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5화 (5/239)

#5화. 영화 속 허비 행콕

수철이 소리치자 알바가 연주를 멈췄다.

수철이 불편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쳐요?”

“……?”

“……?”

알바와 동민이가 동시에 수철을 쳐다봤다.

“줘 봐요.”

수철이 기타를 휙 뺏어 들었다. 기타를 잡자마자 지판도 보지 않고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지이이잉. 중중 촹! 중중 촹!

기타를 뺏긴 알바의 얼굴이 황당함에서 놀람으로 바뀌었다.

따라라 따라라 위이이잉―!

수철의 손가락이 지판 위를 뛰어다녔다.

연주는 정확하고 명확했다. 알바의 느슨했던 멜로디는 꽉꽉 조여졌고, 중간중간 치는 솔로 라인은 기타리스트가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알바의 놀란 눈은 금세라도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너, 너 뭐야? 프로야?”

말까지 더듬었다.

“프로 아니에요, 이건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칠 수 있는 거잖아요.”

전세가 역전됐다. 알바의 거들먹거리던 자세는 다소곳이 얌전해졌다.

연주를 마친 수철은 기타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잠깐!”

알바가 소리쳤다. 뭔가 더 보여 줄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너, 이렇게 칠 수 있어?”

알바는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숨겨 놓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속주 기타였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알바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속주 기타의 대부인 잉위 맘스틴의 ‘Far Beyond The Sun’이었다.

알바의 비장함과 달리 수철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아, 이거요?”

옆에 있던 통기타를 옆구리에 꿰차더니, 검지 손톱을 빠르게 움직여 줄을 튕겼다.

따! 라라라. 따! 라라라. 따! 라라라. 따! 라라라.

알바보다 두 배는 빨랐다. 지판 위를 움직이는 왼손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오른손 검지 손톱은 왼손에 맞춰 현란하게 기타 줄을 튕겼다.

기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헉!”

알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완전히 케이오돼서 거품을 물었다.

얼굴은 금세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귀신이라도 본 듯 창백해졌다. 거만하던 자세는 수줍은 관객 모드로 바뀌었다. 갓 군대에 온 신병처럼 무릎을 모으고 두 손을 올린 채 앉아 있었다.

‘통기타로 저렇게 치는 게 정말 가능한 거야?’

알바의 머릿속엔 의문만 맴돌고 있었다.

수철이 기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더 보여 줄 거 있어요?”

“어, 없어…….”

비장의 무기가 박살 났으니 더 내놓을 것이 없었다.

“아저씨.”

“…….”

알바는 대꾸 없이 수철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나이 어리다고 손님한테 함부로 반말하지 마세요.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그, 그래…… 요.”

“그리고.”

“……?”

“어디 가서 기타 친다고 잘난 척하지 마세요.”

“어? 어…….”

알바가 옹알이하듯이 대답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딱 그런 표정이었다.

수철은 들고 있던 기타를 알바의 가슴에 툭 던지고 돌아섰다.

“아 참.”

“……?”

“이 곡 연주자는 지미 페이지가 아니라 지미 핸드릭스예요. 이름만 같지.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요.”“그, 그래, 핸드릭스. 내가 페이지라고 했나……?”

알바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수철은 정신 못 차리는 알바를 잠시 쳐다보다가 동민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너, 너, 정체가 뭐야? 내가 아는 용수철 맞아?”

놀란 건 알바뿐만이 아니었다. 동민이는 알바보다 더 놀랐다. 흥분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수철은 그런 동민이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놀라긴, 별거 아냐. 좋아하는 음악이라서 친척 형한테 좀 배운 거야. 알바가 재수 없게 딱 걸린 거지.”“좀 배운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집에서 틈틈이 연습도 좀 하고, 뭐.”

“음…….”

동민이는 반신반의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수철의 재능을 알 수는 없었다.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너한테 친척 형이 있었어?”“어, 있었어. 야, 배고프다. 빨리 마이크 사고 광장시장에 떡볶이 먹으러 가자.”

수철은 얼떨떨해하는 동민이의 등을 떠밀었다. 동민이는 떠밀려가면서 한마디 했다.

“어쨌든 너 좀 멋있었어. 알바 참교육 제대로 했네, 크크.”

* * *

“어서 오세요.”

“아저씨, 마이크 좀 볼 수 있어요?”“네, 이쪽으로 오세요.”

수철과 동민이가 마이크를 사러 들어갔을 때, 낙원상가 1층에는 검은색 밴이 도착했다.

“여기 오랜만에 와 보네.”“그러게, 예전엔 자주 왔었는데.”“배고플 때 생각난다. 크크.”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낙원상가를 올려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잘나가는 락 뮤지션이었다. 검은 가죽 바지와 손에 감은 액세서리가 눈에 띄었다. 어깨에는 흉측한 문신이 그려져 있고, 바지에는 체인이 매달려 있었다.

“으자자!”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은 자다가 일어났는지 차에서 나오며 기지개를 켰다. 그의 귀에는 얼추 5개가 넘는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코에도 검은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그들은 연예인 같았다. 외모가 평범한 사람은 앞에서 내린 운전사뿐이었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긴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더니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와! 문해준 밴드다!”

이들이 낙원상가에 들어서자, 놀란 여학생이 소리쳤다.

악기를 구경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와, 진짜 문해준이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운전사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을 막으며 길을 텄다.

밴드 멤버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오빠! 사인 한 장만 해 주세요!”

종이를 내미는 여학생에게 사인해 주고, 같이 사진도 찍는 여유를 보였다. 이들은 터프한 락 밴드를 넘어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맞았다.

“어서 오세요, 실장님.”

마중 나와 있던 악기점 사장이 아는 척하며 다가왔다.

