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2부 20권 - 2화
처음부터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놈들이었다.
강성태를 같잖게 여기는 눈빛은 말할 것 없고, 신강남파 보스의 앞을 막아서고도 전혀 문제 될 거 없다는 태도도 거슬렸다.
시선조차 주지 않는 차웅진, 말리는 시누이 이상으로 얄밉게 바라보는 비서 놈, 앞을 막은 야쿠자, 옅게 웃은 강성태는 마음을 굳혔다.
“내가 차웅진의 권력이나 야쿠자의 위협에 겁먹은 줄 아는 모양인데, 개를 함부로 풀어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마.”
자위대 출신인지, 용병 생활을 했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훈련한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과 드잡이하느니 단숨에 제압한다.
강성태는 멱살을 잡으려는 사람처럼 먼저 어깨를 틀었고, 곧바로 왼쪽 팔을 들었다.
와락!
왼편에 있는 놈이 엎어치기를 하려는 듯 강성태의 팔을 잡아챘다.
바라던 일이었다.
잡힌 왼팔을 쭉 밀어 거리를 확보했고, 동시에 오른쪽에 있는 놈의 얼굴을 향해 세차게 주먹을 뻗었다.
쩌어어어어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굴을 맞은 놈이 흐물대는 순간이었다.
상체를 크게 회전한 강성태는 왼팔을 붙잡은 놈의 얼굴에도 제대로 주먹을 꽂았다.
쩌어어어억!
맷집이 이 정도로 좋은 놈은 참 오랜만이었다.
눈이 반쯤 풀려 비틀대면서도 소파를 억지로 짚어가며 버티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약을 처먹은 놈처럼 비틀거리면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답시고 쓰러지지 않는 게 전부였다.
다른 놈도 아니고, 야쿠자 주제에 견딘다고?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한 강성태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상체를 완전히 비틀었다.
쩌어어어어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상체가 휙 날아간 놈이 소파에 걸린 허리를 중심으로 빙글 돌아서 테이블 앞으로 떨어졌다.
콰드등.
놈의 몸에 밀린 테이블이 비명을 지른 뒤였다.
“이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몸을 세운 차웅진이 하인을 꾸짖는 주인처럼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나이를 앞세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권력도 아니었다.
너 따위가 감히!
내가 인상 썼으니 어서 엎드려!
대신 강점기 일본 귀족이 우리나라 사람을 대하듯 멸시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
강성태는 차웅진을 향해 힘껏 팔을 휘둘렀다.
짜아아아악! 끄드등!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비참하게 테이블에 쓰러졌던 차웅진이 죽은 사람처럼 굴러서 아래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려면 꽤 기다려야 했다.
“너도 이리 와.”
강성태는 멍한 채 서 있는 비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왜 이러십니까?”
“내가 전화할 때 예의를 지키라고 했었지?”
짜아아악! 짜아아악!
뺨을 두 대 얻어맞은 비서 놈은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처럼 눈이 풀려 있었다.
“앞으로 전화 공손하게 받고, 내가 이야기할 때는 절대 나서지 마라.”
놀란 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짜아아아악! 짜아아악!
“대답은 반드시 입으로 하고.”
“예…. 예!”
비서 놈이 답을 하고 난 직후였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면서 검은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비서 놈의 멱살을 힘껏 던진 강성태는 훌쩍 소파를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있던 장식용 두꺼비를 집어 거실 창에 던졌다.
투우웅!
강성태가 힘껏 던졌는데도 거실 창은 오히려 청동 두꺼비를 보기 좋게 튕겨냈다. 깨졌다면 더 좋았겠지만, 키란이라면 알아채고 움직일 게 분명했다.
그 사이 덩치들이 소파 주변으로 몰려왔다.
“건반진 노움.”
발음 참.
일본어 발음으로 욕을 뱉어낸 놈들이 품에서 회칼을 쭉 꺼내 들었다.
그 직후에,
“뭐야? 막아!”
마당에서 누군가를 막으라는 고함이 들렸다.
다가오는 놈들의 수준을 짐작한 강성태는 재킷을 벗어 왼팔에 감았다.
“끄으!”
“아윽!”
크지 않은 비명이 바깥쪽에서 연달아 들리자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회칼을 든 놈들이 강성태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와라! 얼마든지!
그리고 각오해라. 한 번은 야쿠자 대가리에게 찾아갈 거니까.
휙! 휘익! 휙!
소파를 방패 삼아 몰려든 놈들이 회칼을 연달아 찔러넣었다.
핏! 핏! 피잇!
접근전은 불리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소파에 바짝 붙어서고도 놈들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 바람에 왼팔에 감은 재킷이 너덜거리도록 회칼을 막았으나 강성태 역시 달려들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피잇! 핏! 핏!
재킷이 너덜거리며 갈라진 팔뚝에서 나온 피가 강성태의 왼팔을 붉게 물들였다.
시간은 충분히 주었다.
휙! 피잇! 핏!
강성태는 의도적으로 왼팔을 다급하게 휘두르며 1인용 소파 쪽으로 움직였다. 소파를 넘어서 구석으로 피하려는 몸짓으로 보기 충분했다.
