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3화 (3/239)

#3화. 좋은 세상이다.

지난 생은 신과 악마의 대결 같았다. 끼를 펼치게 하려는 신과 그걸 막으려는 악마의 전쟁.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 이길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세상은 다르다. TV에선 온종일 뮤지션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거리의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걸어 다닌다. 상점에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건물엔 노래방 간판이 매달려 있다.

그야말로 음악 천국이다.

뮤지션은 천대의 대상이 아니라, 찬양의 대상이다. 더러운 피라고 몰아내려던 끼가 두 손 들어 환영받는 세상이다. 음악만 잘하면 왕도 부럽지 않다.

수철은 요절(夭折)이라는 전생 기록부를 갖고 다시 태어났다.

* * *

수철을 낳은 부모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좋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기왕이면 기분 좋게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을 텐데 그것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까꿍! 우리 수철이 무럭무럭 잘 자라라.”

할아버지는 맑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수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기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용수철이 되었다.

수철의 부모는 부유하지 않은 탓에 열심히 맞벌이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아빠는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일하는 와중 틈틈이 공부해서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의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틈틈이 부업까지 하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은 사라졌다.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자 아빠는 학창 시절 좋아했던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음반을 사 모으고, 직장인 밴드를 하겠다며 악기도 구매했다.

먹고사느라 잊고 살았지만, 마음속엔 항상 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하지만 진급이 되고 업무가 바빠진 탓에 아빠의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

악기는 고스란히 수철의 장난감이 되었다.

수철은 아기 때부터 소리에 대한 반응이 남달랐다.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애가 왜 이러지? 혹시…….’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틱 장애를 의심했다.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좀 지켜보시죠.”

의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까지 들렸다.

걸음마를 배우고 나서는 음악만 나오면 아장아장 걸어가서 스피커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진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의사 선생님 말씀을 믿고 기다려 보자고요.”

수철의 재능을 눈치채지 못한 부모는 보통 아이들과 다른 모습에 걱정했다. 아기가 들은 멜로디를 모두 흥얼거렸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유치원 때 엄마 따라간 노래방에서는 첫 음(音)만 듣고 사람들의 키(key)를 정확히 조절해 줬다.

“야, 너 대단하다.”

사람들은 신기해했지만, 수철이 가진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

“수철아, 학교 가니?”

“네, 안녕하세요.”

동네 사람들은 수철을 좋아했다.

“녀석, 참 인물 훤하다. 누굴 닮았는지 얼굴 하나는 타고났네.”“쟤는 그냥 연예인이네요. 바로 영화배우 해도 되겠어요.”

수철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처음 본 사람은 한 번 더 쳐다보고 갔고, 한번 본 사람은 아는 척을 했다.

사람들과 달리 수철은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 커서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모자를 쓰거나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 * *

자식을 아끼는 부모 덕에 수철은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사이 좋은 부모를 만나서 가정도 늘 화목했다. 하지만 아빠와의 인연이 길지 않았다.

“저기 애가 빠졌어요!”

장마가 쏟아지던 여름날, 아빠는 주민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달려갔다. 불어난 하천에 소년이 휩쓸려 가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빠는 119에 도움을 요청하고 주저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허우적대며 떠내려가는 소년의 손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팔이 닿지 않자 나뭇가지를 잡아 소년에게 뻗었다. 그런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가까이 가려고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물살은 계속 거세졌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아빠는 소년의 손을 잡지 못한 채 같이 물살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이고! 이를 어떡해!”

아빠와 소년이 사라지자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뒤늦게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열심히 수색했지만 둘을 찾지 못했다.

이틀 뒤, 아빠와 소년은 하류에서 발견됐다.

아빠의 손은 마지막까지 소년을 향해 뻗어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순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린 어떻게 살라고! 엉엉!”

엄마는 목이 찢어져라 통곡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수철 엄마! 정신 차려!”

학교에서 돌아온 수철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문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엄마…….”

수철이 9살 되던 해였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수철이를 생각해!”

엄마는 충격에 몇 번이나 오열하다 쓰러졌지만, 수철을 키워야 하기에 어렵게 일어나 마음을 다잡았다. 순직 경찰관에게 주는 유족연금이 있어서 그나마 생활은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수철이 5학년이 되자,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철은 중학생이 되면서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다. 집에선 여전히 착한 아이였지만 학교에선 달랐다. 모두에게 공평한 척하는 담임이 싫었다. 특히 학교로 엄마를 부를 때면 정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어머니, 학교에 좀 오셔야겠어요.”“수철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전화로 드릴 말씀은 아니라서…….”

엄마는 일하다가도 선생이 전화하면 바로 뛰어왔다. 선생이 바라는 대로 봉투도 찔러줬다.

“머리가 좋아서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성적이 오를 겁니다.”

선생은 입발림 소리를 했다. 받은 게 있으니 립 서비스를 한 거였는데, 이 때문에 엄마와 다투기도 했다. 수철은 힘들게 일하면서 아빠 몫까지 하려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수철은 더 터프해졌다. 특히 엄마와 관련해서는 그랬다.

혼자서 자신을 키우는 엄마를 지키겠다는 마음에 누가 엄마를 괴롭히거나 무시하면 참지 못했다. 달려가서 바로 주먹을 날리고 붙어 버렸다.

선을 넘는 행동을 한 엄마의 고객에게도 그랬고, 치근덕거리는 동네 유부남에게도 그랬다.

