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 14화
강성태는 담배를 끊은 지 반나절 되는 사람처럼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소신영 때문에 안다미가 준 사인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부터, 서달수를 잃고 이병렬을 병실에 눕혀 두었는데, 또다시 뒷정리를 느슨하게 처리하는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조태완이 아니었다면 소신영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뻔했고, 아차 하는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박노익마저 병실에서 볼 뻔했다.
전에 없이 독이 오른 강성태는 구석으로 밀러난 조덕진과 박배근에게 시선을 돌려 황상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강성태지? 나 광주 황상열이다.”
“인사를 할 것도 아닐 텐데 뭔 말이 많아? 무릎 꿇어. 그러면 따귀 백 대로 넘어가 준다.”
“어따, 호로 새끼. 느자구 없는 건 알았다만, 너는 우 아래도 없냐?”
당찬 황상열의 대꾸에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내 앞에서 욕한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못 들었나 본데 지금 배워.”
그리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저! 저!”
황상열의 뒤에 있던 덩치들이 달려드는 순간, 박노익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휘익!
날아드는 회칼의 손목을 잡아챈 강성태는 그대로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들린 놈의 오른쪽 팔꿈치를 왼팔로 세차게 올려쳤다.
콰득.
“끄으윽!”
늘 여기에서 끝내니까 오늘 같은 꼴이 나왔다.
팔꿈치가 부러진 놈의 팔을 다시 잡아챈 강성태는 상체를 구부린 놈의 턱을 무릎으로 거세게 올려 찼다.
콰자작! 털썩.
목뼈가 부러졌겠구나 싶을 만큼 머리가 젖혀졌던 놈이 곧바로 무릎 꿇는 자세로 바닥에 무너졌다.
황상열을 똑바로 노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놈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발로 밟았다.
터얼-썩.
기절한 상태였다. 의식을 잃은 탓에 밟힌 덩치의 얼굴이 요란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뭣허냐, 시방?”
분명 놀랐다. 그런데도 황상열은 타고난 독기로 놀라움을 누르고 있었다.
휘익. 콰자작.
강성태가 오른발을 들어 쓰러진 덩치의 팔꿈치를 완전히 부러트릴 때, 조덕진과 박배근은 인상을 찌푸렸고, 황상열은 눈 끝을 움찔했다.
강성태가 아직 쥐고 있던 손목에서 회칼을 뺏고, 부러진 팔을 던진 순간이었다.
더는 지켜보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이런 씨벌놈이!”
황상열의 오른편에서 회칼을 든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 직후에, 와락 하고 키란이 달려들었다.
홰액, 놈의 손목을 잡아챈 키란이 빙글 팔을 휘감아서 뒤로 꺾었고, 이어 몸이 비틀린 덩치의 뒤에서 머리칼을 붙잡아 당겼다.
“놔! 안 놔? 이 씨벌놈아!”
고함을 지르는 놈을 돌려 창으로 데려간 키란이 머리칼을 쥐고 있던 덩치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찍었다.
퍼윽. 퍽. 퍼윽. 퍼윽.
대리석으로 된 창틀에서 튄 피가 앞의 유리에 선명하게 찍혔다. 그렇게 핏방울이 늘어날수록 방 안에 있던 황상열의 기가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늘어진 덩치의 머리통을 힘껏 뒤로 당긴 키란이 창틀이 아니라 유리창을 향해 세차게 찍어 넣었다.
콰드등!
기대하기는 요란하게 유리가 깨지길 바란 모양인데 이중 유리인지 로프에 튕긴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덩치의 머리가 거칠게 뒤로 튀어나왔다.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튀어나온 머리통을 키란이 이를 악물며 내리눌렀다.
콰자작.
창틀에서 튄 피가 유리와 옆에 있던 난, 도자기, 그리고 바닥에 튀고 나서야 키란은 잡고 있던 덩치를 놓았다.
이 동남아시아 출신 살인마는 뭐야?
조덕진과 박배근이 놀란 눈으로 바라볼 때였다.
우르르, 눈이 붉게 물든 두 번째 살인마 최치곤이 덩치들 여덟 명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황상열이 데려온 덩치들을 흉내 내듯 번쩍이는 회칼을 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강성태가 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 최치곤의 눈이 뒤집혀 있었다.
지루하던 병원을 나와 광분한 키란, 강성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끌던 숙소 식구들 앞에서 뭔가를 보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최치곤.
이미 기세에서 싸움은 끝난 것과 같았다.
회칼을 거꾸로 든 강성태가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이야!”
두 놈이 강성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최치곤이 움찔할 때였다.
강성태는 좀 더 빠르게 앞으로 뛰어들었다.
