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 16화
처음부터 현관을 막고 기다리던 놈들이 스물, 나중에 달려온 덩치가 서른, 모두 오십여 명이 회칼 또는 쇠파이프를 들고 강성태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전파 덩치들을 마주한 강성태를 따라 움직인 이병렬과 피투성이 김진용, 최치곤이 뒤를 받쳤다.
“지금 무릎 꿇는 놈은 봐준다.”
“잣 까는 소리는 강남에 가서나 해!”
당찬 대꾸가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놈의 눈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은 강성태는 불쑥 덩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
당찬 대꾸를 던졌던 덩치가 움찔하는 순간, 번득, 쿠크리를 뻗은 강성태는 놈의 어깨를 휘감았다.
피잇! 핏핏핏! 핏!
소리는 섬뜩했다. 그리고 삽시간에 너덜너덜해진 놈의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붉은 피가 쭉 번져 나왔다.
“씨발!”
고함과 함께 옆에서 회칼이 날아들었는데,
카앙!
왼팔의 칼집으로 회칼을 막은 강성태는 놈을 향해 쿠크리를 밀어 넣었다.
곧바로 회칼을 찔러넣었던 놈의 손목부터 팔뚝에 여러 갈래의 줄이 생겼고, 그 자리에서 시뻘건 피가 올라왔다.
이어서 강성태는 개떼에 뛰어드는 호랑이처럼 역전파 덩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곧바로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이 강성태의 뒤를 지켜주기 위해 몸뚱이를 내던지다시피 회칼을 휘둘렀다.
칼로는 강성태를 상대하지 못한다.
손목이나 팔뚝을 움켜쥔 놈들이 강성태를 피해 좌우로 갈라졌고, 덩달아 나머지 역전파 덩치들이 길을 내는 것처럼 양쪽으로 벌어졌다.
부응! 부으응!
거리가 멀어진 덩치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를 때였다.
“병렬아! 신부동이란 놈을 찾아!”
현관을 막아선 강성태가 짧게 지시를 내렸다.
부응! 퍼윽!
고개를 돌린 틈을 파고든 쇠파이프가 강성태의 오른쪽 팔뚝에 떨어졌다.
부응! 붕!
그리고 팔뚝을 비트는 강성태를 향해 또다시 쇠파이프 두 개가 날아들었다.
“씨바-알!”
퍼윽!
몸을 던진 최치곤이 쇠파이프 하나를 왼쪽 팔뚝으로 막았고,
카앙!
그사이에 강성태는 팔뚝에 감은 칼집으로 남은 하나를 막았다.
최치곤이 위험했다.
쩌어어억! 쩌어억!
먼저 최치곤을 때린 덩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은 강성태는 앞에 있던 놈에게도 주먹을 날렸다.
“지금이다! 죽여!”
기회를 잡았다고 여긴 역전파 덩치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는데 강성태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병렬! 들어가라고!”
그러면서도 이병렬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들어간다!”
답을 하듯 소리 지른 이병렬이 로비를 향해 달렸다.
“저 새끼 막아!”
역전파 덩치들이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쇠파이프가 비처럼 날아들었다.
피잇! 서걱! 쩌어어억!
강성태는 달려드는 놈들을 악착같이 막아섰고,
부으응! 퍼서석! 부응! 퍼석!
그 바람에 허공을 가른 쇠파이프가 파란 줄로 치장한 돈암병원의 현관 유리를 깨부쉈다.
쩌어어억! 쩌어억!
상체를 뒤틀어 피한 강성태는 쿠크리를 든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날려서 달려드는 덩치들을 바닥에 쓰러트렸다.
부응! 퍼윽!
최치곤이 하얗게 변한 눈을 하고서 쇠파이프에 몸을 던져가며 강성태를 지킬 때였다.
부응!
계단을 향해 방향을 틀던 이병렬의 머리로 쇠파이프가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튼 이병렬이 뒤로 밀리는 순간, 계단에서 역전파 덩치들 십여 명이 달려들었다.
부응! 휙! 휘익! 휙!
쇠파이프, 회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달려드는 놈들을 상대로 이병렬은 물러나지 않았다.
사는 거 미련 버렸다!
이병렬의 태도는 분명했다.
휙! 휘익! 푹!
두 번의 칼질을 피한 이병렬이 회칼로 앞에 있던 놈의 팔뚝을 찍을 때였다.
“진용아! 병렬이 도와서 길 열어!”
고함과 유리 깨지는 소리, 쿠크리에 팔뚝이 갈린 놈들이 지르는 비명 사이에서 강성태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피잇! 푸욱!
왼쪽 팔뚝을 베인 이병렬의 어깨로 회칼이 박힌 직후였다.
“야, 이 개새끼야!”
좁은 병원 로비가 터질 것처럼 욕을 뱉은 김진용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푹! 푸욱!
