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 10화
이학의의 뒷모습은 확실히 겁에 질려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그가 내뱉는 사죄가 눈앞의 조소아가 아니라 뒤에 선 강성태를 향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이 침대를 붙잡고 잘못을 외치는 모습, 더구나 피투성이가 된 얼굴인 건 비참한 광경이었다.
“용서해주십시오.”
겁에 질려 기계적으로 내놓는 사죄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죄에 진정성이라고는 설렁탕에 뿌리는 소금만큼도 담겨 있지 않았다.
강성태는 안다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왕 시작한 일입니다.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시선의 의미를 알아본 안다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미안해서, 폭력 외에 다른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마음과 달리 이제 일을 마무리해야 할 차례였다.
안다미의 곁에서 걸음을 옮긴 강성태는 곧장 침대를 붙들고 있는 이학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옆으로 돌아가 오른발로 그의 어깨를 힘껏 밀었다.
털썩.
널브러진 이학의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강성태를 보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맞아본 인간이라면, 군대라는 곳을 다녀왔다면, 지금 같은 순간에 얼른 몸을 세워야 한다는 것쯤 알았을 텐데 이학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알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용서받으라고 했지?”
이학의에게 다가간 강성태는 그의 배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퍼억! 퍽! 퍼억!
본능은 무섭다.
팔로 배를 감싼 이학의가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이런 개새끼가?
콰악! 콱! 콰아악!
“억! 끄윽! 끅!”
강성태가 그의 허리와 허벅지를 짓밟자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부르고 싶어서 그래?”
“아니오! 아닙니다!”
“사람을 불러야 반항하는 거라며? 조용히 있으면 함께 즐기는 거라면서? 너는 맞는 걸 즐기는 놈이야?”
“아닙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해서 사람을 헛갈리게 해?”
퍼억! 퍽! 퍼어억!
그의 배를 또다시 걷어찬 강성태는 상체를 숙여 멱살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신기한 현상도 있었다.
내내 울던 조소아가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개처럼 얻어맞는 이학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길 봐.”
강성태는 이학의의 멱살을 끌어서 냉정해진 조소아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네가 지닌 알량한 권력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사람이다. 그 몇 푼 되지도 않는 권력으로 여기 조소아 씨가 지니고 있던 인생의 꿈과 희망, 미래를 모두 짓밟았다고.”
화악.
강성태는 한 뼘 정도 앞에 이학의를 당겨서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내가 너보다 강하거든. 그래서 네 인간성, 체면, 자존감을 모두 짓밟을 거야. 집에 돌아가서 이 순간을 떠올리면 죽고 싶을 정도로. 알았어?”
“네.”
쫘아아악! 철퍼덕! 퍽! 퍼억! 퍼억!
따귀를 맞고 쓰러진 이학의를 연달아 걷어찬 뒤에야 강성태는 그의 멱살을 잡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강 선생님.”
또다시 오른손을 드는 강성태를 조소아가 나직하게 불렀다.
확인처럼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시선 속에서 조소아는 침대에서 발을 아래로 내렸다.
허름한 환자복을 걸친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오자 모친이 급하게 링거팩을 뽑아 줄을 늘여주었다.
“저 사람도 별것 없다는 거 봤어요. 제가 고통스러울 때, 지금 보여주셨던 장면을 떠올리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피가 배어 나와 붉게 물든 강성태의 목덜미, 손등, 셔츠 가슴 부위의 거즈를 돌아본 조소아의 눈에서 말라붙었던 눈물이 다시 그득하게 고였다.
“다미의 친구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걸 받았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지는 몰라도 혹시 살다가 힘들거나 어려운 순간을 또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뜻을 밝힌 조소아는 강성태를 향해 곱게 고개를 숙였다. 상체를 세운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다미야. 나 이제 괜찮아.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조소아가 말을 마쳤을 때, 안다미가 볼에 흘러내린 한줄기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아빠. 실력이 아니라 돈으로 선생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니까 우리도 잘못했었던 거예요. 누군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 밀려난 거잖아요. 제 혼수라고 하셨으니까 저 그 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앞으로 제가 열심히 일해서 그 돈 다시 만들게요.”
