마 전까지 조직을 직접 이끌었던 조태완은 갑갑한 표정으로 김정훈을 돌아보았다.

“연락 없었지?”

“아직 없습니다, 형님.”

빤히 함께 병실에 있었는데 연락이 있었다면 조태완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조태완은 질문을 던졌고, 그의 성격을 익히 짐작하는 김정훈은 또 고개를 숙여 가며 답했다.

“아, 참! 조금 더 있다가 가보라니까.”

혼잣말을 뱉은 조태완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정훈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그래, 어떻게 됐어? 뭐?”

조태완이 고개를 쑥 빼고 지켜보는 앞에서 김정훈의 통화는 제법 길었다.

“지금 출발하셨고? 병원으로 오시는 거지? 알았다.”

“뭐래?”

“보스께서 미아리 성경일이 박살 내셨답니다, 형님.”

“뭐? 뭘, 어떻게 했는데?”

“세입자들이 농성 중인 건물 철문에 도끼 박으셨는데 성경일이 이죽대면서 욕을 했답니다, 형님.”

“아니, 그 새끼는 그동안 들은 말도 없나? 왜 하필 보스 앞에서 욕을 하고 지랄이야? 그래서?”

상체를 벌떡 일으킨 조태완이 흥분한 음성으로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한 방에 쓰러트리신 뒤에 머리끄덩이 붙잡고 도끼 박아놓은 대문까지 끌고 가서 앞으로 욕하지 말라고 하고 또 한 방 먹이셨고, 형님.”

고개를 끄덕이는 조태완을 향해 김정훈이 말을 이었다.

“도끼 뽑는 놈은 죽고 싶은 거로 알겠다, 신강남파가 개발 사업을 접수했으니까 앞으로 그쪽 구역에 얼씬거리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기가 막힌데,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고, 조태완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출발했다는 거지?”

“현장에 유섭우 형님하고 신월동, 강서구 숙소 식구들 남기고 출발하셨답니다. 시선 개발에서 부른 용역과 교대하라고 하셨답니다.”

“참, 나.”

졌다는 투로 조태완이 짧은 탄성을 뱉어냈다.

**

양팔을 책상에 걸친 원자춘은 커다란 손에 얼굴을 묻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순간, 한국으로 들어간 열 명의 연락이 모두 끊겼다.

심지어 전화기마저 꺼져 있어서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강성태. 강성태. 강성태.”

원자춘은 주문처럼 강성태의 이름을 불렀다.

사라진 열 명을 설명할 방법은 강성태밖에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 시원하게 퍼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하필 섭충명이 전체 회의에서 조건을 거는 바람에 엉뚱하게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한국에 안 가면 섭충명에게 죽고, 들어가자니 강성태가 벼르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든 원자춘은 책상 서랍을 힐끔 돌아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섭충명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시원하게 뒤집어?

원자춘은 고개를 비틀었다.

진짜 심복 세 놈을 제외하면 어떤 놈이 섭충명에게 ‘아뢰오! 원자춘이 대형을 노리고 있습니다!’라고 떠들지 알 길이 없었다.

독하게 눈을 비튼 원자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무조건 죽는다.

이미 러시아와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간 열 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섭충명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는 게 그 증거였다.

“강성태.”

이제는 습관이 된 것처럼 원자춘은 강성태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살 수 있는 해법은 한국의 강성태밖에 없었다.

“야!”

원자춘은 밖을 향해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곧바로 셋밖에 없는 심복 중 한 놈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강성태가 지금 가장 아쉬운 게 뭔지 알아봐.”

“예?”

원자춘이 눈알을 험악하게 부라리자 심복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무슨 수를 쓰든, 강성태를 이곳으로 데려와야 해. 그러니까 나와 함께 오겠다고 결심할 만큼 아쉬운 게 뭔지, 혹은 솔깃할 게 뭔지 알아보라고.”

“알겠습니다.”

짜증이 잔뜩 올라온 얼굴로 원자춘은 손을 휘저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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