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4권 - 5화 (478/513)

《478》2부 24권 - 5화

제2장. 내가 그 새끼 두고 왔어.

권총으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다.

타아앙! 타앙! 타아앙!

바둑판처럼 뚫린 통로에 들어선 아르윈 일행은 3층 높이로 쌓아둔 화물에 몸을 감추고서 야쿠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불쑥 튀어나오는 적을 피해 몸을 감추었다가 다시 상체를 내밀어 반격했는데, 들어서기 무섭게 야쿠자들을 연달아 쓰러트린 것과는 달리 대치가 길어지고 있었다.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은 칼보다 권총에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양쪽이 몸을 감춘 채 싸우는 대치에서는 딱히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군인, 그중에서도 특수부대라는 가페 출신인 로페즈와 리카르도, 대원들의 활약이 도움 되었다. 하지만, 어떤 도움이 있더라도 상황이 늘어지면 불리한 건 아르윈 일행이었다.

죽어 자빠진 야쿠자들도 많지만, 필리핀 조직원들 서너 명 역시 어깨나 배,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일본 경찰이나 야쿠자의 지원이 와서 죽느니, 얼마나 희생될지 모르지만, 일단 달려들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부상당한 조직원들을 언제까지 벽에 기대 놓을 수도 없었다.

독하게 마음먹은 아르윈이 조직원들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아르윈! 이대로 시간을 끌 게 아니라면 밀고 들어갑시다!”

3층 높이로 쌓아둔 저쪽 화물칸에서 로페즈가 영어로 고함을 질렀다.

“지게차로 밀고 들어갈 테니까 뒤를 봐주십시오!”

연달아 뜻을 밝힌 로페즈가 그의 대원 두 명에게 위를 가리켰다. 위쪽을 비워두고는 마음 놓고 움직이기 어려우니 올라가라는 지시였다.

“리카르도! 밀고 들어가자! 지게차 한 대당 두 명씩 배치해! 세 대면 된다!”

이어서 그는 리카르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아르윈의 눈치를 살핀 리카르도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원 여섯 명에게 손짓을 던졌다.

“지게차에 탄창을 몰아줘! 우리가 뒤따를 테니까 출발하면 무조건 안쪽까지 밀어붙여!”

로페즈의 계획은 단순했다.

위쪽에 대원 둘을 보내 경계한 상태에서 탱크처럼 지게차를 앞세운 뒤에 줄줄이 밀고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시간은 끌만큼 끌었다.

당장 야쿠자의 지원 세력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고룡동이 제 몫을 해냈다는 의미겠지만, 바깥에서 기다리는 보트와 차량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이곳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휘이익!

창고의 위쪽에서 휘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아르윈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지게차 나가!”

로페즈의 고함이 떨어지자 지게차가 우웅, 하는 모터 소리를 울리며 통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세 곳의 통로에 지게차 세 대가 동시에 들어섰다.

이럴 때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더 나으련만, 하필 충전식 지게차였다.

파란색 방수페인트를 바른 바닥을 지게차가 움직이며 끼긱대는 타이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로페즈와 리카르도가 지게차를 따라 움직였고, 필리핀 조직원들을 셋으로 나눈 아르윈이 뒤따르는 순간이었다.

타아앙! 타앙! 타아앙!

창고 위쪽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터졌다.

위쪽에 있던 대원 두 명이 아르윈 일행에게 접근하는 야쿠자들을 노린 총성이었다.

타앙! 카앙! 카아앙! 타아앙! 타앙!

대치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지게차의 몸통에서 불똥이 확확 튀었고, 화물에 몸을 붙이고 있던 야쿠자들이 안쪽으로 밀려났다.

타아앙! 카앙! 타앙! 카아앙! 타앙!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목숨을 내놓다시피 하며 밀어붙였는데 뭐라고 해도 가장 능력을 발휘하는 건 역시 로페즈와 가페의 대원들이었다.

특히, 로페즈는 대원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해서 넓은 창고에 바둑판처럼 난 통로를 빠르게 점령했다.

타아앙! 타앙! 타아앙!

권총만 해도 그렇다.

보이는 족족 방아쇠를 당기는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들과 달리, 로페즈와 가페 대원들은 명중률이 높아서 연달아 야쿠자들의 머리나 가슴을 터트렸다.

마침내 바둑판처럼 난 통로의 끝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밀어붙여! 지게차의 방향만 잡아놓고 내려!”

기회를 잡은 로페즈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웅.

운전하던 대원들이 뛰어내렸는데도 달리던 탄성을 잃지 않은 지게차는 곧장 안쪽의 공간을 향해 달렸다.

지게차를 따라 달리며 아르윈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개새끼들!

카르텔 조직원들은 아르윈 일행의 뒤에서 느물거릴 뿐,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저 새끼들의 목적은 가능한 한 물러나 있다가 아카시 마오를 찾아내면 함께 한국으로 밀항하는 것뿐이었다.

멕시코에 돌아가서는 함께 싸웠다는 핑계로 좀 더 많은 걸 요구하거나 아니면 아카시 마오를 손에 넣고 강성태와 야쿠자 사이에서 유리한 조건을 내놓으라며 손을 벌릴 게 분명했다.

