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2부 19권 - 3화
제2장. 형님이 반칙하신 겁니다.
저녁 식사는 한 시간 반쯤 뒤에 끝났다.
“여기에서 부산으로 바로 가세요?”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이곳에 함께 왔던 식구들이 사모님을 댁까지 모셔갈 테니 안심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강성태는 조태완, 오세아와 함께 호텔 입구로 걸었다.
호텔 입구로 향하는 로비에서 오세아는 조태완의 왼팔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무슨 짓이냐며 뿌리쳤을 조태완이 오른팔을 들어 오세아의 손을 다독이고 있어서, 아이라는 신의 선물이 두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입구로 나오자 조태완이 애용하던 대형승용차가 왔고, 최치곤이 꾸렸던 숙소 덩치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강성태와 조태완을 향해 상체를 깊게 숙인 뒤였다.
“김석문이 누구야?”
강성태가 묻자 덩치 한 명이 긴장한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저녁 시간이었다.
호텔에 들어서는 사람들과 떠나는 이들로 입구가 혼잡했는데 강성태는 그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김석문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치곤이가 선발했다는 이유로 너희들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래서 내 옆에 두었었고, 태완이 형님의 안전을 맡겼었다. 지금부터 내일까지 사모님을 모셔야 하는데 믿어도 되겠어?”
“다시는 실수하는 일 없을 겁니다, 형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사모님을 지키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물끄러미 김석문의 눈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그런 뒤에 주변에 서 있는 덩치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모님을 지켜. 믿어도 되겠어?’
입으로 뱉지는 않았지만, 덩치들이 사명감에 불타는 얼굴로 볼을 씰룩였고, 시선을 받는 순서대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에 강성태는 김석문에게 다시 시선을 가져갔다.
“한 번 실수는 잊겠다. 그만큼 철저하게 모셔.”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반드시 사모님을 지키겠습니다.”
상체를 깊게 숙인 김석문에게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출발해.”
서열에 따라 주르륵 인사한 덩치들이 앞과 뒤에 있던 승용차와 승합차에 올랐고, 이어 오세아를 태운 승용차와 함께 출발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김석문이라는 저놈만큼은 믿어도 되겠네.”
잠자코 지켜보았던 조태완의 평가였다.
뒤를 돌아보는 강성태의 시선에 멀찍이 서 있는 진용도와 덩치들이 들어왔다.
“부산에 노익이도 간다고 하지 않았어? 영권이랑 소국이도 기다릴 텐데 이맘쯤 불러야지?”
“그전에 해결할 놈들이 있습니다.”
“뭐?”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시죠?”
해결할 놈들이 누군지 조태완은 아직 모른다.
그래, 이게 깡패지.
하지만 그는 모처럼 마음에 드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처럼 이죽대는 듯이 보이는 웃음과 함께 강성태를 따랐다.
입구에 있던 진용도와 덩치들이 열 걸음쯤 떨어져 걷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선 강성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쪽 소파에 두 놈, 레스토랑 맞은편에 다시 두 놈, 아르윈의 말대도 모두 네 놈이 눈에 들어왔다.
강성태의 시선을 알았을 텐데도 놈들은 태연했다.
그만큼 만만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한껏 까불어 봐.
강성태가 다시 시선을 로비 안쪽으로 돌렸을 때였다.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에서 나온 아르윈이 빠르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강성태에게 인사한 그는 조태완에게 연달아 상체를 숙였다.
느닷없이 아르윈이 튀어나왔으니 당황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런데도 조태완은 기대하는 표정으로 강성태와 아르윈을 번갈아 보았다.
“저와 함께 계단으로 움직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조금 급한 모양새가 나오면 더 좋습니다, 형님.”
“저놈들도 우리가 알아차렸다고 느꼈을 거 아냐?”
“저와 조직원들을 관광회사 영업직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형님. 게다가 저놈들은 형님께만 관심을 둘 뿐, 주변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조태완의 질문에 답한 아르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형님과 태완이 형님을 모시러 온 줄 알 겁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는데, 실제로 눈에 띄는 걸 그다지 염려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형님.”
“내가 보기에도 그렇던데 뭔가 믿는 놈들이 있는 거 아냐?”
