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16권 - 4화
곧장 다가서는 강성태를 다섯 명의 덩치들이 ‘저건 뭐야?’ 하는 얼굴로 보았다.
신강남파가 온다는 말을 들어서 복도를 지키기는 하는데 평소 안면이 있는 박배근이 직접 온 데다, 숙소 덩치들 하나 없이 달랑 한 명이 뭐하려고 다가오나, 하는 의구심이 덩치들의 눈에 가득했다.
가만?
연예인처럼 생긴 젊은 남자, 그리고 셔츠에 배어 나온 피?
덩치 중에는 똘똘한 놈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켜!”
복도 가장 안쪽에서 나선 놈이 강성태를 맞이하듯 나섰다.
휘익! 휙! 휙!
격투기를 배운 듯 놈의 주먹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강성태가 상체를 비틀어 피한 다음이었다.
목을 조르거나, 몸을 붙들기 위한 자세로 놈이 달려들었다.
들은 게 있는 눈치였다.
바닥에 함께 구르기 위해 달려들면서도 권투 선수처럼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멍청이!
강성태는 팔을 든 놈의 왼편 갈비뼈를 주먹으로 힘껏 갈겼다.
퍼으으윽.
“꺼윽.”
희한한 비명을 터트린 놈이 왼편으로 기우는 몸을 세우려고 애썼지만, 맞는 순간 구부러진 몸뚱이를 세우지는 못했다.
이 정도라고…?
옆구리를 감싸며 웅크린 놈이 감탄인지, 억울하다는 건지 모를 눈빛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시간이 없으니까 이해해라.
쩌어어어어억!
복도에 스며 나온 노랫소리를 이길 정도로 요란하게 얼굴을 얻어맞은 놈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어?”
덩치 둘이 달려들어 넘어지는 놈을 잡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억! 쩌어억!
강성태의 주먹을 얻어맞은 두 놈이 붙잡아주려던 덩치와 함께 복도에 널브러졌다.
“뭐여, 이 씨불눔아!”
욕을 했으니까!
쩌어어어어억!
손을 들어 얼굴을 막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왼손을 어깨높이까지 들었으나 강성태의 주먹이 워낙 빨랐다. 결국, 왼손을 든 상태로 주먹에 얻어맞은 놈이 묘한 자세로 복도에 늘어졌다.
“뭐여?”
그걸 이제 물어봐?
쩌어어억!
엉거주춤하게 달려드는 마지막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은 강성태는 곧장 방문을 열었다.
정면에 기타를 걸친 남자가 노래방 기계 앞에서 조심하는 태도로 서 있었다.
강성태는 소파가 있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저 기다란 소파에 남자 둘, 여자 둘이 보였고, 다음으로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술잔을 들고 있는 놈과 여자, 마지막으로 오른쪽 벽에 붙은 자리에는 남자만 둘이 있었다.
강성태는 상석에 앉은 놈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금껏 살벌한 인상으로는 최치곤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오장우는 광주의 살인마라 불러도 될 만큼 눈 끝이며, 코끝, 각진 광대까지 잔인하게 생겨서 인상만으로는 광주 대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오장우?”
“뭐야, 이 새끼야!”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팔꿈치를 들며 오장우가 상체를 세웠다.
오장우를 확인하는 건 끝났다.
성큼성큼 걸어간 강성태는 훌쩍 테이블로 뛰어올랐다.
“꺅!”
놀란 아가씨들이 얼굴을 가리며 몸을 비틀 때, 강성태는 테이블 중간에 놓인 양주병을 집어 들었다.
휘익! 콰직!
몸을 세운 오장우가 던진 잔이 고개를 비튼 강성태를 스치고 지나가 문 쪽 벽에서 터졌다.
“이 개새끼가!”
왼편에서 남자 둘과 오른쪽에서 한 명이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다시 잔을 붙드는 오장우의 머리를 향해 양주병을 세차게 찍었다.
퍼석!
“억!”
정수리 부근에서 터진 양주병의 유리가 주변으로 튀었고, 진한 술 냄새와 함께 내용물이 벽과 주변 여자들을 덮쳤다.
왼편과 오른쪽에 있던 놈들이 테이블 위로 뛰어오를 때, 강성태는 반대로 오장우가 앉았던 소파로 내려섰다.
“나 처음 보지?”
“흐으.”
오장우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흠뻑 젖은 그의 머리칼에서 술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오장우의 머리칼을 움켜쥔 강성태는 앞에 놓인 안주 접시를 붙들었다.
테이블에 올라선 놈들은 강성태가 소파에 서 있는 데다, 오장우의 뒤편에 있어서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데 왜 신강남파를 노려?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휙! 콰자작!
“어억!”
접시가 사방으로 튀면서 오장우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고, 그 틈을 이용해 테이블 위에 있던 놈의 발이 날아들었다.