최치곤과 여덟 명이 달려들면 양쪽 모두 피를 볼 수 있는 데다, 자칫하면 목숨을 뺏는 경우가 생길까를 우려해서 먼저 나섰다.
휙! 핏! 피잇! 휘익! 핏핏!
삽시간에 두 놈의 팔뚝을 연달아 가른 강성태는,
푹푹. 푹푹푹!
곧바로 어깻죽지를 찔렀다.
콰득. 퍽. 퍼억.
책상 왼편에서는 키란이 달려 나오는 두 놈의 울대와 명치를 엄지로 찍었고,
휙! 피잇! 핏핏핏! 푹푹! 푸욱!
손을 훑듯이 빼어낸 회칼로 거침없이 옆구리와 겨드랑이, 그리고 어깨를 찍었다.
이쯤에서는 최치곤이 나설 기회를 줘도 되겠다.
“최치곤! 저기 두 새끼 끌어내!”
“예, 형님.”
강성태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야! 가서 파이프와 배트 좀 가져와!”
최치곤이 지시하자 옆에 있던 덩치가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한아름 배트와 쇠파이프를 안고 돌아온 덩치가 최치곤부터 나머지 동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저기 회칼 든 두 새끼 조져!”
조덕진, 박배근은 아예 책장 안쪽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최치곤이 달려들자 나머지 여덟이 거침없이 쇠파이프와 배트를 휘둘렀다.
퍽! 퍼윽! 퍽! 퍽! 퍽!
최치곤과 여덟 명이 휘두르는 배트와 쇠파이프가 무섭다기보다는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수모당하는 게 싫다는 투로 황상열이 물러나서 거치적거릴 것도 없었다.
그만하지 싶었는데 최치곤은 배트를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머리통은 놔두고 목덜미, 허리, 그리고 회칼을 들고 있던 손목을 세심하게 갈겨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건 너무 오래 때리는데?
강성태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형님이 지시하신 일이라 멈추라고 해야 그만둡니다, 형님.’
유섭우가 눈짓을 던졌다.
그런 거였어?
강성태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만해.”
강성태가 나직하게 지시를 던지고 나서야 배트를 멈춘 최치곤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들리지 않게 숨을 내쉬는 꼴이 배트를 휘두르느라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강성태의 속도 모르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뭐 하냐?”
최치곤이 인상을 찌푸리자 여덟 명이 달려들어서 널브러진 덩치들을 줄줄이 끌어냈다.
끌려나가는 놈들이 길게 그린 핏자국이 넘으면 죽는 경계처럼 강성태와 황상열 앞에 여러 겹 선을 그렸다.
강성태가 몸을 돌리자, 신호를 기다리는 사냥개처럼 회칼을 거꾸로 든 키란이 황상열을 노려보았다.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반항하는 인간은 황상열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강성태는 고개를 틀고서 황상열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시범 케이스다. 지방 아니라 바다 건너서 왔더라도 신강남파가 하는 일에 머리 쳐들면 머리통 깨지는 일밖에 없다는 증거. 알았냐?”
강성태는 독한 눈빛으로 황상열에게 다가섰다.
“씨벌.”
대차게 욕을 뱉어낸 황상열이 허리 뒤에서 회칼을 뽑아냈다.
“와, 이 씨벌놈아!”
그가 위협적으로 회칼을 앞으로 휘둘렀다.
휙. 휙.
자세를 낮춘 황상열이 뒤로 물러나면서 회칼을 두어 번 휘두른 직후였다.
피이잇! 서걱.
빠져나가는 황상열의 손목을 강성태가 세차게 올려 그었다.
“어?”
거칠게 갈라진 재킷 안쪽에서 하얗게 벌어진 손목이 드러났고, 이어 극적인 그러데이션 효과를 보여주는 것처럼 피가 번져 나왔다.
“앞으로 신강남파 일에 머리 쳐들지 말고.”
피잇! 핏핏! 달캉.
팔뚝을 연달아 가르자 인상을 찌푸린 황상열이 회칼을 떨어트렸다.
달캉.
강성태는 옆으로 회칼을 던졌다.
“내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욕을 뱉지 마.”
“이런 씨벌 새끼가!”
쩌어억! 쩌어억! 쩌억! 쩌어어억!
연달아 주먹을 얻어맞은 황상열이 고개를 흔들며 뒤로 밀려났다.
구석에 있던 조덕진과 박배근이 얼결에 그를 받고는 강성태를 향해 놀란 시선을 든 직후였다.
쩌어어어어억!
강성태는 이를 악물 정도로 독하게 황상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털썩. 철퍼덕.
무릎을 꿇었던 황상열이 뻣뻣하게 앞으로 엎어졌다.
마무리!
