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1권 - 5화 (418/513)

《418》2부 21권 - 5화

뭐든 요구하라는 조태완의 의도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아무튼 도움을 청할 일이 있었다.

“의논드릴 게 있습니다.”

강성태가 나직하게 입을 열자 조태완과 이병렬이 ‘이번엔 또 뭐지?’ 하는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다음 주에 마카오에 갑니다. 그때 서른 명 정도를 선발해서 데려가고 싶습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조태완은 눈만 껌벅였고, 마카오 회의에 대해 들었던 이병렬은 이유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곤잘레스 회장의 경호 업무를 도와줄 인원입니다. 기간은 사흘, 숙소는 곤잘레스 회장과 같은 호텔이고, 이동 비용, 숙소, 식사를 모두 부담하고 수당은 한 사람당 1억 원씩 책정했습니다.”

“가만있어 봐. 마카오인가에 가는 식구들 한 명당 1억 원을 주겠다는 거야, 지금?”

“그렇습니다.”

“왜?”

조태완이 의아해하는 만큼 강성태 역시 그의 짧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비행기 표 사주고, 사흘 가 있는데 1억 원씩 준다는 거 아냐, 지금? 가서 줄줄이 죽어 나가는 일이야?”

“그렇지는 않겠지만, 위험할 수는 있습니다.”

강성태의 답에 조태완이 심오한 표정으로 이병렬을 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라고 말 좀 해봐.’

말로 하는 것만큼이나 그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또렷했다.

“우리 바닥이 원래 동생들에게 목돈을 쥐여주면 기강이 흔들려. 돈 쓰는 맛이 들면 일을 찾아서 밖으로 돌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조직이 불러도 외면하는 놈이 생겨.”

“돈벌이를 찾겠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가 있어?”

“보스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니까 문제지. 떼인 돈 받아주겠다며 잘라 먹는다거나 은퇴한 양반들 앞마이 서서 잡일 해대는 건데 그걸 놔두면 조직이 아니라 양아치 집단이 돼.”

“그런 놈들이라면 차라리 나가는 게 더 낫지 않나?”

“문제는 빠져나간 놈들이 돈 번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숙소 생활하는 동생들이 흔들린다는 거지. 요즘이야 시켜 먹고, 세탁소 이용하니까 밥하고 빨래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래도 돈 벌고 싶은 마음은 같지.”

강성태는 이제야 조태완과 이병렬의 걱정을 알아들었다.

“병렬이 너한테는 이미 말했지만, 나는 멕시코 신도시 건설에 우리 조직과 함께 갈 생각이다. 그곳에서 성공하면 아프리카에 갈 생각도 있고.”

“멕시코는 뭐고, 아프리카는 또 뭐야?”

“그게 형님.”

내용을 모르는 조태완을 위해 이병렬은 알고 있는 선에서 간략하게 내용을 전해주었다.

“정말 지경그룹 곽대출 부회장이 직접 병원에 찾아왔어?”

“그분을 아십니까?”

“건설 쪽에서 밥 먹고 살던 건달들은 곽대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어.”

궁금해하는 강성태를 향해 조태완이 말을 이었다.

“아파트 건설은 원래 우리 같은 깡패들을 끼고돌거든. 조합장 선정부터 철거까지 용역이란 명분으로 조직이 일을 다 하니까. 문제가 생기면 용역 책임이라는 핑계로 건설사가 빠져나가기도 좋고.”

이세종의 처남이 진행하던 재개발 사업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되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지경건설에 곽대출 부회장이 내려오면서 깡패들 죄 박살 나서 쫓겨났어. 그것뿐이야? 조직 먹고 살라고 섀시 같은 거 우리 쪽에 주고 했는데 그거 그 양반이 전부 오함마로 깨부쉈지.”

곽대출의 인상과 성격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그를 떠올린 강성태는 기가 막힌 심정으로 웃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 용인에 있는 아파트는 아예 벽을 다 부수고 새로 짓다시피 했다니까. 그때 그 뭐냐? 그래, 타워크레인. 그거 중간이 부러졌을 때는 회장이 직접 올라가서 기사를 구해내기도 했는데.”

“그건 저도 뉴스에서 봤습니다, 형님.”

이병렬이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꽤 유명한 일화인 모양인데 용병 시절이나 경호원으로 멕시코에 있었을 시기였는지 강성태는 듣지 못한 일이었다.

“말이 이상하게 샜네. 그래서 보스는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냥 멕시코에 가겠다, 아프리카에 가겠다, 하면 나 같은 퇴물은 못 알아들어.”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조금 전에 병렬이가 말했던 대로 신도시의 밤을 장악할 조직을 꾸릴 계획입니다.”

이어서 강성태는 신도시에서 해야 할 일과 막아내야 할 일들을 설명했다.

“후-.”

조태완의 한숨이 무척 길었다.

