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2부 18권 - 19화
이광선이 도착할 때 매매상사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5층짜리 거대한 건물은 대부분 주차장이었고, 계단 쪽으로 사무실이 들어선 구조였다.
“얼마나 벌겠다고 사람을 이렇게 대해?”
“아, 거. 아줌마 진짜. 사람을 데리고 종일 뺑뺑이를 돌렸으면 일당 30은 줘야지! 그냥 가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보자고 했니?”
“싫으면 처음부터 싫다고 했어야지!”
세 놈이 딱 지키고 선 안쪽에서 나이 든 아주머니는 절대 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골치 아픈데?
심지어 동생들 둘과 들어선 이광선을 보고도 아주머니의 눈빛과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형님?”
매매상사의 직원들이 마치 조폭인 양 이광선에게 고개 숙였다. 그런 모습으로 손님들의 기를 죽이는 건 상식에 가까운 일이었다.
“뭔데 그러냐?”
“아 글쎄. 이 아주머니가 차를 산다고 종일 뺑뺑이를 돌린 뒤에 그냥 가겠다지 않습니까?”
이광선은 갑갑하다는 얼굴로 구석에 몰려 있는 아주머니와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를 향해 움직였다.
“보쇼, 아짐니.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지 않겠소? 따님이 경찰이라고 하고, 나도 아짐니 같은 누님이 있어서 그러니까 적당히 애들 수고비만 주시고 가쇼.”
앞에서 이미 채찍을 휘두른 꼴이라서 이광선은 마치 당근을 내놓는다는 투로 조건을 내밀었다.
“수고비는 내가 받아야지. 빤히 없는 차를 광고해놓고, 싫다는 사람을 보고 안 사면 그만이니까 일단 가보자며 끌고 다니다가 이제는 뭐? 일당?”
아주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광선은 그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진짜 이럴 거야?”
확실히 아주머니보다는 대가 약해 보였는데 젊은 남자 역시 이광선의 바람대로 돈을 내놓을 거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광선과 두 명의 동생들을 보면서도 그다지 질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갈 거야! 비켜!”
앞으로 나서려는 아주머니를 보며 이광선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거, 씨발. 사람이 좋게 말하는데 진짜 다치고 싶소? 어디? 아들 상하는 거 한번 봐야 그냥 일당 주고 끝낼 걸, 할 거야?”
“내가 왜 일당을 주냐고?”
“사람 뺑뺑이 돌렸잖아! 아니면 여기서 권하는 차를 사든가! 여기 차는 차가 아냐? 적당한 거 골라!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첫차라 중고차로 사는 거야! 새 차랑 가격이 똑같은데 내가 왜 여기에서 차를 사?”
아주머니가 당차게 대꾸한 순간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 씨발?”
옆에서 지켜보던 이광선의 동생 한 명이 벌컥 욕을 뱉었다.
“아저씨, 지금 뭐라고 했어?”
“어이고, 씨발. 치겠다? 그래, 쳐라! 그렇게라도 일당은 받아야겠으니까 치라고, 이 새끼야!”
막아서는 아들을 향해 이광선의 동생이 으르렁거릴 때였다.
정복 경찰 두 명이 매매상사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배짱이 있는 손님들은 그냥 보내주는 게 좋았다.
이광선이 어쩌지 못하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나를 밀친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우리 어머니한테 욕하는 건 못 참겠다. 당신들 진짜 두고 보자.”
경찰을 믿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아들이라는 김민재가 다부지게 말을 뱉었다.
“아, 자꾸 이런 식으로 문제 일으키면 우리도 곤란하다니까 이러시네.”
김민재의 반응을 본 정복 경찰이 좋게 해결하라는 느낌으로 중재에 나섰다.
“피해 보신 거 있어요?”
“밀쳐서 넘어졌어요. 조금 전에 욕했구요.”
“뭐, 크게 다치신 건 없어 보이는데 이 정도로는 모욕죄 정도 될 거 같네요. 굳이 고소해봐야 오며 가며 번거롭기만 하니까 이쯤에서 적당히 끝내시죠. 가시는 길은 우리가 봐 드릴게요.”
이런 류의 신고에 익숙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매상사와 척지고 싶지도 않은 눈치였고.
김민정이 지구대의 경찰이라서 그런지 장숙경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로 고개를 돌렸다.
“가자, 그만.”
“알았어요.”
답을 한 김민재는 이광선을 돌아보았다.
“아저씨, 이름이 어떻게 돼요?”
“내 이름은 뭐하게?”
“우리 어머니에게 욕한 거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나도 이쯤에서 넘어갈게요.”
정복 경찰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아, 씨발, 진짜.”
이광선은 오늘 일진이 더럽다는 생각에 혼잣말처럼 욕을 뱉었다.
“이름도 못 말해요? 깡패 아니었어요?”
“하, 씨발. 이광선이다, 왜? 조용하게 찾아올래?”
