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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5권 - 10화 (503/513)

《503》2부 25권 - 10화

유충일은 어수룩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급한 눈빛을 던질 정도라면 어설픈 일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보내고 하자.’

강성태는 의도가 분명한 시선으로 앞에 앉은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유충일이 세 사람 뒤에 서 있어서 그의 급한 시선을 감출 수 있었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

통화를 마친 유충일이 상체를 숙인 뒤에 두꺼비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강장문 지검장.”

“예.”

광대뼈가 부러진 탓에 손톱으로 찌르면 핏물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강장문의 왼쪽 볼이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일본 돈은 먹지 마. 혹여 나한테 말하지 못한 약점이 있어서 놈들에게 시달리게 되면 솔직하게 말하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장문을 향해 강성태는 단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일로 지나간 건 다 잊는다. 약속한다. 그러니 서약서 문제로 절대 다른 소리 하지 않을 거고, 금전적인 문제든, 야쿠자들과 맞붙든, 내가 해결한다. 곽정윤 의원과 오상현 회장,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이래놓고 솔직하게 말하면 반대쪽 뺨을 냅다 때리는 건 아니겠지?

곽정윤과 오상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 본 다음이었다.

“대한민국 지검장과 다선 의원, 기업가 협회장이 일본의 폭력 조직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다녀서는 안 되는 거잖아. 다시 말하지만, 오늘 일로 모두 털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후로 협박받게 되면 언제고 솔직하게 말해. 부탁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의아해하는 기색이 분명하게 올라왔으나 실제로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만 돌아가.”

유충일이 받았던 전화와 급한 눈빛도 걸렸지만, 그보다는 세 사람의 치료가 급했다.

특히, 쓰러지면서 의자에 옆구리를 찍힌 곽정윤은 숨쉬기조차 힘들어해서 이만 보내는 주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억울한 감정이 고스란히 남은 표정으로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기는, 광대뼈가 주저앉을 정도로 맞았는데 강성태를 처벌할 방법이 없으니 억울하기도 하겠다. 한편으로는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어떤 죄도 처벌할 수 없다는 법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느꼈으면 싶었다.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줬으니 고강준에게 밥이라도 한번 사야 하나?

차갑게 바라보는 강성태 앞에서 몸을 일으킨 세 사람이 수건으로 볼을 가린 채 방을 나섰다.

세 사람을 따라 움직였던 조성호가 문을 닫은 다음이었다.

강성태 앞으로 유충일이 다가왔다.

“송정리 식구 중에 종섭이라는 동생의 전화였습니다, 형님. 여수 쪽 식구들이 서울로 향했답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

강성태의 시선을 본 유충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종섭이가 마침 여수에 있었는데, 느닷없이 비상을 걸었고, 숙소 식구들을 모두 동원했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건 분명해?”

“함께 있던 여수 또래가 서울로 간다며 튀어갔답니다, 형님. 만약 서울의 다른 조직하고 시비가 붙어서 움직인 거라면 먼저 저나 성호한테라도 양해를 구했을 겁니다, 형님.”

“목표가 우리일 확률이 높다, 이거지?”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하다는 유충일의 답은 목표가 강성태일 수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여수가 갑자기 나를 노리는 이유가 있나?”

“허락해 주시면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 출발했는지 들었어?”

“30분 정도 됐답니다, 형님.”

“지금이 9시 10분이니까 빨라도 12나 돼야 오겠네.”

“예, 형님.”

“방지 병원으로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성태를 따라 유충일과 조성호, 광주 덩치들이 따랐다.

“클럽 영업은 안 해?”

“성호는 보내겠습니다, 형님.”

유충일이 답을 한 직후였다.

조성호가 버림받은 표정으로 강성태와 유충일을 번갈아 보았다.

**

부산에서 날아온 동생에게 여권을 받았고, 그 직후에 비행기를 탔으며, 공항에서 호텔까지, 정말이지 숨 가쁘게 일본의 호텔 객실에 들어섰다.

두 개의 객실을 잡은 박노익은 거실 소파에 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맞은 편에 이교창이 앉았고, 거실 한쪽에 부산 덩치 세 명이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

“마실 것 좀 드립니까, 형님?”

“그래. 거기 냉장고에서 뭐 시원한 거 있으면 좀 내와라.”

박노익의 요구에 부산 덩치 한 명이 냉장고에서 여러 종류의 음료수를 꺼내 컵과 함께 테이블로 가져왔다.

음료수를 내려다보던 박노익은 물병을 들었다.

“너는 나랑 여기에서 마시고, 동생들은 옆방으로 보내. 가서 음료수 마시고 숨 좀 돌리라고.”

