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17권 - 3화
제2장. 깡패 뭐 있습니까?
신강남파 식구 중에서 HK맨션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이종환이었다.
“염병들 떤다.”
우습게도 맨션으로 통하는 모든 길에 ‘공사중’이라는 표식을 세운 인부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조수석에 탄 덩치가 창문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줄줄이 멈춰선 검은 승용차, 안에 탄 덩치들을 본 인부들이 알아서 길을 열어주었다.
함정인가 싶어서 운전하는 덩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들어가.”
픽 웃은 이종환의 지시에 따라 덩치가 차를 몰았다.
5분쯤 달린 뒤였다.
따로 알려줄 필요 없이 7층짜리 건물에 ‘HK맨션’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길게 붙어 있었고, 덩치들이 새카맣게 몰려서 앞을 막고 있었다.
덩치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타고 온 승용차와 승합차가 성벽처럼 맨션 앞을 막고 있어서 이종환을 태운 승용차는 도로 한가운데 멈췄다.
줄줄이 따라온 승용차와 승합차가 멈추며 170명 정도 되는 덩치들이 이종환의 뒤로 줄줄이 늘어섰다.
“무슨 개떼들도 아니고.”
건물 안에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입구를 막고 서 있는 놈들만 대략 400명은 돼 보였다. 그런데도 비릿하게 웃은 이종환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곧 성태 형님 오신다. 다들 연장 챙겨.”
“예, 형님.”
맨션에서 50미터쯤 떨어진 장소였다.
이종환의 뒤로 늘어선 덩치들이 쇠파이프, 배트들을 들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 직후였다.
눈부신 부산의 햇살과 비릿한 바닷바람을 뚫고 또다시 승용차와 승합차가 줄줄이 들어왔다. 이쪽 도로에 다 세우기 어려워서 중간부터는 옆길로 돌아 이종환이 보기에 왼편 도로까지 가득 채웠다.
가장 앞의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박배근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일찍 왔다?”
“서울에서 바로 와서 그렇습니다.”
이종환과 뒤편의 대림동, 강서구, 안산 식구들을 둘러본 박배근이 건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산은 애새끼들을 잘 처먹이나? 돼지들이 많네?”
입구를 막아선 부산 덩치들을 향해 박배근이 이죽거릴 때였다. 또다시 한 무리의 승용차가 맨션을 향해 몰려들었다.
“거참. 뭐라고 해도 강남 놈들 세련된 건 따라가기 어려워. 저 바짓단 짧게 한 것도 우리가 하면 북한놈 되는데 저놈들은 저런 거 정말 잘 소화하거든. 고마대 짧게 해서 옷 입은 것 좀 봐라.”
부산 덩치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투로 박배근이 던지는 엉뚱한 농담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듯이 정영권이 다가왔다.
“늦었습니다, 형님.”
가장 늦게 달려온 정영권이 박배근과 이종환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 뒤에 그는 맨션을 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돼지들 많지?”
“숫자도 엄청납니다.”
“경상도까지 박박 긁어모았다니까 저 정도는 되는 게 맞지.”
부담스러워하는 정영권에게 박배근이 넉넉한 대꾸를 내놓을 때였다.
다시 십여 대의 승용차가 줄줄이 들어섰다.
“성태 형님이십니다, 형님. 뒤편은 노익이 형님 같습니다.”
고개를 높게 들었던 정영권이 빠르게 말을 내놓아서 박배근과 이종환이 재킷을 수습했다.
오백 명이 넘는 강남, 대림동, 강서구, 안산, 그리고 광주 식구들이 가장 앞에 들어서는 승용차를 향해 몸을 돌리고 옷을 매만졌다.
승용차가 멈춘 다음이었다.
다가간 박배근과 이종환이 움직여 강성태의 뒷문을 열었고, 정영권이 박노익이 탄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강성태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박배근과 이종환이 먼저 고개를 숙였고, 불길이 번지듯 주변에 있는 덩치들이 순서대로 상체를 깊게 숙였다.
몸을 세운 박배근과 이종환, 뒤편 차에서 다가온 박노익과 정영권, 그리고 신강남파 덩치들이 강성태와 손에 들린 쿠크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강성태의 곁으로 다가온 이병렬이 맨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개구쟁이처럼 새카맣게 서 있는 부산 덩치들을 보며 웃었다.
