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 7화
대화로 해결하기에는 이미 너무 달려나갔다.
“이거 안 열어?”
운전석으로 다가간 최치곤이 인상을 찌푸린 뒤에 차 옆에 있던 커다란 돌을 집어 들었다.
“그만합시다.”
거친 모습에 기가 꺾인 연순동이 다급하게 매달린 직후였다.
콰작! 콰작! 퍼서석!
세 번이나 거칠게 돌을 내리친 끝에서 운전석 유리가 요란하게 부서져 나갔다.
“꺄악!”
이선정의 비명이 어둠을 뚫고 사방으로 퍼지는 사이, 최치곤은 깨진 유리 틈으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풀었다.
철컥.
문을 연 최치곤은 머리를 감싸고 꿩처럼 고개를 처박은 이선정의 뒷덜미를 잡아 운전석 밖으로 끌어냈다.
이선정은 놓으라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겁에 질린 얼굴로 끌려 나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점퍼에 백만 원이 넘는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면티,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모셔왔습니다, 형님.”
연순동 옆의 의자에 이선정을 구겨놓듯 앉힌 최치곤이 고개를 깍듯하게 숙인 뒤에 강성태의 뒤로 움직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회칼만 보이는 모양으로 이선정은 테이블 위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겁낼 거면서 그거로 나를 찌르라고 시켰어? 입원하면 2억에 죽으면 보너스 1억을 더 준다며? 사람이 회칼에 찔리는 게 어떤 건지나 알아?”
“잘못했어요.”
기가 막힐 정도로 이선정은 쉽게 잘못을 인정했다.
“아줌마.”
“예.”
워낙 겁에 질려 연순동도 보이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면 이 자리에서 남편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든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비굴하게도 이선정은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모아 강성태에게 빌었다.
“거참, 사람 마음 약해지게.”
“미안하오. 나도 이렇게 고개를 숙일 테니 집사람은 한 번만 용서해주시오.”
강성태의 반응이 누그러졌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연순동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투로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하자.”
연순동은 빠르게, 이선정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따귀 열 대씩만 맞아. 그거로 깨끗하게 끝내자.”
맞은 경험이 있는 연순동과 비록 맞은 적은 없지만 이학의의 상태를 똑똑히 지켜보았던 이선정 모두 공포는 똑같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방법은 없겠소?”
애원하다시피 연순동이 매달렸다.
“그럼 손가락을 하나 내놓든가.”
얼른 그렇게 하라는 투로 이선정이 연순동을 돌아보았다.
“이런 말이 강 회장의 화를 돋우는 건 아는데 내가 그래도 중앙지검 형사부장이오. 그러지 말고 나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생각을 좀 해라. 형사부장인 너를 마음대로 부리는 고검장이 있는데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
이병렬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조태완이 보여주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인간성이 무너진 사람들은 미친개를 다루듯 거칠게, 야비한 인간들은 더욱 야비한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시간 늦었다. 얼른 끝내자. 결정 못 하겠으면 내가 정하는 대로 그냥 열 대씩 맞아.”
강성태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손가락을 자르겠소.”
연순동이 비장한 얼굴로 결심을 내놓았다. 마른침을 삼킨 그가 회칼의 손잡이를 잡을 때, 이선정은 감동한 얼굴이었고,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뭐 하냐?
강성태는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연순동을 지켜보았다.
약속을 하자는 것도 아닐 텐데 연순동은 새끼손가락만 펼친 왼손을 가슴 앞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든 회칼을 새끼손가락 앞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하면 뼈가 걸려서 수십 번을 썰어야 해.”
강성태가 말한 장면을 상상한 모양이었다. 이선정이 몸서리를 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왼손을 테이블에 올려. 그런 뒤에 칼끝을 손가락 앞에 대고 단숨에 눌러.”
왼손을 탁자에 펼친 연순동이 회칼을 가슴에 들더니 “후-.” 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에 회칼을 허공에 들었다. 단숨에 내리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도끼가 아니라 그렇게 내리쳐도 뼈가 안 잘린다니까. 회칼의 앞을 손가락 앞에 대고 작두로 썰 듯이 단숨에 내리그어야 뼈까지 잘린다고.”
지켜보기 갑갑해서 강성태는 오른팔을 뻗었다.
