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프리 버드(Free Bird)
수철은 이곳이 좋았다. 무엇보다 LP와 CD가 많아서 좋았다.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 천장 모서리에 달린 4개의 스피커는 도어스만의 매력이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공연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스피커는 사장 형이 핀란드에서 직접 구매한 하이엔드급 스피커였다. 그만큼 가격도 고액이었다. 원래 녹음실에서나 사용하는 스피커지만,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사운드를 제공하고자 작심하고 구매한 것이다.
“수철아, 혹시라도 가게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스피커를 구해야 해.”
형이 농담 삼아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것이었다.
“수철아, 먼저 들어갈게. 마감 부탁해.”
수철에 대한 신뢰가 쌓이자, 사장 형은 수철에게 뒷마무리를 맡기고 먼저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때부터가 수철의 시간이었다. 스피커를 키워 음악을 듣다가 꽂히는 게 있으면 가게에 있는 기타나 키보드를 잡고 연주했다.
챙, 촤앙! 위이잉― 따단!
CD 속 음악가들과 밤새도록 합주를 했다. 음악이 끝나도 필(feel)대로 계속 연주를 이어 갔고, 연주는 끊기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테마를 계속 바리에이션(Variation)하듯 수철의 연주도 그러했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제야 수철은 가게 한편에 있는 소파에 몸을 묻고 잠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도어스에서 수철의 일상이었다.
사장 형은 수철을 대단한 음악 마니아로 생각했다. 손님들이 물어보는 곡을 모두 찾아서 틀어줬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요. 혹시 이 곡 알아요? 멜로디가……. 음음, 따라라라. 이렇게 시작하는 곡인데.”
“엘리펀트요?”
“아! 맞아요, 엘리펀트! 근데 가수가 누구였죠?”“데미안 라이스요. 금방 틀어 드릴게요.”
수철은 손님들이 멜로디 몇 개만 읊조려도 바로 음악을 찾아서 틀어 줬다. 손님들이 수철을 ‘걸어 다니는 검색창’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와, 용수철,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멜로디 한두 개 듣고 그걸 다 알아?”
사장 형은 옆에서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자신도 음악을 좋아하고 잘 알지만, 수철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알바를 잘 뽑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손님들도 그런 수철을 좋아했다. 수철이 알바를 시작한 후 가게 매상이 많이 올라갔다.
“도어스 사장은 인복도 많아. 알바는 어디서 구했어요? 우리도 좋은 알바 한 명 소개해 줘요.”
수철을 본 상가 사람들은 사장 형을 부러워했다. 수철이 자신의 가게로 오면 매니저 자리를 주겠다고 꼬시기도 했다.
어찌 됐건, 수철이 일을 하고 나서부터 사장 형은 매출이 올라서 월세 걱정이 사라져 기분이 좋았고, 수철은 한 달 만에 시급이 올라서 좋았다. 무엇보다 온종일 음악 안에 있어서 좋았다.
가게는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어났고 그럴수록 사장 형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갔다.
“헤이, 브라더!”
급기야 수철을 브라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네?”
수철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면,
“동민이가 내 브라더니까 너도 내 브라더 맞잖아.”
주먹을 쥐며 내밀었다.
“네, 그렇긴 하죠.”
수철도 주먹을 쥐어 부딪혔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쉿!”
어느새 더 길어진 머리는 수철의 시크한 눈빛을 더 시크하게 만들었다. 일할 때는 긴 머리를 고무줄로 지끈 묶었다.
손님들에겐 이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 여자 손님들에겐 그랬다.
“저기요, 음악 신청해도 되나요?”“네, 어떤 음악 틀어 드릴까요?”
“아무거나요.”
좋아하는 음악이 없어도 말을 걸고 싶어서 애써 신청 곡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었다.
“바쁘세요? 맛있어 보여서 사 왔어요.”
단골을 자청하며 올 때마다 먹거리를 사 오는 사람도 있었고, 비싼 선물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수철이 거절해도 끝끝내 선물을 넘겨주고 갔다.
“형, 이거 어떤 손님이 주고 가셨어요.”
그럴 땐 사장 형에게 넘겼다. 그러면 손님이 다시 왔을 때 사장 형이 나서 감사를 표했다.
“지난번에 주신 선물 잘 받았어요.”
“…….”
그 후로 손님들의 선물 공세는 끊어졌다.
* * *
저녁엔 알바를 하고, 밤에는 음악을 듣고, 아침엔 잠을 자고.
