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9화 (9/239)

#9화. 도어스(The Doors)

박 대표는 이런 프로젝트의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이 실장은 참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주인공은 나 홀로 천재가 되고 만다.

‘진짜 천재가 맞아?’

사람들은 점점 의심하게 되고, 결국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천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회사는 천재가 맞다고 끝까지 우기지만, 사람들은 점점 등을 돌린다. 조작된 천재는 그렇게 조용히 사람들에게서 잊힌다. 그것이 천재 해프닝의 결말이다.

“어쨌든 손해 볼 장사는 아니잖아요.”

회사는 손해 볼 게 없다. 천재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동안 주인공의 인지도는 올라가고, 회사는 그 기간에 돈만 벌면 된다. 천재인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 듣고, 영상을 보니까 돈이 된다.

자연스레 몸값도 치솟는다. 잠시 뜸 들이다 몸값이 최고치에 오를 때, 슬쩍 몇 번 공연하면 된다. 몇 차례의 공연으로 천재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는 없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결국 박 대표가 폭발했다.

“아니, 대표님. 왜 소리를 지르세…….”“돈벌이로 써먹다가 단물 빠지면 버리겠다는 거잖아!”

박 대표는 분노했다.

기획사들이 천재니, 대박 날 물건이니 하며 아이들을 돈벌이로 몰아가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에게 재능과 끼는 오직 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그렇지!”

박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기획사들의 손에 아이들의 끼와 재능이 변질되는 걸 지켜보기 힘들었다. 파렴치한 장사꾼들만 득실거리는 이 바닥에 환멸을 느꼈다.

* * *

45세의 ‘디데이 뮤직’ 대표 박성준은 제작자 사이에선 드물게 음악 전공자다. 한국에서 음대를 마치고 보스턴으로 가서 재즈까지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앨범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처음 접한 음악판은 자기 생각과 많이 달랐다. 문제가 많았다. 인기 없는 장르는 홍보할 기회조차 없었고, 관계자들도 비인기 장르라며 선을 긋고 차별했다.

“에이, 더러워서. 퉤. 내가 창업한다.”

결국, 그는 30살 젊은 나이에 ‘디데이 뮤직’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제작 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5년 동안 30장이 넘는 앨범을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앨범은 하나같이 예술 지향적이어서 대박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마니아층 덕분에 큰돈은 못 벌어도 망하지는 않았다.

“디데이 뮤직 박 대표가 앨범은 잘 만들잖아요.”“그건 인정합니다. 음악적인 부분은 우리가 박 대표를 따라갈 수 없죠.”

다른 제작자들도 박 대표의 음악적인 부분은 인정했다.

음악 전공자라는 특이점과 소신 있는 제작으로 제작 판에서 명성을 얻었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디데이 뮤직’은 한때 직원이 10명이 넘었다. 소속 아티스트까지 합치면 30명이 넘는 꽤 큰 규모의 기획사였다.

“자, 화이팅해 봅시다.”

박 대표는 열정이 있었다. 앨범 성공을 위해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축제도 직접 기획했다. 그러면서 아티스트들의 확장력을 넓혀 나갔다. 덕분에 디데이 뮤직은 초반에 빠른 성장을 했다.

“와―!”

짝짝

소속 아티스트들은 대학 축제와 예술 행사에 초대받으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문화예술재단에서 주최하는 공연엔 ‘디데이 뮤직’의 아티스트가 빠지지 않았다. 직원들도 으쌰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높여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음악 판이 아이돌 중심으로 바뀌고 제작한 앨범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디데이 뮤직’은 곤경에 처했다.

“대표님, 이제 어떡하죠?”

밥줄이던 공연까지 아이돌 판으로 돌아가면서 박 대표는 휘청거렸다.

결국, 같이 일하던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회사엔 박 대표 혼자 남게 되었다.

제작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제작자는 투자자만 쳐다보는 신세가 된다. 일상은 백수건달과 비슷해진다.

