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2부 18권 - 18화
제7장. 경찰에 연락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혹시 차웅진일까, 스마트폰 액정을 확인했던 조태완이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강성태입니다.
아침을 함께 먹었다.
차웅진이 등장하면서 조태완에게 미행까지 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점심나절에 다시 강성태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조태완은 긴장한 상태에서 질문을 던졌다.
- 저녁 식사는 예약하셨습니까?
“어? 아, 그거. 조금 전에.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 저녁 드시고 시간이 되실까 해서요.
“시간? 보스가 필요하다는데 저녁을 취소하고라도 만들어야지. 급한 일이야?”
다급한 심정의 조태완과 달리 강성태는 넉넉했다.
- 부산에 다녀올 생각인데 괜찮으시면 형님과 노익이 형님 모시고 갈까 합니다.
“뭐?”
조금, 아니 솔직히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조태완은 잠시 눈만 끔벅였다.
“병렬이나 하다못해 영권이, 아래쪽 배근이까지 보스가 편한 놈들 천지인데 왜 나랑 노익이를 데려가?”
- 아무리 돌아봐도 형님과 노익이 형님만큼 신강남파의 무게를 보여줄 분이 안 계셔서 그렇습니다.
“신강남파의 무게라니?”
- 저야 보스라고 해도 불쑥 나온 사람이고, 병렬이는 아직 무게를 지니지 못했고요. 신강남파가 부산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상징적으로 보여줄 분을 꼽으라면 누굴까 생각해 봤더니 형님과 노익이 형님, 두 분이었습니다.
뭐 이렇게 귀에 꿀을 쏟아붓듯이 달콤한 말이 있을까?
듣기 좋게 말했으리라고 여기면서도 조태완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 어쩌지 못했다.
- 바쁘시면 노익이 형님만 모시고 갈 텐데, 그래도 형님께서 꼭 함께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참. 나한테 미행이 붙었다는 건 알지?”
- 그래서 더 요란스럽게 내려갈 생각입니다. 차웅진이 보기에 신강남파 머리들이 미쳤나 싶을 정도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젊은 보스의 치기인 건 알았다. 그러나 강남 삼대장 중 한 명이요, 태완이파 보스로 살았던 조태완의 심장이 느닷없이 뜨거운 피를 울컥울컥 뿜어내며 몸을 후끈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자. 부산.”
- 감사합니다. 그럼 저녁 마치실 시간에 호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럴 게 뭐 있어? 그냥 지금 출발해.”
-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어쩐지 저녁을 위해 시간을 비워주는 거 같기는 했지만, 일정이 있다는 강성태의 말을 함부로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럼 호텔에서 바로 가는 거지.”
- 사모님은 식구들 따로 준비해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뭔가 엄청난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 조태완은 단단한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통화를 마친 다음이었다.
이왕 일어섰던 참이라 조태완은 안쪽의 오세아에게 움직였다.
“뭐해?”
“네? 이거 새로 산 책이라 읽고 있었어요.”
“저녁 먹으러 가자고 했었지? 스테이크? 6시에 예약했으니까 시간에 맞춰 준비해.”
스치듯 말했던 소망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예약까지 했다고?
강성태의 제안도 그렇고, 작은 일에 감동하는 오세아의 표정이 좋아서, 겸사겸사 조태완은 어쩌다가 보이는 미소를 그렸다.
“저녁 먹고 나는 보스와 부산에 가야 하니까 그렇게 알아. 정장도 좀 챙겨놓고.”
“부산을요?”
“그러게 말이다. 내가 꼭 가줘야 한다고 매달리니까 뿌리치질 못하겠더라. 우리 보스 알잖냐? 젊은 보스가 오죽 급하면 그러겠나 싶어서 가기로 했다.”
번거롭다는 투로 말을 던지고는 있으나 다시금 심장이 뜨거운 피를 뿜어낸 탓에 조태완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위험한 일 아니에요?”
“나랑 보스가 함께 움직이는데 대한민국에서 위험할 게 뭐가 있어?”
“준비할게요. 타이는 안 하실 거죠? 바쁘시면 저녁 다음에 먹어도 돼요.”
“저녁 먹고 출발한다니까.”
“네. 그렇게 알고 준비할게요.”
오세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 조태완은 거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히죽.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
정세원은 상체를 깊게 숙인 은선곤을 향해 손을 뻗어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참 대단한 일을 하고 다니는구나.”
감탄인지 비아냥인지 알기 어려운 정세원의 말이어서 은선곤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아렸다.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과 인터뷰까지 했으니 내부적으로 공사를 따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고. 비서실을 통해 준 자료는 봤지?”