“사과 못 한다, 이거죠?”
“염병 떨고 있네. 너 정말 다치고 싶냐?”
김민재와 이광선이 거친 대화를 주고받은 직후였다.
“얘가 왜 이래, 진짜. 그만하고 가.”
장숙경이 나서서 말렸고,
“어머니 말씀 들으시죠. 정 억울하시면 고소해야지, 이런 식으로 풀면 괜히 쌍방 나옵니다.”
정복 경찰도 끼어들어 김민재를 다독였다.
**
강성태는 은선곤과 함께 병원 앞의 작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직 날이 춥지 않아서 안에 앉기보다는 바깥의 작은 테이블을 선택했는데 주인은 여전히 평범하게 생긴 아가씨였고,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은 남자 친구도 함께였다.
“커피 드십시오, 회장님.”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아서 나온 은선곤이 안을 돌아보았다. 침입자를 본 애완견처럼 불편한 기색의 남자가 못마땅했는데 적당하게 삭이는 느낌이었다.
“의논할 게 몇 가지 있는데.”
“예, 회장님.”
강성태는 먼저 신강남파가 지닌 클럽과 카지노, 그리고 기타 업소들에 관해 설명했다.
“조직도 그렇고 수입과 지출을 각자 알아서 관리하는데 정기적으로 내가 돌아보면서 살펴야 한다더라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관리될 방법이 있으면 싶은데?”
“회장님께서 업장을 돌아보실 때 함께 갈 수 있을까요?”
“그 정도야 상관없지. 안 그래도 오늘 부산에 다녀와서 한번 돌아볼 생각이니까 그때 함께 가면 되겠다.”
그 뒤로 은선곤이 조직이나 업장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내놓았고, 강성태가 아는 바대로 답을 주었다.
“세금이 꽤 나올 수 있습니다, 회장님.”
“정직하게 운영해. 만약 세금 때문에 운영이 안 된다는 업장이 있다면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게 나아.”
강성태의 뜻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던 은선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웅진 회장이 날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머그잔을 들던 강성태는 시선만 들었다.
그룹이라는 곳, 그곳의 정보망, 꽤 무섭다.
“그룹 비서실에서 회장님께만 보고하는 동향에 포함된 소식이었습니다.”
은선곤의 답변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옅게 웃은 강성태는 들었던 잔을 움직여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비서실 판단은 어때?”
“비서실에서는 온갖 정보를 취합해 그룹에 영향을 끼칠 일과 아닌 일로 분류합니다. 그중에서 증권가에 찌라시로 풀리는 내용이 있고, 가끔은 방송사에 은밀하게 제보할 때도 있는데, 가장 먼저 계산하는 건 역시 그룹의 이익입니다.”
그렇구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용을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맞선 조직 중에서 삼합회가 가장 거대하고, 다음으로 부산 조강치였지. 둘 다 폭력 조직이라 달려가서 두들기면 해결됐는데 차웅진은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폭력 조직의 두목이 아니어서 차웅진을 상대할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바르지오에게 정보를 달라고 했는데 이틀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해서 기다리던 참이다. 오늘 밤에 부산에 가려는 것 중 하나는 차웅진에게 보라는 의미도 있고.”
강성태가 처음으로 솔직한 속내를 비친 뒤였다.
타이를 맨 정장 차림, 반듯한 자세로 이야기를 들었던 은선곤이 머그잔에 시선을 내리고 잠시 시간을 끌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니면 차웅진을 해결할 방법을 나름 떠올리던가.
당장 급한 일이 없어서 강성태는 다시 머그잔을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였다.
“회장님. 외람된 질문입니다. 혹시 회장님의 능력으로 차웅진 회장을 조용히 제거하는 게 가능하십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은선곤이 내놓았다.
솔직히 은선곤은 이쪽 세상의 사람이 아니어서 혹시나 해결방안을 생각한다면 폭력적이지 않으리란 기대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조용하게 제거, 다른 말로는 암살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넌지시 건넸다. 당황스럽지만, 나쁘지 않은 대화였다.
이런 식의 대화에서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어서 그렇다.
“경호원이 있을 테니까 어딘가로 유인하지 않는 한 조용하게 암살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제약도 있고. 홍콩에서 삼합회와 맞붙은 건 그쪽 역시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가능했지만, 차웅진은 사업가, 권력자의 탈을 쓰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아.”
강성태는 생각했던 내용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내 맞은편에 섰다고 해서 무조건 살해하는 것으로 끝낸다는 생각은 위험해. 그걸 잊지 마.”
“죄송합니다, 회장님. 우선 확인한 뒤에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있어서 여쭤봤습니다.”
한 점 불만 없는 깔끔한 사과였다.
“말씀하셨던 대로 차웅진 회장은 조직 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게다가 그는 과거 무소불위라고 할 정도로 정권과 유착되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줬으면 싶은데?”
