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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 4화 (236/513)

12권 - 4화

제2장. 마약을 하겠지?

강성태에게 의도를 물었던 강선영은 그 뒤로 차창 밖을 보며 침묵했다.

그사이 강성태는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장 먼저 연락 온 사람은 유섭우였다.

- 윤중선 사장님이 부른 용역 인원과 교대하고 철수하겠습니다, 형님.

“용역 쪽 인원은 충분해?”

- 숫자는 넉넉합니다, 형님.

“도끼는 어떻게 됐어?”

힐끔 돌아본 강선영이 ‘깡패였지!’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 이상하게 한 놈도 안 보입니다, 형님.

“혹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할 수 있게 용역한테도 번호 주고, 성경일이 데리고 있던 돼지들처럼 우리 이름 팔고 설치면 끝이 안 좋을 거라고 분명하게 경고해.”

-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창밖을 보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뜻밖의 이름이 액정에 올라왔다.

“여보세요?”

- 옵빠!

호텔에서 다시 빌라로 돌아간 로라는 사춘기 소녀답게 들뜬 목소리로 학교와 일상을 떠들었고, 언제 만날 수 있느냐며 투정부렸다.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10분쯤 대화를 나눈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렸을 때, ‘깡패가 영어도 능숙해?’ 하는 표정으로 강선영이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나가본 김진용의 전화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있어? 깡패 너는 마음만 먹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

“잘못하면 남들 부끄럽게 살 수는 있겠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얼굴로 강선영이 돌아보았다.

“뭐라고 해도 깡패잖아. 그것도 너 같은 검사가 잡아들이기 가장 좋은 깡패. 손에 쥔 알량한 것들에 정신 팔리면 곧바로 손가락질받으며 살게 되지 않겠냐?”

“안 그럴 거잖아?”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승용차가 속도를 높였다.

1시간 40분쯤 달린 승용차는 원주 시내를 비켜나 산속으로 달렸다.

창문을 내리자 높다란 빌딩 대신 주변을 메운 산이 눈에 들어왔고, 후련한 공기가 가슴을 가득 메웠다.

“저기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형님.”

조수석에 탄 덩치가 앞쪽에 놓인 가든을 가리켰다.

국도에서 비포장도로로 빠져나간 승용차가 20미터쯤 움직여 가든 주차장에 멈췄다.

“오셨습니까, 형님?”

승용차 두 대에 대기하던 덩치들이 다가와 양쪽 뒷문을 열어주어서 강성태와 강선영이 각각 자리 옆으로 내렸다.

“별장이 어디야?”

“이쪽으로 오기 전에 삼거리가 있습니다, 형님.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10분쯤 가면 나옵니다, 형님. 별장 앞에서 동생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묻자 덩치가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저녁은 오리 하고 닭백숙 준비했습니다, 형님.”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형님. 저, 형님. 방 하고, 2층 저기 바깥 테이블도 있는데 어디에 준비하라고 할까요?”

강성태는 의견을 묻는 것처럼 강선영을 돌아보았다.

“시원하게 밖에서 먹으면 어때?”

그렇다는데?

강성태가 다시 시선을 돌리자 “모시겠습니다, 형님.” 하고 답을 내놓은 덩치가 안내하듯 가든을 향해 걸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현관 왼편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위로 올라간 강성태와 강선영이 테이블에 앉은 다음이었다.

베란다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던 덩치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와 강성태와 강선영 앞에 놓아주었다.

“보도국장은 30분쯤 뒤에 도착한답니다, 형님. 여기 말고 아래에 있는 가든을 따로 잡아서 그쪽에 있을 겁니다, 형님.”

내용을 알려준 덩치가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계획을 알려줘. 답답하게 커피도 안 넘어간다.”

“마약 파티라니까 마약을 하겠지?”

“그렇겠지. 그래서 뭐?”

“마약을 하면 쾌락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달려. 이런 파티를 열었다면 이미 길을 잡았다는 거고.”

“길을 잡아?”

“여자는 좀 빠른데 남자는 처음 마약을 접하면 성관계를 갖기 어려워. 감각이 흩어지니까. 그냥 두면 대개 폭력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경험 많은 사람이 성관계 쪽으로 유도해주는데 그걸 길을 잡는다고 해.”

“그걸 안 잡아주면 어떻게 되는데?”

“종일 배터리 광고처럼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하면서 푸시업만 하기도 하고, 나체로 길을 달리거나 폭주에 꽂혀 미친놈처럼 도로를 달리기도 하지.”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강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미 길을 잡은 세 사람을 어떻게 할 건데?”

