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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4권 - 7화 (480/513)

《480》2부 24권 - 7화

제3장. 살려뒀을 수도 있잖아?

오전 7시 10분이었으니 새벽 기운이 채 물러나기 전이었다.

밤새 거실에 있었던 조태완은 그 시간에 울리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눈가를 좁혔다.

재일 교포 출신으로 일본 구마오 조직에 몸담은 김강조였다.

이 시간에 그것도 구마오 조직에 속한 김상조의 전화라면, 강성태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계산을 마친 조태완은 단단한 표정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오랜만에 전화 드렸습니다. 김강조입니다.

“잘 지냈나?”

- 회장님의 염려 덕분에 무탈합니다.

조태완과 김강조, 두 사람 모두 속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최소한의 안부를 나눴다.

이제부터 전화한 본론이 나올 차례였다.

- 한국의 보스께서 곤란한 상황에 놓이신 거 같습니다.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그런데 음성에 담긴 뉘앙스가 협박하는 느낌이어서 조태완은 불편한 눈매로 고개를 꺾었다. 마치 김강조가 앞에 있다는 듯 말이다.

- 괜찮다면 우리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시겠다는데 어떠십니까?

“우리 보스가 왜 일본에 갔는지 알 거 같은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삼합회든, 야쿠자든, 마약과 고리대금을 굴리지 못해. 제안은 고맙지만 그런 의도라면 사양해야 할 거 같네.”

-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전적인 질문이었다.

과거 같으면 바로 쌍욕이 튀어 나갔을 텐데 먼저 강성태의 안위가 염려됐고, 다음으로 쌓아둔 조태완의 연륜이 울컥 올라온 감정을 지그시 눌렀다.

“아카시 조직과 관동 연합이 그러더니, 이번에는 구마오 조직이 나서는군. 원한다면 내가 지금 통화 내용을 우리 보스께 그대로 전해줄 텐데, 괜찮겠나?”

- 무얼 말씀하십니까?

“우리 보스의 다음 타깃이 구마오 조직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지?”

- 기합이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던 아카시 조직과 관동 연합의 오야붕들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한 뒤에 전화하는 게 어떻겠나?”

앞에 있었다면 우선 주먹을 날리고 뒤를 생각했을 정도로 적대적인 감정을 감추지 않은 대화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거실로 나왔던 오세아가 조태완의 차가운 표정을 보고는 조용하게 방으로 돌아갔다.

- 회장님? 신강남파 오야붕께 도움을 드리겠다는 제의였는데 뭔가 오해하신 거 같습니다.

“김강조 씨가 나랑 알고 지낸 게 얼추 십오 년 정도 되지?”

- 그렇습니다, 회장님.

“대강 나를 알 거라고 믿고 말한다. 나한테 말장난하지 마라. 우리 보스를 오야붕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기합이 대단하다고? 진짜 기합이 뭔지 보여줄까?”

다부진 조태완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김강조는 대꾸가 없었다. 어쩌면 옆자리에 구마오 조직의 회장과 간부들이 함께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는데 그건 김강조의 사정이지, 조태완이 배려할 부분이 아니었다.

“우리 보스 한마디면 지금이라도 일본에 날아가겠다는 식구들이 수백 명이다. 이미 홍콩과 마카오, 요코하마에서 우리 식구들의 독기를 봤을 거 같은데 굳이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내가 우리 보스께 간청해서라도 구마오 조직이 직접 경험하도록 해주마.”

독한 말을 전한 조태완은 차갑게 웃었다.

지금쯤 소리가 안 들리게 막아놓고 바쁘게 일본말로 설명하고 있을 김강조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할 말이 없는 거 같으니까 이만 끊지.”

- 회장….

다급하게 부르는 김강조의 음성이 들렸으나 조태완은 단호하게 종료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조태완은 거실 한쪽에 만들어놓은 작은 바로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바에 놓인 유리병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데도 전화는 없었다.

‘야비한 새끼들.’

이놈들의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제 놈들이 아쉬운 일인데도 늘 이쪽이 고개 숙여서 청하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애쓰고, 그렇게 득을 얻어놓은 뒤에는 마치 큰 은혜를 베푼 놈들처럼 거들먹댄다.

“개새끼들. 속이 빤히 보이는데 어디서 사발을 굴려?”

늘 관동 연합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구마오 조직은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게 분명했다.

마치 자신들이 신강남파와 손을 잡았다는 양, 도쿄를 중심으로 설칠 욕심일 테고, 또 여차하면 강성태의 도움을 얻겠다는 의도였다.

속이 빤히 보이는 데도 놈들은 강성태가 아쉬운 상황이어서 큰 은혜를 베푼다는 투로 전화를 걸었다.

관동 연합이 제 모습을 찾으면 강성태의 간교한 계략이었다며 발을 뺄 인간들이 말이다.

