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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 2화 (314/513)

《314》16권 - 2화

최금식은 고등학교 1학년 중퇴의 학력소지자로 배운 게 짧아서 그렇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강성태와 통화를 마친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황상열의 병실에서 보았던 세 명에게 차례로 전화했다.

“강성태와 연락했었냐?”

- 형님이 각자 알아서 연락하자고 하셨잖습니까?

반응은 같았다.

실제로 최금식이 그러자고 했었고.

“강성태가 이상한 말을 하던데, 한 사람이 광주를 먹을 수 있게 밀어준다고 하더라만, 혹시 너한테도 그러든?”

- 광주를 밀어준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형님.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에서 세 명은 그런 말은 없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것들이 혹시 말을 맞췄나?

마음 같으면 잡아다 족치고 싶었다. 하지만 광주라는 좁은 바닥에서 함께 살아가는 처지고,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선후배, 친척으로 묶이는 데다, 비록 형님,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지만, 엄연한 조직의 대가리들이었다.

어설프게 족치려다가 저쪽에서 달려들면 그야말로 본전도 못 건지는 상황이었다.

“전화로 이럴 게 아니라 술이라도 하면서 의논하자.”

- 지금 말입니까?

“언제 우리가 시간 가리며 마셨어?”

- 서울에서 강성태가 내려온다는데 준비라도 해둬야지요. 그런데 형님. 정말 강성태가 밀어준다고 했습니까?

술 먹자고 불러서 작업하려는 게 아닐까?

세 사람은 오히려 최금식의 제안이 의심스러운 눈치였다.

“괜히 우리 사이를 벌려 놓으려고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믿냐? 하여간 이래저래 당한 게 있으니까 뭐라도 보여주려고 날뛰는 거겠지. 소나기는 피하라고 하잖냐. 동생들 단속 잘하고, 조만간 보자.”

통화를 마친 최금식은 남은 술을 온더록스 잔에 따르며 걱정을 털어냈다. 조금 전 그가 했던 말대로 황상열이 정리될 때까지만 머리 감추고 있으면 끝날 일이었다.

동생들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게 찔리기는 하는데 어차피 그놈들도 강성태와 신강남파에게 달려드는 게 좋을 리는 없으니까 한순간 부끄럽고, 길고 오래 무탈한 게 좋지 않겠나.

계산을 마친 최금식은 씁쓸한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

병원 앞까지 나온 이병렬은 함께 가지 못하는 게 영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강성태 역시 함께 가고 싶었다.

마음은 그런데 현실이 이병렬과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거 다 떠나서 돌아다니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만큼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심지어 외상만 보면 조태완보다 이병렬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르윈은?”

“심부름 보냈어.”

“지금이라도 불러서 데려가지?”

“얼른 끝내고 올라올게.”

입술을 굳게 다문 이병렬은 고개만 끄덕였다.

눈인사를 건넨 강성태는 기다리는 승용차의 뒷자리에 앉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문을 닫아준 정영권이 이병렬에게 인사했고, 승용차가 움직이자 지켜보던 이종환과 유섭우, 그리고 남은 신강남파 식구들이 서열에 따라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승용차가 병원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 박배근입니다, 형님.

“지금 출발했다.”

- 도착시간에 맞춰 전일병원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혹시 가능하면 최금식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 대신 저쪽으로 말이 들어갈 거 같으면 그냥 두고.”

- 조심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바로 다음 번호를 눌렀다.

- 조덕진입니다, 형님.

“어떻게 됐어?”

- 황상열이 속은 거 같습니다, 형님.

“속다니? 어떻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조덕진의 답에 강성태는 고개를 비틀며 통화에 집중했다.

- 황상열이 S650 에디션 어쩌고 하는 6억짜리 차를 서남파 두목 오장우에게 넘겨주고, 대신 목포와 여수 쪽에 도움을 부탁했답니다, 형님.

“속았다는 건 뭐야?”

- 오후에 오장우가 차를 달라고 했다가 황상열과 불편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황상열이 도움을 청하자 대뜸 차를 내놓으라고 했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원.

- 평소 오장우가 여수, 목포 쪽 식구들과 친분이 깊다고 떠벌린 말에 넘어갔나 본데, 제가 여수, 목포, 혹시 몰라서 군산까지 알아봤는데 오장우가 연락한 적 없답니다, 형님.

“뭐?”

- 차를 가지고 싶어서 큰소리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수와 목포 친구들 말로는 오장우는 그쪽에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돼서 혹시라도 들르게 되면 조용하게 있다가 사라진답니다, 형님.

