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3권 - 6화 (459/513)

《459》2부 23권 - 6화

제3장. 내가 죽든, 그놈이 죽든, 둘 중 하나다.

이종환은 나름 믿는 덩치 일곱 명을 불렀다.

“야쿠자들이 설치는 건 들었지? 서라대학병원 큰형수님의 사진을 보내서 협박하는 바람에 치곤이가 신월동 숙소 식구들과 함께 응급실 앞을 지키는 것도 알 거고.”

이종환의 말대로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빤히 아는 내용을 씹듯이 내놓는 이종환의 눈에 독기가 올라 있어서 둘러앉은 덩치들은 혹시나 한 마디라도 놓칠까, 그의 말에 집중했다.

“성태 큰형님은 삼합회 칼잡이들이 들어와 있을 거라고 판단하셨다.”

말을 마친 이종환이 일곱 명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삼합회 놈들이 차려입으면 우리 신강남파 식구들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해. 그렇더라도 화교 출신인 너희 일곱 명은 알아볼 거라고 믿는다. 평소에 몸에 밴 습관은 하루아침에 절대 버리지 못하거든.”

혹시 하는 얼굴로 집중하는 일곱 명을 향해 이종환이 말을 이었다.

“편하게 입어. 절대 생활하는 티 내지 말고. 내가 정해주는 곳에 가서 뭐든 좋으니까 일이 있어 간 사람처럼 돌아다녀. 그렇게 움직이며 삼합회 칼잡이를 찾아내.”

이제야 이종환이 왜 독기를 끌어올렸는지 일곱 명은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수상한 놈을 발견하면 나한테 전화해도 좋고, 중국말로 떠들어도 돼. 놈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면 뭐든 해. 대신 일곱 곳에서 한 놈이라도 삼합회 칼잡이를 잡아주라.”

말을 한 이종환이 테이블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환자의 병원비를 구하러 온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형님?”

“부탁한다. 한 놈만, 한 놈만 잡아주라.”

“형님! 이러지 않으셔도 목숨 걸겠습니다, 형님.”

“성태 큰형님 가족, 병원 큰형수님, 태완이 형님, 그쪽 형수님, 노익이 형님, 병렬이 형님 근처다. 어쩌면 병원에서 치곤이를 노릴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라.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성태 큰형님이 아파할 대상을 노릴 거라고 하셨다.”

“형님! 이러지 마십시오.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덩치들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다음이었다.

이종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설명 다 했고, 간절한 바람도 전했다. 그런데 시선을 드는 이종환은 당장에라도 회칼을 뽑아 일곱 명의 목을 가를 것처럼 하얗게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화교랍시고, 말을 퍼트리는 놈이 있으면 내가 죽든, 그놈이 죽든, 둘 중 하나다.”

이종환이 무얼 염려하는지, 왜 이토록 살벌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독한 각오였다.

“어느 곳이든 다섯 놈에서 열 놈은 몰려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 찾아만 주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냐?”

“맡겨주십시오, 형님.”

덩치들의 답을 듣고 나서도 이종환의 눈빛은 풀리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고개까지 숙일 정도로 그가 독하게 이번 일에 달려들었다는 사실과 붙잡힌 삼합회 칼잡이의 최후가 더럽게 비참할 거라는 예상을 그의 눈빛이 대신 말하고 있었다.

**

아르윈은 조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마카오에 다녀온 덕분에 1억 원이라는 큰돈을 받았고, 눈물 그렁그렁한 가족들의 감사와 감동을 가슴에 품은 조직원들이었다.

“성태 큰형님께서 직접 내리신 지시다.”

강성태의 이름이 아르윈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필리핀 조직원의 표정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죽음 따위 상관없다는 투로 지시를 기다리는 조직원들을 보며 아르윈은 눈 끝에 독한 미소를 달았다.

“병원 큰형수님을 노린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부산으로 간다. 부산에서 할 일은 가는 동안 알려주마. 10분 뒤에 출발할 테니까 준비해.”

다른 놈들도 아니고, 강성태를 협박하며 안다미를 노린 놈들이었다. 사명감 가득한 얼굴로 바쁘게 움직인 조직원들이 모두 입구를 뛰쳐나갔다.

아르윈은 무대 반대편의 소파에 앉았다.

마카오 회의가 끝난 뒤에 말이다.

필리핀 보스는 열흘에 한 번꼴,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르윈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한국의 보스는 어떻게 지내시지?

한화 5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다.

심지어 죽어도 상관없다며 마카오에 보냈던 히트맨도 부상자 셋을 제외하면 모두 멀쩡하게 돌아갔다.

거기서 끝났다면 모를까, 강성태는 다친 세 명의 치료비와 위로금이라며 1억 원을 따로 보내주었다.

