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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0권 - 10화 (403/513)

《403》2부 20권 - 10화

조태완은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무리 강성태가 밟아줬다고 해도 조태완이 알고 있는 차웅진은 한칼이 있는 인물이었다.

막말로 어차피 죽게 된 거, ‘너 죽고 나 죽자’라며 물귀신처럼 강성태를 물고 늘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젊은 강성태야 자신만만하게 일을 처리할지라도 나이 먹은 조태완과 박노익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게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나.

정보과장 강욱에게 현금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려 보낸 뒤에도 조태완은 계속 1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거 있잖나.

뭔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경고가 뒤통수에 끈적하게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 그 바람에 조태완은 점심을 먹으러 잠시 올라갔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1층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조태완이 좋아하는 마피아 영화에 빠져 잠시 근심을 놓았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테이블에 올려둔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에 올라온 강성태의 이름을 확인한 조태완은 종일 뒤통수에 매달려 있던 찜찜한 경고를 확인하는 심정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강성태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뭘 하면 돼?”

- 차웅진이 신월동 나이트로 오겠답니다. 함께 보셨으면 하는데 시간 되십니까?

조태완은 잠시 반문조차 못 한 채 눈만 끔벅였다.

- 여보세요?

“보스, 내가 잠깐 못 알아들었어.”

- 차웅진과 신월동 나이트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40분 뒤에 도착할 겁니다.

“차웅진 회장이 신월동에 있는 나이트 사무실로 온다는 거지? 내가 들은 게 맞지?”

- 예. 지금 출발했을 겁니다. 일부러 시간을 촉박하게 잡았는데 그 바람에 이렇게 급하게 연락드립니다. 시간 되십니까?

조태완은 얼른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바로 출발할게.”

- 그럼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 상태에서도 조태완은 몸을 일으켰다.

“신월동 나이트로 간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쪽을 지키고 있던 덩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옷이야 이미 갖춰 입은 참이고, 승용차는 1층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터라 시간 끌 게 없었다.

도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조태완은 승용차의 뒷자리에 몸을 싣고 신월동 나이트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조태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바뀌는 건가, 아니면 그가 모르는 사이 바뀌어 있었던 걸까?

젊은 시절 보았던 차웅진을 떠올렸던 조태완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거물이었다, 차웅진은.

최근에 그는 공식 석상에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심지어 백 평이 넘는 그의 화려한 집무실을 지난 몇 년간 단 하루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그런 차웅진이 호텔 특실이나 다이닝 룸도 아니고, 신월동 나이트의 지하에 온다니?

알고 있었다. 매번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런데도 조태완은 강성태를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아무리 유섭우가 급하게 부른다고 해도 강서구 중고차 매장에서 신월동 나이트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유섭우와 함께 중고차 매장을 출발한 강성태가 신월동 나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급하게 달려온 두 대의 승용차에서 덩치들이 내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승용차 앞으로 다가온 덩치들이 고개 숙였는데 부천 중고차 매장과 인천 연안부두 호텔에서의 싸움을 연이어 거친 탓에 절반쯤은 상처를 달고 있었고 그만큼 인상이 사나웠다.

“힘들 텐데 미안하게 됐다. 조금 더 고생하자.”

“아닙니다, 형님.”

강성태가 다독이자, 덩치들이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는 바깥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형님.”

“고생해.”

유섭우에게 바깥을 맡긴 강성태는 곧장 사무실로 내려갔다.

오디션이 끝난 무대는 외로운 조명 하나에 의지해 오전에 있었던 연주를 되새기고, 홀은 어둑한 분위기를 뒤집어쓴 채 갑자기 들어서 강성태를 외면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김진용의 인사를 받은 강성태는 곧장 소파로 움직여 이병렬과 함께 앉았다.

“중고차는?”

차웅진을 불렀다는 통화를 했지만,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모를 이병렬이었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그는 먼저 이모 장숙경의 일을 먼저 물어보며 잠시의 여유를 만들었다.

“좋은 차 샀어. 적당한 가격에.”

“그럼 그건 됐고. 차웅진 회장은 어떻게 된 거야?”

“말했던 대로 죽기 싫으니까 뭔가 수를 쓰려는 거지.”

“그런 자리에 태완이 형님은 몰라도 나까지 함께 앉아있어도 되겠어?”