콰악, 놈의 발을 왼팔로 감은 강성태는 그대로 쭉 당겼다.
“어어?”
콰다당.
발이 당겨진 놈이 테이블에 주저앉았고,
쩌어어어억! 콰드등!
강성태의 주먹을 얻어맞고는 테이블에 길게 뻗었다.
하는 꼴을 봐서 함께 있던 놈들은 오장우의 식구들이 아니었다. 아마도 차를 자랑하기 위해 반쯤 건달이라는 반달이나 아는 조직의 덩치들을 부른 게 아닌가 싶었다.
강성태는 테이블 위에 서 있는 세 놈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신강남파 강성태다. 여기에서 더 나대면 그쪽 조직에도 찾아갈 테니까, 알아서 행동해.”
강성태의 경고는 곧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멈칫한 세 놈이 곤란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치고는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병으로 얻어맞은 오장우와 테이블에 길게 늘어져 있는 놈이 주는 공포도 한몫한 느낌이었다.
“어흑.”
겨우 테이블을 붙들고 몸을 일으키는 오장우의 젖은 머리칼을 강성태는 다시 붙들었다.
깨진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놈의 귀와 목덜미, 어깨에 붙은 수박과 참외, 딸기를 적시고 있었다.
강성태는 놈의 머리칼을 힘껏 당기고는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오늘부터 광주는 신강남파가 접수한다. 이 시간 이후로 이 바닥에 얼굴 들이밀지 말고 얌전히 살아. 이번은 경고 차원에서 이 정도로 끝내지만, 다음번에 다시 보게 되면….”
‘보게 되면 뭐?’
멍한 상태여서 그런지 오장우의 눈이 멍청한 질문을 강성태에게 던지고 있었다.
피식 웃은 강성태는 머리칼을 붙든 오장우의 얼굴을 향해 힘껏 주먹을 꽂아넣었다.
쩌어어어어억. 털썩. 콰드등.
테이블 위에 있는 두 놈이 눈을 찌푸릴 정도로 강한 주먹이었다.
도망가지 못한 아가씨들이 소파에 고개를 묻는 옆에서 오장우는 뒤로 넘어졌다가 테이블에 부딪혔고, 이어 그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놈은 해결했고.
룸을 나서려고 몸을 돌리던 강성태는 아직 테이블 위에 있는 세 놈에게 시선을 주었다.
“안 내려와?”
비록 마른침을 삼켰으나 서 있던 세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해보자는 거지? 알았다.”
강성태가 소파를 밟고서 다시 테이블로 올라간 직후였다.
“크흠. 큼.”
헛기침을 뱉은 세 놈이 시선을 피하는 모습으로 소파로 내려섰다.
강성태는 테이블을 가로질러 입구 방향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상석의 테이블 아래에 처박힌 오장우는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고, 테이블 위에도 한 놈이 길게 누운 자세로 쓰러져 있는데 소파에 있는 덩치 셋은 고개를 떨궜고, 아가씨들은 아직 벽을 향해 돌린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자으응.
요란한 소리에 강성태가 앞으로 시선을 돌리자 일렉 기타를 든 남자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노래방 기계 뒤로 숨으려다가 기타가 울린 모양이었다.
옅게 웃은 강성태는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김진용은 방지병원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병렬에게 알려서 허락을 받았다.
신강남파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필리핀 조직원에 최치곤이 꾸린 숙소 인원까지 불러서 함께 움직였다.
포장마차 골목으로 들어선 승용차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 오래된 빌라 앞에 멈췄다.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온갖 종류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고,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이 외롭게 서 있을 뿐,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보이는 빌라입니다, 형님.”
“전화해봐.”
정수리 부근에 커다란 거즈를 붙인 데다, 볼과 턱, 목덜미에 상처들이 가득해서 가로등 조명을 받은 김진용은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최치곤 역시 상처투성이의 모습은 다르지는 않았는데, 거기에 인상까지 더러워서 마치 살인마 둘이 희생자를 불러내는 모습처럼 보였다.
번호를 누른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는 빌라 방향을 돌아보았다.
- 여보세요?
“난데, 지금 빌라 앞에 왔거든.”
통화하던 최치곤이 확인처럼 빌라를 돌아보았다.
“어? 뭐야?”
- 예? 무슨 말이에요?
“잠시만 끊어. 바로 전화할게.”
통화를 마친 최치곤이 조수석 창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빌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낡은 빌라의 안쪽은 주차장이었는데 승용차 네 대가 테트리스를 절묘하게 해야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뭐 하는 거야? 왜?”
“조성만입니다, 형님.”
창에서 얼굴을 뗀 최치곤이 뒤편에 앉은 김진용에게 방금 확인한 내용을 전했다.