“다른 놈들은 확실히 없는 거 같습니다. 그보다는 너희가 어떻게 할 건데?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혹시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이 함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형님.”
“흐음.”
아르윈의 설명을 들은 조태완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어딘가에 나를 따라서 경찰청 형사들이 와 있을 거다. 그건 알고 있냐?”
“계단에서 달아서 지하주차장에 있는 승합차에 태울 생각입니다. 두 분 모시고 지하로 내려가면 저놈들 말고 형사들은 계단으로 못 들어옵니다, 형님.”
이어진 조태완의 질문에 아르윈이 딱 부러지게 답을 주었다.
“CCTV는?”
“계단에는 2층과 5층, 다시 지하 1층과 3층에 있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과 아르윈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갑갑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거에 찍힐 거 아냐?”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조태완의 염려에 답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당연하게 바르지오 만시니의 번호를 찾았다.
- 여보세요?
“강남 호텔인데 계단에서 야쿠자 네 놈을 잡아서 지하주차장 승합차에 태울 거다. CCTV 좀 해결해 줘.”
- 5분만 여유를 줄 수 있나?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해서 길어야 2분.”
- 제발 다음부터는 최소 5분의 여유는 줘.
영어로 통화하는 강성태를 조태완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해결했다. 계단으로 가면 돼?”
“예, 형님. 그 전에 함께 와 있는 신월동 식구들에게 입구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라고 해주십시오.”
아르윈의 확신에 찬 답이었다.
강성태는 조태완을 돌아보았다.
“해보자.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조태완이 흔쾌히 받아들인 뒤였다.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진용도를 찾았다.
“태완이 형님과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까 입구에 차 대놓고 기다려.”
진용도에게 지시하는 순간에 강성태는 로비 안쪽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를 확인했다.
아르윈의 의견대로였다.
나, 여기 있다.
안다고 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빤히 강성태를 바라보는 놈의 시선과 태도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야쿠자라는 간판을 달고, 차웅진의 비호 아래서 설치다 보니 간이 퉁퉁 부은 모양인데, 멕시코 히트맨들과 원자춘이 어떻게 됐는지 알게 된다면 조금은 겸손해질 거다.
물론 이미 늦은 거 같다만.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숙인 진용도가 몸을 돌렸고,
“이쪽입니다, 형님.”
그 직후에 뭔가를 감춘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린 아르윈이 걸음을 옮겼다.
연기력이 저렇게 좋았나?
확실히 아르윈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었다.
입구 반대편으로 걸어간 아르윈이 벽을 이용해 만든 좁은 통로로 방향을 틀었다. 양쪽 벽으로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몸을 돌리는 강성태의 시선에 급하게 움직이는 네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지난 아르윈이 계단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고는 강성태와 조태완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강성태가 먼저 들어갔고, 이어서 조태완이 뒤따랐다. 그런데도 아르윈은 문을 붙잡으며 시간을 끌었다.
따라오는 네 놈이 확실하게 문을 확인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눈치였다.
강성태는 조태완과 함께 지하주차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섰다.
먼저 계단을 내려간 강성태는 다시 방향을 트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에서 들어와서는 보이지 않는 장소였다.
강성태와 조태완이 들어왔던 문을 향해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아르윈이 문을 닫고 들어와서 계단 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계단 위에 키란과 필리핀 조직원이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키란.”
그가 키란을 부르기 무섭게 이번에는 계단 아래에서도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들렸다.
“뭐야?”
아래를 보았던 조태완이 놀란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네 놈을 담는 데 사용할 자루, 짧은 망치, 쇠파이프를 든 필리핀 조직원들이 아래쪽에서 줄줄이 올라와 강성태와 조태완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주변에서 숨을 죽였다.
“아르윈이 데려온 조직원들입니다.”
“그래?”
놀란 한편으로 감탄한 눈빛을 한 조태완이 다시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로비에서 보았던 한 놈이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다 들어왔겠는데?’
발걸음으로 강성태가 짐작한 다음이었다.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니…?”
퍽! 퍼버벅! 퍽!
키란이 휘두른 게 분명한 주먹 소리와 함께,
퍼윽! 퍽! 퍼으윽!