“넘버 투라며?”

강성태의 반문에 이병렬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신강남파 보스와 차웅진 회장이 만나는 자리잖아? 다른 조직 같으면 보스 말고는 죄 뒤에 서 있는 게 보통이라고요, 이 아무것도 모르는 보스님아.”

“차웅진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

맞장구를 쳤던 이병렬이 고개를 비틀며 강성태를 보았다.

“혹시 그래서? 차웅진 회장에게 너 진짜 별거 아니다, 그런 거 보여주려고?”

“그런 것도 있는데 나를 어떻게 해 봐야 고문인 태완이 형님이 있고, 뒤에 이병렬이라는 버팀목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물론 야쿠자 놈들에게도.”

“염병. 보스를 잘못 만나서 한동안 중국 놈들 칼을 맞을 뻔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일본 놈들 칼까지 맞게 생겼네.”

툴툴대기는 했으나 정작 이병렬은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뭔가를 또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조태완이 바로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누구라도 와서 먼저 알려줬을 텐데 마음 급한 조태완이 가장 앞서 내려온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강성태가 가볍게 인사한 반면에 이병렬과 김진용은 조금 더 깊게 상체를 숙이며 조태완을 맞았다.

“이리 앉으십시오.”

“그 자리에는 보스가 앉아야지. 아무리 우리가 편히 지낸다고 해도 차웅진 회장이 온다는데 위아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강성태가 권하는 상석을 비켜난 조태완이 왼편의 기다란 소파로 움직여 자리했다.

“시원한 음료가 있습니다, 형님?”

“물이 있으면 차라리 그걸 다오.”

김진용이 생수와 컵을 가져다주자 조태완은 정말이지 갈증이 심한 사람처럼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 계산이 있겠지만, 그래도 차웅진 회장을 만나는 건데 어디 호텔로 하는 게 모양새가 더 좋지 않겠어?”

뻔한 질문을 조태완이 막 내놓았을 때였다.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린 뒤 문이 열리며 유섭우가 들어왔다.

“밖에 차웅진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형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도착이었다.

어지간히 마음 급한가 보네.

가볍게 웃는 강성태와 달리 조태완과 이병렬은 뜻밖이란 얼굴로 시선을 마주쳤다.

“야쿠자들은?”

“야쿠자인지는 모르겠는데, 따로 승용차 세 대에 대략 열 명 정도 함께 왔습니다, 형님.”

“가서 혼자만 내려오라고 하고, 만약 싫다면 돌아가라고 해. 야쿠자들이 설치는 기미가 보이면 밀어버려도 돼.”

“예, 형님.”

단단하게 답을 한 유섭우가 나간 뒤였다.

“여기 병렬이라도 보내지? 아니면 내가 가서 안내해 오든가.”

“차웅진은 전형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입니다. 그 인간은 목숨이 걸렸고, 우리는 손해 볼 게 없는데 굳이 돌아가겠다는 걸 붙잡을 이유도 없고요.”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약자가 된 차웅진을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여유와 각오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던 조태완이 나직하고 길게 뱉어냈다.

유섭우가 차웅진을 데리러 간 뒤로 야릇한 긴장이 사무실을 넘나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오른쪽 벽에 놓인 책상, 그 뒤로 옷걸이와 책장, 오래된 데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노릿해진 소파, 지하실 특유의 냄새 사이에서 조태완은 또다시 긴 숨을 내쉬었다.

그가 입맛을 다실 때였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유섭우가 들어왔다.

“차웅진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형님.”

가장 먼저 이병렬이 일어났고, 이어 조태완, 강성태의 순으로 몸을 세웠다.

유섭우가 한쪽으로 비켜선 틈으로 말랐으나 꼿꼿한 태도로 차웅진이 들어섰다.

그는 마치 과거 시대에서 곧장 달려온 사람처럼 중절모에 스카프를 목에 둘렀고, 얇은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오른손에 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누구도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고,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잠시 문 앞에서 강성태를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조태완과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조태완 고문님은 아실 테니까 됐고, 이쪽은 이병렬이라고 합니다.”

강성태는 그제야 이병렬을 먼저 소개했다.

“이병렬입니다.”