지금 박 대표의 상황도 비슷하다. 사무실 겸 작업실에서 나 홀로 사장을 하고 있다. 그나마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기에 명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돈은 안 된다. 틈틈이 음악을 편곡하고 CM송을 만들어 주면서 어렵게 회사를 유지하고 있다.

* * *

“박 대표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박 대표는 제작자지만 음악과 관련해서는 뮤지션의 편을 들었다. 몇몇은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몇몇은 달랐다. 평소 불만이 많던 제작자들이 패거리로 대들었다.

“요즘같이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제작자들끼리 돕고 살아야지, 우리 보러 굶어 죽으라는 겁니까?”

불만이 터져 나왔다. 허술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몇몇 제작자들이 발끈했다.

박 대표도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지원금을 타 가면 재능 있는 순수 뮤지션들이 굶게 된다. 그래서 박 대표가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예상한 대로 제작자들은 반기를 들었다.

“기획사가 스타 만들고 음악 흐름 잡고 하는 거지, 요즘 세상에 재능이 어딨고, 순수가 어딨어요? 철모르는 애들 얘기지. 다 회사의 마케팅 역량이잖아요!”“그런 소리 마세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대작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다 순수함을 가진 뮤지션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스타들도 다 그들에게 배우며 성장한 겁니다.”“그건 다 옛말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어요. 아시잖아요, 스타도 히트곡도 다 우리가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없으면 지금의 음악 판도 없어요! 다 우리가 세운 거 아닙니까?”

제작자들은 아예 막가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수긍할 생각이 없었다.

“그 반대죠, 그들이 없으면 여러분도 없어요. 곰이 없는데 조련사가 왜 필요합니까?”

“……에잉!”

말문이 막힌 제작자가 콧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제작자가 나섰다.

“박 대표님,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지금은 다 돈입니다, 돈이 스타를 만들고 히트곡도 만드는 거죠.”“맞습니다, 돈 중요합니다. 돈 없으면 제작도 못 하죠. 하지만 지금처럼 음악 바닥이 커진 건 밑바탕에 무명 뮤지션들의 창작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에요. 대장 원숭이도 다른 원숭이들이 있어야 대장 노릇을 하죠.”

‘유학 가서 말발만 배워 왔나?’

대화에서 밀리자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어쭈.’

박 대표는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은 그러니까, 대표님 같은 사람도 그들 때문에 스트리밍이니 다운로드니 하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잖아요? 그런 코 묻은 돈 모아서 잘사는 양반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에잉!”

스트리밍 회사에 지분을 가진 제작자는 박 대표의 팩트 체크에 말문이 막혔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콧소리를 내고는 자리를 떠나 버렸다.

* * *

박 대표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후우―!’

손을 모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었다.

똑. 똑.

비는 그쳤지만, 처마에서 가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박 대표는 어둠 속으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음악 바닥에 음악가는 없고, 장사꾼만 넘치네.”

한숨이 나왔다. 기분이 씁쓸했다. 담배 한 대 피우려고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기 싫어졌다. 주머니를 툭툭 쳐서 소지품을 확인하고는 발을 떼서 계단을 내려갔다.

뒤를 힐끔 한번 쳐다보고는 인사도 없이 연기를 뿜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박 대표는 술을 마신 탓에 운전할 수가 없었다. 차는 세워 두고 대로변으로 걸어 나갔다.

“이런…….”

택시를 잡으려고 지갑을 봤는데 천 원짜리 몇 개밖에 없다. 호주머니를 뒤져 봐도 택시비가 없다.

“……쩝.”

비도 왔는데 기분이 씁쓸하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버스 정류장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오지 말걸, 괜히 왔어.’

제작자 모임에 괜히 왔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정류장에 다가가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정류장 한편에서 후드티에 손을 넣은 채 소리를 읊조리고 있었다.

―다바디야. 슈비드와. 뚜둡.

‘……스캣?’

순간 박 대표의 눈이 커졌다.

이런 곳에서 스캣(Scat)을 듣는 것도 신기했지만, 들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얼핏 들어도 재즈의 전문가가 내는 소리였다.

‘누구지?’