김진용은 이병렬의 어깨를 찍은 역전파 덩치의 팔과 어깨에 회칼을 박아넣었다.
휙! 휘익! 휙! 휙!
김진용의 뒤를 노리고 여러 자루의 회칼이 날아들 때, 이번에는 이병렬이 달려들었다.
이병렬의 칼질은 김진용에 비해 빠르고 정교했다.
그 덕분에 김진용을 구해내기는 했는데, 대신 이병렬은 다시 등이 길게 갈라졌다.
일곱 놈쯤이 이병렬과 김진용을 노릴 때였다.
“이 씨발 새끼들이!”
부응! 부응!
이번에는 주워든 쇠파이프를 미친놈처럼 휘두르며 최치곤이 합류했다.
짧은 회칼보다는 긴 쇠파이프가 일단 유리했다.
부응! 퍼윽!
한 놈의 대가리를 최치곤이 갈기면서 틈이 생겼고, 이병렬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회칼을 휘둘렀다.
“치곤아! 밀고 올라가!”
부응! 부으응!
이병렬의 지시를 받은 최치곤이 쇠파이프를 거칠게 휘둘러 길을 열었고, 그의 옆과 뒤를 이병렬과 김진용이 지키면서 역전파 덩치들이 뒤로 밀렸다.
푹! 푹푹!
이병렬의 정교한 칼질에 또 한 놈이 쓰러질 때,
부으응! 퍼윽!
최치곤이 앞을 막아서는 놈의 목덜미에 쇠파이프를 꽂아넣었고,
푸욱! 푹!
김진용이 빠르게 달려들어 휘청이는 놈의 어깨에 회칼을 쑤셔넣었다.
부응! 퍼석! 부으응! 퍼서석!
몇 개 남지 않았던 현관 유리가 부서지면서 이십여 명에 둘러싸인 강성태가 로비로 들어섰다.
퍼윽! 쩌어어억!
등에 쇠파이프를 맞았는데도 강성태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고, 이어서 날아드는 회칼을 쿠크리로 감았다.
카가각.
손목을 비틀어 회칼을 밀쳐낸 강성태가 놈의 팔뚝을 날카롭게 그었다.
“끄으윽!”
부응! 붕! 쩌어억! 퍼윽!
이십여 명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강성태는 계단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퍼버벅! 쩌걱!
그리고 그 순간에 이병렬이 계단을 막아섰던 마지막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고, 회칼을 움켜쥔 주먹으로 턱을 올려쳤다.
“죽여!”
“이 씨바-알!”
부응! 쩌어억! 핏! 피잇! 퍼윽! 퍽!
이병렬은 외롭게 싸우는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정말이지 짧은 순간이었다.
환상인가 싶을 정도로 강성태의 시선과 이병렬의 눈이 마주쳤다.
‘신부동 찾아!’
강성태의 눈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퍼윽! 쩌어억! 쩌억! 피이잇!
처절하게 계단을 막아선 강성태를 보며 이를 악물었던 이병렬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병렬이를 도와!”
주춤대는 김진용과 최치곤에게 강성태가 던진 고함이었다.
퍼으윽!
그 직후에 또다시 팔뚝을 맞았는데,
쩌어억! 쩌어어억!
강성태는 연달아 주먹을 날려 두 놈을 쓰러트렸다.
이 정도로 처절하게 붙었고, 강성태까지 나섰는데 신부동과 조문섭을 찾아내지 못하면 먼저 억울하고, 두 번째로는 개망신을 당하는 꼴이었다.
“치곤아!”
최치곤을 부른 김진용이 이병렬을 따라 계단을 뛰어올랐다.
“형니-임!”
함께 가자는 의미로 김진용이 앞선 이병렬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2층 입구에 도착한 이병렬이 멈칫했다.
콰악!
그리고 그 직후에 2층 입구 안쪽에서 손이 불쑥 나와서 이병렬의 멱살을 움켜쥐고 안으로 당겼다. 이대로 끌려가면 죽는다.
“이익!”
푹!
이병렬은 멱살을 움켜쥔 놈의 팔뚝을 회칼로 찍으며 끌려가지 않으려 버텼다.
이병렬의 예상대로였다.
휘익! 피잇!
2층 입구 안쪽에서 날아온 회칼이 상체를 비튼 이병렬의 옆구리를 갈랐다.
“야, 이 개새끼야!”
부으응!
최치곤이 입구 안쪽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이병렬은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
푸욱! 푹!
대신 최치곤이 회칼에 어깨와 팔을 찔렸다. 그러나 최치곤은 하얗게 뒤집힌 눈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버텼다.
이번에는 이병렬과 김진용이 최치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위험한 상황에 놓인 최치곤의 뒷덜미를 당긴 이병렬은 곧바로 회칼을 휘둘렀다.
핏! 피잇! 핏!
