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2부 20권 - 19화
제7장. 도깨비라고 들어봤나?
유헌우와 함께 들어온 남자는 강성태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만약 유헌우와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나쁜 의도를 지녔다고 판단했을 만큼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조직 생활을 하던 이병렬과 김진용은 거칠고 뻑뻑한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리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불편한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이분은 지경그룹 곽대출 부회장입니다. 오늘 밤에 출국할 예정인데 성태 씨에게 급하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찾아온 거고요.”
지경그룹의 부회장?
폭력 그룹도 아닌데 저런 남자가 부회장이라고?
“성태 씨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건 미안한데 그만큼 시간이 촉박했고, 또 내가 믿는 분이니까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성태 씨와 병렬 씨 이전에 우리 병원 현금 환자는 거의 이분 몫이었으니까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헌우의 말끝에서 곽대출이 민망하다는 느낌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지경그룹 부회장이란 설명에도 가시지 않던 뻑뻑한 분위기가 강성태와 이병렬 전에 방지병원을 들락거렸던 현금 환자라는 말에 눈 녹듯 사라졌고, 심지어 헛웃음마저 나왔다.
“대출 씨. 나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알아서 할 수 있죠? 그럼 내려가 있을 테니까 끝나고 원장실에 들렀다 가세요.”
이병렬과 김진용의 소개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헌우 원장이 병실을 나섰다. 자리를 비켜준다기보다는 곽대출이 하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유헌우 원장의 인맥은 어디까지 뻗쳐 있을까?
유헌우가 병실을 나선 뒤였다.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곽대출이라고 합니다.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미안하네.”
진중한 존댓말 뒤에 적당하게 말을 내렸는데 능글맞은 그의 표정과 태도가 밉지 않았다.
“이병렬 씨와 김진용 씨는 강성태 회장과 한 식구 같으니까 그냥 말하겠습니다.”
이병렬과 김진용을 돌아본 곽대출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알고 있었다. 그는.
이병렬과 김진용까지.
하긴, 지경그룹 비서실이 나서서 정보를 수집했다면,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을 알아보는 것쯤 일도 아니겠다.
“자! 우리 못 배운 사람들답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말투만 보면 곽대출은 그룹 부회장이 아니라 딱 신강남파 고문 수준이었다.
“오늘 화끈하게 차웅진 회장과 야쿠자 조직원들을 해치운 건 참 좋았는데 뒤처리가 좀 아쉬웠어요. 특히 국내는 어찌어찌 처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제 문제로 비화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가 느닷없이 일본 정부로 튀어?
고작 반나절 지난 일이었다.
검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지경그룹 부회장은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방지병원 병실에서 떠들고 있었다.
강성태의 속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해한다는 투로 곽대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남자가 우리 그룹 천중명 회장입니다. 내가 유일하게 고개 숙이는 남자이기도 합니다. 중국 삼합회는 물론이고, 중국 정부와 파생상품 거래로 부딪쳐 승리한 건 경영계에서 전설로 통합니다.”
이야기가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어서 질문은커녕 곽대출이 떠드는 말을 받아들이기도 바빴다.
한 가지만 생각했다.
유헌우가 소개한 지경그룹 부회장이 심심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믿음이었다.
“그런 천중명 회장이 고개를 저을 만큼 굉장한 괴물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것도 두 명이나.”
검지와 중지를 세워 숫자 ‘2’를 표현한 곽대출이 생각만 해도 지친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그 괴물 두 양반이 우리 회장님에게 아프리카를 추천했지 뭡니까. 그 바람에 가뜩이나 까만 내 얼굴이 이렇게 시커멓게 굳어버렸지 뭐요.”
“죄송하지만, 정말 하시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강성태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중국의 최종 목표는 아프리카요. 강성태 회장,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이 멕시코에 건설하는 신도시 수준이 아니라 자원을 담보로 해당 국가에 도로, 항만,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 그 기회가 검은 대륙에서 펼쳐지고 있소.”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굳이 병원을 찾아오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던 두 명의 괴물 중 대장 괴물이 일본 정보국에 압력을 행사할 거라는 소식을 전하려고 왔소. 일본은 아마 유감을 표명하는 거로 이번 사건을 덮으려고 할 거요.”
“조금 전에 국제 문제로 키우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내일 보도를 보면 알겠지요. 오늘 밤 대장이 일을 마무리 지었는지, 아니면 헛소리한 꼴이 돼서 망신을 당할지. 솔직하게 나는 후자였으면 좋겠소. 사람이 실수도 좀 하고 해야 정이 가지.”
“다 좋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본 적도 없는 그 대장이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겁니까?”
“좋은 질문.”