“예, 회장님.”
“네가 운이 되는 건지, 아니면 죽을 길로 들어서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만, 보리스 파리오로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차웅진까지 길을 막고 나섰다.”
이번에 내놓은 정세원의 말투는 확실히 한심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홍콩 건이 마지막이다. 그룹에 불똥이 튀게 하지 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을 내놓는 은선곤을 빤히 보던 정세원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원 선발은?”
“종로 사옥에서 1차 명단을 추렸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보고 올릴 거라고 들었습니다.”
“멕시코 발령까지 내가 왈가왈부할 일 없을 테니까 건설 쪽에서 올라오는 대로 처리해주마. 이제 그만 나가 봐.”
자리에서 일어선 은선곤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정세원은 냉정했다.
혹여나 홍콩에서의 일이 문제 되지 않을까, 이리저리 짚고 난 뒤에 이제야 은선곤을 불렀고, 고작 3분쯤 차 한잔 없이 얼굴을 확인한 뒤에 내보냈다.
회장실을 나서기 직전에 몸을 돌려 인사한 은선곤이 문을 나선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주머니 속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나직하게 몸을 떨었다.
기다리던 강성태의 전화였다.
“은선곤입니다, 회장님.”
비서들이 서 있는 앞을 지난 은선곤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 잠깐 의논할 게 있는데 시간 어때? 오후에.
“지금도 괜찮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 뭘 그렇게 딱딱하게 그래?
가볍게 대꾸한 강성태는 잠시 시간을 끌었다. 아마도 적당한 장소를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 지금 괜찮으면 방지병원에 와서 전화해. 앞쪽에 커피숍이 있거든.
“예. 방지병원 앞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깔끔한 답변을 끝으로 은선곤은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그 직후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차웅진?
홍콩에서 강성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면 은선곤 역시 정세원처럼 불안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다.
은선곤은 분명하게 보았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삼합회의 앞에서 이탈리아 남자 바르지오 만시니를 구해 내려오는 강성태와 키란을,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기울이며 승용차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쳐나갈 남자였다. 강성태는.
위험에 빠진 동료를 절대 외면하지 않는 의리, 홍콩에서 삼합회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강단과 실력, 차웅진이 아무리 설친다고 해도 은선곤은 강성태를 믿고 따를 각오였다.
“누가 죽는지 보자.”
마치 본인이 차웅진과 맞서기라도 한다는 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은선곤은 나직한 혼잣말을 뱉었다.
**
조태완, 은선곤과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이어 박노익과도 약속을 잡았고, 다음으로 정영권, 정소국, 이종환, 유섭우, 박배근의 번호를 차례로 눌렀다.
이렇게 거창하게 할 필요가 있어?
그것도 미행까지 붙었다는 시기에?
강성태의 행동이 의아한 눈치였으나 이병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강 끝났다.
“은선곤도 데려가려고?”
“아니. 그보다는 의논할 게 있어서. 우리한테 체계라는 게 필요한데 그런 쪽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몇 가지 도움을 받으려고.”
“하긴. 배운 놈이 필요하기는 하지. 이쪽은 죄 돌대가리밖에 없으니까.”
마치 자신은 예외라는 투로 이병렬이 김진용과 조봉진을 돌아보았다.
“이틀이다. 그 안에 부산 정리하고 차웅진 상대할 계획 만들어 올 테니까 갑갑하겠지만, 병원에 있어.”
“내가 뭘?”
“병원에 있으라고. 은선곤과 새롭게 조직 구상안을 만들고 나면 마카오와 멕시코로 나간다. 그곳에 신도시를 만들 텐데 그거 우리가 접수할 거니까.”
멕시코의 신도시라는 표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병렬은 뭔가로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멕시코 노동자, 우리 노동자, 필리핀, 중국, 이렇게만 벌써 네 나라 사람들이 모인다. 거기에 조직이 다 딸려오지. 일본의 야쿠자와 마피아도 숟가락 얹으려고 할 테고. 그곳은 총도 흔해. 각오 단단히 하고 밀고 가자.”
“멕시코에 신도시? 진짜 거길 우리가 가?”
“그럼 그걸 다른 조직에 넘겨?”
이병렬이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보다 극적인 반응이었다.
“우리는 영어도 못 하는데?”
“우리가 만드는 신도시야. 답답한 놈들이 한국말을 해야지. 필리핀 가디언스파는 아르윈을 통해 우리말을 할 테니까 말 안 통하는 놈들은 모두 밀어내면 되지.”
“흐하하하하!”