‘나중에 보자.’

눈에 불똥이 튀었지만, 당장은 야쿠자를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타아앙! 타앙! 카앙! 카아앙! 카앙! 카앙!

창고 가장 안쪽 벽 왼편으로 이어진 복도였다.

마침내 마지막 통로에 몰린 야쿠자들이 발악처럼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댔다.

좁은 공간이라 운전하는 사람이 없는 지게차가 엉뚱한 벽을 들이박고는 멈춰 서고 있었다.

타앙! 퍼윽! 타아앙! 퍽!

아르윈과 함께 움직이던 필리핀 조직원 두 명이 커다랗게 휘청이며 뒤로 처박혔다.

“지금이야! 밀어붙여!”

상황을 확실하게 알아챈 모양인지 아직 야쿠자들의 권총이 불을 뿜는데도 로페즈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가뜩이나 조직원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눈이 뒤집힌 아르윈이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무작정 총구 앞으로 달려들면 우리 쪽 희생이 너무 클 수 있었고, 아니라면 이곳에서 또다시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들이!”

아르윈은 훅, 앞으로 달렸다.

지게차의 뒤에 매달린 그는 뒤쪽의 틀을 잡고서 위로 튀어 올랐고, 이어서 상판을 밟으며 위로 올라섰다.

타아앙! 타앙! 타앙! 타아앙!

작은 복도에 미련할 정도로 야쿠자들이 몰려 있어서 뒤편에 있는 놈들은 앞에 있는 동료가 다칠까 봐 제대로 방아쇠조차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카앙! 타아앙! 타앙! 퍼윽!

지게차 위에 서 있던 아르윈을 노리고 날아든 총알 하나가 아르윈의 왼쪽 어깨를 제대로 뚫었다.

“끄응!”

내가 죽는 걸 두려워하는 놈처럼 보여?

상체를 휘청인 아르윈은 지게차 옆으로 몸을 틀어 차체를 잡고서 운전석에 뛰어들었다.

“해보자! 누가 죽나 붙어보자고!”

그아앙!

물건을 들어 올리는 지게발을 중간 높이로 올린 아르윈은 지게차의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고서 야쿠자들이 서 있는 통로를 향해 무섭게 달렸다.

카앙! 캉! 카앙! 카아앙!

야쿠자들이 아르윈을 노리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으나,

콰득! 콰자작! 콰드득!

지게차에 밀려 넘어졌고, 두껍고 단단한 바퀴에 깔리며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타앙! 퍼윽! 콰드득! 타아앙! 퍼윽! 콰자작!

겨우 지게발에 몸을 걸친 놈들도 있었는데 뒤따라 달려든 로페즈와 가페 대원들, 필리핀 조직원이 당긴 총에 피를 뿜으며 바퀴 아래로 빨려들었다.

지게차로 끝까지 밀고 들어간 안쪽은 직원들의 휴게실처럼 네모난 공간이었다.

타앙! 타아앙! 카앙! 카앙! 타앙!

삽시간에 밀린 바람에 야쿠자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필리핀 조직원 셋과 가페 대원 둘도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타앙! 타아앙! 타앙! 타앙!

이번에도 훈련받았던 대원들의 솜씨가 돋보였다.

안쪽에 밀려들어 간 야쿠자들이 속속 쓰러졌고, 마침내 총성이 멎었을 때, 서 있는 놈들은 한 명도 없었다.

여자는?

왼쪽 어깨를 붙잡고서 지게차에 내린 아르윈은 휴게실 안쪽으로 달렸다. 그리고는 천장에 걸어놓은 밧줄에 Y자로 팔을 든 채 묶여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이이익!”

품에서 회칼을 꺼낸 아르윈이 밧줄을 썰어서 잘라냈는데, 그때까지 아카시 마오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밖에도 그녀의 뒤편에 역시나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얻어맞아 죽어 있는 남자가 둘이나 있었다.

끝났다.

아카시 마오도 손에 넣었고.

왼편 어깨에 힘을 쓰지 못하는 아르윈이 고갯짓을 던지자 필리핀 조직원이 달려와 아카시 마오를 어깨에 걸치고는 몸을 세웠다.

“부상자 부축해! 서둘러!”

아카시 마오를 구출할 때까지 나서지 않던 로페즈가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대원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지휘했다.

“라카르도! 앞을 열어!”

이미 지나왔던 창고 안에 혹시 다른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인지 로페즈는 리카르도와 대원들을 앞세웠다.

“서둘러!”

다급하게 외친 로페즈의 지휘에 따라 쓰러진 동료들을 부축하거나 업은 필리핀 조직원들이 빠르게 창고 문을 향해 달려갔다.

“헉! 허억!”

달리면서 새삼 창고가 더럽게 크다고 느꼈다.

바둑판처럼 뚫린 통로를 지날 때였다.

창고 문이 열렸다.

“아르윈! 로페즈!”

삼 분의 일쯤 연 문으로 들어선 강성태가 요란하게 아르윈을 부르고 있었다.

