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9권 - 16화 (388/513)

《388》2부 19권 - 16화

제6장. 경찰서에 간다고 대수냐?

강성태는 택시를 이용해 방지병원에 도착했고, 곧바로 이병렬의 병실로 향했다.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병렬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분노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았다.

복도에서 인사하는 덩치들에게 시선만 던진 강성태는 곧장 병실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형님?”

테이블에서 일어선 이병렬, 그 옆을 지키던 김진용, 병실 안쪽에 서 있던 조봉진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 테이블에서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중년 남자가 있었고, 바닥에는 입술과 턱 근처에 피를 묻힌 채 무릎을 꿇은 덩치도 있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냐?

의아해하는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바로 입을 열었다.

“오상율이라고 형님, 논현동 호텔 지하에서 단란주점 운영하는 형님입니다. 이광준 사장님 또래 분입니다, 형님.”

“존댓말 치우고 편하게 말해.”

쓸데없이 체면 세워주려 애쓰지 말고, 평소처럼 대하라는 강성태의 대꾸였다.

행동대장이라더니 이병렬이 보스와 동급이었어?

오상율의 얼굴에 스친 놀라움으로 봐서 강성태의 당찬 대꾸가 이병렬의 체면을 한껏 세워준 모양이었다.

뭔가 멋쩍은 얼굴로 이병렬이 고개를 돌렸다.

“인사하십시오, 형님. 신강남파 강성태 형님입니다.”

“오상율입니다, 형님.”

처음 인사하는 나이 있는 덩치들은 쉽게 고개를 조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오상율은 예상보다 더 깊게 상체를 숙였다.

신강남파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증거쯤 되겠다. 거기에 피투성이로 꿇어앉은 덩치와 잔뜩 독 오른 이병렬의 표정도 그 이유에 포함되었을 테고.

평소 같으면 손을 내밀어 악수했겠으나 강성태는 말없이 오상율을 보았다. 그런 뒤에 설명을 원하는 표정으로 무릎 꿇은 덩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 새끼는 박중달이라고 이 앞에 있는 커피숍 있지? 거기에서 인상 긁어대던 우장기라는 놈하고 친구고, 그 새끼 하는 일 뒤봐주던 놈.”

고작 커피숍에서 인상 긁었던 놈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이병렬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대하지 않는다.

“뭐가 문제야?”

“그게, 카페에 있던 우장기란 놈이 화장실 몰카나 여자애들 약 먹여서 관계 갖는 모습을 찍어서 팔아먹었는데….”

이병렬의 설명에 강성태는 눈가를 좁혔다.

“그거로도 모자라서 아예 회원들을 모집한 뒤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여 주었다고 하네. 저 새끼는 그걸 뒤봐줬다고 해서 내가 걷어찬 거고.”

워낙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서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약을 이용한 추악한 범죄였다.

강성태의 눈빛과 옅게 그려내는 웃음의 뜻을 아는 이병렬과 김진용이 덜컥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고, 두 사람의 변화를 느낀 오상율의 낯빛이 핼쑥하게 변했다.

“커피숍 여자는 어떻게 된 거야?”

“약을 먹였다더라고.”

강성태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에 자세를 낮춰 무릎 꿇은 박중달의 숙인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오래 이러고 있었는지 고통을 이기기 위해 박중달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 피해를 본 여자들의 혼과 몸, 인생 자체를 완벽하게 망가트린 놈이 고작 두 시간도 안 되는 자세에 이토록 고통스러워 해?

주먹을 날리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누르며 강성태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커피숍 여자에게 테히칸을 먹였어?”

약물 이름을 정확하게 들이댄 것에 놀란 듯 고개를 들었던 박중달이 화들짝 시선을 떨궜다.

“대답 안 해, 이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형님.”

이병렬의 독촉을 받은 박중달이 죽어가는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예.”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대꾸였다.

“관계 갖는 애들한테는 뭘 먹였어?”

“필로폰입니다, 형님.”

아예 포기한 모양으로 박중달이 순순히 답을 내놓았다.

이제 이해가 됐다.

이 개새끼와 커피숍의 개만도 못한 새끼가 무슨 짓들을 했는지, 왜 커피숍 여자가 그렇게 행동했는지까지 모두 다.

조금 더 확인할 게 있으니까 너는 잠시 뒤에 다시 보자.

이를 한 번 지그시 깨물고 나서야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테히칸이 뭐야?”

“대마 속에 있는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을 농축한 건데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게 되는 약물. 투약 기간이 길어지면 지능하고 판단력이 아예 없어지다시피 한다.”