새벽의 통화에서 강성태는 분명 지쳐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강단을 잃지 않았던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가 광주 고룡동과 아르윈이 데리고 다니는 필리핀 조직원 세 명의 죽음을 어깨에 걸머진 듯 힘든 음성을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조태완은 느닷없이 올라오는 소름에 팔뚝을 문질렀다.

말이나 되나?

강성태는 정말 관동 연합의 오야붕 오다 스미야기의 목을 갈랐다.

조태완은 세 번쯤 죽었다가 깨어난다고 해도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그것만 해도 소름 끼치는데 아카시 마오를 찾아냈고, 요코하마 조직의 대표 업장 블랑카를 고작 열 명이 틀어막았다.

사실 인원이 더 많았다고 해도 희생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예상외로 적은 인원을 데려간 건 조태완도 의아해하던 일이었다.

분명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 바람에 고룡동과 광주 식구, 또 필리핀 조직원들의 희생을 더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을 테고.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관동 연합 간부들이 심각하게 의논 중인 건 당연하고, 후계자를 정하는 문제를 두고 전쟁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참에 아예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

그 탓인지 지금까지 보도가 나오지 않았고, 경찰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요코하마, 이바라기, 야마나시, 군마, 아카시의 다섯 개 조직이 관동 연합이었다.

그중 아카시 조직이 먼저 무너졌고, 이번에 요코하마 조직 소속 백여 명이 죽어 나갔으니 벌써 관동 연합에서 두 개 조직이 강성태에게 박살 난 꼴이었다.

이럴 때 두 곳의 빈자리를 노리는 조직이 있을 테고, 또 죽은 오다 스미야기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변의 다른 조직들이 칼을 벼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일 조직은 가족 혹은 지정자가 있기 마련인데 연합이라는 말처럼 아직 건재한 세 개 조직이 연합 오야붕 자리나 통합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인다면, 절대로 쉽게 결론 날 일이 아니었다.

깡패들도 참 복잡하게 산다.

조태완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울었다.

이건 또 누구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이동전화 번호였는데 처음 보는 숫자였다. 오전 8시 전에 스팸이 올 리도 없지만, 지금은 우선 받아보고 봐야 했다.

“여보세요?”

- 조태완 고문님이십니까?

이놈 봐라?

회장이 아니라 현재 직책인 고문으로 불러?

“누군데 나를 찾지?”

- 관동 연합의 사카구치 소우타라고 합니다.

“누구?”

이름을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조태완의 미간을 좁히는 순간이었다.

- 부산에 있는 사카구치 소우타입니다.

“아!”

아르윈과 키란이 횟집에서 두들겼다는 야쿠자 놈이었다.

“왜? 또 칼잡이를 보냈다고 협박할 생각이냐?”

- 관동 연합의 뜻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흥.”

조태완은 아예 대놓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강성태에게 전화했었다는 놈이었다.

번호를 알고 있는데도 굳이 이른 시간에 조태완에게 전화했다면, 뭔가 강성태에게 직접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 아카시 조직과 요코하마 조직이 신강남파에게 결례를 범한 점을 인정해서 오늘 아침까지 있었던 일은 조용하게 끝내겠다. 또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물론이고, 신강남파 조직원들이 출국하는데 협조하겠다.

이놈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순수한 의도라든가, 신용이라는 게 없는 놈들이었다.

이제 뭔가 조건을 달 때가 됐다.

- 이후로 관동 연합과 신강남파는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서로의 지역을 개방한다.

“야, 이 개새끼야.”

예상했던 조건을 들은 조태완은 쇳소리 가득한 음성으로 욕을 뱉었다.

“너, 부산에 있지? 동생들 보내서 울대를 끊어줄까? 아니면 다시는 헛소리 못 하게 혀를 잘라줘?”

무식하기 그지없는 대꾸에 사카구치 소우타 역시 바로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우리 보스가 일본에 간 이유를 몰라? 삼합회 칼잡이 내세워서 보스 가족과 나를 노려놓고, 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 그 점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번 일을 덮는 조건으로….

“네놈들이 칼잡이를 동원한 이유가 뭐야? 우리나라에서는 마약과 고리대금, 매춘, 납치를 할 수 없다고 내쫓았더니 뒤에서 삼합회와 주접떤 거 아냐?”

이런 대화는 냉정해야 효과가 크다.

자꾸 음성이 커지고 있어서 조태완은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혔다.

“우리 보스에게 손만 대 봐. 내가 일본에서 백 토막이 나는 한이 있어도 동생들 모조리 끌고 가서 남은 세 조직의 대가리들 모가지를 전부 끊어줄 테니까.”

- 기습으로 인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야쿠자의 기백을 가볍게 보시면 곤란합니다.

“이런 씨발 새끼가?”

사카구치 소우타의 당찬 대꾸가 건너온 직후였다.

조태완은 독이 오른 쇳소리로 욕을 뱉었다.