“쏘지 마! 우리 보스다!”

아르윈보다 로페즈가 먼저 고함을 빽 질렀다.

입구로 달린 아르윈 일행은 먼저 피에 전 강성태와 그의 상처를 보고 놀랐다.

이런 몸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왼쪽 어깨를 감싼 아르윈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강성태는 바로 옆 조직원의 어깨에 걸쳐진 아카시 마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그거보단 한국에 보내는 인원에서 카르텔 조직원 놈들은 제외해 주십시오.”

우리말로 오간 대화였다.

빠르게 시선을 돌려 카르텔 조직원을 확인한 강성태가 다시 아르윈을 찾았다.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눈이었다.

“카르텔 조직원들을 어떻게 하고 싶어?”

“우리 식구들이 총에 맞아 쓰러질 때도 뒤에서 실실대던 놈들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아르윈의 눈을 들여다본 강성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로페즈! 아카시 마오와 가페 대원들만 데리고 먼저 출발해!”

“보스?”

“다른 말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지금 강성태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피에 전 모습은 반항 따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보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로페즈가 고개를 돌려 창고 안을 보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느물거리며 뛰어들지 않았던 카르텔 조직원들이 영어로 오간 대화를 들으며 의아한 듯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상자가 있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우선 출발해!”

로페즈에게 지시한 강성태는 고개를 돌렸다.

“부상자를 승합차로 옮겨. 얼른!”

필리핀 조직원들이 부상자를 옮겼고, 리카르도를 끌다시피 한 로페즈가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확실히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놈들이 입구로 걸어왔다.

“너희는 기다려!”

“약속이 틀립니다.”

가장 앞에 있던 카르텔 조직원이 강성태를 밀치려는 듯 왼팔을 뻗었다.

이 개새끼가 어디에 대고 손을 내밀어?

그렇지 않아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독이 올랐던 아르윈의 눈에서 불똥이 탁, 튀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억! 쩌어억! 털썩!

대번에 강성태가 두 번의 주먹을 날렸고, 옆에서 움찔하며 권총을 꺼내려는 카르텔 조직원을 향해 아르윈이 권총을 겨눴다.

철컥. 철컥. 철컥.

가뜩이나 독이 올라있던 필리핀 조직원들이 알아서 권총을 겨눴는데 강성태의 짧은 지시 한마디면 얼마든지 방아쇠를 당길 정도로 적대감 가득한 눈빛이었다.

“너희는 여기 왔던 방식대로 비행기로 돌아가.”

“약속이 틀립니다.”

“나하고 약속한 게 있어?”

“그건…?”

카르텔 조직원이 답할 때, 로페즈와 리카르도, 멀쩡한 대원들, 그리고 아카시 마오를 태운 보트가 검은 바다에 하얀 물살을 남기며 멀어지고 있었다.

“부상자를 다 태웠습니다.”

“권총.”

강성태가 요구하자 필리핀 조직원이 총을 내밀었다.

오른손으로 권총을 받은 강성태는 손잡이를 엄지에 걸치고, 검지와 중지, 약지로 노리쇠를 당겼다.

철커덕.

손바닥 안에 권총을 넣고 한 손으로 노리쇠를 당기는 건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성태처럼 능숙하게 하려면 권총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노리쇠를 당기는 동작, 독수리나 상어를 연상시킬 정도로 냉정한 눈빛, 팔에 걸어놓은 쿠크리, 온몸을 적신 피, 강성태는 온몸으로 카르텔 조직원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덤비면 모조리 죽인다.

“무기를 내놔.”

카르텔 조직원들이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이었다.

콰악!

아르윈이 옆에 있는 카르텔 조직원의 목덜미에 권총의 총구를 세차게 찍어 넣었다.

“우리 보스께서 지시하셨다. 셋을 센다. 하나, 둘.”

강성태조차 의아할 정도로 아르윈은 바로 숫자를 셌다. 마치 방아쇠를 당길 핑계가 필요한 사람처럼 말이다.

“무기를 내놓겠소.”

아르윈의 태도, 방아쇠를 당기게 됐다고 반기는 필리핀 조직원들의 반응, 무엇보다 그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강성태에게 질린 것처럼 카르텔 조직원들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걷어. 너희는 혹시 감춘 무기가 있는지 보고.”

아르윈이 지시하자 필리핀 조직원 두 명이 무기를 급하게 주웠고, 다른 두 명이 카르텔 조직원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카르텔 조직원 세 놈이 허리에 감추고 있던 권총을 꺼낸 것으로 무기를 모두 거둬들였다.

차에 있는 부상자를 생각하면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게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가자.”

“예, 형님. 얼른 차에 타!”

강성태의 지시에 따라 필리핀 조직원들이 승합차에 올랐고, 권총을 겨눈 아르윈이 강성태를 호위하듯 움직였다.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라도 데려다주시오!”

어깨를 다친 아르윈을 먼저 승합차에 태운 강성태는 카르텔 조직원의 요청 따위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뒤따라 차에 타고는 문을 닫았다.

그 직후였다.

요란한 엔진음을 울리며 승합차가 창고 앞의 도로를 타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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