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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 7화 (239/513)

12권 - 7화

아주머니들과 아가씨들을 승합차로 안내한 덩치가 돌아왔고, 이어서 인원수대로 만들어온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별장과 강성태를 둘러싼 어둠이 산에서 빌려온 한기를 뿌리며 숲의 고요함을 지키고자 애썼지만, 따뜻한 커피의 맛을 살려줄 뿐, 해야 할 일이 남은 강성태 일행을 돌려보내지는 못했다.

커피를 다 마신 강성태가 하늘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낸 때였다.

양길동이 주방 쪽 통로를 통해 나왔다.

“네 분 모두 정신을 찾았습니다, 형님.”

그의 표정이 몹시 무거웠다.

아마도 이성을 수습한 네 명의 권력자가 무섭게 협박한 눈치인데 강성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주방을 통해 강성태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네 사람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혹은 골프장에서 갓 나온 듯한 복장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강성태는 물론이고, 뒤따라 들어서는 덩치들을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은 눈빛이었다. 대신 치욕스럽다는 감정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들의 눈에 가득했다.

강성태가 뒤를 돌아보자 덩치 한 명이 바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놓아주었다.

“그 가방 놔두고 잠깐들 나가 있어. 양길동 너는 남고.”

“예, 형님.”

양길동을 제외한 십여 명이 조용하게 빠져나가자 넓은 별장 거실에 여섯 명만 남았다.

노래방 기계, 드럼, 마이크가 덩그러니 놓여서 마치 실컷 놀고 난 남자 다섯이 영업이 끝난 주점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짐작하시겠지만, 강성태라고 합니다.”

따귀를 얻어맞아 왼쪽 볼이 퉁퉁 부은 소신영이 복잡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이우섭 부의장님과 소 회장님은 아들 문제로 저를 아실 테고, 고검장님과 부장판사님은 처음 뵙습니다.”

어지간하면 고함쯤 지를 법도 한데 강성태의 의도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듯 네 명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시면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강성태라고 했지?”

강성태의 점잖은 태도와 말투를 확인한 고강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밑바닥 인생은 모르는 우리만의 룰이 있다. 허리 아래의 일을 떠벌여 봐야 우리끼리는 개망신으로 끝나. 하나 더, 네가 아무리 오늘 일을 떠들어도 검사가 죄를 확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처벌할 방법이 없어.”

말을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검찰과 국회, 언론이 나서면 너는 말할 것 없고, 너와 십 원이라도 주고받은 사람들, 전화 한 통, 문자 한 번 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조사를 받게 된다.”

고강준의 말이 이어질수록 소신영과 이우섭, 선중일의 얼굴에서 조금씩이나마 여유가 배어 나왔다.

“너에 관한 이야기는 두어 번 들었지. 카지노 대부가 어느 날 사라지고, 네가 그걸 인수했다는 정황도 있고. 우리 쪽 선배 변호사들이 나서서 무마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것부터 조사해 볼까?”

질문을 받은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검장님은 먼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눈가를 좁혔던 고강준이 곧바로 비릿한 웃음을 그려냈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무서워서 자신만은 먼저 풀어주는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깡패치고는 계산이 빠르구나.”

몸을 일으킨 그는 아예 주방의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라니까.”

“뭐?”

반말, 그리고 예상 밖의 반응에 고강준이 퍼뜩 고개를 돌린 직후였다.

쫘아아아악. 털썩.

강성태가 힘껏 갈긴 따귀를 맞은 고강준이 비련의 주인공처럼 모로 쓰러져 놀란 눈을 치켜떴다.

“일어나.”

충격이 심했는지 고강준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다면야.

상체를 숙인 강성태는 고강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위로 쭉 끌어당겼다.

“아! 아악!”

쫘아악. 쫘악. 쫘아악! 쫘아악!

네 번 더 따귀를 때리자 그의 코와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고,

쫘아아악. 털썩.

머리칼을 놓고 다시 갈긴 따귀에 고강준은 비참하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법은 서초동에 있고, 강성태의 주먹은 바로 눈앞에 있고.

처참한 고강준의 몰골을 목격한 세 사람이 강성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애꿎은 노래방 기계와 드럼, 그리고 발밑에 집중했다.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일단 더러운 영상부터 보고 이야기하자.”

강성태가 눈짓을 던지자 양길동이 카메라를 노래방 기계의 모니터와 연결했다.

그가 플레이 버튼을 누른 다음이었다.

“욱.”

고강준과 뒤엉켰던 소신영이 바로 헛구역질을 토해냈고, 이어 이우섭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선중일을 보았다.

