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
수철은 동민이 주위에 애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바로 알아챘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수철은 동민이의 입방정을 잘 알고 있다. 못 말리겠다고 고개를 저으며 다가갔다.
“영웅 등장.”
수철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그 소리에 동민이 등을 돌렸다.
“헤이~ 요 맨!”
어제의 용사를 다시 만난 반가움에 동민이 손을 번쩍 들었다. 수철이 다가가자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수철아, 난 아직도 어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 따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 완전 참교…… 풉!”
수철이 동민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멀뚱히 보던 친구가 물었다.
“동민이 얘기가 사실이야? 어제 낙원상가에서 참교육 제대로 했다던데.”
수철에게 직접 확인하려는 시선이 집중됐다. 수철이 동민이의 입을 막은 채로 대답했다.
“동민이 스타일 알면서 그래?”“그래도 완전 뻥은 아닌 거 같은데?”“30% 정도는 사실일 거야.”
“30%?”
“낙원상가 가서 마이크 산 건 사실이야.”
“에이!”
호기심 가득하던 친구들의 눈빛이 경멸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짜식, 그럴 줄 알았어. 넌 노래하지 말고 소설이나 써라.”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는 얼굴로 모두 등을 돌렸다.
수철의 손에 입이 막혀 있는 동민이는 바보가 된 얼굴이다.
“야, 뭔 소리야? 너, 어제…… 풉!”“동민아, 너 매점 쏜다며?”
수철은 계속 떠들려고 하는 동민이의 입을 다시 틀어막고 복도로 끌고 나갔다.
“퉤퉤! 잠깐 이것 좀 놔 봐!”
복도로 끌려 나온 동민이는 수철을 밀치며 인상 썼다.
“너, 왜 날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그리고 내가 언제 매점 쏜다고 그랬어?”
자신의 잘못은 까마득히 잊은 채 어이없다며 쏘아봤다. 수철이 더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네가 말 안 하는 조건으로 내가 순대랑 떡볶이 샀잖아. 그런데 네가 다 떠벌였으니까 먼저 약속 안 지킨 건 너지.”“아, 그건……. 미안,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어.”
동민이는 바로 잘못을 시인했다.
수철이 다시 물었다.
“약속을 어겼으니까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음……. 어제 먹은 거 토해 내야지.”“그래. 어서 입 벌려 봐, 내가 손가락 넣어서 토하는 거 도와줄게.”
동민이의 입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야, 야, 잠깐만. 이러면 되지?”
“어떻게?”
“어제 먹은 거 더치페이하든지, 아님…….”
“아님?”
“……매점에서 내가 사야지. 아! 네 말이 맞네, 매점에서 내가 사야 하는 거 맞네, 가자, 컵라면 쏠게.”
동민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맑은 얼굴로 앞장섰다.
* * *
수철이 낙원상가를 방문한 이후, 실장의 부탁을 받은 악기점 사장은 CCTV에서 수철의 얼굴을 확인했다. 사진을 만들어서 돌아다니며 상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 이 학생 누군지 알아요?”“글쎄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수철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굴은 본 적 있는데…….”
마이크 가게 사장님도 수철을 봤지만, 누군지는 모른다고 했다.
악기점 사장뿐만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수철의 존재가 궁금했다. 낙원상가를 방문했다가 소문을 들은 방송 관계자와 잡지사 기자들까지 수철의 존재에 관심을 보였다.
첫눈에 수철이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기획사에 끌어들여 스타를 만들어 볼 요량이었던 실장은 별도로 수소문하는 노력까지 들였다.
하지만 아무도 수철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했다. 영상을 본 밴드 지망생들도 누구와 비슷하다는 추측만 내놨다.
수철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상가의 기인이 되어 있었다.
* * *
“왜? 뭐가 잘 안 돼?”
축제를 10일 남기고 동민이는 밴드 연습이 뜻대로 되지 않는지, 수철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애들이 마음만 앞서. 말로는 잘하는데, 연습만 시작하면 동서남북으로 각자의 길을 가.”
“캬캬.”
“웃지 마! 나 심각해, 이러다 진미 여고 애들한테 돌 맞겠어.”