사장은 운전사를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이쪽으로 오시죠.”

가볍게 악수한 후 사장은 이들을 자신의 매장으로 안내했다.

“어디로 갔어?”

“저기로 갔어!”

매장 밖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 유리창에 붙어서 문해준 밴드를 구경했다.

“이게 이번에 새로 들어온 거예요?”실장이 신디사이저의 바디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아주 따끈따끈한 신상입니다.”

“잘 빠졌네.”

실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밴드 멤버들을 돌아봤다.

“요즘은 실력,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그냥 다 장비빨이야. 우리 땐 열심히 듣고 딴다고 좆뱅이 쳤는데 말이야.”

꾹.

실장이 웃으며 신디사이저에 있는 데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펑키한 음악이 튀어나왔다.

쿵쿵. 탁! 쿠우우웅. 탁!

두둥, 두둥― 둥둥.

빠라라― 삐리리리. 빠바밤!

데모 음악의 연주자들은 신디사이저의 음원을 골고루 섞으며 그루브(Groove)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캬! 죽인다!”

멤버들이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실장도 입을 벌린 채 대꾸했다.

“죽이지? 세상 많이 좋아졌다니까. 돈만 처바르면 돼.”“맞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음악도 절반은 장비빨입니다. 헤헤.”

실장의 말에 악기점 사장도 동의하며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악기 사러 온 건가?”

창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알 리 없었다. 밴드 멤버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좋아서 폴짝 뛰었다. 멤버들도 팬서비스 차원에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누군가 매장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장님, 주문하신 거 도착했습니다.”“수고했어요. 자, 실장님, 밖으로 나가시죠.”

사장은 실장을 밖으로 안내했다.

* * *

“이걸로 주세요.”

수철이 동민이를 대신해 마이크를 선택했다.

“학생이 마이크 볼 줄 아네, 좀 비싸도 마이크는 슈어(shure)가 좋아.”

마이크를 파는 사장은 수철의 안목을 칭찬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그래, 어서 가자. 배고프다.”

마이크를 사서 나온 수철과 동민은 다시 복도를 거슬러 올라갔다.

“어, 뭐지?”

입구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연예인 왔나?”

동민이가 관심을 보이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수철이 동민이를 잡았다.

“야, 그냥 가자. 배고프다며.”“잠시만 보고 가자.”

동민이는 말려도 듣지 않고, 모여 있는 사람들 뒤로 가서 까치발을 들었다.

“와! 문해준 밴드다!”

동민이가 환호했다.

“수철아, 이리 와 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수철에게 손짓했다. 수철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다가갔다.

“저 밴드, 요즘 엄청 잘나가잖아. 아이돌 출신 락 밴드여서 비주얼도 죽이네, 봐 봐.”

동민이가 수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수철은 관심 없었다.

“그냥 가자, 배고파.”“잠깐만 구경하고 가자, 잠깐만.”

수철의 말에 동민이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쩝.”

수철은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렸다. 동민이 돌아올 때까지 다른 악기나 구경할 생각이었다.

“아직 아무도 구경하지 못한 최신 상품입니다.”“생긴 게 예술이네요.”

사장의 말에 실장이 바디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S 시리즈 중에서 이번 모델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습니다.”“그렇군요, 스트링 사운드가 예술이라고 하던데.”“맞습니다, 그래서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사운드 한번 들어 보시죠.”

꾹.

악기점 사장이 최신 신디사이저의 데모 버튼을 눌렀다.

두둥! 땅땅! 쿵쿵 탕!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펑키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두꺼운 베이스 줄을 엄지로 두드리는 슬랩베이스를 시작으로, 어택이 강한 베이스 드럼과 경쾌한 스네어 드럼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 뒤로 등장한 스트링 사운드는 펑키한 리듬을 감싸 안았다.

“역시. 이름값 하네요.”

실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Y사는 실망을 안 시키죠.”

사장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곡은 더 다이내믹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콘트라베이스에 맞춰 상쾌한 스네어 드럼이 박을 조였다. 악기들의 선율은 마치 용이 서로를 휘감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교차하며 움직였다.

문해준 밴드를 구경 온 사람들도 어느덧 신디사이저에서 울려 퍼지는 사운드에 매료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민속 악기를 구경하던 수철의 귀에도 음악이 들려왔다. 수철은 음악에 맞춰 머리를 끄덕이다가 리듬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둡둡, 뚜둡. 두비두밥! 바밥―

연주 중간중간에 멜로디를 집어넣다가 복도 한편에 열려 있는 중고 피아노에 다가갔다. 피아노 앞에 서서 리듬에 맞춰 음을 몇 개 눌러 보기 시작했다.

땅. 따당. 뚱. 뚜둥.

피아노의 굵은 베이스 음을 몇 번 튕기더니, 자리에 앉아서 텐션(tension, 기본 화음 위에 비화성음을 쌓아서 긴장감을 조성)된 화성을 힘있게 누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따단! 딴딴. 딴따단― 빠밤!

갑자기 피아노 한 대에서 흑인들의 빅밴드 사운드가 튀어나왔다. 박력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경쾌한 재즈의 그루브가 뿜어져 나왔다.

신디사이저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복도 한편에 있는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로 쏠렸다.

수철은 리듬을 쪼개고 파고들며 신들린 듯이 피아노를 쳤다. 왼손은 잔뜩 텐션시킨 화성을 거침없이 눌렀고, 오른손은 건반 위를 폭주족처럼 달렸다.

딴. 딴! 따라리단, 따라리리. 빠밤― 빰!

마치 난타하듯,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강렬하면서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가 관객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자유로우면서도 정돈되어 있는 수철의 피아노는 신디사이저 속 세션을 주도하는 듯했다.

수철은 펍(PUB) 구석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영화 속 허비 행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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