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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2권 - 4화 (437/513)

《437》2부 22권 - 4화

한때 막살아서 깡패가 되었다고 해도 신강남파 전체 인원에서 강성태가 고른 덩치들이었다.

당연하게 근성은 물론이고, 눈치도 있었다.

아침부터 관광을 핑계로 돌아다니고, 카지노와 해산물 레스토랑에 들렀지만, 그 과정에 말하지 않은 계획이 있으리라 짐작들 하는 눈치였다.

호텔로 돌아온 강성태는 마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여행사 대표처럼 덩치들을 연회장으로 모았다.

“아르윈.”

강성태가 돌아보자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문을 닫고는 안쪽을 지켰고, 키란은 나머지 조직원 몇 명과 나가 복도를 경계했다.

“지금껏 잘해줬다. 그리고 내일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이 입국한다.”

가장된 여유를 짐작하던 덩치들이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는 얼굴로 강성태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곳 마카오는 삼합회의 세상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한 번도 충돌한 적이 없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곤잘레스 회장의 입국을 계기로 맞붙게 된다는 뜻이다.”

올 것이 왔구나.

덩치들의 얼굴과 눈빛이 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부터 곤잘레스 회장의 입국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한다. 명심해. 잠시라도 방심하면 우리 중에 누가 희생될지 모른다. 그러니 정신 바싹 차려서 지금 이 상태로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왜 강성태가 섭충명을 살려두었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뭐라고 해도 결과가 말해주듯 강성태가 완벽하게 마카오에서의 상황을 통제하고 있어서 덩치들은 전에 없이 집중하는 태도였다.

“지금부터 공항에서부터 호텔, 그리고 만찬장에서의 동선을 알려줄 테니까 기억해.”

강성태는 이병렬부터 유섭우, 그리고 덩치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웠다.

“곤잘레스 회장이 이동할 때면 먼저 2선 경호원인 멕시코 가페 대원들과 존 보스만을 비롯한 기존 경호원들이 자리 잡을 테고, 이어서 고룡동을 포함한 우리 식구들이 움직인다.”

상황을 설명한 강성태가 아르윈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르윈이 곤잘레스 이두안의 역할을 맡았고, 필리핀 조직원들이 2선 경호원을 대신해 움직였다.

“시선을 뺏기지 마! 맡은 구역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모텔에서 연습했듯이 막아! 그러지 않으면 경호에 실패하는 건 물론이고, 내 곁의 누군가가 죽어!”

지금껏 강성태가 이렇게 날카롭게 지시한 적은 없었다.

그 바람에 이병렬과 유섭우까지 실전에 뛰어든 것처럼 날카롭게 연회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르윈! 키란을 불러!”

이어서 바깥 복도를 경계하던 키란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삼합회 역할을 맡았다.

“시작해.”

곤잘레스 이두안 역할을 맡은 아르윈과 경호원을 대신한 필리핀 조직원들이 연회장 안쪽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안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키란이 함께 있던 필리핀 조직원들과 우르르, 움직였다.

키란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향해 덩치들이 달려들었고, 삽시간에 럭비 선수들처럼 그들을 덮쳤다.

물론, 키란이 작정하고 대항했다면 이 정도로 쉽게 제지당하지 않았겠지만, 이병렬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민첩하고, 강단 있는 태도였다.

세 번의 훈련이 끝난 다음이었다.

일어서는 것을 돕기 위해 손을 뻗는 덩치를 향해 키란이 씨익 웃었다. 그가 판단하기에도 신강남파 식구들이 적절한 반응과 이후 동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자.”

흡족한 성과였다.

강성태는 아르윈과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던지고는 그쪽으로 움직였다.

지켜보며 지시만 하던 강성태가 함께 움직이는 훈련이었다.

덩치들이 긴장한 채 대기할 때, 아르윈과 조직원들이 함께 움직였다.

철컥.

그리고 그 직후에 강성태를 시작으로 삼합회 역을 맡은 필리핀 조직원들이 권총을 꺼내 들었다.

“멈춰!”

권총을 손에 든 강성태가 훈련을 중지시켰다.

“이번에 시선을 뺏긴 사람 손 들어.”

냉정한 지적에 고개를 떨군 덩치들 십여 명이 손을 들었다. 훈련 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고, 그 안에는 이병렬과 유섭우도 있었다.

“미안하다. 다시 한번 하자, 보스.”

시선을 뺏긴 덩치들을 대신해 이병렬이 잘못을 인정했고, 이어 강성태에게 청을 넣었다.

“다들 권총을 지니고 있고, 내일은 탄창도 지급할 거다. 하지만, 쏠 일은 없어. 사용해서도 안 되고. 그런데도 무거운 권총을 왜 지급했는지 생각해. 폼 잡으라고 줬을까?”

