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6화 (6/239)

#6화. 음악 괴물

“와, 쩐다. 쩔어.”

사람들은 물론이고 문해준 밴드, 실장, 악기점 사장까지 수철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꽂혔다.

수철의 사운드는 갈수록 더 흥이 났다. 그루브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 틈이 없었다.

“음. 음. 둡둡. 뚜둡.”

신디사이저에서 흘러나오는 데모 음악의 색채가 바뀔 때마다 수철의 사운드도 계속 변화했다.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즉석에서 잼을 하고 있네요.”“그 정도가 아니에요. 심지어 저들의 연주에서 아쉬운 부분을 채워 넣고 있어요.”

실장과 사장은 수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둘의 말대로 수철이 펼치는 소리의 향연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와, 정말 미쳤다.”

문해준 밴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입에서 진심 어린 탄성이 튀어나왔다.

수철은 신디사이저 속 연주자들과 하모니를 이루면서도 오히려 음악을 끌고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죽이고 귀만 세우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아예 눈을 감고 감상했고, 몇몇은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다가 선율에 취해 머리를 흔들었다.

시끄럽던 낙원상가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악기점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나와서 수철을 보고 있었다.

“누구지?”

“모르겠는데.”

“엄청난 연주력이네.”“저 정도 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지?”

뮤지션의 메카는 순식간에 수철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사로잡혔다. 수철은 악기에 가격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두두두두둥― 챙!

길었던 데모 음악이 끝나고 신디사이저에서 나오던 소리가 모두 멈췄다. 하지만 수철의 연주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얼마 후, 거침없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연주는 어느새 막바지로 향했다. 정신없이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다니던 손가락도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따라랑. 땅. 따앙…….

마지막 멜로디에 여운을 남기며 드디어 연주가 끝이 났다.

“후…….”

수철은 잠시 호흡을 고르며 피아노 건반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숨죽이고 수철의 모습을 지켜봤다.

정적을 깬 것은 악기점 사장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멍하니 피아노 건반을 보고 있던 수철은 사장의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헉!”

자신을 둘러싸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놀랐다.

‘전문 세션맨인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악기점 사장은 안경을 내리고 눈에 초점을 맞추며, 피아노를 친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수철을 알지 못하는 사장은 낯선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짝짝!

이때 누군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기립 박수가 복도를 울렸다. 사람들은 마치 대단한 공연을 본 것처럼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반면, 수철은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얼굴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 나와버린 끼에 당황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아노 앞을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입구로 향했다.

‘잠깐, 동민이가 어딨지?’

잠시 멈춰 동민이를 찾았다.

동민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수철은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서둘러 낙원상가를 빠져나갔다.

* * *

‘대체 용수철, 오늘 뭐야?’

동민이는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철이 낯설게 느껴졌다. 기타에 피아노까지, 여러 번 놀랐다.

‘기억이 안 나…….’

수철은 자신이 어떻게 피아노에 앉은 건지 기억이 안 났다.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데모 음악이 나왔었는데. 그리고 그다음에…….’

그다음이 기억이 안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야, 너 오늘 뭐야?”

계단을 내려온 동민이가 수철에게 다가갔다. 수철이 고개를 돌려 동민이를 봤다.

“뭐가 뭐야?”

“이젠 더 놀랄 힘도 없다.”“그럼 밥 먹으러 가자.”“말 돌리지 말고 대충이라도 설명 좀 해 봐. 기타에다가 피아노까지, 너, 진짜 내가 아는 용수철 맞아?”

수철은 동민이를 보며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일단 가자, 배고프다.”“정말 말 안 해 줄 거야?”

“가서 말해 줄게.”

* * *

동민이는 순대를 먹으면서 수철의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의 정체가 뭘까?’ 하는 표정이었다.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비벼서 한입 집어넣으며 물었다.

“이제 말해 봐.”

“뭘?”

“너, 정체가 뭐야?”

“정체? 내가 무슨 간첩이야?”“어떻게 너, 지금까지 날 속이고.”

“속이긴 뭘 속여?”

“속인 거 맞잖아, 네가……!”

흥분한 동민이의 입에서 순대 당면이 튀어나왔다.

“아이, 짜식! 자, 입 닦아.”

수철은 입에 붙은 당면을 보며 냅킨을 내밀었다.

“흥분하지 말고 물어봐, 그러니까 내가 기타랑 피아노 잘 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지?”

“으, 응.”

동민이가 입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악기 실력을 숨겨서 기분 나쁘다는 거고?”

“맞아.”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짜식, 그렇게 물어보면 되지 순대를 뿜고 그래? 알았어, 비밀을 말해 줄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알았어.”

“이리 가까이 와 봐.”

동민이가 몸을 기울여 귀를 내밀었다.

“나, 사실 천재…….”

“…….”

“……가 아니라 어릴 때 아빠한테 배운 거야. 아빠가 거의 뮤지션이었거든.”

“진짜?”

동민이가 다소 실망한 얼굴로 몸을 세웠다.

“당연, 진짜지.”

“아빠가 경찰이었다고 하지 않았어?”“경찰은 음악 하면 안 돼?”“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너, 왜 숨겼어?”“숨긴 게 아니라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거지.”“우리 밴드 할 때 말이야.”“아, 그건 나 알바 해야 하는데, 내가 악기 다룰 줄 안다고 하면 네가 빼 줬겠어?”

“…….”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동민이는 대꾸가 없었다. 잠시 수철을 바라보다 말을 돌렸다.

“암튼, 오늘 너 때문에 여러 번 놀랐으니까 순대랑 떡볶이값은 네가 내.”“내가? 너 마이크 사는 데 따라왔으니까, 네가 내야 하는 거 아냐?”“원래 이런 건 매니저가 내는 거야. 그리고 너 자꾸 그러면 애들한테 다 말해 버린다?”