- 그분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 따라. 보고는 임무를 마친 뒤에 해도 상관없다. 히트맨이 필요하면 숫자에 상관없이 연락하고. 너를 믿어도 되겠지?

가디언스파의 그 지독한 보스가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강성태에게 완벽하게 고개 숙인 모양새였다.

짐작건대, 마카오에서 돌아간 히트맨에게서 강성태의 성품과 능력에 관해 들었을 테고, TV를 통해 회의장의 테러를 보아서 나온 반응이었다.

필리핀 노동자를 받아준다는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이 생긴 뒤로 이미 근로자들을 선발하는 마당이니 더 말해서 뭐하겠나.

만약, 은선곤이 대표로 있는 컨소시엄에서 고용에 관한 협조공문이 날아간다면, 가디언스파 보스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해서 강성태의 안부를 확인하고 남을 상황이었다.

이런 순간에 강성태가 아르윈을 찾았다. 그것도 안다미를 노린다는 놈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지금 지시를 전화로 알려준다면, 가디언스파 보스는 강성태가 지정하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서 시체의 사진을 보내라고 악을 써댈 게 분명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르윈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준비 끝났습니다.”

“키란은?”

“아까부터 승용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리핀 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충성심을 지닌 키란을 깜박 잊었다.

그렇다고 차에서 기다리다니, 고개를 저은 아르윈은 한창 영업을 준비하는 홀을 가로질러 문으로 향했다.

**

거들먹거리면서 낙곱새를 먹던 사카구치 소우타는 음식을 집는 척하며 입구를 돌아보았다.

이건 이상한데?

일부러 소주도 시켰다. 그래놓고는 보란 듯이 킬킬거렸다.

원하던 대로 한국의 깡패가 분명한 놈들이 분명 이쪽을 살폈었는데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마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는 듯이 말이다.

강성태, 이 새끼가 야쿠자를 무시해?

그것도 관동 연합의 사카구치 소우타를?

이상하게 자존심도 상하고, 불쾌한 심정이 울컥 올라와 그의 눈매가 위로 치솟았다.

일단 참는다. 그리고 확인한다.

억지로 눈꼬리를 내린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타이키입니다.

“갑자기 지켜보던 놈들이 사라진 거 같은데 그쪽은 어때?”

- 그러셨습니까? 이곳도 10분 전에 모두 돌아간 거 같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살펴봤는데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거 봐?

볼을 씰룩인 사카구치 소우타는 확인처럼 입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얼마든지.’

뭘 믿고 이러는 건지는 몰라도 강성태가 보낸 메시지는 명확했다.

“일단 식사하고 있어. 혹시 다른 반응이 있으면 바로 알려다오.”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그는 입술을 뒤틀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물론, 며칠 뒤에 일본에 돌아가 신강남파가 말 한 번 못 붙이더라며 비웃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건 사카구치 소우타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저녁 먹고 술을 마실 만한 곳이 있나? 저놈들이 멀리서도 우리를 볼 수 있는 곳?”

“광안리 근처에 회를 파는 가게들이 유명합니다. 유리가 커서 바깥에서 안이 훤히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서 떠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조개구이는 아무래도 먹는 모양새가 그러니까 횟집으로 하자. 우리가 먼저 광안리로 가서 가게 정한 뒤에 연락할 테니까 저녁 먹고 전부 그리 오라고 연락해.”

“알겠습니다.”

답을 들은 사카구치 소우타는 국자로 낙곱새를 떠서 개인 그릇에 담았다.

원래는 호텔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로비와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는 신강남파 덩치들을 객실에서 내려다보다가 심심하면 커피숍이나 들러줄까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맞은편 끝에 앉은 조직원이 스마트폰으로 그의 지시를 전하는 사이, 사카구치 소우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낙곱새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 전까지 입에 감기던 걸쭉한 음식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덩치들까지 서울로 불러들였을까?

갑갑하지만, 당장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어떡해서든 신강남파와 강성태의 시선을 부산에 붙들어둬야 오늘 밤에 칼질하기 수월해진다. 그러고 나면 내일 강성태와의 이야기가 편해진다.

눈이 뒤집힌 강성태가 부산에 내려와 달려들면?

대로변이나 호텔에서 시원하게 칼질해서 강성태를 곤경에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관동 연합의 기백을 확실하게 보이고, 강성태를 곤경에 빠트릴 테니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그 뒤에 사카구치 소우타와 부하들은 범죄인 인도 명목으로 협상해 일본으로 돌아가면 상황 끝이었다.

막말로 관동 연합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혹시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신강남파 조직원들에게 맡기고, 먼저 멕시코로 튀겠다는 의도일까?

돈에 환장한 놈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튀기 전에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를 피하고자 부산 덩치들을 물렸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추잡한 새끼.”

사카구치 소우타는 나직하게 욕을 뱉었다.