이병렬이 고개 숙여 건넨 인사를 받은 차웅진이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다가서자 긴 소파 앞에 서 있던 조태완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장면이었고, 강성태마저 다시 존댓말을 써준 상황이라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왼손으로 중절모를 벗은 차웅진이 그걸 조태완에게 내밀었다.

“차웅진?”

강성태의 나직한 음성이 부르자 차웅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스카프로 볼을 가리기는 했으나 코 주변의 부기가 올라와 눈까지 팽팽하게 만든 건 감추지 못했다.

“태완이 형님과 병렬이도 있는 자리라 대우해줬더니 갑자기 간이 부어? 반대쪽 이까지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앉아서 하고 싶은 말을 하든가, 아니면 지금 조용하게 돌아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냐?”

“살고 싶어서 왔으면 얌전히 숙여. 그게 싫으면 그 잘난 체면 지키고 돌아가서 야쿠자 손에 죽든가. 뭘 선택하든 네가 결정할 몫이지만, 내가 모시는 형님 앞에서 건방 떨지 마라. 또 한 번 그런 모습을 보이면 정말 반대편 이를 모조리 부러트릴 거니까.”

조태완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앞이었다.

왼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허리 아래로 내린 차웅진이 기다란 소파에 힘겹게 앉았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형님.”

강성태가 권하는 말에 조태완은 볼을 씰룩이며 차웅진과 마주 보는 자리로 건너가 이병렬의 곁에 앉았다.

“병렬아. 앉아.”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조태완에게 고개 숙인 이병렬이 자리에 앉고서야 강성태는 중앙에 앉았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차웅진이 모자를 옆자리에 내려둔 채 실크 스카프로 퉁퉁 부은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었다.

눈짓 하나로 조태완을 주눅 들게 했던 카리스마는 강성태의 손에 부러진 이처럼 꺾였고, 눈매를 늘어트리지는 않았지만 살고 싶다면 숙이라는 말대로 시선을 떨구었다.

강성태는 잠시 차웅진을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늙는다는 건 젊은 강성태가 보기에도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게 아니라, 20대나 30대의 젊음을 유지하다가 어느 날 수명을 다한다면 그게 더 억울하지 않을까.

어쩌면 늙는다는 건 지니고 있던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고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며 지나온 삶을 정리하라는 하늘의 가르침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차웅진은 마지막까지 그 어느 것도 놓지 못했다. 그것도 어차피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할 그 알량한 권력과 부를 지키려고 개 노릇을 하다가 주인에게 죽게 생긴 모습으로 말이다.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강성태의 질문에 한풀 꺾인 눈매로 차웅진이 고개를 돌렸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어.”

“살고…싶다.”

차웅진의 답이 나왔을 때, 조태완이 시선을 떨궜다.

언젠가 강성태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살려달라고 매달렸던 순간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강성태가 물끄러미 차웅진을 바라보자 사무실에 갑갑하고 눅눅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일 마카오로 출발한다. 내가 그곳에서 살 방법을 알려다오.”

차웅진이 힘겹게 청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없어.”

강성태는 더할 수 없이 차가운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부기가 올라온 눈매를 씰룩했으나 차웅진은 울컥 올라온 감정을 누르려는 듯 숨을 한번 커다랗게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밖에 데려온 아이들을 못 들어오게 막는 걸 보며 깨달았다. 저 아이들이 들을 수 없게 하려는 게지. 그건 네게 방법이 있다는 뜻이 아니냐? 그러니 그 방법을 알려다오.”

한번 굽히기 시작해서인지 차웅진의 음성은 이전보다 확연하게 꺾여있었다.

“차웅진. 너는 이미 죽을 길에 들어섰어.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집에서 입고 있던 그 역겨운 옷처럼 일본 놈을 흉내 내며 죽을 건지, 아니면 그걸 벗어던지고 원래 태어난 모습으로 죽는 거. 다른 건 없다.”

“살고 싶다면 숙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방법도 없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너는 지금 그 모습이 숙인 거라고 생각해? 나는 아직 버티는 거로 보이는데?”

강성태가 냉정하게 던진 질문이 떨어진 순간에 차웅진이 다시 볼을 씰룩했다.

더는 못 참겠다는 건지, 아니면 강성태가 원하는 수준까지 숙이기 위해 각오가 필요해서인지는 당장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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