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2부 24권 - 14화
강성태가 들어서자 창가의 책상에서 몸을 세웠던 연순동은 그대로 동상이라도 된 양, 움직이지 못했다.
치과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아직 왼쪽 뺨과 턱, 목덜미를 중심으로 시커멓게 들었던 멍이 다 빠지지 않았고, 귀 아래가 퉁퉁 부어 있었다.
최치곤과 함께 들어선 강성태는 책상 옆에 놓인 테이블을 향해 움직였다.
“앉아.”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은 강성태가 자리를 권하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연순동이 책상 앞에 앉았다.
강성태의 이마 구석과 목덜미, 손등에 상처가 가득했고, 평소대로 험악한 얼굴을 한 최치곤이 양손을 앞으로 잡은 채 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객실 내부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필요하다는 자료를 봤는데 조금 이상해서.”
강성태는 압수수색 목록을 출력해 놓은 A4 용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뭐가 문제야? 왜 빙빙 돌아?”
강성태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인 연순동이 책상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 여러 개를 들어서 테이블에 옮겨놓았다.
반항이라기보다는 답답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처럼 보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이어서 스위트룸의 거실 창에 강성태와 연순동, 멀리 문 앞에 서 있는 최치곤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연백국이 한일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거 알 테고.”
반말을 뱉어냈던 연순동이 혹시나 하는 눈으로 최치곤을 살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해마다 일왕 축하 행사를 국내 호텔에서 개최했고, 국회의원, 교수, 사업가들의 연구비 및 정치 후원, 사업자금 지원했슴다.”
반말로 하자니 켕기고 존댓말은 잘 안 나오고, 연순동의 말끝이 이상했다.
“문제는 이 모든 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괜히 삐죽거리다가 뺨을 맞느니 속 편하게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말투를 정한 연순동의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 앞쪽의 자료를 보면 대학교수들을 위한 연구비로 2백억 원가량을 지원했는데 실제로 연구 결과물이 논문과 책으로 나와 있어서 횡령으로 걸기도 어렵습니다.”
“2백억 원은 어디에서 나왔는데?”
“오다 스미야기가 이사장으로 있는 연백국의 일본 측 파트너가 지원해 준 겁니다. 지원받은 금액을 전액 투자에 사용했고, 심지어 재단 운영비는 회비를 걷어 사용했을 정도여서 현행법으로 문제 될 건 전혀 없습니다.”
말을 마친 연순동이 가장 위쪽에 있던 서류를 들어서 옆으로 내렸다. 그런 뒤에 다음 순서라는 듯 남은 서류의 윗부분에 오른팔을 얹었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교수들을 살펴봤는데 지원 목적대로 충실하게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지원 목적이 뭔데?”
“뭐….”
답을 하기 난처하다는 투로 입맛을 다셨던 연순동이 다시 말을 이었다.
“위안부란 말은 모두 한국이 지어낸 용어이고, 실제로는 자발적으로 매춘에 뛰어든 여성들이라는 주장과….”
뭐 이런 개새끼들이 있지?
강성태의 눈치를 살핀 연순동이 문 앞에 서 있는 최치곤을 얼른 돌아보았다.
“후-. 또 뭐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철도와 도로를 건설해준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은혜를 모르는 민족이다,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런 논문을 우리나라 교수가 작성했다는 거지?”
“얼마 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 매춘부라는 논문을 책으로까지 발간해서 문제가 된 교수가 있는데 그가 받은 연구비가 75억 원입니다.”
염병할.
교수 한 명에게 먹인 돈이 75억 원이라면 지금까지 도대체 얼마나 허튼짓에 돈을 뿌렸다는 걸까?
그렇게 돈지랄을 해가며 과거를 왜곡하느니 그 돈을 배상에 사용하고 잘못했다고 깔끔하게 사죄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발전적인 일이 아닐까?
강성태는 마지막까지 미적거리던 야마다 코신과 기무라 쿠니오키를 떠올렸다.
그런 모습이 지금껏 받은 교육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습성일까?
강성태의 생각을 모르는 연순동이 파란색 필름 인덱스를 붙여둔 페이지를 펼친 뒤에 중간 부분을 검지로 가리켰다.
“연구비는 위안부의 실태와 오해에 관한 연구 논문 발표, 책으로 발간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두 가지를 모두 채워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 훼손 외에는 처벌할 방법도 없습니다.”
강성태는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스카이라인의 교수니 뭐니 거들먹거리며, 전공 서적을 빼곡하니 꽂아놓은 책장 앞에서 하얀 머리칼로 엄청난 학식을 자랑하던 인간이 75억 원이라는 연구비에 학자의 양심은커녕 인간성과 민족성마저 깡그리 팔아먹은 쓰레기였었다.
잠시 뜨거워진 속을 가라앉힌 강성태는 아직 두툼하게 쌓여 있는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이번에 신청하려는 압수수색 목록이야?”
“나채상 이사장을 비롯한 모임의 회원 대부분이 사학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학 재단을 운영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물론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대략 50억 원에서 1백50억 원까지 재단의 돈을 횡령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성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연순동을 바라보았다.