HK맨션 7층의 특실이었다.
원래는 바다를 향한 반대편 방을 훨씬 선호했었는데 오늘 조강치는 뒤쪽이 보이는 특실을 택했다.
거실에 선 조강치는 넓게 펼쳐진 창을 통해 차에서 내리는 강성태를 지켜보았다.
보스라는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도 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는 강성태에게서는 보스만이 가질 수 있는 카리스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저런 놈이 내 새끼였으면….’
욕심은 난다.
거기까지였다.
뭐라고 해도 저 새끼는 오늘 부산에서 뒈져야 한다.
조강치는 확인처럼 장세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 있냐?”
“강성태가 받아준다고만 하면 저기 중간에서 맞다이로 붙어도 됩니다, 형님.”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장세조가 발끈하는 대꾸를 내놓았다.
“병신 새끼. 쿠크리를 쓴다는 말은 듣기는 했는데 정말 개 폼 오지게 잡네.”
“저 칼 말이냐?”
“예, 형님. 네팔 애들이 사용하는 칼인데 저걸 좀 휘두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봐야 서울의 순둥순둥한 애들한테나 먹히지, 거친 바닷바람 속에서 견뎌온 우리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짓입니다, 형님.”
서창호의 당찬 대꾸를 들은 조강치가 강성태와 좌우를 살폈다.
“왼편은 이병렬이고, 오른쪽에 저 새끼는 뭐지? 저놈이 노익이 사무실에서 광주 상열이 두들겼다는 놈인가?”
“씨발 새끼!”
조강치의 말끝에서 욕을 뱉었던 서창호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부산을 맡겨주겠다는 말 이후로 서창호는 조강치를 처음 모실 때만큼이나 공손했다.
“저 동남아시아 놈 손목과 발목을 모두 끊어 버릴랍니다, 형님. 우리말 배운 것도 있을 테니까 고향에 돌아가서 우리나라 관광객들 상대로 구걸하면 딱 되겠습니다, 형님.”
서창호의 다부진 대꾸를 들은 조강치가 통쾌하다는 투로 웃었다.
“아래 애들은?”
“1층부터 100명씩 세웠고, 형님. 6층은 특별히 세조와 제 동생들로 채워놓았습니다, 형님.”
“달려온 게 있으니까 어설프게 붙는 척하다가 도망칠 수 있다. 그때 놓치지 않게 준비 철저히 해.”
“그럴 거 같아서 공사 팻말 바깥으로 애들을 깔아뒀습니다. 아무튼, 강성태는 죽어도 부산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형님.”
“죽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니? 그 표현 참 마음에 든다.”
“그렇습니까, 형님?”
조강치와 서창호가 넉넉한 대화를 나눈 직후였다. 승용차와 승합차 여러 대가 들어오더니 말라붙은 핏자국이 확연한 덩치들이 우르르 내렸다.
“저 새끼들은 어디에서 저렇게 깨지고 온 거야? 밖에 애들이 먼저 손 쓴 거 아니지?”
“그랬으면 연락이 있었을 겁니다, 형님.”
궁금한 얼굴로 눈가를 좁혔던 장세조가 창을 향해 상체를 바싹 기울였다.
“혹시 형님. 강성태 저 새끼가 쪽수 모자란 걸 채우려고 새벽에 여기 왔었던 놈들을 다시 부른 거 아닌가 싶습니다, 형님?”
고개를 기울였던 조강치가 장세조의 말이 맞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효, 저런 불쌍한 새끼. 꼴을 보니까 오래가지 않겠다. 세조 너는 아예 지금 준비해.”
아무리 봐도 장세조의 판단이 옳은 느낌이어서 조강치는 가슴 한구석에 품었던 일말의 불안감을 모두 털어냈다.
센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새벽에 얻어맞은 놈들까지 불러댈 줄은 몰랐다.
‘그럼 그렇지.’
지금까지는 조태완과 박노익, 이병렬을 이용해 눈속임으로 버텼을지 모르지만, 결국, 강성태도 제 목숨은 중요하게 챙기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자 본색을 드러내는 게 틀림없었다.
“에라, 이 불쌍한 새끼야.”