숙연한 분위기에서 강성태는 연회장에 서 있는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이런 순간에 너희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그러려면 상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그에 따른 동작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해. 단순한 변화에도 시선을 뺏기면 결정적인 순간에 경호 대상과 적을 구분하지 못해. 그걸 명심해서 움직여.”

강성태의 가르침을 들으며 이병렬은 나오는 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눈앞에 있는 덩치들은 마카오에 오기 전에 알던 신강남파 깡패들이 아니었다.

번들거리는 눈빛, 각오, 듬직한 태도, 이병렬의 눈에는 덩치들이 정말 경호원처럼 보였다.

**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은 전용기를 이용해 마카오 국제공항에 바로 내렸다.

한 동짜리 청사가 전부일 정도로 규모가 작았고, 시설 또한 별거 없었는데 대신 홍콩을 거쳐 입국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었다.

강성태와 키란, 이병렬이 입국장을 향해 서 있었고, 신강남파 덩치들이 정해진 위치에 서서 청사 출입구를 경계했는데 태도와 자세가 워낙 삼엄해서 오가는 승객들과 공항 관계자들이 몇 번이나 돌아볼 정도였다.

놀라운 점도 있었다.

이전 같으면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에 관심을 가졌을 신강남파 덩치들이 눈빛 한 번 흔들리지 않은 채 맡은 구역을 살핀다는 점이었다.

마침내 입국장을 통해 존 보스만과 멕시코 가페 대원들이 섞여 나왔고, 이어 곤잘레스 이두안과 그를 둘러싼 고룡동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봐?

존 보스만은 물론이고, 가페 대원들, 심지어 이런 경호에 익숙한 곤잘레스 이두안마저 감탄하는 눈으로 입국장 안을 돌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마카오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건가?”

안쪽을 경계하는 신강남파 덩치들과 이병렬, 유섭우의 태도에 자극받은 모양으로 고룡동과 덩치들이 더욱 강렬한 눈빛으로 곤잘레스 이두안 주변을 지켰는데 훈련한 대로 강성태를 향해 고개 숙이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본 곤잘레스 이두안이 느긋한 표정으로 웃었다.

누구보다 믿는 강성태가 옆에 있는 데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덩치들의 태도에 만족한 눈치였다.

그 사이, 강성태는 멕시코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사는 호텔에 가서 하겠습니다. 경호원들을 위한 승용차를 회장님 차량 뒤편에 연달아 놓았으니 존 보스만과 팀원, 그리고 가페 대원들의 순서로 탑승하십시오.”

존 보스만에게 눈짓을 던진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을 안내하듯 움직였다.

공항 앞에 세워둔 차를 향해 움직이는 곤잘레스 이두안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덩치들을 보며 존 보스만이 하얗게 빛나는 눈동자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라고?’

존 보스만이 감탄하는 눈빛이라면, 호세 로페즈 니에토와 가페 대원들은 놀라는 느낌이었다.

마카오 공항에서 경험하는 외곽 경호만 본다면, 2선으로 밀려난 것에 불평을 늘어놓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을 위해 뒷문을 열어준 존 보스만이 뒤편 승용차로 움직이는 동안, 강성태는 승용차의 조수석 문을 붙든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승용차에 오른 다음이었다.

강성태의 고갯짓에 따라 존 보스만과 호세 로페즈 니에토, 고룡동 일행이 모두 차에 올랐다.

천천히 움직이는 승용차를 따라 강성태가 따라 걸었고, 필리핀 조직원들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신강남파 덩치들이 빠르게 올라탔다.

마지막까지 주변을 확인한 강성태가 마침내 조수석에 몸을 실으면서 앞쪽을 달리던 승용차가 속도를 높였다.

호텔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강성태의 뒷모습을 보며 곤잘레스 이두안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존 보스만과 고룡동 일행에 둘러싸여 있어도 떨치지 못했던 불안함이 사라지며 나온 한숨이었다.

**

시티 오브 드림 마카오의 특실에 곤잘레스 이두안과 그의 비서, 수행원들이 들어서며 잠시 시간이 흘렀다.

화려함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한국이나 마카오 모두 특실의 구성은 비슷했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집무실에 자리한 뒤에 강성태는 바깥의 거실에서 존 보스만을 찾았다.

안다미와 의사들을 구하며 벌였던 접전 때문인지, 2선으로 밀려난 경호 탓인지는 몰라도 로페즈와 대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해한다. 그 정도는.

“경호팀장을 다시 만났으니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우리는 멕시코 정부가 파견한 경호 요원들이오. 가페는 아실 테니 설명하지 않겠지만, 고작 2선 경호를 맡기 위해 온 건 아니오.”