덕분에 모자가 같이 파출소에서 나오는 일도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해?”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수철은 계속 뻣뻣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수철을 꼬집으며 억지로 인사를 시켰다.

“한창나이인데 그럴 수도 있죠. 녀석, 주먹이 꽤 매섭네, 허허.”

상대도 지은 죄가 있기에 세게 나오지는 못했다. 수철에게 맞아서 부어오른 입술을 매만지며 썩은 웃음을 보였다.

눈을 문지르며 언덕을 올라가는 수철에게 엄마는 누굴 닮아서 성질이 급하냐고 핀잔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엄마를 지켜 주겠다고 나서는 수철이 든든했다.

“누굴 닮긴, 아빠를 닮았지. 저 사람들은 다 가짜 경찰이야, 아빠가 진짜 경찰이지.”

수철은 감옥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자신에게 겁을 준 경찰을 비꼬았다. 아빠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다.

* * *

‘설마 저러다 진짜 딴따라가 되는 건 아니겠지?’

수철이 아빠가 남겨 놓은 악기를 잡고 있을 때마다 엄마는 걱정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딴따라의 길을 가지 않길 바랐다.

“재능이 있는 거 같은데 제대로 시켜 보지 그래?”“그런 얘기 하지 마, 우리 수철이는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갈 거야.”

친한 친구의 조언에도 엄마는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딴따라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수철의 아버지도 취미를 넘어 음악가를 꿈꿨었다. 그래서 늘 가난했고 부모님이 결혼도 반대했었다. 어렵게 결혼을 했지만, 엄마는 현실성 없는 아빠를 설득하는 게 힘들었었다. 그래서 수철이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런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랐다.

수철도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끼가 발각되면 또다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영혼에 각인되듯 남아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이 있는 곳도 피해 다녔다. 마치 자신의 전생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귀를 자극하는 음악이 들려와도 애써 외면했다. 좋아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짝사랑 같았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조차 재능은 물론이고, 음악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음악은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끼라는 것은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는 게 아니다. 완벽히 숨길 수가 없다. 그랬으면 전생에 요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끼는 용수철이라는 이름처럼 툭 튀어나와 어디로 튈지 모른다.

* * *

죽음의 데드라인인 17세를 막 넘어갈 무렵이었다.

축제가 가까워지자 학생들은 일찌감치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철의 친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철아, 우리 밴드 하기로 했어. 너도 같이하자. 난 보컬이야, 펑크 가발도 구했어.”

단짝인 동민이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어 락커(Rocker) 흉내를 내며 다가왔다.

“밴드?”

“그래, 락 스피릿! 소리 질러! 예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손가락 두 개를 머리 위로 뻗었다.

축제 때 락 밴드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보컬은 넘보지 마, 내 파트니까. 펑크 가발도 주문했다고!”

동민이가 자신이 보컬임을 강조했다.

상철이와 민석이도 거들며 나섰다.

“그래, 수철아. 같이하자. 이번에 제대로 한번 뿜어 줘야지. 어디로?”“진미 여고 이쁜이들에게로! 예~ 러브 앤 피스!”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리를 흔드는 녀석들은 락커가 아니라 발정 난 동네 건달 같았다.

혈기 왕성한 고딩의 관심사는 언제나 이성이다. 밴드를 하겠다는 건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축제 때 여고생을 꼬시려는 수단이다. 녀석들은 그럴 생각에 벌써 신이 나 있었다.

수철이 물었다.

“악기는 할 줄 알고?”“걱정 마, 사촌 형이 홍대에서 밴드 하는 거 알지?”

“그런데?”

“그 형이 락의 절반은 스피릿이고, 밴드의 90%는 보컬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나만 잘하면 된다는 거지. 음화화! 너도 알잖아? 내 음악의 스피릿! 러브 앤 피스!”

손에 입을 맞추더니 다시 손가락을 천장으로 뻗었다.

“넌 정말 대단해, 멋있어.”

수철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동민이 씨익 웃으며 잘난 체를 했다.

“이게 바로 담임이 강조하던 수학적 사고지. 내가 90%를 할 거니까 너희는 나머지 10%만 해 주면 돼. 어때, 쉽지?”“응, 쉽네, 이해가 확 돼. 밴드가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원래 모든 게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야.”“그래, 수학적 사고 꼭 성공하길 바란다. 나도 구경 갈게.”“뭔 소리야? 너도 같이해야지! 올 포 원, 원 포 올 몰라? 거부는 곧 죽음, 의리를 저버리지 마라!”

동민이가 돌아서는 수철의 등에 올라탔다.

“윽! 난 빼 줘, 아카펠라는 내 체질이 아니야.”

“아카펠라?”

동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90% 하면 아카펠라잖아. 락 아카펠라. 락의 신기원을 네가 이루겠네, 축하한다.”

수철이 등에서 내려온 동민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 노,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악기 연습은 해야지.”

“한 달 남았는데?”

“충분해, 한 곡만 외우면 되니까.”

지원한 팀들에게는 축제 때 모두 한 곡씩 할 기회가 주어진다. 노래방에서 돌아가며 노래 부르는 거랑 비슷하다.

하겠다는 애들은 많고 장소는 한정되었으니 박리다매를 하겠다는 학교의 발상이다.

“한 달로 될까?”

수철이 미심쩍은 얼굴로 녀석들을 쭉 훑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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