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2권 - 10화 (443/513)

《443》2부 22권 - 10화

제4장.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카오에서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니 서울은 새벽 한 시 직전이었다.

마카오의 일이 보도되었을까?

아니면 서울에 그만큼 급한 일이 생겼나?

강성태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모?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 너 괜찮은 거야?

“느닷없이 무슨 소리예요?”

- 폭발에 날아간 사람이 너 맞지? 마카오 호텔에 서 있던 경호팀장이 너지?

현장 상황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복도에 서 있던 강성태는 퍼뜩 지금껏 보이지 않는 이세종을 떠올렸다.

“혹시 보도에 나왔어요?”

- 부상 정도가 안 알려졌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전화 받잖아요. 저 멀쩡하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 아효, 이 자식아!

강성태가 뻔뻔한 대꾸를 내놓은 뒤였다. 이모 장숙경이 토해낸 안도의 한숨이 넘어왔다.

이 정도면 안다미는 물론이고, 안호상 원장, 최치곤, 이은주까지 걱정이 대단할 게 분명했다.

- 너 그렇게 목숨을 걸고 일했던 거야? 그렇게 번 걸 왜 이모를 줬어?

“이모. 이런 건 저도 처음이에요.”

경호 도중에 사람 목을 자른 건 진짜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진짜 일은 덩치 커다란 경호원 있지요? 그 사람이 다했어요.”

- 텔레비전 보면 네가 다 하던데 뭐.

“뭘 보셨는지 모르지만, 현장은 달라요.”

어떤 영상이 나갔는지 알아야 변명을 해도 할 텐데 당장은 물어볼 수도 없는 갑갑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섭충명의 목을 잘랐다는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강성태는 일단 뻔뻔한 음성과 대꾸로 장숙경을 달랬다.

- 정말 괜찮은 거지?

“내일 들어가요. 빤히 볼 텐데 거짓말해서 뭐 해? 안 그래도 면세점에서 뭘 살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잘됐다, 이모. 받고 싶은 거 없어요?”

- 야, 이 속 빠진 놈아! 지금 선물이 문제야?

염려가 풀렸는지 이제는 장숙경의 거친 대꾸가 날아들었다.

“아이고, 우리 장 여사 마음 풀렸나 보네? 차라리 아프다고 거짓말할 걸 그랬나?”

- 내일 오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요. 아, 그리고 이모, 내가 여기 정리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나머지는 내일 들어가서 전화할게요. 아셨죠?”

- 아효! 조심해서 들어와.

귀찮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 이렇게 걱정해주는 이모가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강성태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키란이 팔뚝과 갈비뼈를 다친 게 가장 큰 부상일 정도로 이쪽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내서 안다미와 최치곤에게 전화를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강성태는 먼저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도대체 어떤 영상이 보도됐는지, 또 반응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복도에서 영상을 확인한 강성태는 보도를 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이세종에게 영상을 찍으란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거기에 특종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 또한 강성태였다. 그러니 발 빠르게 보도했다고 해서 이세종을 탓할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폭발 이후의 다급한 상황과 어둑한 조명 탓에 얼굴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었고,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나 위험한 일을 하고 다닌다는 걸 광고한 셈이었다.

반드시 안다미는 보았을 거다. 그런데도 전화가 없는 건 급할지 모를 상황에 염려를 늘어놓고 싶지 않아서일 게 분명했다.

강성태는 안다미의 번호를 눌렀다.

괜히 자는 걸 깨우나?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성태 씨?

걱정하고 있던 게 확실한 안다미의 답이 있었다.

“혹시 보도 때문에 염려하고 있을까 봐 전화했습니다.”

- 봤어요, 보도. 아빠도 걱정하고 계셨어요. 바쁠 거 같아서 전화하지 않았고요.

“안 그래도 이제 겨우 여유가 생겼습니다. 상처가 몇 개 있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강성태의 설명이 건너간 직후였다. 이모 장숙경과는 다른, 그러나 분위기는 거의 비슷한 안도의 숨소리가 들렸다.

“내일 오전 회의를 마치면 바로 한국으로 출발합니다. 도착하는 대로 전화할게요.”

-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잘했다, 전화.

안다미의 말을 들으며 강성태는 전화하기를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안한데 치곤이에게 전화 좀 넣어주세요. 내일 귀국하는 대로 전화하겠다고요. 아버님께도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려주고요.”

- 그럴게요. 조심해서 와요.

통화를 마치고 객실을 향해 걷던 강성태는 아차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다시 확인했다. 염병할 보도를 최치곤의 아버지 최재섭도 분명 보았을 거란 예상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연락할 사람이 참 많았는데 최재섭부터는 지금처럼 간단하게 끝날 상황이 아니었고, 남은 일들도 정리해야 했다.