양아치, 양아치, 말은 들어봤지만, 그래도 한 조직을 이끈다는 대가리가 승용차가 탐나서 거짓말을 하다니, 그것도 죽게 생긴 황상열에게 말이다.

하긴, 강성태에게 또 얻어터지고 나면 당분간 차를 찾을 일 없겠다는 계산쯤 했겠다.

- 어디십니까, 형님?

“이제 막 고속도로에 들어섰어.”

- 광주 전일병원에서 뵙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뒷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미친놈처럼 날뛰고, 상처가 무서울 정도로 빨리 낫지만, 통증과 고통은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고작 전화를 하는 움직임에도 팔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달려들어서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쉬고 싶었다.

이런 날은 빌라에 누워 하루쯤 푹 자거나 아니면 안다미를 만나 감정에 덕지덕지 묻은 더러움을 씻고 싶었다.

창밖을 잠시 보던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버튼을 눌렀다.

- 잠시만.

짧은 한마디를 던진 강선영은 말이 없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자리를 옮기는 눈치였다.

- 여보세요? 미안해. 좁은 식당 안이라 말하기가 불편했어. 어디야?

“광주 가는 길.”

- 갈 거면 좀 일찍 가지. SRT 송정리역 앞에 떡갈비 잘하는 집 있는데. 광주까지 가서 그냥 오면 아깝잖아.

나직한 한숨이 나오는 대꾸였으나 강성태는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 그거 때문에 지금 껍데기 집에서 소주 마셔. 70이 다된 영감님인데 사고 낸 운전기사에 대해 잘 안다더라고.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기껏 나와놓고 쭈뼛거려. 나 알지? 너한테 배운 일대일을 퍼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알아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다른 할 말이 뭐가 있겠나.

“고마워.”

- 내가 죄지은 게 있잖아. 그거나 까주라. 그런데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전화할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등받이에 몸을 묻듯이 기댔다.

광주를 정리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법이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휴식이 필요했다.

**

황상열의 인생은 강성태에게 달려들기 전과 후로 나뉜다.

먼저 좋았던 시절로 따지자면, 강성태에게 달려들기 전에 황상열은 광주에서 소위 ‘일빳다’로 꼽혔다.

지금은 물 만난 고기처럼 설치는 최금식이 불과 얼마 전까지 황상열의 눈치를 살폈다면 모든 게 설명되는 거 아니겠나.

실제로 광주 조직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가장 나이 많은 최금식이 있는 데도 다들 황상열에게 먼저 달려와 도움을 청했었다. 모든 게 강성태를 찾아가기 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강성태를 만나고 나서는?

깔끔하게 양쪽 팔꿈치가 부러졌고, 날갯죽지 안쪽의 근육이 잘렸다. 그 바람에 조직은 망가지다시피 했고, 심지어 황상열을 증명하는 듯한 독기마저 모조리 사라졌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목포와 여수 식구들을 데려오겠다며 S650을 가져갔던 오장우가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의 비겁함과 야비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정이 워낙 급하다 보니까 오장우 같은 인간에게라도 매달렸고, 보란 듯이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하루 이자가 10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2백만 원을 빌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황상열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그건 그거고, 어떻게 하지?’

세상 사람을 다 만나도 강성태만큼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단지 마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서 차라리 병원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싶기도 했다.

박노익을 노렸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천안 민병련과 손잡고 이병렬, 김진용을 건드렸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길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꼴이었다.

‘어째야 쓰까?’

팔이라도 제대로 움직여야 도망을 가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코너에 몰려서 그런지 황상열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었다.

양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회칼로 목을 그으려 해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처지였다.

“씨발. 뭐 헌다고 그런 괴물에게 달라들어서. 팔이 이렇게 뽀사졌으믄 그냥 그거로 잊을 거시지, 있는 돈 다 천안 주고 이게 시방 뭔 꼴이다냐.”

침대에 앉아 고개를 떨군 황상열은 처연하게 느껴지는 탄식을 쏟아냈다.

**

강성태가 출발했다는 보고가 있고 나서야 조태완은 오세아와 단둘이 마주할 수 있었다.

“그만 울어. 이렇게 멀쩡한데 왜 그래?”

조태완은 먼저 따뜻함을 깊게 묻어둔 거친 말투로 오세아를 달랬다.