아직 바닥에 널브러진 차웅진의 곁을 지난 강성태를 노리고 1인용 소파 너머에 있던 놈이 회칼을 찔러넣었다.
강성태는 놈의 손목을 번개같이 낚아챘다.
꽈득.
이어서 당황하는 놈의 손목을 안쪽으로 꺾고, 훑듯이 당겨서 회칼을 빼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뒤편에서 테이블을 타고 넘어왔고, 기다란 소파 뒤에 있던 놈들이 강성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딜 넘어와!
휘릭! 서거-억!
회칼을 손안에서 돌린 강성태는 기다란 소파를 밟고 선 놈들의 정강이를 회칼로 길게 그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란 소파를 밟으며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가장 앞선 놈의 회칼을 밀쳐 낸 강성태는 놈의 팔뚝부터 옆구리, 목덜미를 회칼로 갈랐다.
서걱! 핏! 핏!
몸을 비틀었는데도 허리와 등, 오른손 팔뚝이 갈라지면서 뜨끔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지금 뒤를 막으면 앞에 있던 놈들에게 목을 뚫린다.
밀려드는 통증을 무시한 채 강성태는 테이블 위에 있는 두 놈의 얼굴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어어어억! 쩌어억!
두 놈이 흐느적대는 순간이었다.
양손으로 두 놈의 멱살을 붙잡은 강성태는 앞으로 달렸다.
와락!
두 놈을 테이블 아래로 밀치는 것과 동시에 강성태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동료를 받느라 당황하는 놈이 목표였다.
푹! 푹푹! 푹!
강성태가 휘두른 회칼에 어깨와 옆구리, 허리를 찔린 놈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만 동그랗게 떴다.
이제 이놈을 방패 삼아 구석으로 가면….
강성태가 놈의 멱살을 잡아당긴 직후였다.
퍼석!
뒤통수에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고, 곧바로 깨진 도자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이 정도에 쓰러질 거면, 아예 오지도 않았어!
아득해진 의식에도 강성태는 멱살을 잡은 놈을 당겨 뒤편에 돌려세웠다.
그 직후였다.
까으응!
강성태가 거실 창에 던졌던 청동 두꺼비가 멱살을 잡아 돌려세운 놈의 뒤통수를 요란하게 때렸다.
너는 여기까지!
붙잡고 있던 멱살을 밀쳐 낸 강성태는 거꾸로 든 회칼을 앞으로 내민 채 거실 창과 벽이 맞닿는 구석까지 물러났다.
적어도 뒤에서 덮치는 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이 정도면 남은 놈들의 목을 갈라주기에 충분했다.
뒤통수가 터졌는지 목덜미가 축축했는데 강성태는 회칼을 거꾸로 들고서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지금까지는 재미있었지? 이제부터 진짜다.”
봐주는 거 없다.
멕시코에 가기 전에 삼합회든, 야쿠자든, 신강남파 강성태에게 걸리면 목이 갈라진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
휙! 휘익! 휙!
세 놈이 번갈아 강성태를 향해 회칼을 들이민 직후였다.
휘릭! 꽈악!
강성태는 마지막에 팔을 뻗었던 놈의 손목을 왼손으로 잡아채고,
서거-억!
거꾸로 든 회칼을 돌려가며 둥그렇게 갈랐다.
핏핏핏! 서걱! 피잇! 푸욱!
“끄으으!”
놈의 팔뚝 혈관을 연달아 가르고, 팔꿈치 안쪽에 꽂아 넣은 회칼이 반 이상 바깥쪽으로 나온 뒤에 비명이 터졌다.
갈라진 팔뚝에서 간헐적으로 피가 튀고 있어서 강성태의 얼굴과 가슴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끄으으.”
아직 손목이 잡혀 있는 놈이 공포에 절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움찔, 움찔, 강성태가 붙들고 있는 놈의 좌우에서 야쿠자들이 달려들 틈을 보고 있었다.
좌우를 빠르게 살핀 강성태는 팔뚝을 뚫고 나가 있던 회칼을 빠르게 뽑았다.
“끄으!”
놈의 상체가 비틀리는 순간이었다.
“먼춰!”
왼편에 있던 놈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는데,
서거-억.
강성태는 손목을 붙들고 있던 놈의 목을 힘껏 그었다.
“커륵! 커흑!”
손목을 풀어주기 무섭게 양팔로 목을 움켜쥔 놈이 버둥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직후에 놈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고함을 질렀던 야쿠자가 이를 드러내며 독기를 뿜어내는 순간이었다.
콰등! 콰드응!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냈고, 이어 천천히 열렸다.
털써-억.
열린 문을 타고 피범벅인 야쿠자 한 놈이 쓰러졌는데 그 뒤편에서 쿠크리를 거꾸로 든 키란이 서 있었다.
피범벅인 강성태를 보고 눈이 뒤집힌 것처럼 키란은 현관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앞에서는 강성태가, 뒤편에서는 키란이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앞과 뒤를 돌아보는 놈들을 향해 키란이 쿠크리를 깊게 찔러넣었고, 강성태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서거-억!