망치와 쇠파이프가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이어졌다.
이후로는 비명조차 나지 않았다.
숨죽이며 강성태와 조태완 앞에서 기다리던 필리핀 조직원들이 우르르, 계단 위로 뛰어올랐다.
조명이 부족한 계단이었다.
말소리 한 번 없이 위로 우르르 달려가는 조직원들의 뒷모습이 깡패로 잔뼈가 굵은 조태완이 보기에도 섬뜩했던 모양이었다.
조태완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착잡한 심정을 대신해 입맛을 다셨다.
“서둘러.”
처음으로 아르윈의 지시가 들렸다. 그리고 공항에서 멕시코 놈들을 상대했던 모습 그대로 사람이 담긴 게 분명한 자루를 끌며 필리핀 조직원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가장 뒤에 아르윈과 키란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심지어 키란은 조태완을 향해 완벽한 우리말 발음과 함께 인사마저 했다.
“핏자국이 남지 않았어?”
“깨끗하게 닦았고, 물수건까지 전부 회수했습니다, 형님. 승합차에 실어 둘 테니까 필요하실 때 말씀하시면 됩니다.”
질문을 던졌던 조태완은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독하게 일을 처리했었나 하는 놀라움이 그의 얼굴에 확실하게 올라와 있었다.
**
유섭우는 강서구의 나이트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을 귀에 걸었다.
- 이광선입니다, 형님.
“사과드렸어?”
- 그게, 형님. 조금 전에도 통화했는데, 형님. 김민재 사장님께서 절대 오지 말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하아, 씨발, 이 개새끼가?”
- 정말입니다, 형님. 제가 사과드리겠다고 여섯 번이나 전화 드렸습니다, 형님. 그랬더니 성태 형님께 직접 말씀하시겠다면서 절대 오지 말라십니다, 형님.
이광선이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성태의 이모 장숙경에게 욕을 퍼부은 일이었다.
서라대학병원 앞에서 김민재를 위해 직접 나섰던 강성태를 똑똑히 기억하는 유섭우는 이광선의 대꾸 직후에 분통이 끓어올랐다.
“이광선?”
- 예, 형님.
“너는 신강남파가 잣밥으로 보이냐? 성태 형님께서 좋게 끝낼 기회를 주시니까 졸라리 만만해? 전화해서 오지 마라니까 이렇게 끝내면 그만인 거 같아?”
- 그게 아닙니다, 형님.
“너, 이 씨발 새끼! 내가 갈까, 네가 올래?”
- 예? 형님?
“하, 이 개새끼 봐? 말을 씹네?”
유섭우가 욕을 뱉어냈는데 이광선은 대꾸가 없었다.
“야! 야, 이광선?”
유섭우가 이광선을 으르렁대며 부른 뒤였다.
- 섭우냐? 나 인천 원남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응대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 그래. 내가 중고차 하나 보러 왔다가 우연히 이야기 들었는데 여기 광선이도 하는 데까지 한 거니까 내 얼굴 봐서 이 정도에서 넘어가자.
“형님?”
- 야, 인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몰라서 실수한 건데 뭐 이렇게 빡빡하게 그래? 막말로 광선이가 신강남파 들이받으려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당사자가 사과 안 받겠다는데 네가 왜 오라 가라 해?
“형님, 지금 반칙하시는 겁니다.”
- 아, 나, 이 씨발 새끼가 진짜.
대뜸 거칠게 나오는 황원남의 대꾸를 들으며 유섭우는 아예 대놓고 같잖다는 웃음으로 쏟아냈다.
- 너 지금 웃었냐?
“기가 차서 말입니다, 형님.”
- 그래서 어쩌자고?
“한 가지만 확실히 하겠습니다, 형님. 이거 형님이 반칙하신 겁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형님. 이게 형님 혼자 나서신 겁니까, 아니면 인천, 부천 연합 뜻입니까, 형님?”
- 아, 이 개새끼가 진짜? 죽고 싶냐?
“죽일 수는 있으시고, 형님?”
기가 막혀 하는 황원남의 웃음을 들으며 유섭우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강성태의 이름이 걸린 일에 느닷없이 인천 부천 연합이 황원남을 앞세운 이유를 알 길이 없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