삽시간에 두 놈의 팔을 이병렬이 갈랐고,
퍼윽! 퍽! 퍼억!
김진용이 한 놈의 얼굴에 커다란 주먹을 꽂아넣었으며,
부으응! 퍼으윽!
최치곤이 또 다른 놈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갈겼다.
상체가 온통 피로 물든 이병렬이 이를 드러내 가며 앞을 노려볼 때, 혼자 남은 놈이 질린 듯 뒤로 물러났다.
2층은 진료실과 검사실이었다.
이 정도 소란이면 병원 스태프 한 명이라도 내다봐야 했는데, 아래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쇠파이프 휘두르는 소리, 강성태가 역전파 덩치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는 소리를 제외하면 복도는 고요했다.
“이 개새끼!”
이병렬은 주춤대며 물러서는 놈에게 똑바로 다가갔다.
“한 번만 묻는다. 대답을 안 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면 바로 죽여버릴 거니까 알아서 대답해. 신부동 어디 있어?”
질문을 던진 이병렬은 대놓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다시 이가 드러날 정도로 독기를 끌어올린 이병렬이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여기 검사실에 있습니다.”
마침내 덩치가 답을 내놓았다.
이병렬의 눈짓을 받은 김진용이 빠르게 움직였다.
혹시 또 숨어서 지랄할지 모르니까.
김진용은 혈액검사실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콰자작! 부으응!
문고리가 부서진 나무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 있던 놈이 휘두른 배트가 부서진 문틈을 날았다.
퍼버벅! 퍼벅! 쩌으윽!
복도에 남은 놈을 처리한 이병렬이 검사실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검사실 안쪽에는 침대 두 개와 덩치 셋이 있었다.
이병렬은 왼편 침대에서 하얗게 질려있는 신부동을 보며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다, 신부동?”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인 김진용, 상체 여기저기가 갈라져 피범벅인 이병렬, 비슷한 몰골에 유독 눈이 하얗게 뒤집혀 살인마처럼 보이는 최치곤까지.
신부동은 말할 것 없고, 침대 주변에 있던 놈들도 얼어붙은 것처럼 달려들지 못했다.
이병렬이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쩌어어어억!
익숙한 소리가 복도를 타고 검사실로 달려들었다.
반 박자 뒤에 철퍼덕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커다란 자루가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이후로 숨 막히는 정적이 넘실거리며 날아와 삽시간에 혈액검사실을 뒤덮었다.
안을 지키던 세 놈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이병렬, 김진용, 최치곤과 비슷한 모습을 한 강성태가 검사실 앞에 나타났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는데 왼팔에 감은 칼집, 오른손에 거꾸로 든 피 묻은 쿠크리가 좀 더 강성태를 살벌하게 보이도록 치장해주는 느낌이었다.
“어떤 새끼가 신부동이야?”
강성태가 물었고,
“보시기에 왼편에 있는 놈입니다, 형님.”
김진용이 빠르게 내놓은 답을 내놓았다.
강성태는 안에 있는 세 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걸어 들어갔다.
주춤주춤, 배트를 들고 뒤로 밀리던 놈들이 더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이를 악물었다.
쩌어어어억! 쩌어억!
그러나 강성태가 더 빨랐다.
배트를 휘두르려는 두 놈의 얼굴에 강성태가 주먹을 꽂아넣었고,
부으응! 퍼으윽!
놀라서 움찔하는 놈의 머리통을 최치곤이 쇠파이프로 제대로 찍었다.
털썩! 콰드등!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은 놈이 의료용 선반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직후였다. 역시나 상체가 온통 피로 물든 강성태가 신부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살려주십시오!”
겁에 질린 신부동이 다급한 음성으로 강성태에게 애원했다.
“서달수는 말이다.”
“예, 형님.”
피투성이인 세 사람,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이 보는 앞이었다. 강성태의 한마디를 들은 신부동이 조직의 직계 선배를 대하듯 빠르게 대꾸를 내놓았다.
“그 아까운 목숨을 던져서 이병렬을 지켜냈고.”
강성태의 오른손이 쿠크리의 칼자루를 꽈악 움켜쥐는 것을 본 신부동이 마른침을 삼켰다.
“보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뿐인 목숨을 던져 알려준 소중한 내 식구였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형님!”
강성태를 지켜보던 이병렬이 조용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피범벅인 왼팔을 내밀어 강성태의 오른손 팔뚝을 슬며시 잡았다.
시선을 돌린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새끼를 보스가 직접 손대는 건 아니지.’
의미가 분명한 고갯짓이었다.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며 뜻을 전했던 이병렬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진용아. 이 새끼 발목 두 개 끊어.”
“감사합니다, 형님.”
상체를 숙여 인사한 김진용이 침대로 움직인 뒤였다.
“형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형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형님! 끄윽! 아아악!”
다급하게 애원하던 신부동의 처절한 비명이 검사실을 가득 메웠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