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버럭 박 대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불현듯 엄마와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수철을 낳아서 친구 같았던 엄마. 언제나 수철이 먼저였다. 어렸을 땐 수철의 입에 맛있는 거 넣어 줄 때가 가장 행복했고, 커서는 수철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너 유학도 보내 줄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아빠의 역할까지 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한 번도 티를 내지 않았다. 수철이 앞에선 항상 강한 척을 했다.
수철은 그런 엄마에게 대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택시 창문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그러다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불길하게…….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아직 아무 일도.’
고개를 저었다.
“수철이 왔구나? 많이 놀랐지?”
병원에 도착해서야 이웃집 아주머니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횡단보도에서 쓰러지셨다. 몸이 아픈데도 보험을 소개해 준다는 얘기에 급하게 가던 중이었다.
수철은 엄마를 영원히 지켜 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만 졸업하면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계셨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어렵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가냘프게 뜬 눈, 야윈 손목.
수철이 나타나자 엄마는 희미한 눈으로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툭툭 쳐서 산소마스크를 밀어냈다.
수철이 다시 씌우려 해도 손을 저으며 수철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수철아, 엄마가 미안해. 3개월은 괜찮다고 했는데……. 의사가 실력이 없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이미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다.
수철은 얼마 전 평소와 달랐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랍을 열어 통장의 위치를 알려 주고, 비밀번호도 알려 줬다. 친척들 번호라며 작은 수첩까지 내밀었다.
멀리 떠나는 사람 같은 말투에 수철은 의아했지만, 엄마는 자꾸 깜빡깜빡해서 그런다며 둘러댔다. 순진하게도 수철은 그 말을 믿었다.
피곤해서 그렇다며, 좀 쉬면 괜찮아진다고 말하면서, 엄마는 더 열심히 일했다. 수철을 위해 최대한 많이 모아두고 떠날 생각이었다.
일찍 일어난 것도 아파서 잠을 못 잔 거였고, 새벽 구토도 암이 깊어져서 그런 거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철은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엄마가 수철의 얼굴을 살피고 있어서 참아야 했다.
“힘들게 말하려고 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수철은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를 달랬다.
* * *
수철은 축제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나고 녀석들이 병원으로 몰려왔다.
“진짜 열광적이었어. 사람들이 이 맛에 락을 하나 봐.”
동민이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잔뜩 들떠 있었다.
밴드 단순무식의 열기는 유명 가수의 공연 못지않게 뜨거웠다고 했다. 학생들이 앙코르까지 외쳤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한 곡밖에 없으니까 당황했지. 그래서 목소리를 키워서 ‘스모크 온 더 워터’를 한 번 더 했어. 우리가 축제 분위기를 다 휘어잡았지.”
녀석들은 자신들이 이번 축제의 메인 스타가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아직도 기분이 가시지 않는지, 상기된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공연에서 실력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구경 온 진미 여고 학생들도 점프하며 하트 뿜뿜을 날렸다.
해피엔딩이었다.
축제 이벤트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모든 일은 동민이의 계획대로 벌어졌다. 덕분에 동민이의 자존감은 한없이 올라갔다. 기획사에 찾아가 오디션이라도 볼 분위기였다.
수철은 친구들을 보며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 * *
엄마는 항암 치료를 할 단계를 놓쳤기 때문에 진통제에만 의존했다. 수철은 임상 시험에 참여하겠다며 엄마를 살리고 싶은 의지를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의사는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 편하게 해 드려,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의사의 결정은 수철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정신이 몽롱할 때가 많았다. 히죽히죽 웃으며 수철을 바라봤다. 그래도 아파서 고통스러운 거보단 나았다.
늦은 밤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병실을 지키고 있는 수철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음료수 한잔을 내밀었다.
“힘들죠?”
“…….”
“췌장암이 예후가 좋지 않아서.”
그녀는 핸드폰을 열어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어머니가 지금 이런 상태예요.”
말기 암 환자의 필름을 보여 줬다. 그녀는 담당 교수가 하지 않았던 얘기도 들려줬다.
“암이 이미 온몸에 전이되어 있어서 교수님께서 항암 치료는 어렵다고 판단하신 거예요. 퇴원하시면 어머니랑 시간 많이 보내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게 하세요. 그게 최선이에요.”
의사는 수철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철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도 항암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안 되나요?”“어려워요, 한다고 해도 버티지 못하세요.”“어떻게 장담하세요? 1%라도 가능성은 있잖아요.”
“…….”
수철의 마음을 아는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어요?”“길어야 한 달이에요.”
* * *
“네가 다 커서 다행이야. 아빠 만나면 혼나진 않겠다.”
엄마는 담담하게 농담을 했다.
수철은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피식 웃어넘겼다.
며칠 후, 엄마의 호흡이 다시 가빠졌다. 엄마는 야윈 손으로 수철의 손목을 잡았다. 힘겹게 눈을 떠 수철과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말했다.
자식을 혼자 두고 떠나는 엄마의 눈빛은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널 믿는다.’‘아들, 지켜 주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해.’
두 가지 눈빛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저어 산소호흡기를 떨쳐 내려 했다.
수철은 조심스레 산소호흡기를 내렸다.
“아들…….”
“말해.”
“고등학교는 꼭 마쳐야 해…….”
그게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게 유언이었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의 곁으로 갔다. 퇴원해서 집에 가고 싶어 했던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17살 수철은 고아가 되었다. 이번 인생도 부모와 인연이 길지 않았다.
비 오는 봉안당에서 수철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부모와의 인연은 바뀌지 않았다.