강성태는 묵묵하게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존 보스만에게 몇 차례 이의를 제기했으나 마카오에서 미스터 강을 만나 직접 이야기하라는 말에 참았소. 이제 경호책임자를 만났으니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경호를 할 수 있게 해주든가.”

존 보스만을 돌아보았던 로페즈가 시선을 가져온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이런 식이라면 철수해서 이곳에서의 일을 정부에 정식으로 보고하겠소.”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는 소지했습니까?”

“존 보스만에게 협조를 받으라고는 들었으나, 한국의 규정상 총기를 지니지는 못했소.”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손을 들어서 아르윈을 불렀다.

“권총과 탄창을 여기 있는 경호원들에게 지급해.”

“예, 형님.”

우리말로 지시한 내용이어서 로페즈는 물론이고, 존 보스만마저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조직원 두 명과 함께 하드 케이스를 가져온 아르윈이 권총과 탄창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정식으로 입수한 무기가 아니니 지니는 순간부터 불법 무기를 소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어?

로페즈가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는 앞에서 존 보스만은 씨익 웃은 뒤에 권총과 탄창을 집었다. 그 외에도 그의 팀원들 역시 하나둘 움직여 무기들을 손에 넣었다.

뜨거운 숨을 푹 내쉰 로페즈가 볼을 씰룩한 뒤에 존 보스만을 흉내 내듯 권총을 집었고, 그의 대원 네 명 역시 비슷하게 움직였다.

“다음은 뭐요?”

“오늘 중으로 테러가 있을 겁니다.”

탄창을 끼워 넣던 로페즈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회장님의 경호팀 중 권총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 존 보스만과 그의 팀원, 로페즈 당신과 대원 네 명, 그리고 내가 전부입니다. 어느 쪽을 맡겠습니까?”

“어느 쪽이라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시오.”

“테러범을 맡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2선에서 다음 상황에 대비하겠습니까?”

“테러가 있을 거라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시오?”

“경호팀장이니 그 정도는 해야죠.”

“테러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오간 대화였다.

“만약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멕시코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회장님의 최측근 경호를 가페 대원들에게 맡기기로 하지요. 나도 하나 묻겠습니다. 테러가 있다면, 그걸 제지할 능력은 있습니까?”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지, 로페즈가 대놓고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중에 총기를 사용할 인원은 나와 여기 두 개의 경호팀이 전부입니다. 가페가 뒤로 물러나겠다면, 존 보스만 팀이 테러범을 상대할 거고, 자신 있다면 로페즈 당신이 테러범을 맡아주면 됩니다.”

고개를 기울인 로페즈가 치켜뜬 것처럼 눈동자를 위로 들고는 잠시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불법으로 입수한 무기라고 들었소. 소지해도 죄가 되는데 이걸 사용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소? 그건 어떻게 해결할 거요?”

“모든 책임은 경호팀장인 내가 집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지급했다고 진술하고, 합법적인 경로로 입수한 줄 알았다고 대답하십시오. 그 정도면 책임은 면할 겁니다.”

로페즈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분명하게 답을 주었다.

중간에 선 존 보스만이 지켜보는 동안, 로페즈는 몇 차례나 볼을 씰룩였다.

“선택이 어렵다면 내가 정해드리죠. 단호함이 없는 경호원에게 테러범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2선을 맡아서….”

“맡겠소. 테러범.”

강성태의 결정을 뚝 자른 로페즈가 씹듯이 각오를 내놓았다.

“오늘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멕시코에서 우리에게 곤잘레스 회장의 최측근 경호를 맡기겠다고 했던 약속을 잊지 마시오.”

강성태는 대답 대신 존 보스만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 겁니까?’

그의 하얗게 빛나는 눈이 묻고 있었다.

“내가 마카오에 먼저 들어왔던 이유가 있겠지. 경호팀장으로 결정한 일이니까 혹시 내 말이 틀렸다면, 지금 약속한 내용대로 진행해.”

로페즈가 들을 수 있도록 강성태는 분명하게 뜻을 밝혔다.

“알겠습니다, 미스터 강. 테러범은 미스터 로페즈와 그의 대원들이 맡고, 만약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멕시코에서의 최측근 경호를 가페가 책임진다. 이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존 보스만의 확인이 끝나자 로페즈가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테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만약 테러가 일어났는데 범인을 제압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런 그를 향해 강성태가 질문을 건넸다.

가페를 어떻게 보고?

고개를 비튼 로페즈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일어났는데 강성태는 소방대장이라도 된 양, 느긋한 표정으로 답을 기다렸다.

“그것도 자신 없습니까?”

“원하는 게 뭐요?”

“멕시코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가페가 우리 경호에 절대 끼어들지 않는 겁니다. 그 약속에 당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어주십시오. 내가 그런 것처럼.”

혀를 이용해 볼을 불룩하게 밀어낸 로페즈가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강성태를 빤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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