검지로 강성태를 가리킨 곽대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건설될 아프리카의 신도시에서 밤을 지배할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침 하늘이 대장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우리 강성태 회장이 등장한 거요. 용병 출신, 마약과 고리대금업을 틀어막는 강단과 실력까지 꼭 우리가 찾던 인물인 거지요.”
다 알고 왔다. 곽대출 부회장은.
대꾸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기가 막힌 설명이어서 강성태는 입을 다문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멕시코의 신도시 건설을 통해 경험을 쌓고, 또 그 과정에서 강성태 회장의 뜻을 이어받을 사람들을 교육해 주면 됩니다. 그런 뒤에 검은 대륙의 신도시 건설에서 각자 활약해 주길 바랍니다.”
“말씀 도중에 죄송한데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하면 아까 말씀하신 일본 정부의 무마 건도 없던 일이 됩니까?”
“양아치도 아니고. 이미 손 쓴 일을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고강준 고검장과 이우섭 부의장에게 더는 부탁하지 않아도 될 거요.”
유헌우 원장의 소개, 지경그룹 부회장이라는 직함, 의심할 이유가 없는데 그가 말한 내용만큼은 단순히 믿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고민해도 됩니까?”
“앞으로 3년 정도는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해도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하나요. 대한민국이 건설하는 아프리카의 신도시에서 마약, 고리대금업, 인신매매가 없을 것. 어떻소?”
“그럼 저는 뭘 얻게 됩니까?”
“검은 대륙에서 건설되는 모든 신도시의 밤을 지배하게 되겠지요. 보스 오브 블랙필드쯤 되려나? 카지노, 엔터테인먼트, 클럽, 얻을 건 무궁무진할 텐데, 어떻소?”
“흥미롭기는 하네요.”
강성태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투로 곽대출이 픽 웃었다.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십니까?”
“도깨비라고 들어봤나?”
“특작 부대 사례에서 들어만 봤습니다. 훈련이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지랄 같지.”
이병렬과 김진용이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강성태와 곽대출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나는 비행기 시간이 걸려서 이만 가보겠소. 그룹 전용기라서 시간에 쫓기는 건 아닌데 그렇더라도 다음 약속이 있어서 말이오.”
처음으로 점잖게 말을 건넨 곽대출이 걸음을 옮겨 강성태에게 다가왔고, 이어 손을 내밀었다.
“삼합회 별거 없어. 그냥 확 밀어버려. 아니면 눈알을 파버리던가. 혹시라도 거친 남자가 필요하면 연락하고. 아프리카에서 보자.”
특수부대 출신인 걸 밝혀서 그런지, 선배가 후배를 대하는 태도였다.
대뜸 내놓는 반발인데도 그의 눈에 담긴 강성태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 함께하길 바라는 열정을 분명하게 보아서인지 그저 웃음이 나왔다.
강성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단단하게 쥐었다.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함께 폭탄주라도 마셨을 텐데 아쉽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때는 멀쩡한 몸으로 보자고. 여기 이병렬 씨와 함께.”
강성태의 손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던 곽대출이 몸을 돌려 이병렬, 김진용과 의미 있는 시선으로 악수를 나눴다.
차분하게 인사한 그가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참! 정세원 회장 알지? 그 양반이 불편하게 하면 나를 만났다는 말을 슬쩍 흘려. 우리 천중명 회장께서 제안을 주셨다고. 그럼 어지간한 일은 다 해결될 거야. 아프리카에서 보자.”
씨익 웃은 그가 마침내 병실을 나섰다.
도깨비 출신이라더니 그야말로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병렬이 툴툴댈 때 강성태는 그가 나간 병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한 남자였다.
강렬한 눈매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정을 담고 있었다.
“아프리카라….”
어쩐지 용병 시절을 함께했던 아저씨도 검은 대륙에 초대하면 와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지경그룹 부회장 곽대출의 말대로였다.
고강준, 이우섭, 소신영이 국내 문제를 정리했고, 엄청난 발표에도 일본 정부는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서 별일 아니라는 투로 진화에 나섰다.
특히 놀라운 건 일본의 방송이었다.
단신으로 짧게 처리했을 뿐, 어느 한 곳도 아카시 조직이나 영화 촬영소, 차웅진에 관해 보도하지 않았다.
조용하게 일이 처리되는 게 못마땅할 이유도 없어서 강성태는 모처럼 여유를 즐기며 마카오 회의를 준비했다.
- 깡패! 너 진짜 이럴래?
불행하게 독이 잔뜩 오른 강선영의 전화가 있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나.
“뭐가 또?”
- 미쳤어? 왜 나를 자꾸 방송에 태워?
“고강준이나 이우섭, 소신영이 의도적으로 너를 띄워서 시선을 돌리려는 거 같은데 나는 그런 거 지시한 적 없다.”