복도를 걸은 강성태가 곤잘레스 이두안의 객실 앞에 도착하자 광주 식구들이 눈인사만 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경험만큼 확실한 훈련은 없다.

지금 보이는 광주 식구들의 태도가 바로 그 증거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마와 목덜미에 하얀 거즈를 붙인 존 보스만이 지친 얼굴로 강성태를 맞았다.

“통로 천장에서 내려왔던 세 명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삼합회 조직원 두 명이 통로 천장과 주방 천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었다.

만약 당시에 곤잘레스 이두안이 그대로 통로에 들어섰다면 천장에서 폭발한 다이너마이트 탓에 지금쯤 중상이거나 사망했을 거다.

곤잘레스 이두안을 노렸던 일차 폭발로 천장에 구멍이 뚫렸고, 통로 천장에서 섭충명이, 주방 천장에서는 삼합회 조직원 세 명이 내려왔었다.

섭충명이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달려드는 사이에 주방의 천장에서 내려온 삼합회 조직원 셋은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로페즈와 대원 두 명의 총에 쓰러졌다.

설마하니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겠나 방심했었던 모양인데 사람이 세운 계획은 이렇듯 늘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고, 이번에 하늘은 강성태와 곤잘레스 이두안의 편을 들어주었다.

“경호원 중 중상 두 명은 위급한 상황을 넘겨서 내일 서울로 후송할 계획입니다.”

총에 맞았던 삼합회 조직원 셋이 죽었고, 경호팀 두 명은 생명을 건져 후송 계획이라는 보고로 만찬장에서 있었던 테러의 상황이 모두 종료되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은?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의 집무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면담 중입니다.”

징그럽다, 사업은.

테러가 발생한 밤인데도 곤잘레스 이두안에게 방문객이 있는 모양이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강성태는 무슨 소리냐는 투로 존 보스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통로에 들어설 때 말입니다. 그때 막아주지 않았다면 큰 후회를 남길 뻔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선 놈이 셋이라는 보고를 받았거든. 우리 경호 상태를 알 텐데도 고작 셋을 보냈다면 아무래도 나왔던 통로로 몰아넣으려는 게 아닌가 싶었어.”

그러고 보면 스크린 뒤를 확인하라며 아르윈을 내보낸 게 정말 다행이었다.

강성태의 설명이 끝난 직후였다.

집무실 문이 열리며 말끔한 모양새의 사업 파트너와 만족한 얼굴의 곤잘레스 이두안이 거실로 나왔다.

사업 파트너는 강성태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맞습니다. 오늘 현장을 완벽하게 지휘했던 경호책임자입니다. 이름보다는 미스터 강으로 기억하는 게 좋겠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소. 앞으로 진행될 멕시코의 사업도 오늘 밤처럼 분명하게 지켜주시오.”

곤잘레스 이두안의 설명을 들은 사업 파트너가 진심에서 나온 듯한 바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강성태는 가볍게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더할 수 없이 흡족한 표정으로 사업 파트너가 객실을 나선 다음이었다.

“내일 일정을 의논했으면 싶은데 괜찮겠나?”

“커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성태의 대꾸에 고개로 안을 가리킨 곤잘레스 이두안이 집무실로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서 도자기 주전자를 들어 커피를 두 잔 따랐다.

“부상은?”

“견딜 만합니다.”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이 건네는 잔을 받아서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부상이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섭충명에게 물렸던 어깨가 좀 더 욱신대는 느낌이었다.

“테러를 저지를 정도로 막무가내인 중국 정부와 끌려다니는 보리스 파리오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더군. 내일 오전의 회의는 간단하게 끝날 걸세. 회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출국할 텐데 괜찮겠나?”

“일정은 회장님께서 정하시는 겁니다.”

그런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잔을 내려놓고는 책상으로 움직였다. 상체를 기울였던 그가 책상 아래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백을 들고서 몸을 세웠다.

“뭡니까?”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거 같아서 가지고 있던 것 중 골라봤지.”

강성태에게 종이백을 건네준 이두안이 다시 잔을 들었다.

“자네와 닥터 안에게 주는 내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순간에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아서 더 기쁘고 고맙다는 인사가 적당하지.”

종이백을 내려다본 강성태가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였다.

“생명을 구해주었고, 걱정하던 만찬까지 말끔하게 끝났어. 지금쯤 미스터 은에게 꽤 많은 이들이 갔을 걸세. 아무래도 공사를 맡을 테니 부탁하고 싶은 게 많겠지.”

사업 진행을 확신하는 얼굴로 곤잘레스 이두안이 말을 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멕시코의 신도시 건설에 관한 준비를 해주게. 예산은 우선 한국 돈으로 천억 정도 배정될 걸세. 물론 경비로 확보한 금액이니 영수 처리는 미스터 은과 상의하는 게 좋겠지.”