“물론 장인 영감도 연백국의 회원이고 사학 재단을 소유하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지분을 모두 넘겼고, 개인 자산을 처분해서 횡령 금액도 채워 넣었습니다.”
참, 이학의도 사방에 꼼꼼하게 발을 뻗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마지막 따귀를 좀 더 성의껏, 꼼꼼하게 때려줄 걸 하는 심정에 강성태는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여기 적힌 자료를 먼저 구해줄 텐데 더 필요한 건 없어?”
“서류를 확인한 뒤에 증거를 잡아 압수수색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습니다.”
“뭐가 또 있어?”
“사학 재단 이사장이 이 정도 횡령이나 배임으로 재판에 넘어가면, 1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올 게 거의 확실합니다. 혹여 1심에서 실형을 받는다고 해도 구속하지 않고, 재판을 끌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정리합니다.”
“흐음.”
“문제가 또 있습니다. 우리 장인 영감이야 혼자 당했으니까 고검장님이나 소신영 회장에게 눌렸지, 이렇게 많은 사학 재단을 한꺼번에 기소하면 저들이 나서서 아마 고검장을 날리려고 할 겁니다.”
“그 정도 파워가 있다는 거지?”
연순동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아차 하는 얼굴로 얼른 입을 열었다.
“사학 재단을 통해 똑똑한 아이들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합니다. 훗날 그들이 돈맛을 알게 되면 결혼을 통해 친척으로 묶습니다. 그런 이들이 판사, 국회의원, 기업가, 군인으로 성공해서 뒤를 받쳐줍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썩어버린 교육 구조에서 어떻게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인재가 태어나는 건지,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기는, 이학의가 연순동을 후원해 부장검사까지 올려놓은 것만 봐도 지금 들은 말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어쩌지?
강성태는 창으로 시선을 돌려 화려하게 빛나는 강남의 빌딩 숲을 바라보았다.
고검장인 고강준도 누를 만큼의 힘을 지닌 이들이 덩어리로 모여 달려든다면 연순동은 태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게 틀림없었다.
“연백국의 회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붙어서 치부한 집안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의 매국노라고 지정되어 재산을 동결하는 순간, 지금껏 누리던 부와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강성태의 눈치를 살핀 연순동이 다시 말을 이었다.
“뺏기고 손가락질받는 비참한 삶을 사느니 모든 힘을 동원해서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밟아 죽인다. 여기에 그동안 후원받은 덕분에 성장한 판사, 국회의원, 군인, 경찰이 모두 나선다고 봐야 합니다.”
“소신영으로도 어렵다는 거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의 회장도 연백국의 회원입니다.”
워낙 기가 막힌 일이어서 강성태는 헛웃음을 그렸다.
“만약 연백국의 일본 측 파트너가 움직인다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오다 스미야기는 물론이고, 장관과 국회의원, 언론이 모두 한목소리로 한국이 또 일본 측과 친분 있는 인물을 대놓고 핍박한다며 외교 문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래?”
막막한 심정이던 강성태는 마지막에 들은 연순동의 말에서 무언가 번쩍하는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연순동은 강성태가 좌절한 나머지 허탈해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번 일만큼은 여기에서 정리하는 게 어떻습니까?”
강성태의 속을 모르는 연순동이 공손한 태도로 넌지시 권유했다.
“오다 스미야기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었어.”
“죽었다고 해도…? 예? 언제 죽었습니까?”
“나흘 전에.”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일본에 가서 만났었거든.”
설마?
놀란 연순동이 강성태의 목덜미와 손등, 팔뚝에 난 상처를 차례로 살폈고, 이어서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선 자료를 모아서 내일 오전까지 전해줄 테니까 마저 조사해. 나는 나대로 방법을 알아볼게.”
지시를 전한 강성태가 몸을 일으킨 다음이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연순동이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저기, 이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오다 스미야기가 원래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직업 말입니다. 정치인? 사업가?”
“일본 관동 연합의 두목.”
“예? 그럼 야쿠자였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죽었어도 문제가 없겠지. 안 그래?”
“예.”
“조사 철저히 해.”
마른침을 삼키느라 연순동은 답을 하지 못했다.
강성태가 나간 뒤에 그가 관동 연합과 오다 스미야기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강선영에게 알아보라며 지시할 게 분명했는데 그걸 굳이 말리고 싶지 않았다.
멍해진 표정을 풀지 못하는 연순동을 두고 강성태는 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기는 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다는 배신감, 그리고 김민재와 김민정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는 미안함, 비상금조차 없을 정도로 현금을 탈탈 털어 넣었다는 막막함.
잠자리에 들기 전 거실에 모여 앉은 김진규 가족은 짓누르는 현실을 억지로 떠받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모여 있는 이유도 어깨에 힘이 빠진 가장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는 걸 당사자인 김진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소주 한잔하실래요?”
태연한 표정으로 건넨 김민재의 권유를 받은 김진규는 아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답답하면 민정이랑 나갔다 들어와.”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거 같아서 그런 거지, 제가 답답할 게 뭐 있어요?”