“벌써 그 잘난 야쿠자 조직 몇 곳에서 전화가 왔었다. 이참에 관동 연합을 잡아먹도록 도와준다면 출국을 보장한단다. 우리에게 아무런 영양가 없는 관동 던져주고 무사히 나오는데 뭐하러 우리 땅 내놓겠냐?”

- 정말입니까? 어느 조직입니까?

“미친 새끼. 그건 네가 알아봐야지?”

전화는 구마오 조직 하나였지만, 조태완은 몇 곳이라고 살을 붙였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보스가 이 정도에서 끝낸다고 해서 참고 있다. 도쿄 전쟁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면 자꾸 긁지 마라. 여차하면 내가 다른 야쿠자 조직들과 손잡고 움직일 테니까.”

살벌한 경고를 던진 조태완은 종료버튼을 눌렀다.

도쿄 전쟁은 관동 연합이 탄생한 계기였다.

도쿄를 차지하려는 다섯 개 조직이 치열하게 맞붙었고,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진행된 회의 도중에 벌어진 싸움에서 수백 명이 죽고 다친 사건이었다.

도쿄 회의를 주선한 이들의 명단에 장관들과 국회의원, 기업 회장까지 들어 있어서 커다란 스캔들로 발전했던 일이었다.

결국, 다섯 개 조직은 궤멸할 위기를 피하고자 묘책을 만들었고, 그렇게 관동 연합이 탄생했다.

“후-.”

숨을 내쉰 조태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치료받으라는 권유를 위해 아르윈과 키란이 번갈아 나직하게 불렀지만, 이병렬의 침대를 지키는 강성태를 움직이지 못했다.

날이 뿌옇게 밝아올 때였다.

“제발 치료받으십시오, 형님.”

광주 식구 김대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매달리고서야 강성태는 치료를 받았다.

일본의 국회의원이 주선한 의사라고 들었다.

흰색이 대부분인 콧수염을 기른 나이 든 의사와 젊은 남자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세 명이었다.

겁에 질린 얼굴이었고, 힘겨움이 얼굴과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상태였는데 조직원들이 강성태를 대하는 태도를 보아서인지 몹시 조심하는 태도였다.

치료를 마친 강성태에게 아르윈이 옷을 가져다주었다.

“커피 하시겠습니까?”

아르윈을 돌아본 강성태는 아픈 웃음을 내놓았다.

조직원을 잃은 아르윈이 강성태를 챙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커피가 있어?”

“준비하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를 믿고 일본에 왔고, 처절하게 싸웠으며, 지금도 꿋꿋하게 버티는 남은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기운을 내야 했다.

먼저 이병렬의 병실에 들러 상태를 확인했던 강성태는 몸을 돌려 거실로 나섰다.

거실에는 특별한 가구가 없었고, 주방에 식탁이 있었다.

왼편의 주방으로 들어섰을 때, 코렌이 예쁜 찻잔을 식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커피 향을 맡자 정신이 좀 더 맑아진 느낌이었다.

강성태는 식탁에 앉아 잔을 들었다.

아르윈과 키란이 강성태의 뒤를 지켰고, 그 뒤에서 붕대를 칭칭 감은 김대진이 서 있었다.

“할 말이 있으니까 잠깐 앉아.”

잔을 내려놓은 강성태는 세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키란과 김대진에게 눈짓을 던진 아르윈이 강성태의 앞으로 돌아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세 사람이 자리에 앉은 다음이었다.

“날이 밝으면 야쿠자 조직 중에 찾아오는 놈들이 있을 거다.”

코렌을 슬쩍 돌아보았던 아르윈이 강성태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와 손잡겠다는 놈들도 있을 테고, 요코하마를 욕심내는 놈들, 그 외에 아카시 마오를 찾는 놈도 있을 거다.”

말을 마친 강성태는 세 사람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우리 목적은 야쿠자를 멕시코로 끌어들이는 거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야쿠자 놈들과 마주하면 흥분하게 된다. 냉정하게 상대해. 오래 끌지는 않을 거다.”

말을 마친 강성태는 찻잔을 들었다.

이곳으로 야쿠자들이 몰려온다고?

야쿠자 놈들이 이곳을 찾아낼 거라 각오는 했지만, 강성태가 입 밖으로 내놓는 순간, 밀어두었던 현실이 불쑥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였다.

“오전 10시에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모두 공항으로 출발해.”

출발하겠다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인원만 출발하라는 지시였다.

혹시 강성태는 남는 건가?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아르윈이 차마 답을 내놓지 못하고 바라볼 때였다.

“미안하지만 여기 세 명은 나와 함께 이곳에 남는다.”

강성태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아르윈과 김대진이 고개를 숙이며 답을 내놓았다.

우리말에 담긴 세밀한 뉘앙스를 모르는 키란이었다. 내내 지켜보던 그는 함께 남는다는 말에 만족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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