“새로 길을 열어주면 되지.”

“어떻게?”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그렇게.”

“운동을 시킨다고?”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별장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

밖을 확인하고 들어온 김정훈이 빠르게 조태완의 침대로 다가왔다.

“노익이 형님이 오셨습니다, 형님.”

“박노익이 여기를?”

확실히 조태완은 놀란 얼굴이었다.

“몇 놈이나 데려왔는데?”

“두 명인데, 형님. 주차장에 세워두고, 병실에는 혼자 올라왔습니다, 형님.”

문을 보았던 조태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데려와.”

곧바로 상체를 숙인 김정훈이 병실을 나섰다가 박노익과 함께 들어왔다.

깊숙하게 숙이지는 않았으나 박노익은 깍듯한 태도로 인사하고 조태완의 침대 옆으로 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그러게 말이야. 우선 앉아.”

“감사합니다, 형님.”

박노익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던 김정훈이 냉장고에서 홍삼 달인 물을 가져와 옆에 놓아주었다.

“동생이 어쩐 일이야?”

“태섭이가 연락해서 점심나절에 잠깐 봤습니다.”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옅게 웃는 조태완을 향해 박노익이 얼른 말을 이었다.

“신강남파 보스를 아느냐고 물어보길래 클럽에서 한 번 본 적 있다, 왜 그러는 거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신강남파가 관리하는 클럽과 카지노를 인수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니, 거절하니까 그럼 인수할 회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형님.”

“이런 개 양아치 새끼가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우리 클럽과 카지노를 누구 마음대로 넘겨?”

불끈 화를 토해냈던 조태완이 “후!” 하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동생이 나를 찾은 이유가 뭐야?”

“형님. 저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기가 막혀 하는 조태완을 향해 박노익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동생들 시키고 뒤로 숨어서 몸사리는 세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날 광준이 주저앉히는 것을 보면서 진짜 보스 오랜만에 보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뒤로 이상하게 신강남파 보스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형님.”

이렇게 강성태를 칭찬하다가 혹시 뒤빡을 치는 건 아닐까?

박노익이 모사꾼에 빨래질 선수 장태섭을 만나고 온 뒤라 조태완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전에 제가 태섭이 꾐에 빠져 형님 노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

“그때 내가 나섰으면 다 죽었어! 후!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뭔데 이렇게 사설이 길어?”

“그때 죄송한 거 갚을 겸해서 제가 태섭이를 잡아다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이게 또 수작을 부려?

내내 평정을 유지하던 조태완의 눈에 의심과 그만큼의 독기가 폴폴 풍겨 나왔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형님.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제 마귀들 보살피는 정도로만 식구들 꾸리기 때문에 앞마이를 서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자고?”

“장태섭이 손잡은 건설사를 제가 막아드리면 어떻습니까, 형님?”

“건설사?”

“장태섭이 워낙 돈을 빼먹는 바람에 시공사에서도 골머리를 앓는 것 같습니다, 형님. 한 가구당 1억5천만 원 보상금 내린 걸, 태섭이가 1억4천 처먹고 천만 원 내려줬는데 아래에서 또 8백만 원 삼켜서 진짜는 2백만 원만 넘어간 모양입니다, 형님.”

“지금껏 백억은 너끈히 풀었다던데 건설사가 그걸 포기하겠어?”

“신강남파가 앞세운 시행사가 먹을 몫에서 지금껏 들어간 걸 보상해주면 물러날 의향이 있답니다, 형님.”

“뭔 헛소리를 해? 그럼 장태섭은 백억 돈을 처먹고 아무런 손해 없이 빠져나가는 건데, 그게 말이 돼?”

장태섭에게서 얼마를 받아먹기로 했냐는 질문이 불쑥 목까지 올라왔으나 조태완은 초인적인 의지로 꿀꺽 삼켰다.

조태완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박노익이었다.

“형님. 형님까지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번 개발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그동안 장태섭이 사들인 토지와 주택을 매입하셔야 합니다.”

주식 바닥에서 돈을 만지더니 박노익은 확실히 사업가와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막말로 장태섭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형님? 그러니까 장태섭은 슈킹친 돈을 토지와 주택 매입하는 데 거의 쏟아 넣은 겁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개발 사업 허가 나면 시공사에 두둑하게 뜯어낼 생각이었던 거고요, 형님.”