야쿠자 놈의 양쪽 겨드랑이를 뜯어내듯이 가른 키란이 마지막에 놈의 목을 깊게 그었고,
핏! 핏핏핏! 핏! 핏핏!
강성태는 고함을 질렀던 놈의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갈랐다.
카각. 서걱. 서걱. 서거-억.
쿠크리로 회칼을 낚아챈 키란이 겨드랑이와 목을 차례로 가르자 마지막으로 남았던 놈이 피를 분수처럼 쏟으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땡강.
회칼을 바닥에 던진 강성태는 이제 막 일어나서 비척대는 비서 놈을 향해 움직였다.
“키란. 멀쩡한 놈들 처리해.”
처음 주먹을 맞고 쓰러졌던 놈이 상체만 세우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거기까지였다. 주저하지 않고 움직인 키란이 몸을 세우기 위해 상체를 구부린 놈의 뒷덜미를 쿠크리로 깊게 갈라버렸다.
“잘못했습니다!”
강성태에게 멱살을 잡힌 비서 놈이 애원하듯 매달렸다.
서거-억.
강성태에게 얼굴을 얻어맞았던 놈의 목덜미를 거침없이 갈라버리는 키란의 행동이 놈의 공포를 더할 수 없이 키우는 모양이었다.
“차웅진이 어떤 인간인지 빤히 알면서도 그 더러운 권력에 빌붙어서 주변 사람들을 얕봐?”
“살려주시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예!”
혼이 빠진 상태에서도 살아보겠다며 매달리는 놈에게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일이었다.
“오래 기억해라. 또 이런 모습으로 날 보게 되면 그때는 정말 죽는다.”
강성태는 독하게 주먹을 날렸다.
쩌어어어억! 털써-억.
쓰러진 비서 놈을 내려다보았던 강성태는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코와 입술에 피가 흥건한 차웅진이 강성태를 보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따귀를 맞아 피를 흘리는 자신의 모습도 그렇지만, 믿었던 야쿠자들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러운 사람처럼 보였다.
걸음을 옮긴 강성태는 넋이 나가 있는 차웅진의 멱살을 움켜쥐었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일본 전통 복장의 앞섶이 강성태의 손에 붙들려 들리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차웅진의 마른 허벅지가 흉하게 드러났다.
거만하던 눈빛, 멸시를 담았던 표정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차웅진의 추한 몸뚱이가 떨고 있었다.
“차웅진?”
대답은 없었다.
짜아아아악.
그리고 강성태의 용서도 없었다.
“차웅진?”
“네. 네에.”
“따귀 두 대로 울먹이면 그동안 너한테 조아렸던 인간들과 억울하게 당했던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지잖아? 안 그래?”
“예.”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처리했습니다.”
강성태가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모양으로 과하게 손을 쓴 키란이 뒤편으로 다가와서 차웅진을 노려보았다.
키란의 손에 거꾸로 들린 쿠크리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핏물을 본 모양이었다. 시선을 떨궜던 차웅진의 몸뚱이가 애처로울 정도로 바들거렸다.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쿠자의 계획을 듣고 나서 내 손을 더럽히느니 네놈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야쿠자 놈들에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돌아선 거고.”
살려주나? 진짜?
마른침을 삼킨 차웅진이 강성태의 눈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며칠이나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갖춰.”
강성태에게 질린 인간들의 특징 그대로 차웅진도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짜아아악!
“내게 대답할 땐 반드시 입으로 해.”
“아….”
따귀를 갈기는 강성태, 핏방울 떨어지는 쿠크리를 거꾸로 들고 지시를 기다리는 키란, 갈라진 목덜미에서 피를 쏟으며 버둥대는 야쿠자, 끔찍한 장면 속에서 차웅진은 이미 생각이 완전히 멈춘 사람으로 보였다.
이런 걸 자꾸 때려서 뭐 하겠나.
한 대로 끝내고 말지.
“야쿠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그 뒤에도 살아 있으면 나랑 다시 보고. 알았어?”
“네에.”
답을 한 자신에게 만족한 듯 차웅진이 강성태를 보았다.
기가 막히게도 칭찬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차웅진의 본성이 드러난 건지도 모른다.
에라, 이 노비 근성에 찌든 새끼야!
쫘아아아아악! 꽈드등. 철퍼덕.
강성태가 힘껏 갈긴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은 차웅진이 소파와 함께 굴렀다.
주먹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나 따귀에도 왼편 이가 모조리 부러질 정도라 주먹으로 때리면 광대뼈나 코뼈가 조각날 테고, 그렇게 죽을 수도 있어서 여유를 두었다.
널브러진 차웅진의 아랫도리가 벌어진 옷 바깥으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현실을 대신하는 모습이었고, 더러운 단물에 물들어 제2, 제3의 차웅진이 되고자 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경고처럼 보였다.
부끄럽다. 이런 모습을 키란에게 보이는 것이.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키란을 보았다.
“다친 곳은?”
“별거 아닙니다. 제가 인천까지 모시겠습니다.”
쿠크리를 거꾸로 든 키란이 듬직한 눈빛으로 답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