박 대표는 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했다. 얼굴을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술기운 탓에 정류장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다.

쿵!

스캣을 하던 사람은 소리를 멈추고 힐끗 쳐다보더니, 후드티 모자를 덮어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으…….’

부르르.

쌀쌀한 날씨 탓인지, 유령을 본 거 같은 기분 탓인지, 박 대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곧이어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다바디야. 슈비드와. 뚜둡.

차에 오른 박 대표의 머릿속에서 아까 그 스캣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임팩트가 강해서 잊히지 않았다.

‘허 참, 별일이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버스 창밖을 내다봤다.

* * *

수철은 술 취한 아저씨가 다가오자 몸을 돌려 정류장을 벗어났다. 후드티의 모자를 올려 쓰고 어둠 속을 걸었다.

다시 비가 쏟아졌다.

한 정거장만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그냥 무작정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빗속에서 수철의 노랫소리는 더 커졌다.

* * *

“신청 곡 돼요?”

“네, 테이블에 있는 쪽지에 적어서 주세요. 금방 틀어 드릴게요.”

학교를 졸업한 수철은 알바를 시작했다. 음악을 틀어 주는 클럽 같은 카페였다.

가게 이름은 ‘도어스’다. 27살의 나이로 요절한 전설적인 락 가수, 짐 모리슨이 결성한 밴드 도어스(The Doors)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카페 사장님은 다름 아닌 홍대에서 밴드를 하던, 동민이의 사촌 형이다. 수철에게 이곳을 소개해 준 사람은 당연히 동민이다.

“야, 너 졸업하더니 더 멋있어졌다?”

“얼마나 됐다고.”

수철은 동민이의 말대로 더 멋있어졌다. 길게 기른 머리에 낡은 점퍼만 걸쳤는데도 모델 같았다. 긴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시크했고, 오뚝한 코 옆으로는 그늘이 져서 이목구비가 더 선명해 보였다.

“아 참, 너, 클럽에서 알바할래? 너한테 어울릴 거 같은데.”

동민이 느닷없이 알바를 제안했다.

“클럽?”

“밴드 하는 사촌 형이 클럽을 만들었거든.”“형이 돈 많은가 봐?”“대학 안 갔으니까 큰아버지가 등록금 대신 창업비를 주신 거지. 그런데 클럽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안 든대.”

“그래?”

시크하던 수철이 관심을 보였다.

“응, 방음도 형이 직접 다 하고, 안에 그림도 형이 다 그렸어. LP랑 CD만 많으면 된대. 그쪽은 형이 오타쿠니까 당연히 많지.”“내가 알바해도 돼?”“당연하지, 내가 형의 비밀을 몇 개 쥐고 있거든.”“크, 너도 참…….”

“그러지 말고 오늘같이 가 보자. 음악도 들을 겸.”

수철은 오랜만에 만난 동민이와 신촌으로 향했다.

“오케이, 합격!”

사촌 형은 수철을 보자마자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동민이와 절친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철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보자마자 합격을 외쳤다.

“환영한다. 잘해 보자.”“네,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수철은 바로 채용됐다. 19살이라고 나이를 밝혔지만, 형은 자신도 19살 때 클럽에서 알바를 했다며 쿨하게 넘어갔다.

“너한테는 뮤지션의 필이 흐르고 있어!”

수철의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수철은 다음 날부터 바로 알바를 시작했다.

“다 틀어 주나요?”

“네.”

도어스에는 음악 마니아들이 많이 왔다. 평일에는 사람들이 몰려와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신청했고, 주말에는 밴드의 공연이 벌어졌다.

신청하는 음악의 장르도 다양했다. 거친 음악을 신청해서 머리를 흔드는 사람도 있고, 재즈를 신청해서 칵테일 잔을 기울이며 소리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락 음악이 대세였지만, 특별히 장르의 구분은 없었다.

“혹시 음악 하세요?”

“네? 아니에요.”

수철의 머리는 잔뜩 길어서 얼굴을 덮을 정도로 자랐다. 어떻게 보면 히피 같고,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같았다.

수철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봤다.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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