“보스. 오해하지 말고 들어. 깡패라는 게 제 잘난 맛에 삐뚜름하게 살던 놈들인 건 알잖아. 처음엔 보스가 무서워서 따를지 몰라도 조금 지나면 여자 생각도 나고, 술도 처먹고 싶고, 놀고 싶기도 할 테고, 무조건 사고 치는 놈들이 나와.”

“그래서 근무하는 인원을 돌릴 생각입니다.”

“돌리다니? 뭘, 어떻게?”

“1년 근무 후에 원하는 사람은 한국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강성태가 계획을 말한 직후였다.

“나 어릴 적에 사우디 파견 노동자 같은 거로구만.”

조태완은 생소한 예를 들며 단박에 강성태의 뜻을 알아챘다.

이것 역시 강성태는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멕시코에 남겠다는 놈이 생기면 그대로 두나?”

“1년에 우리 돈으로 1억에서 2억 사이의 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기회가 생기면 그쪽에 업장을 맡겨 독립시킬 생각도 있고요. 또, 그중에서 선발해 아프리카의 신도시에 지휘자로 보낼 생각도 있습니다.”

“젠장. 내가 젊었을 때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만약 이런 기회가 있다면 멕시코로 가셨겠습니까?”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조태완은 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가지.”

그런 뒤에 그는 다시 확신에 찬 표정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나라면 갔다. 1년에 억을 준다는 데 룸살롱 관리하느니 거기 가는 게 백번 낫지. 게다가 잘하면 아프리카 신도시 조직의 책임자가 되는 거 아냐. 가지! 가!”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단호하게 말을 하던 조태완이 퍼뜩 알아챈 게 있는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혹시 마카오에 데려가는 놈들을 통해 소문을 내려는 거였나? 제대로만 하면 1억씩 번다, 이렇게?”

“비슷합니다.”

“후우.”

이제야 의문이 모두 풀렸다는 투로 조태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병렬이 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냐?”

“대강은 알 거 같습니다, 형님.”

“나는 이제 우리 보스가 정말이지 괴물 같다.”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형님.”

“참, 나. 삼합회가 그렇게 해외로 나가려고 버둥대서 한다는 짓이 차이나타운에 죽치는 건데 우리 보스는 아예 멕시코에 신도시를 먹어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다음은 아프리카 전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조태완이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공사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노동자를 핑계로 삼합회가 신도시를 장악했을 겁니다. 지경그룹이 아프리카에 나간 것도 그런 이유고요.”

“알았어. 그럼 우리가 뭘 해주면 돼?”

“자격에 맞는 인원 서른 명을 선발해 주십시오. 일단 출국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강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무술 자격증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그 정도야 뭐.”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서 술이나 여자로 사고 치면 제가 정말 독하게 해결할 겁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동의하는 사람만 선발해 주십시오.”

“우리가 추린다고 해도 보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 최소 60명은 골라봐야겠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조태완이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함께 들었으니 알아서 하란 의미로 보였다.

“클럽은 어떻게 할 거야?”

“조직 일은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병렬이가 알아서 하고, 혹시 제가 나서야 할 자리가 있다면 그때 움직이겠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병렬이 네가 일이 많겠다.”

“어차피 천안까지 돌아볼 생각이었으니까 영권이 핑계로 이참에 싹 정리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부산 교창이 형님하고 대전 배근이 형님께 지역 단도리하라고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부산은 노익이한테 말하는 게 빠르겠고, 배근이는 내가 오늘이라도 전화해서 숙소 돌아보라고 하마.”

“감사합니다, 형님.”

이병렬의 요청을 조태완이 받아들이면서 의논을 마쳤다.

의도치 않게 여러 가지 일들을 단숨에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걸 정영권 덕분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강성태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저는 그럼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형님.”

말을 마친 이병렬이 김진용을 돌아보며 눈짓을 던졌다.

어디 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정영권을 챙기라는 의미였다.

김동팔에게 당했던 데다, 이번에는 정영권에게 칼을 맞을 뻔했던 터라 조태완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영권, 이 멍청한 인간.

적당히 했어야 용서하자고 말이나 하지, 조태완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었으니 누가 들어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

병원에서 겨우 퇴원한 이교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은선곤이라고 강명그룹 비서실 출신인 데다, 그룹 컨소시엄 책임자를 맡을 정도니까 능력은 말 안 해도 알겠지? 오죽하면 영권이가 칼을 들었겠냐? 너는 그런 실수 없도록 부산 단단히 챙겨.

“이쪽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 부산에 내려간 지 얼마 안 된 게 오히려 다행이다. 혹시라도 실수한 게 있으면 나한테 미리 말해.

“그런 거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형님.”

- 아, 참. 숙소에 생활비 내린 거, 동생들 몫 빼돌려서 입 닦는 놈 있는지도 철저히 챙겨라. 병렬이가 안산부터 천안까지 돌 거고, 배근이가 대전부터 광주까지 싹 훑는다니까 부산도 실수하는 일 없게 해.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형님?”