피투성이 덩치와 마주한 강성태를 향해 조강치가 나직하게 욕을 뱉었다.
강성태는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조성호와 함께 온 덩치 이십여 명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광주 충일이 동생 조성호입니다, 형님.”
곁에 섰던 박배근이 나직하게 인사한 조성호를 알려주었다.
현관 상황을 듣느라 통화는 했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강성태는 무슨 일이냐는 투로 조성호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조성호입니다, 형님.”
“의료진을 지키고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버스랑 구급차는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형님.”
서울로 출발했다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조성호의 대꾸를 들은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최치곤과 유충일의 상태에 관해 연락하지 않고 서울로 출발했다면 결과가 좋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신강남파 식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이라 강성태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감정을 억지로 눌렀다.
“그래서? 너는 여기 왜 왔어?”
“충일이 형님과 치곤이 동생을 너무 분하게 잃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형님. 저와 여기 동생들이 형님 모시고 올라가게 해주십시오, 형님.”
입술을 굳게 다문 조성호가 절도 있게 고개를 떨구었다. 그 직후였다. 그의 볼에 말라붙었던 핏물이 눈물에 섞였는지 하얀 콘크리트 도로에 검붉은 피눈물이 떨어졌다.
신강남파 덩치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이었다.
조성호의 간절한 바람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칠게 달려온 바닷바람이 고개 숙인 조성호의 뒷머리를 다독일 때였다.
“성태 형님.”
쇠파이프를 든 덩치 하나가 조성호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강성태를 불렀다.
“야, 이 새끼야! 위아래 없이 어딜 함부로 나서?”
눈을 부라렸던 박배근이 강성태가 든 손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있어?”
“함부로 나서서 죄송합니다, 형님. 광주 쿨박스 고룡동입니다, 형님. 여기 성호에게 한마디 하고 자퍼서 나섰습니다, 형님.”
조성호를 돌아보았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실례허것습니다, 형님.”
허락을 받은 고룡동이 곧바로 조성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이 씨벌 자식아. 광주가 신강남파로 뭉쳤다는 거 아직 모르냐? 그라고, 충일이가 어떤 놈이냐? 광주 조직에서는 그나마 자랑거리 아니었냐?”
쇳소리 가득한 고룡동의 음성이 조성호를 향해 거칠게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 광주는 시방 여기 성태 형님 아래로 뭉쳐부렀어. 그란데 광주 가오가 있지, 피투성이가 된 네가 나서야 쓰것냐? 충일이 한은 우리가 알아서 풀랑게, 너는 뒤에서 지켜봐.”
거침없이 조성호를 꾸짖은 고룡동이 강성태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허리까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충일이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저랑 제 동생들을 가장 앞에 세워주십시오, 형님. 무조건 조강치 앞까지 길 뚫어서 그 새끼 모가지 형님 앞에 내놓겠습니다, 형님.”
가식이라고는 한 점도 볼 수 없는 고룡동의 청이었다.
맨션을 막고 있는 4백 명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미치겠네.”
이병렬이 기가 막힌 탄식을 토해냈는데 그 옆에서 선 박노익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체를 세운 고룡동이 강성태의 허락을 기다릴 때였다.
“이종환입니다, 형님.”
이종환이 강성태 앞으로 나섰다.
“광룡 상대할 때도 저는 동생들과 제대로 형님 모시지 못했습니다, 형님. 앞은 제가 우리 대림동 식구들과 뚫겠습니다, 형님.”
“야, 인마. 너는 또 왜 이래?”
이병렬이 이종환을 향해 나직하게 으르렁거린 직후였다.
눈알을 굴리던 정영권이 이종환 곁으로 나섰다.
“형님. 앞마이는 저와 강남 동생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아,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안 들어가?”
이종환까지는 진심이었다.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정영권이 나선 데는 이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후.”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고는 맨션 건물을 돌아보았다.
앞을 막고 서 있는 놈들만 해도 확실히 4백 명은 돼 보였다. 그렇게 입구를 빽빽하게 막아선 놈들이 강성태와 신강남파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는 투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구에 4백 명이면 안에는 더 많은 숫자가 있다고 봐야지. 그렇게 따지면 대략 천 명이다.”