“그래서 커피숍 여자 주인이 반항도 못 했던 걸까?”

강성태는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이 개새끼!”

“물뽕이라고 부르는 GHB도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짧게 설명한 강성태는 김진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장기라는 놈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

“예, 형님.”

지시를 마친 강성태는 오상율을 보았다.

“너도 알고 있었어?”

“아닙니다. 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한다고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는 몰랐습니다, 형님.”

“단란주점 한다고 했지? 그곳에서는 약물 안 썼어?”

“예? 형님?”

“거짓말을 하고 싶으면 해 봐. 대신 들통나면 결과가 정말 안 좋을 테니까 그건 알아서 판단하고.”

강성태의 경고가 건너간 직후에 오상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죄송합니다, 형님. 먹고살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쩌억! 쩌어억! 쩌어어억!

강성태가 작정하고 꽂으면 오상율 정도는 한 방에 끝난다. 그런데 지금 강성태는 뒤로 넘어지는 오상율의 얼굴에 연달아 세 방을 꽂아 넣었다.

철퍼덕!

허수아비처럼 뻣뻣하게 넘어간 오상율이 딱딱한 병실 바닥에 길게 널브러졌다.

어쩌면 뒤통수가 깨졌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강성태나 이병렬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고, 대신 뒤편에 있던 조봉진이 훌쩍 옆으로 비켜났다.

“후.”

강성태는 숨을 내쉰 뒤에 자세를 다시 낮췄다.

“회원 명단 있지?”

“있습니다.”

“실명이야? 가명이야?”

“단속하는 경찰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번호, 직장, 전부 확인한 뒤에 요금은 비트코인으로 받았습니다, 형님.”

“그 명단 누가 가지고 있어?”

“우장기가 가지고 있습니다. 단속이 가끔 있을 때면 그 안에서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형님.”

“힘 있는 사람?”

“기자도 있고, 형님. 국회의원 비서, 판사 가족도 있고, 형님.”

쩌억! 쩌어어어억! 철퍼덕.

순순히 불고 있었다. 박중달은.

그런데도 주먹을 날린 건, 말을 하는 동안 죄책감은 어디에 팔아버렸는지 자랑하는 투로 떠벌리는 꼴이 역겨워서였다.

“우장기란 놈은 아직 집에 있답니다, 형님.”

몸을 세우는 강성태를 향해 김진용이 조용하게 알아본 바를 알려주었다.

“커피숍 여자 주인은?”

“죄송합니다, 형님. 우장기만 물어봤습니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드는 김진용을 이병렬이 세상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봉기. 이 두 인간 얼굴 닦을 것 좀 가져와.”

“예, 형님.”

상체를 숙인 조봉기가 나가자 이병렬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보스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병실에서 저 새끼 울대 끊을 뻔했다. 그나저나 전화는 왜 했던 거야?”

“함태준이 잡으러 가는 거 의논하려고.”

“오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여자까지 오늘은 집에 있답니다, 형님.”

김진용이 또다시 확인한 내용을 전했다.

“집은 알아?”

“병원 뒤편이라 걸어서 가도 될 거리입니다, 형님.”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두 놈을 보았다.

“우장기란 놈이 문 안 열고 버티면 귀찮으니까 저것들 데려가자. 문 여는 거 협조받을 수는 있겠어?”

“그건 또 내 전문이지.”

기분 좋게 나섰던 이병렬이 강성태의 표정을 보고는 눈매를 뒤틀었다.

“다른 소리 하면 오늘 저녁에 병원 옮긴다?”

“병원 나가고 들어올 때만이라도 휠체어 타. 그것만 지켜주면 다른 소리 안 한다.”

유치하게 들리는 이병렬의 협박을 강성태는 팽개치지 못했다. 이런 일에 밀려난 이병렬이 실제로 안호상 원장의 병원에 입원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서였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병렬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에 올라온 이름은 바르지오 만시니였다.

“여보세요?”

- 미스터 강. 자료가 엄청나. 이걸 문자로 다 보내기는 어려운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거래에 관한 내용만 추려주면 좋겠는데?”

- 그러려고 해도 이번 거래에 워낙 여러 곳이 엉켜 있어서 잠깐이라도 설명을 듣는 게 오히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그와 관련한 다른 자료들도 있고.

바르지오가 두 번이나 요구하는 일이라면 시간을 내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마침 강남인데 잠깐 일이 있거든. 끝나는 대로 바로 넘어갈게. 차웅진은 어때?”