멍했던 이병렬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급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업장, 식당, 하다못해 진용이가 맡은 엔터 쪽 출연자까지 모두 움직일 생각이니까 몸 만들어. 그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마약과 고리대금을 하지 못하게 만들 거니까 각오도 단단하게 하고.”
모처럼 흡족한 얼굴로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비행기는 졸라 자주 타겠지?”
그 직후에 이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내놓았다.
**
부천에서 작은 조직을 꾸려가던 이광선이 급하게 스마트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 이신길입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야! 너 지금 부산이지?”
- 예, 형님.
“신강남파가 비상 걸었다. 괜히 그쪽에 찍혀서 좋을 거 없으니까 일단 올라와.”
- 예? 형님?
“이런 씨발 새끼가!”
이광선은 대뜸 짜증을 토해냈다.
“신강남파로 흡수된 교창이 형님이 작업당했다는 건 들었을 거 아냐?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규모가 지난번 부산 정벌 때랑 같다고. 괜히 네가 근처에 얼쩡거리다가 찍히면 우리 같은 조직은 흔적도 안 남아, 이 새끼야!”
- 그렇습니까, 형님?
이제야 상황을 알아들었는지 부산에 있던 이신길이 놀란 질문을 내놓았다.
“놀러 간 거든, 친척이나 친구를 찾아갔건, 지금 생활하는 놈들은 모두 부산에서 빠져나오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얼른 나와.”
-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답을 듣고 나서야 이광선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신강남파가 독이 잔뜩 올라있으니까 괜히 주둥이 나불거리지 말고 조용하게 나와. 특히, 서달수나 김정훈, 두 사람 이름은 입에도 올리지 마. 알았냐?”
- 조심하겠습니다, 형님.
답을 들은 이광선이 종료버튼을 눌렀다.
깡패들끼리 모이다 보면 온갖 화제가 올라오는데 최근 가장 자주 입에 담는 건 역시나 신강남파의 일화였다. 특히 서달수를 씹어댔던 천안이 어떻게 됐는지 생활 좀 한다는 덩치들은 모두 알았다.
솔직히 말하자.
부천에서 조그만 조직을 운영하며 중고차 관련 일을 봐주는 이광선은 강성태는 관두고, 조태완이나 박노익, 이병렬조차 만나기 어렵다.
그건 또 신강남파 강성태가 “부천 이광선?”, 이렇게 눈살 한번 찌푸리면 이병렬부터 김진용, 정영권, 정소국, 이종환, 유섭우, 그리고 정체를 알기 어렵다는 동남아시아 해결사까지 주르륵 만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조심해야지.’
이광선은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성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여보세요?”
- 형님.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뭔데 또?”
- 차를 사러 온 아줌마 딸이 순경이라는데 많이 시끄럽습니다.
“에이, 씨.”
순경이라는 말에 이광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부천 중고자동차 매매단지 근처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억울해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달려가서 살짝 협박도 하고, 중재도 하며 먹고사는 이광선은 어쩐지 이번 일이 내키지 않았다.
“야! 딸이 경찰이라는데 건드려서 좋을 게 뭐가 있어? 이번은 적당하게 해서 보내.”
- 그게 아들하고 함께 왔는데 벌써 애들이 욕을 한 데다, 항의하는 걸 밀쳐서 일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영업 방해된다고 상사 사장님이 형님을 빨리 부르라는데요.
“쯧!”
이광선은 짧게 혀를 찼다.
매매상사의 사장은 생활했다가 은퇴한 놈이었다.
허위 매물로 사람을 유혹하고, 오는 손님을 종일 끌고 다닌 뒤에 엉뚱한 중고차를 비싼 값에 넘기는 게 주된 일이었다.
침수차나 사고 차를 거의 새 차 가격에 넘기는 건 일상이었고, 할부해준다며 이율을 높게 정해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겼으며, 끝까지 그냥 가겠다는 손님에게서는 종일 함께 다녔다는 명분으로 일당을 뜯었다.
다들 왜 속나 싶겠지만, 막상 중고자동차 매매단지에서 이광선 같은 조폭들이 둘러싸면 어어, 하다가 계약하거나 일당 30만 원을 뜯기는 게 이곳에서는 흔한 일상이었다.
“알았다. 간다. 가는데 어디 경찰이라냐?”
- 망원동에서 근무하는 순경이라는데 엄마가 중고차를 사주려고 아들과 함께 왔답니다. 엄마가 진짜 한 성격합니다.
서두라는 듯 급한 상대방의 말투에 이광선은 몸을 일으켰다.
- 민정이 불러.
- 민정이가 뭐 할 수 있다고 불러? 경찰에 연락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몸을 일으키는 이광선의 스마트폰으로 억울해하는 나이 든 여자와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의 음성이 연달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