강성태는 네 사람을 향해 서서 아예 모니터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해.”

“예, 형님.”

양길동이 영상을 멈추자 그 즉시 거실 안에 더러운 침묵이 자욱하게 깔렸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저럴 리가 없어. 저런 더러운 짓을, 내가?”

혼잣말을 지껄인 소신영이 영상을 떠올렸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다시 헛구역질을 해댔다.

“허리 아래는 이해한다고 했었지? 검찰이 죄를 주지 않으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고. 그럼 어디 이 영상을 한 번 뿌려보자. 어느 정도 선에서 끝나는지?”

겨우 몸을 일으키는 고강준을 향해 차갑게 웃은 강성태는 양길동에게 고갯짓을 던졌다.

카메라를 챙긴 양길동이 주방을 통해 밖으로 나간 다음이었다.

“하아. 원하는 게 뭐냐?”

소신영이 지치고 힘겨운 음성으로 질문을 건넸다.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말 것, 네 사람 모두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강성태란 이름이 나오면 조용하게 마무리 지을 것, 이렇게 두 가지.”

침묵하는 네 사람을 향해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두 가지만 약속한다면 오늘 다친 아가씨들에 대한 보상, 비밀유지, 모두 내가 알아서 정리한다.”

강성태는 코와 입을 손바닥으로 닦아대는 고강준이 소파에 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었다.

그가 자리에 앉은 다음이었다.

“이름이 나오는 일을 모두 덮으라는 게 어디까지냐? 사람 한 명 죽인 사건이라면 합의한 상태에서 우발적이라는 사유로 집행유예까지야 만들 수 있다만, 그 이상 대놓고 살인한 걸 막아줄 수는 없어.”

막연하게 짐작하던 것보다는 강성태의 조건이 별것 아니라고 느꼈는지, 이우섭이 선을 정하려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아까 고검장이 말했던 대로 신호남파의 일 처리를 생각해보면 짐작할 텐데? 살인을 대놓고 덮어달라고 할 만큼 미련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염려하지 않아도 돼.”

답을 들은 이우섭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바로 주변의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우리 이름을 팔지는 않겠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엉키면 나 역시 곤란해지니까.”

“영상을 돌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지?”

“영상이 나가면 나부터 우리 조직의 수뇌부는 머리가 하얗게 돼서 세상에 나와. 그걸 내가 먼저 터트릴 이유가 있을까?”

“네가 그걸 미끼로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클럽과 카지노로 돈은 충분해. 이번 일도 소 회장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강성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우섭과 고강준, 선중일이 소신영을 돌아보았다.

내가 무슨 약속을 어겼다고?

세 사람의 시선을 확인한 소신영이 항의하는 듯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전에 아들 영상을 덮는 조건으로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했었지? 그래놓고 우리 조직에 관한 특집 보도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건 뭐야? 그 지시만 아니었다면, 오늘 일도 없었어.”

“그거야…. 한 번도 아니고, 네가 또 우리 아이들에게 손을 대서…….”

내용을 떠들어봐야 궁지에 몰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신영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이 있어서 다른 세 사람이 원망하는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특히, 코와 입가에 피가 번진 고강준의 눈빛에는 독기마저 서려 있었다.

이진기와 소영천, 아들놈들끼리도 그렇더니 하여간 아버지들조차 조금만 틀어져도 앙숙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것만 약속하면 이대로 끝내준다?”

소신영의 질문에 강성태는 눈짓으로 고강준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또 뭔데?

세 사람이 궁금한 시선으로 고강준을 돌아보았다.

“다 같이 죄를 지었는데 한 사람만 맞는 건 불공평하지.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으면 고강준 고검장은 먼저 일어나. 나머지는 따귀 다섯 대씩을 맞은 뒤에 갈 수 있다.”

강성태가 고개로 주방 쪽 통로를 가리킨 직후였다.

우습게도 고강준이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고검장?”

“저런 영상이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다행이라고 여기십시다.”

냉정한 말을 소신영에게 던진 고강준이 강성태 옆을 빙 돌아서 주방으로 움직였다.

그가 밖으로 나간 다음이었다.

“이봐. 그러지 말고 차라리 우리 일을 보면 어떻겠나? 아예 한 식구가 되면 자네에게도 좋겠지? 안 그런가?”

소신영의 제안에 강성태는 픽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금부터 입을 열 때마다 한 대씩 추가할 테니까 알아서 하고. 두 번째로 맞는 사람까지는 다섯 대, 다음은 여섯 대, 가장 마지막에 맞는 사람은 일곱 대가 되니까 알아서 나와.”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차기 총리를 하실 분이고, 법무부 장관, 아까 나간 고검장은 검찰총수를 맡을 사람이야! 어디에서 함부로 손찌검을 하겠다고…….”