그 정도로 더러운 놈이라는 계산을 하지 못한 게 잘못일 수는 있겠지만, 한국 돈 일천오백억 원은 충분히 강성태를 미치게 만들 금액이었다.

**

박노익과 함께 회사를 나선 조태완은 논현동의 유명한 곱창집으로 향했다.

드럼통 위에 둥그런 테이블을 붙이고, 그 한가운데 숯불을 넣어 곱창을 굽는 가게였는데 은근히 입소문을 탄 터라 일찍부터 손님들로 혼잡했다.

조태완과 박노익이 한 테이블, 그리고 세 개의 테이블에 김석문과 덩치들, 문기주가 데려온 덩치들이 앉았다.

“형수님이 입덧은 안 하십니까?”

“말도 마라. 애가 생겨서 좋기는 한데, 근처에도 못 오게 하니까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소주잔을 들어 박노익에게 밀었던 조태완이 단숨에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지금은 참으셔야죠?”

“참기는 뭘 참아? 내가 아무리 찌그러졌어도 조태완이야, 조태완! 오늘은 업장 들러서 회포 풀고 갈란다.”

“형님? 동생들 듣습니다.”

“저 새끼들이 들으면 대수냐?”

뭐라 할 말이 없는 박노익이 입맛을 다시며 조태완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은 비상입니다. 보스가 동생들하고 안 선생을 지키는 상황이니까 오늘은 그냥 들어가십시오, 형님.”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조태완이 짜증 섞인 말로 박노익의 권유를 밀쳐낸 직후였다.

여자 다섯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근처 직장인인 모양으로 정장이나 투피스 차림이었는데 외모도 나쁘지 않았다.

“봐라. 얼마나 좋으냐? 자정 전에 들어갈 거니까 너는 그냥 모른 척해. 그냥 회포만 푸는 거야. 회포만.”

“예, 형님.”

더는 어쩌지 못한 박노익이 마지못해 답을 내놓았다.

“어디 좋은 데 없냐?”

“정 그러시면 소국이가 하는 업장으로 가십시오, 형님.”

“그래?”

서둘러 자리를 끝내려는 것처럼 조태완이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이 잔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우리 소주하고, 모둠으로 5인분 주세요.”

늦게 들어온 여자 다섯 명이 능숙하게 주문을 마쳤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저녁을 먹은 로페즈 니에토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어쩌면 강성태의 예상을 이렇게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건지, 스마트폰을 든 그는 액정을 확인하며 시간을 끈 뒤에야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다. 왜 연락이 없어?

“무슨 연락을 말씀하십니까?”

- 미스터 강에게서 요구사항을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아도 통화했었는데 저하고 제가 데리고 있는 대원 두 명만 데려갈까 한다는 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끄응.

로페즈의 답이 건너가기 무섭게 신음 같은 소리가 넘어왔다.

- 혹시 네가 잔머리를 굴리는 건 아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계약금부터 나머지 돈을 너 혼자 먹으려는 건 아니냐는 뜻이다.

“그보다는 미스터 강이 멕시코에 있는 가페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 무슨 뜻이지?

“일본에 말이 들어갈 거 같다며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또, 대원들이 도와주는 흉내만 내고 설렁거리면 공연히 돈은 돈대로 뿌리고 일은 일대로 망친다고 망설였습니다. 그 뒤에 차라리 저와 대원 둘이 낫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로페즈 니에토의 설명에 당장 대꾸는 없었다. 대신 속이 시커멓게 탄 상관의 뜨거운 숨소리가 두어 번쯤 들렸다.

- 어떻게 하면 미스터 강이 우리를 신뢰하겠나? 자네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게 아니라면 뭐라도 좋으니 방법을 말해 봐.

얼마나 급한지 상관의 입에서 ‘너’, 또는 ‘네가’라고 부르던 호칭이 ‘자네’로 바뀌어 있었다.

“방법이 있을 거 같기는 합니다만, 워낙 어려워서….”

- 한국 돈 칠백오십억 원이라면 도쿄 타워를 무너트리라고 해도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어려워하지 말고 말을 해.

“제가 미스터 강과 협상하겠습니다. 대신 가페가 독자적으로 움직여 주십시오.”

- 독자적이라니?

미끼를 덥석 문 상관이 로페즈의 다음 말을 독촉했다.

“미스터 강은 아카시 마오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눈치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그 여자를 빼돌려서 멕시코로 데려가면 어떻겠습니까?”

- 일본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고민하실 게 있습니까? 선금을 받아서 카르텔 몇십 명 동원하고, 결정적인 역할만 우리 가페가 하면 됩니다. 도주는 밀항선을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한국에 오면 멕시코까지 이동하는 건 문제 없습니다.”

방법을 제시한 로페즈는 테이블에 있던 물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강성태는 반드시 상관이 미끼를 물 거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로페즈가 할 일은 그저 “알았다.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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