동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협박했다.

“알았어, 내가 낼게. 많이 먹어라. 떨어진 당면도 다 주워서 입에 넣고.”“크크, 이모! 여기 어묵도 두 개씩 주세요!”

동민이는 궁금증이 모두 해소됐는지 해맑게 웃었다.

“어쨌든 너, 오늘 좀 멋있었어. 알바 참교육할 때는 정말…….”

말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수철을 봤다.

“정말 뭐?”

“통쾌했어. 그리고 피아노 칠 때는 정말 멋있었어, 부럽기도 하고.”“부럽긴, 너도 연습하면 나처럼 칠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

“우리가 돈 모아서 너 알바비 줄 테니까…….”

“……?”

“밴드에 들어오면 안 돼?”

“안 돼.”

* * *

실장은 한눈에 수철이 물건임을 알아봤다. 직감적으로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철이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실장이 악기점 사장에게 어깨를 붙이며 물었다.

“저 친구, 누군지 아세요?”“글쎄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요.”“사장님, 제 번호 아시죠?”

“네.”

“누군지 알게 되면 연락 좀 주세요.”“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죠.”

몇몇 사람은 수철이 사라지고 나서도 피아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만약에 신디사이저 만든 회사에서 아까 그 연주를 들었다면 데모 음악을 바꾸지 않았을까?”“다시 녹음했겠지, 아까 그 학생도 끼워서 말이야.”

사람들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수군댔다.

“다들 본 적 없다고 했지?”

“없어.”

“대체 누구길래 아무도 모르는 거지? 그 정도 실력이면 상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수철의 존재가 궁금했다. 자신들이 아는 피아노 연주자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모여 있는 사람 중에는 아까 수철에게 참교육을 당했던 알바도 껴 있었다. 그도 현란한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복도로 나왔다가 수철을 보고 놀라서 눈을 비볐다. 자신을 충격에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수철이 이번엔 피아노에 앉아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같은 사람이었다. 빨갰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듯 파래졌다.

알바는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가져와 수철이 연주하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밴드 지망생들이 모여 있는 동호회에 영상을 올렸다.

[오늘 2시. 낙원상가에 음악 괴물 출현.]

영상을 올리자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헉, 이거 실화임?

―초고수 등장.

―님, 나 오늘부터 음악 접음.

―진짜가 나타났다.

―와, 개쩐다.

―정의실현.

<낙원기타짱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영상 대박! 대체 누구임?

―모름. 사라졌음. 얼굴은 아는데 누군지는 모름. 고딩이라는 거만 앎.

―얼굴이 안 보이네요?

―뒤에서 찍어서 그럼. 오늘 문해준 밴드도 왔었는데 얼굴이 누렇게 떴음. 찍 소리도 못 하고 구경만 했음.

―그럼 저 고삐리한테 문해준 밴드가 쫄은 거임?

―그런 셈. 그리고 기타도 완전 괴물임. 지미 핸드릭스가 환생한 줄 알았음.

―와, 어떻길래?

―완전 장난 아님.

―님도 기타 잘 치지 않음? 지난번 영상 올린 거 봤는데.

―나도 완전 개발렸음. 오늘 내 음악성 완전 탈곡 당했음.

―그 정도임? 그 영상도 있으면 올려 주셈.

―없음. 있어도 못 올림.

알바가 올린 영상은 조회수가 치솟으며 밤새도록 댓글이 쏟아졌다.

* * *

“어제 수철이 완전 대박이었어!”

동민이가 책상에 걸터앉아 기타 치는 시늉을 했다.

“잘난 척하는 알바생 참교육하는데, 너희도 그 표정 봤었어야 해. 알바 완전 개발려서 거의 울 뻔했다니까? 완전 통쾌했어.”

교실에서 친구들을 모아 놓고 어제 있었던 일을 떠들고 있었다.

“진짜 수철이가 그랬단 말이야? 우리가 아는 용수철이가?”

친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너희도 어제 같이 갔었어야 해. 수철이가 돌아서면서 마지막 명대사도 날렸어.”

“뭐라고?”

친구들이 눈을 반짝였다.

동민이가 수철의 자세를 흉내 내며 성대모사를 했다.

“아저씨, 그거 지미 페이지가 아니라, 지미 핸드릭스예요.”

“캬!”

친구들의 얼굴에서 사이다가 터졌다.

“어때, 완전 예술이지?”“용수철, 이 신비로운 녀석. 사랑하고 싶다.”“이건 시작에 불과해.”

“뭐가 또 있어?”

“그 후에 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져.”

동민이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 * *

“우웨엑!”

수철은 거친 구토 소리에 잠을 깼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엄마가 세면대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별거 아니야, 체한 것 같아.”

괜찮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잦은 구토를 하는 엄마가 걱정됐다.

“그러지 말고 같이 병원 가 보자.”“알았어, 병원은 엄마가 이따가 가 볼 테니까 넌 어서 밥 먹고 학교 갈 준비해.”

일이 힘든지 요즘 들어 많이 약해졌다. 식탁에 반찬을 올리는 엄마의 모습이 초췌해 보였다.

“진짜 병원 갈 거지?”“왜, 엄마 죽을까 봐 걱정되니?”“무슨 말을 그렇게 해?”

수철은 자신의 몸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엄마는 이를 눈치채고 수철을 다독였다.

“알았어, 병원 가 볼 테니까 넌 걱정 말고 학교에 가.”

수철은 엄마가 신경 쓰였지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더 어마어마한 일?”

동민에게 수철의 무용담을 듣던 친구들의 눈이 커졌다.

드르륵.

그때 뒷문이 열리며 수철이 교실에 들어섰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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