강성태의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날 정도의 마무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다가간 강성태는 엎어진 황상열의 왼쪽 팔꿈치를 발로 밟았다. 그런 뒤에 손목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야! 그것까지는!”
홱, 고개를 드는 순간 움찔했던 박배근이 뒤로 물러났다.
박배근을 올려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황상열의 손목을 무 뽑듯 위로 들었다.
콰자작.
꿈틀했던 황상열의 고개가 흔들릴 때 강성태는 같은 방법으로 왼팔의 팔꿈치를 밟았다.
콰드드득.
팔꿈치 두 개를 완전히 부러트린 다음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새끼는 시범 케이스다.”
말을 뱉은 강성태는 걸음을 옮겨 던져둔 회칼을 집어 들었다.
푸욱. 푹.
그리고는 견갑골 안쪽의 근육에 회칼을 깊게 찔러넣었다.
등판의 재킷에 피가 번졌고, 아래로 물을 흘려놓은 것처럼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제 이놈은 평생 숟가락 이상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몸을 세운 강성태를 조덕진과 박배근이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성태가 두 놈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동생.”
여태 지켜보던 박노익이 무거운 음성으로 강성태를 불렀다.
“그런 것까지 동생이 직접 하면 격 떨어져. 밖에 있는 애들 시켜.”
고개를 돌린 강성태를 박노익이 의미가 분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둘러싸여 있던 박노익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이미 형님이라 부른 마당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답하자 박노익이 흐뭇한 미소를 감추기 위해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유섭우!”
“예, 형님.”
“두 사람 끌고 나가!”
회칼을 문 앞으로 던진 강성태는 박노익의 책상 앞으로 걸었다.
“안에 두 분 모셔라!”
유섭우가 쇳소리 가득한 음성으로 지시하자 쇠파이프와 배트, 회칼을 든 덩치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동생!”
그 직후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조덕진이 구석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다. 오늘 일을 계기로 앞으로 대전은 신강남파의 지시를 따르겠다.”
조덕진이 무릎을 꿇자 유섭우가 손을 들어 덩치들을 세웠다.
이것도 의미가 있는 건가?
강성태가 돌아보는 옆에서 박노익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담았다.
“야, 인마. 회칼을 들고 달려들어 놓고, 무릎 하나 꿇은 거로 끝내려고 하는 건 너무 양아치짓 아니냐? 내일이라도 무릎 꿇은 일 없었다고 떠들면 할 말이 없잖아?”
무릎을 꿇은 조덕진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박노익과 강성태를 번갈아 보았다.
‘헛소리 지껄일 거면 유섭우랑 나가.’
강성태의 눈에 담긴 의지를 본 모양이었다.
“동생에게 손가락 하나를 올리겠습니다.”
조덕진이 답을 내놓았다.
박노익이 고갯짓을 하자 유섭우가 회칼을 하나 받아서 그의 앞에 내려주었다.
이를 깨물어 볼을 씰룩이던 조덕진이 회칼을 집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활짝 펼친 왼손 새끼손가락에 날의 중간을 걸었다.
드드득.
팔이 떨리도록 힘껏 회칼을 누르자, 잘린 손가락이 원망하듯 꿈틀거리는 동작으로 조덕진에게서 벗어났다.
“이쯤에서 대전은 용서해주지, 동생?”
“알겠습니다.”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왼손 새끼손가락을 움켜쥔 조덕진이 몸을 일으켰다.
“대전 조덕진입니다.”
앞으로 나선 그는 먼저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깊게 숙였고, 이어 박노익에게도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유섭우의 곁을 지나쳐 방을 나섰다.
“너는 어떻게 할래?”
박노익의 질문을 받은 박배근이 볼을 씰룩였다.
시간 끄는 게 못마땅했다.
머리가 깨진 문기주와 덩치들의 치료도 급해 보였고.
“끌고 나가.”
강성태가 짧게 지시한 다음이었다.
“칼 주라.”
이를 악문 박배근이 요구를 내놓았다.
조덕진보다는 확실히 시간을 더 끌었고, 고개를 모로 튼 채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박배근 역시 새끼손가락 반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여기 좀 치워주라.”
바깥이 정리되면서 박노익이 지친 음성으로 유섭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차 한 잔 마셔도 되지?”
강성태에게 권유했던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방이고, 바깥이고, 온통 난장판이라 당장 둘이 앉아서 차를 마실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여기 치우고, 뒷정리도 해야 하니까 잠시 나가 있자.”
“그러십시오.”
강성태의 답을 들은 박노익이 지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엉망이 된 사무실을 나서던 그가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제 더는 개발 사업에 고개 쳐드는 놈은 없겠네.”
혼잣말처럼 들릴 만큼 나직하게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난 박노익은 자부심 가득한 눈으로 강성태를 들여다보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