“괜찮겠습니까, 형님?”

“여기 일본이다. 우리는 달랑 다섯이고. 저놈들이 다른 마음 품고 달려들면 우리 다섯이서 뭘 어쩌겠냐? 죽을 때 죽더라도 당당하자.”

“알겠습니다, 형님.”

박노익에게 답을 한 이교창이 고개를 돌렸다.

“방에 가서 쉬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문 열지 마. 혹시 이 방에서 소란이 생기면 나오지 말고 서울에 연락부터 해. 알았냐?”

“예, 형님. 쉬십시오, 형님.”

인사한 세 명의 덩치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뒤에 객실을 나섰다.

“뭐해? 얼른 마셔.”

“감사합니다, 형님.”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참이었다.

역시나 컵에 물을 따른 이교창이 시원하게 비워냈다.

이교창이 잔을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지켜보던 박노익이 재미난다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너, 궁금한 거 있지 않냐?”

“그걸 알아보셨습니까, 형님?”

“내가 왜 기무라 앞을 막았는지 궁금한 거지?”

“죄송합니다만, 그렇습니다, 형님. 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었는데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형님.”

어둠을 밀쳐낸 객실 창이 정장에 노타이 차림인 두 남자를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춘 밤이었다.

“기무라를 해치우면 좋았지. 통쾌한 거로 그 이상 있겠냐? 그런데 뒷수습은?”

“야쿠자 놈들에게 약점이 있잖습니까, 형님? 관동을 밀고 들어갈 명분도 있었고요, 형님.”

“일본 정부나 경찰, 외교부에서 이번 일을 들고 일어나는 것도 생각해야지. 함께 있던 지검장에 다선 의원이 그에 동조해서 문제 삼으면?”

“듣고 보니까 그렇습니다, 형님.”

“그런데도 늘 계산이 빠르던 우리 보스가 막무가내로 나섰다. 왜 그런 거 같냐?”

“저는 정말 보스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님.”

고개를 갸웃하는 이교창을 보며 박노익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우리 보스의 눈빛에서 이성이 사라지는 걸 꼭 두 번 봤다. 한 번은 정훈이 장례식장에서 강치 형님 잡겠다고 지시할 때, 다음이 기무라를 향해 회칼을 거꾸로 들었을 때였다.”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이교창은 아직 박노익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달수 때는 잘 몰랐다. 그다음 정훈이 때는 저런 면이 있었나 싶었지.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우리 보스 말이다. 엄청나게 강해 보이는 속 안에서 용동이를 잃은 아픔을 혼자 삭이느라 힘겨운 눈치였다.”

그렇게 강한 강성태가?

이교창의 반응을 확인한 박노익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평소의 보스라면 더 냉정하게 처리했을 거다. 그런데 오전에는 완전히 이성을 놔버렸더라. 그래서 막아섰다. 기무라를 깨버리고 혼자 책임을 뒤집어쓰려는 보스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짊어지려고.”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형님.”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혹시 또 동생들을 잃게 되는 순간이 생기면 보스를 챙겨. 내가 없을 때는 네가 짐을 나눠 지고. 알았냐?”

“예, 형님.”

머리와 목이 굵은 이교창이 비슷한 체형의 박노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마음 비웠다. 야쿠자 놈들이 얍삽하게 얼굴 바꿔서 달려들면 한 새끼라도 더 죽이고 가는 거로 만족한다. 우리 보스에게 관동을 움켜쥘 명분 줬는데 더 뭘 바라겠냐. 대신 너와 옆 객실의 동생들에게는 미안하다.”

이교창은 이제야 박노익이 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포항에서 부산 서면 식구들하고 붙었을 때 기억하십니까, 형님?”

“그때는 갑자기 왜?”

“머리 컸다고 앞뒤 안 가리고 설치는 데 느닷없이 딱 나타나시는 형님을 보는 순간, 이거 잘못됐구나 싶었습니다.”

당시를 떠올렸는지 박노익이 픽 웃었다.

“혹시 이 새끼들이 얼굴 바꿔서 달려들면 그때처럼 앞뒤 안 가리고 설쳐보겠습니다, 형님. 뒤에 형님 계시니까 더 미친놈처럼 굴지 모릅니다, 형님.”

“이제 좀 나이 들지 않았냐?”

“왜 그러십니까, 형님? 저 아직 현역입니다, 형님.”

기무라 쿠니오키가 언제 얼굴을 바꿀지 모르는 상황에서 박노익과 이교창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왕 할 거면 보스에게 명분이 갈 수 있도록 화끈하게 부탁한다.”

“재미는 있겠습니다, 형님.”