동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력은 동민이도 비슷하겠지만, 아무래도 보컬이고 리더니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뭐가 문제야?”
“한두 가지가 아냐.”
“가장 큰 문제는?”
“박자가 안 맞아.”
악기를 배운지 얼마 안 됐으니까 당연히 생기는 문제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녀석들이 기특했다.
“오늘도 연습해?”
“응.”
“알았어, 이따가 연습실 잠깐 들를게.”
“그래, 고마워.”
수철은 수업을 마치고 알바 가기 전 연습실에 들렸다. 오래된 연습실이라서 그런지 거친 기타 소리가 연습실 방음문을 뚫고 나왔다.
수철이 두꺼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와, 수철아.”
“열심이네, 알바 가기 전에 잠깐 들렸어.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연습해.”
수철의 말에 동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자. 다시 한번 해 보자. 원 투 쓰리 포!”
신호에 맞춰 상철이가 오버드라이브를 걸고 거친 톤으로 기타 리프를 시작했다.
빰! 빰빰! 빰빠― 빠밤!
딥 퍼플(Deep Purple)의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였다.
곡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같은 리프의 반복인데도 박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동민이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상철이는 통기타를 쳤다고 들었는데.’
의외였다. 뒤이어 따라 들어온 민석도 열심히 자신의 박만 세며 드럼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기타에 박을 맞추려고 긴장한 탓인지 같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베이스는 기타와 드럼의 중간 어디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합주실 안에 3개의 1인 밴드가 있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스모크 온 더 워터’ 아닌가. 일부러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거 같았다.
수철은 여러 번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친구들이 너무 진지했다.
Smoke On The Water―!
그나마 동민이가 락 스피릿을 내뿜으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딥 퍼플의 보컬인 ‘이언 길런’의 영상을 많이 봤는지, 몸동작도 비슷하고 발성도 그럴듯했다.
연습에 임하는 자세도 좋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쇠붙이가 달린 손목 밴드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상철이와 기영이가 기타를 치면서 동민이의 보컬에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스모크 온 더 워터―!”“스모크 온 더 워터―!”
순간, 동민이가 노래를 멈췄다. 등을 돌렸다. 하소연을 했다.
“코러스 신경 쓰지 말고 제발 박자 먼저 맞추자, 얘들아. 사랑하는 원수 같은 친구들아.”
“알았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쿵. 쿵. 탁! 쿵. 쿵. 탁!
뚜둥. 징! 지잉―
음악이 중반으로 넘어가자 드디어 동민이가 말한 대로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드럼은 빨리 끝내고 싶은지 점점 빨라졌고, 베이스는 거기에 맞추려고 더 빨라졌다.
신기하게도 기타 솔로는 그럴듯했다.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솔로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딱 맞아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대단한걸.’
솔로가 끝나고 잠시 벌어졌던 박자는 음악이 종반으로 치닫자, 다시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떨어져 놀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같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지독한 연습의 결과였다.
색깔이 강한 음악이라서 그런지 초보치고 사운드는 나쁘지 않았다. ‘존 로드’의 하몬드 오르간이 없는 게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오르간을 쳐 주며 음악을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음악은 과정이다. 힘들더라도 같이 고민하며 만들어 내는 게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지하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연습하는 이유다.
짝짝!
수철은 음악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아직 서툴지만, 밴드를 하겠다고 덤벼든 녀석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진지한 모습이 나름 뮤지션 같았고, 학원에 개인 레슨까지. 추억을 만들겠다고 열심인 녀석들이 대견했다.
“나 알바 가야 하니까 다음에 또 놀러 올게. 열심히 해. 화이팅!”
수철은 화이팅을 외치고 밖으로 나왔다.
동민이가 배웅한다며 따라 나왔다.
“솔직히 말해 봐, 그냥 해체하는 게 낫겠지?”“만든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해체를 해? 처음부터 잘 맞는 팀이 어딨어,”“아니면 음악을 바꿀까?”“인제 와서? 음악은 잘 골랐어. 박자가 좀 문제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런 거야. 점점 나아질 거야.”“이제 10일 남았는데 가능할까?”
동민이는 불안한지 갈팡질팡했다.