현실을 깨달은 모양으로 박노익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성호.”
“예, 형님.”
붉게 물든 눈으로 답한 조성호가 핏물을 삼키듯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부 구조를 아는 사람이 필요해. 5층까지 올라갔던 식구 포함해서 다섯 명을 추려.”
“감사합니다-아! 형니-임!”
조성호가 얼마나 크게 인사했는지 맨션 앞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종환. 20명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강성태는 곧바로 시선을 고룡동에게 돌렸다.
“고룡동.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모가지 콱 내놔부렀습니다, 형님.”
“20명만 추려.”
“감사합니다, 형님.”
강성태가 뜻을 받아준 게 고마운 건지, 아니면 유충일의 한을 풀 수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감정이 올라온 얼굴로 답한 고룡동이 바쁘게 안쪽으로 움직였다.
“정영권. 너도 진짜 들어갈 거야?”
“예? 형님?”
그럼 그렇지.
강성태가 옅게 웃는 순간이었다.
“기회를 주십시오, 형님.”
이를 악물어가며 정영권이 답을 내놓았다.
각오는 좋았다. 하지만 정영권은 전에 이광준과 김종수를 두들길 때, 룸의 입구를 지키는 싸움, 꼭 그 정도를 소화할 수준이었다. 그런 정영권을 이런 싸움에 던져 넣으면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네가 여기를 맡아. 무슨 일이 있어도 노익이 형님을 지켜. 만약 노익이 형님이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너는 손목을 내놔야 해. 알았어?”
“예, 형님.”
이병렬이 묘한 미소로 웃으며 고개 숙이는 정영권을 보고 있었다.
“박배근. 내가 길을 열면 조덕진과 함께 입구 막히지 않게 지켜.”
“예, 형님.”
지시를 마친 강성태는 먼저 키란을 향해 눈짓을 던졌다. 그 직후였다.
“형님?”
아르윈이 갑갑한 얼굴로 강성태를 불렀다.
“마카오에서 할 일이 있잖아. 그때를 생각해야지.”
강성태는 반걸음 나선 아르윈을 넉넉하게 다독였다.
키란이 쿠크리를 왼팔에 얹는 순간이었다.
강성태 역시 쿠크리를 감쌌던 천을 풀었고, 이어 왼팔에 칼집을 걸고 천천히 감았다.
“천 명이라며? 어떻게 하려고 이래?”
“앞만 열면 됩니다. 입구에 있는 놈들하고는 숫자가 얼추 비슷하니까 그 길만 열면 나머지는 계단과 복도에서 마주치기 때문에 머릿수가 많다고 특별히 유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숫자가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냐?”
왼팔에 올린 쿠크리의 매듭을 지은 강성태는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부산과 경상도를 먹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일본에서 들어오는 마약과 검은돈도 막을 수 있습니다. 목표가 확실한데 깡패 뭐 있습니까? 무조건 뚫고 가야죠.”
강성태의 다부진 대꾸가 예상 밖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박노익이 멍한 얼굴로 강성태를 보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인사를 받고 나서야 박노익은 슬픈 느낌의 웃음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는 버릇이 된 것처럼 강성태의 팔을 다독여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마치 출정을 신고하는 지휘관들처럼 이병렬, 이종환, 고룡동, 조성호가 순서대로 박노익에게 인사하고는 강성태의 뒤에 늘어섰다.
“일직선으로 올라간다. 길은 내가 열 테니까 절대 대열에서 떨어지지 마. 병렬아. 키란과 함께 뒤를 맡아.”
이병렬이 다부진 고갯짓으로 답을 한 다음이었다.
“가자.”
독한 눈빛으로 말한 강성태가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갈 숫자가 강성태의 뒤를 바싹 따랐고, 현관을 지켜야 하는 박배근과 조덕진이 4백 명을 끌고 함께 걸었다.
더럽게 화창한 날이었다.
‘치곤아. 돌아가면 웃으며 맞아줄 거라고 믿는다. 부모님 한 풀고 올라갈게.’
괴수가 사는 성처럼 우뚝 선 맨션이 신강남파 식구들을 굽어보았고,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모를 바람이 바다의 비릿한 향을 품고서 강성태를 달래보겠다는 듯 부드럽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