- 야쿠자 건도 브리핑하기 죽겠는데 그 더러운 사이트 건까지 터져서 미치겠다. 기사 봤니? 나더러 정의의 수호신이란다. 깡패야! 내가 이렇게 빌 테니까 나 여기에서 빼주라.
“나는 그럴 능력이 없어.”
강성태의 답이 건너가자 강선영이 불만 가득하게 내쉬는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왔다.
- 사건을 해결하기도 이상하잖아. 회원은 모조리 찾아냈는데 정작 사이트를 만든 주범이랑 운영진이라는 공범이 한 명도 없어. 이게 나 물먹으라는 거 아니고 뭐야?
투정치고는 억양이며 감정이 선을 넘는 느낌이었다.
“강선영.”
강성태가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아차 싶었는지 강선영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깡패도 지키려는 정의다. 검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가지고 투덜대지 마.”
- 일이 많아서 조금 흥분했었나 봐. 알았어. 진행 상황 봐서 특별한 게 있으면 연락할게. 참! 클럽에 데려가 주기로 한 약속 잊지 마.
“사건부터 마무리해.”
- 알았어.
물론 불만은 강선영만 지닌 게 아니었다.
5백억 대신 4천억 원이라는 큰돈을 받은 JBC 회장 소신영도 불만을 품은 건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을 위한 재단 설립이라는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보상받았다고 느꼈는지 대놓고 툴툴거리지는 않았다.
**
마침내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날, 최치곤은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히죽거렸다.
“누가 보면 퇴원하는 줄 알겠다.”
그 꼴이 속없어 보였는지 이병렬이 끝내 한마디를 던졌다.
“힘든 보스 오래 붙잡지 말고 적당하게 끝내. 하기는, 밤늦게 오는 신데렐라 아가씨 때문에라도 오래 끌지는 않겠구나.”
최치곤에게 당부를 전한 이병렬이 몸을 돌렸다.
“나는 진용이랑 신월동에 넘어가 있을게. 그리고 말이야. 주차장에 있는 애들, 이제 반으로 줄일까 하는데 어때? 광주에서 올라온 애들도 그렇지만 필리핀 쪽 애들도 고생이 많았어.”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강성태와 몇 가지를 의논한 이병렬이 김진용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강성태와 최치곤이 편하게 이야기 나누라며 자리를 피해 주는 느낌이었다.
차웅진, 일본의 야쿠자 조직, 곽대출의 방문까지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마카오에서 갚아줄 게 있으니까 그거 정리하고 멕시코로 넘어가야지. 아프리카는 한참 뒤의 일인 데다 멕시코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소용없잖아.”
“아프리카에 건설하는 도시가 많은 거겠지?”
강성태는 먼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멕시코 신도시를 통해서 교육하라는 거 보면 각 도시를 이끌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지.”
“나, 참. 민정이 돕겠다며 인천에 뛰어갈 때만 해도 연수구 조직이 보복할 걸 걱정했는데 이제는 아프리카까지 가게 생긴 걸 보면 사람 일 진짜 모르겠다.”
“아프리카는 아직 결정 안 났어.”
“내가 볼 때 너는 거기 가.”
“뭘 보고?”
“내가 널 몰라?”
툴툴거린 최치곤이 입술을 뒤틀며 창을 바라보았다.
“뭔데 표정이 또 그러냐?”
“아프리카 말이야. 결혼을 하고 가야겠지?”
픽 웃은 강성태는 착잡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장 멕시코만 해도 다들 총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아야 해. 훈련을 마치면 바로 진짜 방아쇠를 당기는 싸움을 해야 하고. 얼마나 죽고 다칠지 가늠도 안 된다.”
“그래도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냐?”
“총이나 폭탄이 얼마나 사람을 허무하게 죽이는지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옆 차에서 총구가 튀어나올 때의 섬뜩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도로에서 인생 끝나.”
“흐음.”
한숨을 내쉬고는 있지만, 최치곤은 강성태의 말을 반쯤만 알아들은 눈치였다.
“오늘도 은주 씨 오냐?”
“병실로 간다고 전화하니까 좋아하더라.”
“엉뚱한 짓 하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을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너는? 오늘 다미 씨 만나?”
“봐서. 그럼 나는 곤잘레스 회장의 동선 확인하고 신월동으로 넘어갈게. 커피 알리고 앞에 부동산 사장님 있잖아? 그분 좀 뵈려고.”
“뭐냐, 또? 누가 와서 깽판 쳤대?”
“그런 게 아니라 이모께 선물 하나 드리려고.”
대강 이야기를 전한 강성태는 몸을 세웠다. 그런 뒤에 느긋하게 병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