아들 김민재의 말을 들은 김진규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를 위해 동생과 함께 저축한 돈은 물론이고, 대출까지 받았는데 원망은커녕 오히려 상심한 아버지를 염려하는 아들이라니, 저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됐다. 더 뭘 바라겠나.
존재 자체로 김진규의 인생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인 김민재와 김민정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지.
막말로 다 놔버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며 손에 들고 있는 밥줄을 내팽개치고 싶을 때, 그걸 버티게 해준 건 눈앞에 있는 자식들이었다.
정말 힘든 날이면, 통닭 한 마리 들고 들어가 건네주고 그걸 반갑게 받아서 맛있게 먹는 자식들을 보며 지긋지긋한 현실에 뛰어들 힘을 얻곤 했었다.
욕심이겠지만, 이럴 때 강성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이 셋인데 한 녀석이 멀리 있는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꼭 맞겠다.
강성태가 보고 싶은 심정을 누른 김진규는 아들 김민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재야. 그럼 아버지랑 소주 한잔할까?”
“아빠는? 나는 왜 빼세요?”
“그래. 우리 딸하고도 한잔해야지? 안주할 게 뭐 있나?”
“족발이나 하나 시킬까요?”
김민재가 스마트폰을 드는 순간이었다.
“저녁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족발을 시켜? 내가 찌개 끓일 테니까 그거에 마셔.”
장숙경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함께 버텨서 다시 일어나자는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같은 감정이 거실을 맴돌았다.
달칵거리며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낸 장숙경이 냄비를 찾아 상체를 숙였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김진규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그가 스마트폰을 드는 순간, 장숙경과 김민재, 김민정의 시선이 대번에 김진규의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쪼들리던 돈을 겨우 맞춘 참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온 반응이었다.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의 몫을 탐내지도 않았다.
단지 오래 거래하던 사람을 믿었고, 조금이나마 싸게 자재를 들일 수 있다는 기회를 잡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돌아온 결과는 전화 한 통에 온 가족이 마음 졸이며 시선을 던지는 현실이었다.
헛기침을 뱉은 김진규는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건 뭐야? 외국에서 온 전화인가?”
혼잣말처럼 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그는 조심스럽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냄비에 물을 붓던 장숙경이 궁금한 시선을 던졌고, 김민재와 김민정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 김 사장님! 나 김삼문입니다.
“예? 아니, 김 사장님?”
당황하고 놀라는 김진규의 반응에 물병을 내려놓은 장숙경이 소파로 다가왔다.
-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갑자기? 지금 어디세요?”
- 제가 지금 필리핀에 있습니다, 김 사장님. 우선 제가 빌렸던 돈을 송금하려는데 전에 거래하던 통장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예?”
장숙경을 돌아보았던 김진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통장으로 보내시면 되는데, 진짜 송금하실 수 있습니까? 거기도 밤일 텐데 되시겠어요?”
- 됩니다! 바로 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송금할 텐데요. 김 사장님! 죽을죄를 지었지만, 이렇게 송금하는 성의를 봐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그야 뭐….”
살려달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김진규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 사장님!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시키시는 일은 뭐든 하겠습니다! 법의 처벌도 달게 받고, 그 뒤에는 김 사장님 공장에 가서 평생 돈 안 받고 일하겠습니다! 그러니 살려만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이게 진짜 어떻게 된 일이지?
김진규는 스마트폰을 내려 액정을 확인했다.
얼마나 간절하게 외쳤는지 아래로 내린 스마트폰에서 살려만 달라는 김삼문의 음성이 연달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장숙경과 김민재, 김민정이 멍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친 다음이었다.
- 김 사장님? 김 사장님?
간절하게 부르는 김삼문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통해 튀어나왔다.
“예.”
- 우선 돈을 보내겠습니다! 그 뒤에 다시 전화 드리라고…. 아닙니다!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우선 송금합니다!
“예?”
- 우선 송금하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기다릴 테니까 말씀대로 처리만 해주십시오.”
뭔가 넋이 나간 듯한 통화여서 김진규는 돈만 돌려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답을 건넸다.
통화를 마친 김진규는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누군데 그래요? 혹시?”
“김삼문 사장 맞아. 지금 필리핀인데 나한테 가져간 돈, 내 통장으로 보내면 되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어. 돈을 송금하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던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이거 봐?
고개를 뒤로 뺐던 장숙경과 김민정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김민재를 돌아보았다.
‘왜? 내가 뭐?’
뻔뻔한 태도로 김민재가 두 사람의 시선을 맞받은 직후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김진규의 스마트폰이 연달아 울었다.
“어? 입금됐다. 입금됐어! 이거 한번 봐라. 입금된 거 맞지?”
문자를 확인한 김진규가 내민 스마트폰을 향해 김민재와 김민정이 함께 고개를 기울였다.
“맞네요, 아버지.”
진짜 어떻게 된 일일까?
김진규 가족은 돌아가며 스마트폰 액정에 올라온 문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