움찔한 연순동이 회칼을 얼른 뒤로 빼냈고, 이선정은 양손으로 뺨을 감쌌다.
지랄들은.
강성태는 보온병을 들어서 뚜껑을 열고는 느긋한 태도로 커피를 따랐다.
눅눅한 습기와 짙은 숲 냄새 사이에서 라이트 불빛에 의지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으며 동시에 진한 커피 향이 테이블 주변을 맴돌았다.
보온병 뚜껑을 닫은 강성태가 잔을 가져올 때, 연순동은 회칼의 끝을 펼친 왼손 새끼손가락 앞에 내려놓았다.
“으으.”
이를 악물고서 신음을 쏟아낸 연순동이 독한 얼굴로 회칼을 아래로 내렸다.
단숨에 잘라야 한다고 그렇게 알려줬는데도 회칼은 천천히 손가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날이 새끼손가락을 누르는가 싶을 때였다.
커피를 마시는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이선정이 마른침을 삼켰다.
회칼의 등을 꽉 때려줄까?
옆에 앉는 바람에 이선정의 눈에 담긴 욕심을 연순동은 볼 수 없었지만, 강성태는 똑똑하게 보았다.
“으으으.”
회칼이 새끼손가락을 좀 더 누른 직후였다.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소?”
회칼을 얼른 든 연순동이 애잔한 음성과 눈빛으로 강성태에게 매달렸다.
“지겹다. 진짜. 이제 끝내자.”
강성태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최치곤에게 넘겼다. 그런 뒤에 뭐라 할 틈도 없을 만큼 바로 몸을 일으켰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는 연순동의 멱살을 강성태는 왼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이리 나와.”
“검사님!”
테이블 옆으로 연순동을 끌어내는 순간에 이선정이 안타깝게 남편을 불렀다.
“너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에 경찰과 검찰을 찾아가. 그런데 너는 성폭행 당한 선생들을 어떻게 했어?”
따귀를 맞는다는 두려움에 연순동은 생각이 멈춘 듯 보였다.
“너는 손가락이라도 자를 기회를 얻었지. 네가 이익에 따라 휘두른 법에 당하는 사람들은 항거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고.”
생각이 멈췄던 연순동이 회칼을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번쩍 눈빛이 빛났다.
이런 개새끼!
제 손가락은 못 자르겠는데 강성태의 배는 찌를 수 있다고?
강성태는 힘껏 오른손을 휘둘렀다.
짜아아아악!
한 대였다. 그와 동시에 연순동의 고개가 흔들렸고, 이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회칼을 떨어트렸다.
짜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아악!
세 대를 더 때렸을 때, 이가 부러지는 감촉이 오른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짜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악!
다시 세 대를 더 때렸을 때는 어금니마저 나갔고, 그 증거로 코피와 동시에 연순동이 흘리는 침에 피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연순동? 야? 대답 못 하겠어?”
“아닙니다. 예.”
“장인이라고 덮어주고, 마누라가 저지른 일이라고 무마하면, 당한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해야 하는 거냐?”
“법원에 가서….”
“검사가 기소를 안 하는데 어떻게 법원을 가?”
짜아아악. 짜아아아악.
두 대를 더 때린 강성태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가 몇 대 때렸냐?”
“아홉 대입니다, 형님.”
꼼꼼한 최치곤의 답이 있었다.
하마터면 약속한 것보다 더 때릴 뻔했다.
“명심해라. 만약 노익이 형님이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면 분명 누군가 내게 회칼을 휘둘렀을 거다. 그랬으면 너는 정말 죽었다. 알았어? 너 역시 운이 정말 좋았던 거라고.”
“운이 좋았습니다. 예.”
강성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투로 연순동이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이니까.
짜아아아아아악!
강성태가 세차게 갈긴 따귀에 맞은 연순동이 주차장 바닥에 널브러져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줌마?”
“네? 예!”
“손가락을 자를래, 아니면 따귀를 맞을래?”
“살려주세요!”
넙죽 의자에서 내려온 이선정이 테이블을 붙잡은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그 바람에 보온병이 넘어졌고, 강성태가 따라놓은 커피가 테이블에 번졌는데 이선정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따귀로 하자.”
“안 돼요. 저렇게 맞으면 나 죽어요!”
“흠.”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성태는 이선정이 무릎 꿇은 맞은편에 앉았다.