“프로 뮤지션 될 거 아니잖아. 처음부터 추억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거니까. 그러면 되지. 지금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될 거야.”“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운데,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나와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의상도 살벌한 거로 준비해 뒀는데 이러다 패션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처음 밴드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떨 때와 달리 기가 많이 꺾인 모습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마,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그래 주면 고맙지.”“애들 기다리겠다. 들어가 봐,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하고.”
“알았어, 낼 봐.”
아직 초보 밴드라서 박자 감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악기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치기 바쁘다. 팀의 하모니는 신경 쓸 틈이 없다. 거기에 연습실 모니터링 환경도 좋지 않다.
‘그래도 박자만 잘 조여 주면.’
박자만 잘 조여 주면 무난히 추억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수철은 특급 비법을 내놨다.
“알기 쉽게 3단계로 설명해 줄게. 우선 이것 봐 봐.”
직접 만든 리듬 악보를 내놓았다. 거기엔 ‘스모크 온 더 워터’에 들어가는 박의 형태가 나뉘어서 적혀 있었다.
“1단계는 이거 보면서 박수 쳐 봐. ‘짝! 짝!’ 이렇게. 초딩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 메트로놈은 꼭 켜 놓고 해야 하고, 연습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10분 정도 반복해 봐.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와, 역시.”
동민이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답안지라도 발견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모두 귀에 메트로놈 꽂고 다니라고 해. 특히 드럼은 밴드에서 지휘자 역할이니까, 잘 때도 꽂고 자라고 해. 축제 때까지는 그렇게 하라고 해.”
“알았어.”
수철은 한 번 더 강조했다.
“메트로놈이 중요한 거야. 메트로놈이 너희의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이야.”
“그래, 알았어.”
“그리고 드럼은 악보 보지 말고 다 외워서 치라고 해. 무조건 전체를 다 외워서 칼 박자로 쳐야 해.”“알았어, 꼭 그렇게 시킬게.”
동민이의 눈에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 곡은 드럼과 베이스가 박자를 잘 맞추고, 기타가 톤만 잘 잡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 너희가 이 곡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야. 그리고 너는…….”
수철이 말을 멈추고 동민이를 휙 한번 쳐다봤다.
“무대 매너가 좀 과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거 같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테니까. 곡도 너랑 잘 어울리는 거 같고.”“땡큐. 이번에 반응 좋으면 아예 락커로 나갈 수도 있어.”
“그러진 말고.”
“알았어.”
“그리고 2단계는 연습할 때 드럼이 정확해지면, 그다음에 드럼과 베이스를 같이 맞춰. 둘이 잘 맞으면 그다음에 기타를 붙이고. 그렇게 연습해 보면 도움이 될 거야.”“알았어. 그렇게 할게.”
내용이 많아지자 동민이가 수철의 말을 노트에 끄적였다.
“리듬 파트가 기본이니까, 드럼과 베이스는 축제까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라고 해. 빤스도 같은 거로 입으라고 해.”“빤스까지? 크크, 알았어.”
빤스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단계는 너희끼리 서로 모니터링이 잘 안 되니까, 연습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같이 보면서 대화해 봐.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축제 전날은 좀 비싸더라도 큰 연습실에서 연습해. 리허설 한다고 생각하고.”“알았어. 고마워, 역시 넌 천재야.”“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열심히 해 봐.”
“오케이.”
“밴드 이름은 정했어?”
“응.”
“뭔데?”
“단순무식.”
“잘 어울리네.”
* * *
똑딱. 똑딱. 똑딱똑딱. 똑딱똑딱.
그날 이후 밴드 ‘단순무식’ 멤버들은 매일 메트로놈을 들으며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화장실에서까지 그러고 있어서 수철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였다.
축제가 가까워질수록 친구들은 진짜 뮤지션같이 진지하게 연습했다.
* * *
“수철아! 얼른 교무실로 가 봐,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봐!”
축제를 앞두고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상택이가 급하게 교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수철은 벌떡 일어났다. 불안한 느낌이 몰려왔다. 새벽에 심하게 구토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교무실로 뛰어갔다.
“수철아,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어서 병원으로 가야겠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수철의 놀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