영어로 하는 통화에서 차웅진의 이름이 나오자 재킷을 걸치던 이병렬이 힐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외부로 나오는 CCTV를 모두 차단하고 웅크리고 있다.

“지금이 기회인데 아깝기는 하다.”

- 기회? 무슨 기회?

“외부로 나오는 CCTV를 모두 차단했다면서? 네가 보안 시설만 차단해주면 내가 들어간다고 해도 바깥에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거 아냐? 다르게 말하면 내부에 있는 놈들을 해결하는 동안 달려올 놈들이 없다는 뜻이고?”

강성태의 답을 들은 바르지오 만시니가 기가 막힌 심정을 표현하듯 허탈하게 웃었다.

- 그럴 계획으로 차웅진에게 CCTV에 대한 언질을 줬던 건가?

“기회를 노린 건 맞지. 그 때문에 키란을 앞에 세워두기까지 했으니까.”

- 자칫하면 거래가 중단될 수 있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나라에 더는 마약이나 불법적인 자금이 못 들어온다는 뜻이 되니까.”

- 하아. 항상 느끼지만, 자넨 적을 상대하는 방법이 정말 독특해. 그러니 맞은편에 선 자들이 당할 수밖에 없겠지. 알았다. 호텔에서 기다릴 테니 끝나는 대로 연락 줘.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을 빈다, 미스터 강.

바르지오 만시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에 수건과 거즈, 반창고를 양손에 든 조봉기가 들어왔다.

강성태가 보기에 두 인간은 분명 기절한 상태였다.

“거, 개새끼들. 더럽게 오래 누워 있네, 진짜. 그냥 발목 끊어서 차에 싣고 갈까?”

저런 것들도 인간이라고, 살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병렬의 거친 말이 달려간 직후에 둘이서 동시에 꿈틀거렸다.

“복도랑 로비에 환자들 있을 시간인데 동생들을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형님?”

병원을 나서는 도중에 소란이 생길 것을 염려한 것처럼 김진용이 넌지시 질문을 건넸고,

“놔둬. 중간에 내 뒤통수를 갈기고 튀든, 아니면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든, 반항해주면 더 좋지. 그 핑계로 가족까지 깡그리 잡아서 묻어 버리거나 갈아서 바다에 버리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이병렬이 섬뜩한 답을 내놓았다.

“씨발 것들. 우리는 주먹으로 때린 것뿐이고, 저것들은 마약으로 여자들 짓밟았는데 경찰서에 간다고 대수냐? 그냥 둬. 도망가게.”

조봉진이 건넨 수건으로 찢어진 눈가를 닦는 오상율과 입술과 턱에 엉긴 피를 닦는 박중달 모두 시선조차 들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종일 닦아? 얼른 안 일어나?”

이미 오상율에 대한 선배 대접은 개가 먹어간 상황이었다.

이병렬이 으르렁거리자 오상율과 박중달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서 우장기 집 문 조용하게 열어. 그러면 내가 형님은 사정을 좀 봐줄 테니까. 알았습니까?”

“고맙네, 동생.”

눈 안쪽에 수건을 댄 오상율이 비참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자, 보스.”

이병렬의 요청에 강성태는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카오 회의가 2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엉뚱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며 강성태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말대로 힘겨운 싸움일지 모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야쿠자들을 정리하고, 마카오 회의를 통해 아무리 삼합회라도 한국을 넘봤다가는 부러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릴 기회였다.

그 싸움이 끝나면 키란에게 평범한 한국의 일상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커피알리고, 장숙경, 안다미, 최재섭 등, 그리운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소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봐야 할까?

돌이켜보면 마약과 고리대금업이 없는 사회를 바라며 참 끔찍하게 싸웠는데 사실은 그 두 가지가 없는 세상이 정상이었다.

당연한 것을 위해 깡패가 싸워야 하는 세상이라니?

깡패에게 약점 잡히는 인간들이 없는 세상이 과연 가능할까 싶어서, 그리고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못할 만큼 더러운 인간들을 무더기로 잡았다는 생각에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러운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비트코인으로 요금을 지불한 인간들?

모르고 가입했다고?

현금이나 카드가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환전해서 지불해 놓고?

법에 정해진 대로 처벌받게 해달라고 빌게 될 거다.

물론, 깡패한테 그런 소리 해 봐야 안 먹히겠지만.

복도로 나선 강성태는 병실 문을 나서는 오상율과 박중달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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