“좋아. 여자를 때리기는 그러니까 아줌마에게는 특별히 한 가지 제안을 더 하지.”
두려움을 대신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이선정이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재단 운영권을 내놔.”
이선정은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3년간 내가 운영할 테니까 이사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왜? 그건 또 못 하겠어?”
“사학법에 이사장의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해서요….”
“헛소리 지껄일 거면 내 마음대로 그냥 결정한다. 재단 운영권을 내놓을 건지, 아닌지, 셋 셀 동안 대답해. 하나, 둘.”
“드, 들를게요.”
“뭐? 들르긴 어딜 들러?”
“아니요. 드린다고요.”
이선정을 잠시 내려다보던 강성태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딱 한 번 울렸다.
“여보세요?”
- 강성태입니다. 혹시 옆에 조철호 변호사 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이곳 상황이 궁금해서 머리가 가려울 성격의 조태완이 다른 말 없이 강성태의 뜻을 받아주었다.
- 보스가 찾아.
조태완의 음성이 멀찍하게 들린 뒤에,
- 조철호요.
기다리던 대꾸가 건너왔다.
“이학의와 이선정이 관리하는 재단 운영권을 3년 동안 받아오고 싶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한지와 가능하다면 절차를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 그런 거라면.
관련법을 떠올리는지 조철호는 잠시 뜸을 들였다.
- 성공학원이라고 했으니까 그곳의 정관과 내부 규정을 살펴봐야겠지만, 특별하게 문제는 없을 거요. 다만, 사학재단법에 이사장의 자격을 규정한 게 있을지는 모르오.
“제가 이사장을 맡을 게 아니니까 규정에 따라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리 과정을 맡아주실 수는 있습니까?”
- 조 회장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소.
“알겠습니다. 이곳 일이 끝나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선정을 내려다보았다.
“아줌마. 운영권 3년. 그 뒤에 돌려주는 거로 계약서 쓸 건데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운영권 내놓는 거 맞지?”
“드릴게요.”
“좋아. 그런데 나는 아줌마 같은 사람을 못 믿겠어. 그래서 말인데.”
얼른 조건을 말하고 이 자리를 끝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품은 표정으로 이선정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대만 맞자. 그래야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지.”
“드린다니까요. 드려요. 드릴 거라고요.”
“계약금이라고 생각해. 잔금 아홉 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배우는 계약금.”
소신영, 고강준, 이우섭, 하다못해 이세종까지,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그것도 강성태를 주저앉히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면서 말이다.
“재단을 무조건….”
한 대니까.
짜아아아아악!
강성태는 이선정의 따귀를 세차게 갈겼다.
너무 세게 때렸나? 고작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 이선정은 오른쪽으로 넘어져 죽은 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강성태는 착잡한 심정으로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이선정을 내려다보았다.
잔인한 짓이고, 추한 모습이지만, 이남순과 같은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어서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최치곤이나 다른 덩치들을 시킬 마음은 더더욱 없었고.
재단에 몇십억, 몇백억씩 쌓아두고서 정부 지원금 받아 독일제 승용차에 백몇십만 원 하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남순과 같은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훨씬 이 사회에도 좋은 일이었다.
좋은 말로 설득해봐야 답이 없고, 기회가 생기면 등 뒤에서 칼을 휘두를 사람인 데다, 오늘이 지나면 분명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을 테니 최소한의 고통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강성태는 몸을 일으키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달은 밝았고, 별이 가득한 밤이었다.
이런 날, 연순동의 이를 부러트렸고, 이선정의 따귀를 때려 기절시켰다.
강성태는 시선을 내려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점점 더 추악해지는 건 아닌지, 이런 손으로 다시 안다미의 머리칼을 쓸어주고 등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어쩌면 이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 길에 들어선 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승용차로 움직인 최치곤이 트렁크를 열고는 생수병을 가져왔다.
“손 닦으십시오, 형님.”
강성태가 돌린 시선 앞에서 최치곤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렇게 닦는다고 깨끗해질까?”
“우리는 그림자 아닙니까, 형님. 탐욕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치우셨을 뿐입니다. 깨끗하게 닦고 어렵더라도 형님이 말씀하신 빛을 향해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님?”
씁쓸하게 웃은 강성태가 손을 내밀자 입술을 굳게 다문 최치곤이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주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