“교통사고로 간을 다친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이 병원 의사가 돌팔이는 아니겠지? 뇌도 다쳤다고 했었지? 나중에 히죽거리고 다니면 어떻게 할래?”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태완은.

그 마음이 고마운 듯 눈물 단 얼굴을 하고서 오세아가 아프게 웃었다. 그런 뒤에 생각난 게 있다는 투로 고개를 들었다.

“오빠. 의식이 없을 때요. 보스란 분께 오빠가 했던 말을 전했어요.”

“그 말을 했어?”

“아뇨. 전하신 말씀이 있으니까, 혹시 잘못되시면 가장 먼저 만나달라고, 거기까지만 했어요.”

“에효. 먼저 말했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뻔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럼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해요?”

오세아의 말을 들은 직후였다.

조태완은 따귀를 맞은 사람처럼 어벙한 얼굴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오빠가 없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냐고요.”

“지금 그 말이…?”

“맞아요, 오빠. 4주래요. 진단 키트 덕에 바로 알고 병원에 갔었어요.”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삽시간에 눈이 붉어진 조태완은 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울어요, 오빠?”

“잠깐만.”

침대로 움직인 오세아가 울음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조태완의 머리를 부드럽게 안았다.

“오빠. 고마워요.”

뜬금없는 인사였다.

“흐으으. 흐으으으.”

그런데 그 인사를 받은 조태완은 서럽게 들리는 울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된 가족을 만들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교통사고에서 잃은 김정훈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오세아는 알 길이 없었다.

**

광주 전일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30분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밀동에서 손발을 맞췄던 조덕진은 편안하게 강성태를 맞았고, 손가락을 자른 이후 처음 보는 박배근은 아직 어색함이 피어나는 얼굴로 고개 숙였다.

깡패들이 치료받는 병원이 대개 그렇듯, 전일병원은 광주 외곽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신강남파 강남 숙소, 조덕진의 대전 숙소, 박배근의 전주 숙소, 세 곳의 덩치들이 모조리 모인 바람에 병원 앞 도로에는 승용차와 승합차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늘어섰고, 짙은 색 정장의 덩치들이 차 앞에 서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성태가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광주의 4개 조직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인 터라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고, 그나마 외곽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황상열은?”

“포기한 거 같습니다, 형님. 세 명인가 있던 동생들도 모두 보내고, 병실에 혼자 있습니다. 형님.”

황상열과 함께 달려들었던 박배근이 안타까운 눈빛을 누르며 상황을 전했다.

“들어가지?”

“모시겠습니다, 형님.”

박배근이 고개 숙이며 앞서고 강성태가 뒤따랐을 때였다.

“뭐 해!”

과장된 고함과 함께 정영권이 이리저리 손짓을 던졌다.

뭐 하려고 저러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쪽에서 나온 덩치 열 명이 마치 강성태를 호위하듯 주변을 감싸며 걷고 있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

게다가 정영권은 마치 경호팀장이라도 된 양, 날카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눈짓으로 연신 지시를 던졌다.

조덕진과 박배근이 있는 자리였고,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어서 그만두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 대신 유치한 꼴을 보며 걷자니 팔뚝에 닭살이 돋는 느낌을 참아야 했다.

“엘리베이터 확보해!”

이미 덩치가 셋이나 거기 있잖아!

하마터면 정영권에게 소리 지를 뻔했다.

묵묵하게,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인내심을 한껏 발휘하며 움직인 끝에 강성태는 황상열의 병실에 도착했다.

“여기입니다, 형님.”

강성태가 돌아보자 박배근이 문을 당겼다.

황상열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양팔에는 두꺼운 깁스를 감았고, 다시 어깨를 포함한 상반신은 미식축구 선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두툼하게 붕대를 감은 모습이었다.

황상열은 겁에 질려 있었다.

맞는 게 두렵다기보다, 강성태라는 인물 자체에 질린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강성태가 황상열 앞에 멈추자, 좌측 뒤로 조덕진, 우측 뒤로 박배근이 섰고, 문 앞을 정영권이 지켰다.

조덕진, 박배근, 정영권이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강성태를 살폈다.

따귀를 때릴까? 아니면 한 방에 보내는 주먹?

뭐든 황상열은 견디기 어려울 텐데?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무너지듯 몸을 앞으로 기울인 황상열이 강성태의 발 앞에 꿇어앉았다.

“앞으로 증말 얌전히 살아 갈랑게, 명줄만 붙여주십시오.”

강성태의 발을 향해 시선을 떨군 황상열이 간절하고 애절하게 청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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