“조성만? 전에 네 후배라고 왔다 갔다 하던 놈?”
“예, 형님.”
신월동에서 업소를 운영했을 정도여서 김진용은 조성만을 기억해냈다.
“그놈이 왜?”
“저기 앞쪽 승용차 있잖습니까, 형님. 주차장에 서 있다가 방금 승용차 조수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 올 이유가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그렇습니다, 형님.”
최치곤의 말을 듣던 김진용이 인상을 찌푸려가며 차창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나 조성만이 이미 차에 탄 뒤라서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조성만이 여기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저놈이 여기 와 있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형님? 더구나 운전하는 놈까지 데려왔습니다, 형님.”
“내려.”
“예, 형님.”
최치곤이 조수석에서 내리는 사이에 김진용은 기다리지 않고 뒷좌석을 열고 내렸다.
“혹시 모른다. 너랑 나랑 몸이 이러니까 일단 애들 불러.”
억지로 몸을 세우는 김진용의 지시에 최치곤이 뒤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승용차와 승합차에서 기다리던 필리핀 조직원들과 숙소 덩치들이 차에서 내린 뒤에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저기 안에 있는 승용차 보이지? 거기 있는 놈들 끌어내.”
“예, 형님.”
열댓 명이 우르르 빌라 안쪽으로 들어가서 최치곤이 가리킨 승용차를 둘러쌌다.
“야! 잠깐 내려봐! 내리라고!”
문을 잠그고 버티는 모양이었다.
숙소 덩치들이 운전석과 조수석을 들여다보며 승용차의 천장을 손으로 두들겼다.
최치곤은 김진용과 함께 천천히 걸어서 승용차로 다가갔다.
가로등과 빌라 불빛을 통해 앞쪽 유리를 들여다본 최치곤이 조수석으로 향했다.
“가서 배트 하나 가져와.”
“예, 형님.”
덩치 한 명에게 지시한 최치곤이 힘겨운 동작으로 조수석에 고개를 기울였다.
“조성만. 좋은 말로 할 때 내려. 아니면 너 진짜 죽는다.”
최치곤이 으르렁거렸는데도 조수석은 열리지 않았다. 그 직후에 배트를 든 덩치가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달칵.
어쩔 수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제야 조수석 문이 열리고 조성만이 차에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조성만은 김진용에게 먼저 상체를 깊게 숙였고, 이어서 최치곤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인사했다.
“너, 뭐냐? 어디에서 생활해?”
몸에 딱 붙는 검은 티셔츠, 정장 바지, 짧은 머리칼에 금팔찌, 손가방, 조성만은 깡패 냄새를 폴폴 풍기는 복장과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왜 왔어?”
“예? 형님?”
“이 새끼가 진짜?”
최치곤이 조성만에게 으르렁거릴 때였다.
눈가를 좁히며 운전석을 살피던 김진용이 천천히 그쪽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지?
최치곤이 궁금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김진용은 운전석 앞에 있었다.
“너, 이 새끼? 상표지? 문상표? 문 열어봐.”
둘러싼 덩치들에 배트까지 들고 온 상황이었다.
포기한 것처럼 운전석 문이 열리고 조성만보다는 점잖은, 그러나 깡패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서른 초반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강서구에서 생활했다가 접은 터라 최치곤은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그 직후였다.
문상표와 조성만을 차례로 돌아본 김진용이 무언가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빌라 건물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치곤아. 그 아가씨에게 전화해서 지랄한다는 놈 호수가 어디인지 물어봐.”
“예, 형님.”
최치곤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난데, 집이 어디야? 아니, 부모 때린다는 놈 집. A동 301호? 알았어. 지금 올라갈게.”
통화를 마친 최치곤은 김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입구 3층 1호랍니다, 형님.”
바로 올라갈 줄 알았다. 그런데 김진용은 삐뚜름하게 고개를 틀었다.
“저기 3층에서 부모 때려가며 돈 뺏는다는 새끼, 그거 너희가 데려온 거지?”
시선을 떨군 문상표와 조성만은 답이 없었다.
“야, 문상표? 너 이광준 사장님하고 있었잖아? 그럼 이것도 이광준 사장님이 하는 일이냐?”
계속되는 질문에도 문상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은 곧 답과 같았다.
대강 내용을 알 것 같다는 투로 김진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야, 여기 두 새끼 차에 실어.”
김진용의 지시에 놀란 듯 문상표와 조성만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워낙 숫자가 차이 나는 데다, 반항해봐야 얻어맞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덩치들을 따라 밖으로 움직였다.
“치곤이 너는 올라가서 그 새끼 데리고 나와. 다른 말 할 거 없이 문상표가 부른다고 하면 바로 나올 거다. 혹시 모르니까 애들 서넛 데려가.”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고개 숙인 최치곤이 빌라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