조태완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일리 있는 설명이었다.

장태섭이라면 그러고 남을 인간이고, 그런 속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던 건설사라면 신강남파 강성태를 핑계로 발을 빼기도 좋았다.

그러나 모사와 빨래질이 판치는 바닥에서 잘못 넘어가면 비참한 최후만 남는다.

마지막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조태완이 눈가를 좁혔다.

“시공사에서도 알아본 모양입니다. 그런데 장태섭이 아무리 설쳐도 신강남파 보스에는 안 된다고 결론 낸 모양입니다.”

“그럼 장태섭은 어떻게 되는데?”

“그 새끼, 여태 구멍가게들 뜯어먹고 살았는데 그곳 개발되면 그냥 개털 되는 거 말고 더 있겠습니까, 형님?”

조태완의 표정을 살핀 박노익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와 의논해 보시고,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형님.”

“동생이 왜 이렇게까지 나서지?”

“그저 제가 깔고 있는 상장사 바닥에 신강남파 보스가 발 디디지 않는 거, 그리고 이제 나이가 차니까 사람을 보면 대강 견적이 나오는데 신강남파 보스는 맞서기보다 얼른 한편이 되는 게 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형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박노익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보겠습니다, 형님. 몸조리하십시오, 형님.”

“한 가지만. 시행사는 누가 연결하는 거야?”

“박승양이라고 먼 친척 사채업자입니다.”

“송도 상인?”

“아십니까, 형님?”

사채업자 바닥에서 송도 상인, 박승양의 이름이 지니는 힘을 익히 아는 조태완이 픽 웃었고, 비슷한 눈매를 그린 박노익이 다시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

원주는 확실히 서울과 달랐다.

더구나 산속이라 한기가 빠르게 내렸다.

이른 저녁을 먹은 강성태는 날이 차가워지면서 가든의 2층 거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태완이 형님 밑에서 일했던 양길동입니다, 형님.”

덩치들이 데리고 올라온 서른 중반의 남자가 염라대왕을 만난 죄인처럼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여자들은?”

“아래 승합차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깡패, 깡패, 불렀지만, 강선영은 이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강성태의 눈빛조차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는 덩치들을 보며 궁금한 것도 있었다. 저렇게 무섭게 생긴 남자들이 왜 강성태에게 꼼짝 못 할까?

외모만 보면 강성태는 저 끝에 서서 고개조차 못 들 거 같은데 말이다.

“오늘 일은 들었지?”

“예, 형님. 그래서 강단 있는 애들로만 준비했습니다, 형님”

“신호는?”

“속옷을 창밖으로 던지면 올라오라는 뜻입니다, 형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양길동의 눈을 빤히 보았다.

“양길동. 오늘 일이 잘못되면 너도 뒤가 안 좋을 수 있어. 괜찮겠어?”

“지금은 이렇게 보도방 뛰면서 먹고살지만, 태완이 형님 아니셨다면 저는 예전에 죽었습니다, 형님. 무슨 일이 있어도 입 꼭 다물고 형님 뜻 따르겠습니다, 형님.”

뭔가 사연이 깊은 눈치였는데 그걸 꼬치꼬치 캐묻기는 곤란했다.

“약쟁이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형님.”

뭐가 못마땅했을까, 강성태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양길동을 빤히 보았다.

강선영이 고개를 떨군 양길동과 상체를 뒤로 무른 강성태를 번갈아 본 뒤였다.

“내 얘기는 들었을 거라 믿는다. 앞으로 약은 손대지 마라. 강제로 데리고 있는 여자애들도 풀어주고.”

“제가 데리고 있는 애들은 모두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서 제 발로 들어온 케이스입니다, 형님. 이렇게라도 높은 양반들을 스폰서 잡겠다는 거라 가라고 해도 버팁니다, 형님.”

“알았다. 나중에 한번 따로 보자.”

“감사합니다, 형님.”

하마터면 스폰서를 잡아서 성공한 여자가 있는지 물을 뻔했던 강선영이 올라온 질문을 꿀꺽 삼켰다.

“보도국장은?”

“식사 마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이리 데려와.”

“예, 형님.”

고개를 숙여 보인 덩치가 밖으로 나가자 강선영은 궁금한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보도국장, 보도국장 하는데 도대체 어느 방송국 보도국장이야?”

“JBC.”

“뭐? 오늘 여기 오는 방송국 회장이 JBC 소신영 회장이잖아?”

얼이 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강선영을 향해 강성태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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