“소신영 회장. 세 마디, 세 대 추가.”

“그렇게 따지면 나는 가장 처음에 이미 한 대 맞았는데…….”

“네 대 추가.”

강성태가 목을 좌우로 꺾는 순간이었다.

이를 깨문 선중일이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강성태 앞으로 나왔다.

콰악.

강성태는 가운데가 텅 빈 선중일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아! 아악! 머리는 왜?”

“쓰러지면 기다리기 번거로우니까.”

쫘아아악. 쫘아악. 쫘아아악. 쫘아악. 쫘악. 털썩.

“다음 사람은 기본이 여섯 대. 입을 열면 추가.”

강성태가 남은 두 사람을 향해 입을 떼기 무섭게 이우섭이 앞으로 나섰다.

사실 힘으로는 아예 강성태의 상대가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때리면 광대뼈가 부서지는 건 물론이고, 이가 남아나지 않을 약골들이라 강성태는 적당한 수준에서 힘을 조절했다.

쫘아악. 쫘아아악. 쫘악. 쫘악. 쫘악. 쫘아악. 콰다당.

사정을 봐서 때렸는데도 마지막 따귀를 때리며 움켜쥐었던 머리칼을 놓자 이우섭은 아예 소파 옆으로 처박혔다.

선중일과 이우섭이 맞는 장면을 보고 나자 어떡해서든 협상을 하고 싶은데 입을 열자니 따귀 대수만 늘어나고.

소신영은 입술만 움찔댈 뿐,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사이 소파를 붙들며 이우섭이 몸을 일으켰고, 코와 입술을 매만진 선중일은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돈이나 권력이 있어도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어. 그중에서도 마약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거고.”

소신영을 향해 말을 던진 강성태는 곧장 그에게 걸어갔다.

“그냥 한 대로 끝내자.”

그렇게 편의를 봐준다고?

세상 참. 소신영이 커다란 선물을 받은 얼굴로 바라볼 줄도 몰랐지만, 소파 옆에서 겨우 일어선 이우섭이 여러 대 맞은 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얼른 일어나.”

마지못한 동작으로, 그러나 한 대만 때린다는 말은 또 반가운 투로 소신영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쩌어어어억. 콰드등. 철퍼덕.

강성태의 주먹을 제대로 맞은 소신영이 소파와 함께 넘어가 거실 바닥에 처박혔다.

기절한 소신영을 보며 이우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강성태는 가장 먼저 조태완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어떻게 됐어?

“잘 마무리했습니다. 보도도 없을 테고, 당분간이겠지만, 그럭저럭 이 상태가 유지될 거 같습니다.”

- 때리거나 한 건 아니지?

“적당하게 따귀 몇 대씩 때렸습니다.”

- 뭐? 누굴? 누구 따귀를 때려?

“네 사람 모두 차례대로, 공평하게 맞고 갔습니다.”

- 하아.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스마트폰 건너편에서 세상이 무너질 듯한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그건 그렇고. 이세종이 이리 온다던데? 그놈은 왜 먼저 나온 거야?

이왕 통화한 상황이고, 어차피 알게 될 일이어서 강성태는 저녁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 얍삽한 새끼가 보스에게 그래놓고 나한테 와서 매달리려고 했었구만. 그럼 개발 사업을 어떻게 할 건데?

“이미 도끼 박아놨는데 그냥 물러설 수는 없고, 그 일은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 그래? 보스 생각이 그렇다면 개발 사업은 내게 맡겨줘.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뭔가 묘수가 있나 싶은 조태완이 반응이 있었다.

- 이리 올 거지?

“보도국장이 그리 간다니까 병렬이에게 들렀다가 갈까 합니다. 내일 삼합회에서 들어오는 일로 준비할 것도 있고요.”

- 그렇기도 하네. 알았다. 내일 보자.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급한 보도를 막았고, 당분간 짧은 평화를 얻었다.

그렇다고 따귀를 맞고 간 인간들이 그런 것처럼 강성태 역시 속이 시커먼 네 사람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말도 안 되는 균형 속에서 누가 먼저 죽고 죽이는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좋았다.

변명하지 못하게,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끔, 한 놈씩, 차례대로.

그것도 네 놈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누가 먼저 죽을까?

강성태의 질문에 대한 답처럼 캄캄한 국도를 달리는 승용차의 앞에서 하얗게 보이는 가로등이 나타났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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