비슷한 굵은 체형인데 이교창의 덩치가 좀 더 컸다. 그런 두 사람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

강성태와 유충일이 병원에 들어선 건 9시 30분쯤이었다.

유충일에게서 통화 내용을 전해 들은 이병렬은 먼저 의아한 반응이었다.

“충일이 너, 상식이 형님 알지?”

“예, 형님. 여러 번 뵀고, 식사도 모셨었습니다, 형님.”

“그 형님이 이렇게 무대포로 서울에 올라오는 게 이해되냐?”

“저도 형님. 그게 솔직히 좀 이상합니다.”

유충일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침대 옆에 앉은 강성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수 대가리가 진상식 형님인데 이 양반이 백화점까지 가졌거든. 뭐, 우리 때문에 밀수 루트가 막혀서 답답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서울로 바로 밀고 올라올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냐.”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어서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여수가 아무리 모든 인원을 동원했다 해도 신강남파의 숫자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일본 야쿠자, 삼합회, 지검장, 다선 국회의원, 카르텔, 온갖 놈들을 상대한 뒤라 그런지 여수에서 밀고 올라온다는 사실이 그다지 두려울 것도 없었다.

“여수에서 우리 업장 하나 부수겠다고 달려올 리도 없고, 그렇다고 보스랑 맞다이 까겠다고 덤비지도 않을 거고. 진짜 묘하네?”

창을 보며 혼잣말을 하던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미친 짓을 하기에는 그 형님이 가진 게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건 서울로 밀고 올라오는 모양새만 보이는 걸 수 있어. 조용하게 왔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간다거나 뭐 그런 거.”

“지켜보자는 거지?”

“보스 생각은 어때?”

“이쪽 생리를 잘 모르니까 의논할 겸 온 건데, 내 생각도 비슷해. 이왕 말이 나온 거니까 아예 우리 쪽에서 명분을 주는 게 어때?”

“어떻게?”

“서울부터 광주, 전주, 인천까지 비상 걸고, 여수 쪽에 말이 들어가게 하는 거지.”

입술을 내민 이병렬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보스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면 일단 내가 전화하는 게 좋겠는데? 내 전화를 안 받으면 태완이 형님께 부탁드리고, 그래도 안 받으면 대놓고 비상 걸지 뭐. 그러면 상식이 형님도 알아채겠지.”

말을 마친 이병렬이 김진용에게 시선을 들었다.

“전화기 가져와서 상식이 형님 번호 찾아봐. 아마 있을 거다.”

“예, 형님.”

덩치가 커다란 김진용이 침대 위쪽의 옷장으로 움직여서 이병렬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찾았습니다, 형님.”

“번호 누르고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예, 형님.”

김진용이 커다란 엄지로 버튼을 누른 뒤에 스마트폰을 이병렬의 입 앞에 대주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쫙 깔린 쇳소리가 스마트폰에서 울려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이병렬입니다, 형님.”

- 그랴. 일본에서 많이 상했다더만 좀 어뗘?

“덕분에 좋아졌습니다, 형님.”

얼핏 들으면 안부를 묻는 평범한 대화였으나 두 사람 모두 쇳소리를 가득 섞은 터라 살갑게 들리기는커녕 살벌한 느낌이 역력했다.

- 어쩐 일이냐?

“서울에 오십니까, 형님?”

이병렬의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의 소음이 병실에 깔린 침묵을 밀쳐내려는 듯 힘겹게 흘러나왔다.

- 병렬아. 나 진상식이다.

“저, 이병렬입니다, 형님.”

뜬금없이 서로 이름을 주고받았는데 지켜보는 강성태의 눈에는 마치 주먹을 한 번씩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 못 바꾸시는 거 같은데 그럼 저는 보스 뜻을 따르겠습니다, 형님.”

- 병렬아?

“이거 반칙입니다. 알고 계시죠, 형님?”

- 흐음.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끊겠습니다. 지금껏 우리 보스는 절대 먼저 건드린 적 없습니다. 희한하게 신호남파부터 부산 강치 형님, 인천까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달려들었다가 깨진 겁니다.”

- 야, 인마.

진상식이 위협적인 음성으로 이병렬을 부른 직후였다.

“진용아. 전화 끊어.”

이병렬이 지시했고, 김진용이 망설임 하나 없는 동작으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내가 볼 때는 뭔가 쫄리는 게 있거든. 10분만 기다리자.”

“편한 대로 해.”

강성태가 답을 한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진용이 들고 있던 이병렬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상식이 형님입니다.”

“씨발. 아무리 쫄리더라도 10분은 버텨줘야 하는 거 아냐?”

거친 평가를 내린 이병렬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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