* * *
수철은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하며 집에 처박혀 있었다. 불도 켜지 않고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감정이 요동치면 악기를 잡고 미친 듯이 연주했다.
이런 모습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됐다. 밤새 어둠 속에서 악기 소리만 들렸다. 수철은 그렇게 엄마 잃은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수철은 다시 학교에 갔지만, 지각을 달고 살았다.
학교는 오직 엄마의 유언 때문에 다녔다.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조금 챙겨 주는 듯하더니, 곧바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수철도 그게 편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축제에서 뽕 맛을 본 친구들은 계속 락 밴드를 하겠다고 외치더니, 고3이 되자 갑자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장하다, 내 아들!”
비록 지방대지만 대학을 기대하지 않았던 부모님들은 합격 소식에 기뻐했다. 친구들도 공기 좋은 곳으로 간다며 만족했다.
그중에서도 동민이가 제일 공기 좋은 데로 갔다. 제주도였다. 동민이는 캠퍼스의 낭만을 운운하며 제주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했다.
수철은 대학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은 나중에 언제라도 갈 수 있다. 유공자의 자녀라 학비가 면제다. 지금은 대학보다 생활비를 버는 게 시급했다. 성인이 되면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 끊기기 때문이다.
“너 혼자 남아서 어떡하냐. 심심하겠다. 제주도 같이 갈래?”
동민이는 혼자 남은 수철을 걱정했다.
“바닷가 보이는 경치 좋은 데 방 얻어 놔. 놀러 갈 테니까.”“알았어. 전망 죽이는 데로 얻을게.”
수철의 말에 동민이는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와! 해방이다!”
하늘 위로 모자가 치솟았다.
해가 바뀌고, 드디어 19살.
수철은 엄마의 유언대로 학교를 마쳤다.
졸업장을 들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 나 졸업했어.”
봉안당에 도착해서 졸업장을 들어 보였다.
엄마와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졸업장을 유골함 뒤에 올려놓고 한동안 보고 서 있었다.
“……갈게, 다음에 또 봐.”
해가 지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똑. 똑.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정류장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는 멈췄지만, 빗물들이 정류장 지붕 끝에 모여 떨어지고 있었다.
수철은 엄마에게 갔다 와서인지 얼굴이 한결 밝았다.
어둠 속을 보며 버스를 기다리던 수철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맞춰 몇 번 읊조리더니 입으로 악기 소리를 냈다.
“똑똑. 뚜비르밥. 뚜욱뚝. 뚜비르비밥밥밥.”
재즈의 스캣(Scat, 가사 대신 ‘다다다디다다’같이 아무 뜻도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창법)이었다.
수철이 소리를 내면 물방울도 같이 연주하는 것처럼 맞춰서 떨어졌다. 수철은 물방울 사이를 파고들며 리듬을 만들었다.
“다바디야. 슈비드와. 뚜둡. 똑똑―”
수철의 소리에 음역이란 것이 없었다. 마치 지하에서 지상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고속 엘리베이터 같았다. 막힘이 없었다.
쿵!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등장한 술 취한 아저씨가 수철에게 다가오다 정류장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 * *
‘디데이 뮤직’의 박성준 대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줄 알아!”
“…….”
박 대표의 소리에 눌린 이 실장은 멀뚱히 쳐다만 봤다.
“이 실장이 천재라고 하면 천재가 돼? 아직도 모르겠어? 그건 아이를 죽이는 거라고! 천재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어떨지 생각은 해 봤어?”“아니, 대표님. 왜 그렇게 흥분을…….”
이 실장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계속 쏘아붙였다.
“어린 학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는 거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실장까지 왜 그래?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뭐라고요?”
박 대표에게 꼼짝 못 하던 이 실장이 돈에 눈이 멀었다는 말에 발끈했다.
“흠…….”
주위의 시선을 한번 살피더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걔는 딱 봐도 물건이에요, 지금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천재 소릴 들을 애라고요. 그런 끼 넘치는 애를 외면하는 게 오히려 죄악 아닙니까?”“그러니까 끼를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줘야지, 왜 돈벌이로 이용할 생각만 하냐고! 그 아이가 동물원의 원숭이야?”
“뭐라고요!”
이 실장이 다시 불끈했다. 눈까지 부라렸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천재 소녀 프로젝트.’
이 실장이 한껏 들떠서 박 대표에게 말한 아이디어였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운 천재 소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천재 소녀.
이 실장은 이번에 뽑은 가수를 천재로 포장할 생각이었다. 음악성은 앨범과 뮤직비디오로 보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편집을 통해 천재를 만들어 내겠다는 얘기였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어차피 음악 판이 다 그렇듯, 이 실장도 돈만 있으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곡도 돈 주고 전문가들에게 사 오면 된다. 그들은 함구할 것이다, 돈을 계속 벌고 싶을 테니까.
물론, 발탁된 여중생이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에 근접해 있다. 단지 5% 부족할 뿐이었다.
“그 정도는 제가 채우면 되죠.”
이 실장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 5%를 채울 생각이었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이럴 마케팅이었다. 바이럴을 통해서 천재를 창조할 생각이었다.
‘저놈까지 저럴 줄이야, 쯧쯧.’
박 대표는 그런 이 실장을 보며 혀를 찼다.
이번 기회에 실장 딱지를 떼고 자신의 회사를 차리려면 투자자들에게 성과를 보여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중학생을 천재로 둔갑시킬 생각은 위험하다. 천재의 삶이 어떤지 몰라서 그러는 거다. 천재면 그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