말끝에서 이교창은 박노익을 붙들었다.

“우리 바닥에 원래 동생 돈이라는 개념이 없지 않습니까? 막말로 숙소 막내가 짜모를 챙기고 안 내놓는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형님.”

- 그렇게 생각하면 보스랑 만나게 되겠지.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질문했던 이교창은 등골이 시큰해지는 느낌에 마른침을 삼켰다.

강성태랑 마주 서라고?

그것도 숙소 동생 통장에 직접 넣어준 돈을 빼먹고서 옛날이 어쩌고 하는 핑계로?

“제가 숙소 확실히 챙기겠습니다, 형님.”

- 그래. 그 은선곤이 달라는 서류나 자료도 최대한 모아줘.

“예, 형님. 쉬십시오, 형님.”

통화를 마친 이교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강남파는 확실히 그가 지금까지 알던 조직과는 달랐다.

부산을 정리하라며 내려준 돈이 10억 원을 훌쩍 넘길 정도인 것부터 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었다.

막말로 1억 원만 생겨도 조직 보스가 달려와 손 내미는 세상에서 그 정도 돈을 내려준 데다, 매달 숙소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 통장에 생활비까지 찍어주었다.

이런 조직이 있었나?

이교창은 병원 주차장에서 보았던 강성태의 강렬한 눈빛을 떠올리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야쿠자 놈들을 승합차에 싣고 오는 배짱이라니.

그러고 올라가서 인천을 털었다.

야쿠자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스마트폰을 움켜쥔 이교창은 불편한 몸을 일으켰다.

업장과 숙소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

조태완의 집을 나선 강성태는 곧장 신월동 오거리에 있는 프리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일찍 움직인 덕분에 아직 하루의 절반이 고스란히 남았는데 씁쓸하게도 이것 역시 정영권이 아침나절에 사고 친 덕분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입구에서 기다리던 아르윈이 조직원들과 함께 상체를 숙였다.

“모시겠습니다, 형님.”

인사를 마친 아르윈이 앞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프리 스테이션 안은 무대 앞을 깨끗하게 치우고 강성태를 위해 마련한 소파와 테이블만 중앙에 준비해 둔 모습이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형님?”

“고마워.”

아르윈이 맞은편에 앉은 다음이었다.

곧바로 필리핀 조직원이 커피를 가져와 앞에 놓아주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는데 말이 새 나가면 우리가 위험해져. 아르윈이 조직원들과 함께 들어도 된다면 그냥 이야기하고, 아니면 자리를 비켜줬으면 싶다.”

강성태의 말을 들은 아르윈이 홀 안을 돌아보았다.

“형님 모시고 모텔, 공항, 안산, 야쿠자 작업을 함께했던 동생들입니다. 이 중에서 말이 새 나가면 제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다부진 아르윈의 답에 강성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앞에 함께했던 일들이 밖으로 새 나간다고 치면 당장 후폭풍이 얼마나 드셀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필리핀 보스에게 연락해서 계좌를 하나 받아. 그곳으로 우리 돈 50억 원을 보낼 거다.”

“예? 형님?”

늘 진중하고 묵직했던 아르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필리핀으로 우리 돈 50억 원에 해당하는 달러를 보낼 테니까 계좌를 받으라고.”

다시 한번 같은 내용을 들은 아르윈이 마른침을 삼켰다.

“회의 이틀 전에 내가 마카오로 출발할 거다. 그 이틀 동안,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인 유리 마고첸프와 일곱 명, 야쿠자, 삼합회 섭충명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다.”

잠시 멍했던 아르윈의 눈에 서서히 독기가 올라왔다.

“히트맨이 필요하십니까?”

“대략 20명 정도 필요해. 권총과 탄환도 필요하고. 저격용 소총이 가능한지 확인해 봐.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히트맨 중에 사망자나 부상자가 나올 수 있다.”

“50억 원에 해당하는 달러를 보내면 모조리 죽는다고 해도 히트맨 50명은 마카오에 보낼 주실 겁니다, 형님.”

“아무튼, 내 목적은 희생자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거다. 지난번 모텔이나 공항처럼.”

말을 마친 강성태는 아르윈을 흉내 내듯 홀 안을 돌아보며 주변을 지키는 필리핀 조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또렷하게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일을 함께했었다.

“한 가지 요구가 더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형님.”

“아르윈과 여기 조직원들이 나와 함께 마카오에 갔으면 싶다. 기간은 회의 끝날 때까지 닷새다. 항공편, 숙소, 식사는 모두 내가 부담하고, 함께 가는 조직원 한 사람당 1억 원, 아르윈 너에게는 5억 원. 이게 내가 지급할 수 있는 수당이다.”

“형님?”

“부족해서 그래?”

“그게 아니라….”

아르윈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시선에 걸린 필리핀 조직원들 모두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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