감정을 누르느라 입술을 굳게 다문 부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였다.
“끄응.”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학의와 연순동이 동시에 신음을 터트리며 꿈틀거렸다.
용기를 빌리려는 듯한 태도로 강성태를 들여다보았던 조소아가 몸을 돌렸다.
“이 나쁜 새끼.”
발로 차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돼서 찰 곳이 마땅치 않았고, 다음으로 아직 그 정도 독기를 지니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무섭다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조소아가 정말이지 묘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긴 뒤에 이학의의 이마에 족적을 남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올렸다.
치욕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조소아가 그러듯이 밤마다 이 순간을 떠올릴 때면 이불을 차며 몸부림치게 하고 싶은 눈치였다.
“꽉 밟아야 더 치욕스럽죠.”
뭐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좀 쉽다.
자신을 얻은 것처럼 조소아가 이학의의 이마를 꽉 밟았다. 놀란 이학의의 눈을 바라본 채로 말이다.
“끄으.”
상체를 세워 문에 기댔던 연순동이 강성태가 돌아보는 순간에 얼른 고개를 떨궜다.
비겁한 새끼.
연순동을 향해 픽 웃은 강성태는 그쪽으로 움직였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연순동이 뒤로 물러나려는 것처럼 발을 버둥거렸다.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말이다.
“일어나.”
웃기지도 않는다. 강성태의 지시를 들은 연순동이 순한 양처럼 몸을 일으켰다.
“검찰에 고소한 피해자 모두 알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기억이 되살아나게 해주지.”
강성태가 팔을 뻗어 넥타이 맨 연순동의 멱살을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압니다.”
뜬금없는 답이 연순동의 입에서 나왔다.
“후. 마지막이다. 한 번 더 대답을 늦게 하면 저렇게 돼. 알았어?”
끄덕끄덕.
“내 앞에서는 대답 똑바로 하라고 했지?”
쫘아아악! 쫘아아악! 쫘아아악!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연순동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검찰에 고소한 피해자들 알지?”
“압니다.”
“그거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지?”
“있습니다.”
피해자가 더 있다는 답을 워낙 쉽게 내놓아서 하마터면 대답을 잘했는데도 따귀를 때릴 뻔했다.
“하루 준다. 내일 이 시간까지 그 사람들 모두 찾아가서 피해금과 보상금 전해주고 합의서 받아와. 알았어?”
“예?”
쫘아아아아악!
다리에 힘이 풀린 연순동이 휘청했다가 억지로 몸을 세웠다.
“검사가 합의서를 몰라? 가서 피해금 돌려주고, 사과와 보상금 건네서 합의서 받아오라고.”
“합의서, 압니다.”
“어떻게 하라고 했어?”
“내일 이 시간까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알아서 해라.”
“예.”
검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만큼 연순동은 강성태가 원하는 답을 쏙쏙 족집게처럼 내놓았다.
“지금 대답한 걸 절대 잊지 말라는 의미다.”
“잊지 말라는 의미. 압니……?”
답을 하던 연순동이 놀라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있는 힘껏 오른손을 휘둘렀다.
쫘아아아아악! 콰드등!
병실 문에 부딪힌 연순동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아 바닥에 널브러졌다.
대강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였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소신영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한 것처럼 신호음이 한 번 울렸는데도 곧바로 소신영의 답이 있었다.
“이학의 말인데, 따귀를 좀 때렸으니까 고검장에게 미리 말해서 괜히 귀찮게 되는 일이 없도록 처리해.”
- 대한민국은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나서도 처벌할 방법이 없소. 걱정하지 마시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언제 봅니까?
이 인간이 원하는 게 뭔데 충직한 개처럼 굴까?
어쩐지 업무를 나누는 듯한 사무적인 말투여서 강성태는 눈가를 좁혔다.
“편한 시간을 말해.”
- 그렇다면 점심 먹고 나서 오후 1시쯤 어떻소?