“그를 부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합니다. 회장님께서 야쿠자를 감당하실 수 있다면, 차웅진 회장이 지닌 권력과 힘은 다른 곳에서 맞서게 할 생각입니다.”
강성태는 잠시 은선곤을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차웅진이 지닌 권력과 힘에 맞설 수 있는 데다, 은선곤이 저토록 자신 있게 말할 집단이라면, 짐작 가는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룹을 끌어들이려고?”
“생각만 해봤습니다.”
“아무리 그룹이 문어발식으로 경영권을 늘린다고 해도 카지노 사업과 리조트를 얻기 위해 차웅진과 맞설까? 차웅진이라는 적을 그룹에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면 은 실장의 입지만 깎아 먹을 거 같은데?”
“말씀을 명심해서 고민해보겠습니다.”
그 뒤로 조직과 관련한 대화를 조금 더 잇고 난 뒤에 은선곤이 몸을 일으켰다.
“마카오 회의에 관한 정보가 빠르게 그룹 비서실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혹시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 올리겠습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마친 은선곤이 몸을 돌렸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지금의 강성태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가 배운 지식과 풍부한 상식, 그리고 일을 풀어내는 방식이 주먹이 아니란 점에서 특히 강성태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기다리던 승용차에 타기 전에 몸을 돌린 은선곤이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평소 그가 보여주던 인사보다 훨씬 깊숙하게 숙인 모습에 강성태가 픽 웃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울었다.
차에 타는 은선곤에게 손을 들어준 강성태는 액정을 확인하고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통화 돼?
“괜찮아. 무슨 일인데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어?”
모처럼 걸려온 김민재의 전화여서 강성태는 장난기 섞인 음성으로 질문을 건넸다.
-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오늘 중고차 시장에 갔었거든.
“너 차 있잖아?”
- 그게 아니라 민정이가 밤늦게 오갈 때가 있어서 출퇴근에 사용하라고 엄마가 한 대 사주시려고 갔었어. 내가 보고 괜찮다면 바로 가져오려고.
그 뒤로 이어진 통화에서 김민재는 억울했던 일들을 설명하고 이모 장숙경과 당했던 수모를 털어놓았다.
- 부천 중고차 매매장 이광선이라고 하더라고. 두 시간 가까이 사무실에 붙잡고 있던 사람하고, 이광선, 실제로 욕한 사람, 셋이서 엄마에게 사과만 하게 해주라.
“민재야.”
강성태는 조용하게 김민재를 불렀다.
“억울한 건 알겠는데 쉽게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과하게 하면 이모가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고. 일단 알아보겠는데 크게 기대하지 말고, 우선 화부터 풀고 있어.”
- 미안하다. 이런 일로 전화해서.
“별소리를 다 한다. 하여간 알아보고 연락할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장숙경을 떠올렸다.
김민정을 위해 중고차를 사려고 했다면 또 얼마 되지 않는 생활비에서 자르고 아껴 다람쥐가 알밤 쌓듯 차곡차곡 돈을 모았을 게 분명했다.
선물을 하려던 참이어서 이 기회가 나쁘지 않았다.
강성태는 먼저 스마트폰을 들어 유섭우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유섭우입니다, 형님.
“강서구 중고차 시장 있잖아? 그쪽에 연결하면 부천 중고차 시장 연결될까?”
-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형님?
강성태는 조금 전에 있었던 통화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김민재와 문제가 있었던 이광선이라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
- 우선 알아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형님.
통화는 길지 않았다.
용건을 마친 강성태는 다시 장숙경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여보세요?
“장 여사. 통화 괜찮으셔?”
-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목소리 들은 지 오래돼서 했지요.”
- 너, 의사 선생하고 문제 있는 건 아니지?
뜬금없는 질문에 강성태는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깜박 잊고 있었다.
가족이란 느낌을.
그리고 아직 벌 받을 사람이 한 명 남았다는 사실도.
- 왜 대답을 못 해? 문제 있는 거야? 왜?
“어젯밤에 다미 씨랑 아버님, 이렇게 신월동 오거리 횟집에서 함께 술 마셨어요. 잘 지내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 잘해드려. 그런 분 없다. 그건 그렇고 진짜 무슨 일이야?
안도의 한숨처럼 말을 건넸던 장숙경이 끝에 질문을 달았다.
“이모. 이모는 진짜 나 아들처럼 키웠지? 그렇지?”
- 김치 필요해?
정말이지 뜬금없는 질문에 강성태는 모처럼 흐느끼듯 웃었다.
“아들인지 확인하고 싶었어.”
- 할 말 없으면 끊어.
얼핏 들으면 매몰차게 느껴지는 말을 끝으로 실제로 통화가 끝났다. 하여간 이런 면은 진짜 강성태보다 한 수 위가 아닐까 싶었다.
강성태가 액정을 내려다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유섭우의 이름을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손안에서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