말을 마친 그가 잔에 남은 커피를 마신 뒤에 기대하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를 찾아 한국으로 향했던 내 판단과 선택이 옳았음을 만찬장을 통해 증명받았지. 삼합회, 야쿠자, 태국과 베트남을 밀쳐냈으니 이제는 마피아와 카르텔을 상대해야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직전에 객실을 나선 사업 파트너와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곤잘레스 이두안은 만족한 얼굴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만찬장에서 보았던 보리스 파리오의 얼굴이 무엇보다 통쾌하더군. 자네가 이익 충돌이라서 경호해줄 수 없다고 했을 때 말일세.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지 뭔가.”

어쩐지 사업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보다 보리스 파리오를 밀쳐낸 게 더 통쾌한 게 아닌가 싶은 곤잘레스 이두안의 말이 있었다.

**

곤잘레스 이두안의 예상대로 은선곤은 밀려드는 사업 파트너들의 방문에 잠시도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안전이 중요한 상황이라 그가 사용하는 객실의 바깥과 안을 신강남파 식구들이 지켰고, 이병렬과 유섭우가 냉정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었다.

면담은 당연하게 영어로 진행되었다.

그 바람에 이병렬과 유섭우가 알아듣지 못했는데 사업 파트너들은 대개 객실을 지키는 신강남파 식구들을 비롯해 은선곤의 곁에 서 있는 두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표시했다.

칭찬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이병렬과 유섭우가 더욱 믿음직스럽다는 말도 있었는데 정작 두 사람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마카오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 30분이 넘어서야 마지막 면담이 끝났다. 사업 파트너를 배웅한 은선곤이 셔츠의 단추를 풀고서 넥타이를 바깥으로 당겼다.

“이제 끝났습니다. 편하게 앉으셔도 됩니다.”

“아후, 이제 좀 쉬자.”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은선곤이 재차 권하고서야 이병렬과 유섭우가 몸을 비틀었다. 꼬마 때나 했던 병풍을 세 시간 넘게 섰으니 몸이 비틀릴 만도 한 상황이었다.

“야식 좀 드시겠습니까?”

“여기에도 야식이 있나?”

“라면도 주문됩니다.”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서인지 꺼끌꺼끌하던 느낌이 사라진 덕분에 확실히 대화가 편하게 바뀌었다.

“물도 바깥에서 직접 사 온 것만 마시는데 어디에서 가져오는지 모를 야식을 시켜 먹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짓이지. 출출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보스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다.”

아! 그렇구나!

은선곤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대표님. 성태 큰 형님 오셨습니다.”

바깥에서 덩치의 음성이 들렸다.

몸을 세운 은선곤이 넥타이를 바르게 고쳤을 때 강성태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 끝났어?”

“예. 그렇지 않아도 야식을 할까 싶어 여쭤보자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성태는 바깥을 돌아본 뒤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고생한 건 알겠는데 우리와 함께 온 조리사가 아니면 믿기 어려워.”

유섭우가 가져온 의자를 본 강성태가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이병렬과 은선곤, 유섭우의 순서로 둘러앉았다.

“면담이 많았다며? 분위기는 어땠어?”

“공사에 관한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 자재 납품을 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고, 나머지는 신도시 건설에 지분 참여가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의 컨소시엄이 공사를 담당하는 게 확정이어서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다.

“신도시 건설로 우리에게 배당된 예산이 있다던데 관리를 맡아줄 수 있지?”

“회계팀에 맡기면 됩니다. 일차 예산이 천억 원 수준이던데 기본적인 숙박과 인건비 개념이니까 회장님께서 인원을 정해주시면 선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액을 들은 이병렬이 유섭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일억이 생기는 일에도 회칼을 들고 달려가는 현실에서 천억 원이라는 금액이 실감 나지 않는 눈치였다.

“인원 선발은 한국에 가서 의논하기로 하고, 이제 좀 쉬어야지?”

“공사가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해서인지 피곤한 줄 모르겠습니다.”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은선곤을 바라보았다.

칼질에 두려워하던 그가 만찬장의 테러 직후에는 다부진 모습을 보였고, 지금은 컨소시엄이 공사를 맡게 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내일 회의가 마카오에 온 진짜 목적이니까 억지로라도 쉬어. 그래야 지켜주는 사람도 편해.”

“알겠습니다.”

쉬라고 하고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몸을 세운 강성태가 이병렬과 유섭우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선곤이 나직하게 내놓은 말이 강성태의 시선을 붙잡았다.

다른 걸 다 떠나 진심에서 우러나와 건네는 말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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