“장소는?”
- 서라대학병원이라면 우리 방송국이 좋지 않겠소? 비서실에 말해 둘 테니 회장실로 바로 올라오시오.
“알았다. 1시에 보자.”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종료버튼을 눌렀다.
“누구예요?”
안다미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조소아와 그의 부모가 안심했으면 하는 의도도 담긴 질문이었다.
“JBC 방송국 소신영 회장이오. 고강준 고검장이 오늘 일을 덮어서 절대 기소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답을 한 강성태는 조소아와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일부러 그런 건지, 이쪽을 보느라 신경 못 쓴 건지는 몰라도 아직 이학의의 이마를 밟고 있었다.
처음엔 정말 어색하더니 그 짧은 순간에 사자를 사냥한 사냥꾼처럼 당당한 자세였다.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조소아가 슬그머니 발을 내렸다.
“여기 부장검사에게 한 이야기 들었죠? 아까 도움 주겠다는 분들에게 연락하세요. 이 인간들이 합의서 받으러 갈 테니까 그동안 당했던 수모 갚아 주라고요.”
“처벌은요?”
“앞에 사건들은 이미 일사부재리에 걸려서 재수사가 어려울 수 있고, 대신 조소아 씨가 앞서서 고소하면 보도를 통해 일을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강성태의 말을 들은 안다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조소아는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제가 고소하면 이 사람들을 때린 일이 밖에 알려질지 모르잖아요.”
“그건 내가 알아서 감당하겠습니다.”
“아니요. 이 정도면 전 만족해요.”
아무래도 감정이 들쑥날쑥한 모양이었다. 만족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조소아는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아흑.”
버둥대며 상체를 세우던 이학의가 얼른 고개를 떨궜다.
“이제 그만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예.”
조소아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쉴 때 강성태는 시선을 돌렸다.
“얼른 나가. 마음 변하기 전에.”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학의는 기어서 문 쪽으로 움직였다.
조소아와 그의 부모, 강성태와 안다미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학의와 그의 사위이자, 중앙지검 형사부장 검사인 연순동이 비참한 얼굴로 병실 문 앞에 섰다.
“잠깐만요.”
강성태를 돌아보았던 안다미가 조소아의 침대 곁으로 움직였다.
“수건 있으면 두 장만 주세요.”
“수건? 아!”
조소아의 모친이 캐비닛을 열어 곱게 접어둔 수건 두 장을 내주었다. 누구인지 이름을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팔순 기념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입원한 환자, 다른 사람들의 눈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안다미는 수건을 들고 가 이학의와 연순동의 얼굴을 덮어주었다.
“바깥에 치곤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는 대로 둘러싸서 데리고 갈 테니까 그 정도면 됐습니다.”
“빨리 말하죠. 수건만 버렸잖아요.”
순례자처럼 고개를 떨군 두 사람의 잘못이라는 양, 안다미는 이학의와 연순동을 노려보았다.
저렇게 맞고도 동정 못 받기도 참 힘든데, 그 어려운 걸 장인과 사위 두 사람이 해냈다.
“나가.”
인사를 하는 건지,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인지는 몰라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쭈뼛대며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눈매가 사납게 변한 최치곤이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보내주고 와.’
‘오케이!’
눈짓을 주고받은 최치곤이 문을 닫았을 때, 수건 한 장을 더 꺼낸 조소아의 모친이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성태의 목덜미에 번진 피가 모친의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땀이 나지도 않은 턱 아래, 피가 번진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찍어준 모친이 이번에는 몸을 낮춰서 바닥에 깔린 피를 닦았다.
“어머니. 같이 하세요.”
“아니야.”
함께 몸을 낮춘 안다미를 조소아의 모친이 눈물 맺힌 눈으로 말렸다.
“더러운 피가 다미 너한테 묻는 게 싫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세상 어디에서도 풀 수 없는 한을 풀어줬는데, 이건 내가 할란다.”
쪼그려 앉은 모친이 떨어지는 눈물과 바닥에 묻은 피를 하나하나 닦아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