그러기를 두 달째, 악기를 맨 여학생이 도어스에 등장했다.
“저기 주문 좀 할게요.”
앳돼 보이는 학생은 스스럼없이 바(bar)에 앉더니 손을 들었다.
설거지하던 수철이 손을 닦으며 다가갔다.
“네, 말씀하세요.”
“호가든 한 병 주세요. 신청 곡 적을 쪽지도 주시고요.”
“네.”
수철은 맥주를 가져다주고 장부에 적으면서 여학생을 힐끗 쳐다봤다.
여학생은 맥주를 들이켜다가 눈이 마주치자 괜히 뜨끔해서 물었다.
“미성년자 아닌데, 신분증 보여 드려야 하나요?”“네? 하하, 아니에요.”
여학생은 자신이 어려 보여서 수철이 쳐다봤다고 오해했다.
수철이 여학생을 쳐다본 건 메고 온 악기 케이스가 신기해서였다. 케이스에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개중에는 마이클 잭슨도 매달려 있었다.
“우선 이 곡부터 신청할게요.”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켜고는 신청 곡을 적은 쪽지를 내밀었다.
수철이 음악을 틀자 가볍게 리듬을 타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게에서 많은 사람을 봤지만, 여학생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달랐다. 신청하는 음악도 악기 편성이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곡들이었다.
병맥주를 입에 물고 마시며 신청 곡의 쪽지가 쌓여 갈 때쯤, 여학생의 시선이 수철을 향했다.
“저는 다혜예요, 윤다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수철에게 말을 걸었다. 잔을 씻던 수철이 등을 돌렸다.
“전 수철입니다, 용수철.”“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어요?”“이제 두 달쯤 됐어요.”
“저 모르시죠?”
다혜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수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저 여기 단골이에요. 도어스 생기고 나서 매일 왔었어요. 요즘은 학교 때문에 자주 못 왔지만.”“아, 그러시군요. 어쩐지.”
수철은 가게 분위기에 익숙해 보이던 그녀가 이해됐다.
“사장님이랑도 완전 친해요.”
다혜는 붙임성이 좋았다. 그녀는 예상대로 음대생이었다.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있었다.
씻은 컵을 마른 수건으로 닦던 수철이 물었다.
“학교에서 뭐 배워요?”
“배우는 거 많죠.”
“뭐 배우는데요?”
느닷없는 질문에 다혜는 살짝 당황했다.
“음…… 시창, 청음, 피아노, 화성학, 전공 이론, 전공 실기, 앙상블. 더 말해 줘요?”“그거 배우는데 얼마나 내요?”
순간 ‘뭐 이런 알바가 다 있지?’ 하는 표정이었다.
“많이 내죠. 엄청 비싸요. 근데 왜 물어요? 음악학교 다니고 싶어요?”“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그럴 생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던 다혜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가 볼게요. 음악 잘 들었어요.”
다혜는 인사를 건네며 계산서에 돈을 얹어 내밀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다 들었는지 흡족한 얼굴이었다.
모두 수철의 덕분이었다. 수철은 다혜가 음악을 신청할 때마다 빠르게 틀어 줬고, 신청 곡이 끊기면 다혜의 취향에 맞게 음악을 선곡해 줬다.
“음악 진짜 많이 아시나 봐요?”
다혜의 눈엔 수철이 가게에 있는 LP와 CD의 음악을 다 외운 것처럼 보였다.
“좋아해요.”
수철은 빙그레 웃었다.
느닷없이 다혜가 손을 내밀었다.
“도어스에서 일하게 되신 걸 축하드려요. 여기에 정말 잘 어울리는 분 같아요.”
“네, 고맙습니다.”
수철도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계산을 마치고 수철이 거스름돈을 건네자 다혜는 잔돈을 팁(tip) 통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나름 활동하는 뮤지션임을 알렸다.
“나중에 시간 되면 공연 보러 오세요.”
“공연도 해요?”
“네, 매주 수요일 홍대 프리멍키에서 해요.”“수요일이면 내일?”
“네, 내일도 해요. 홍대 올 일 있으면 놀러 와요.”
“알겠어요.”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네, 안녕히 가세요.”
다혜는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악기를 메고 사라졌다.
* * *
프리멍키는 프리 버드(Free Bird)에서 이름을 따왔다. 프리 버드는 미국의 전설적인 락 그룹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대표곡이다.
프리 버드의 선율을 듣고 있자면 마치 자신이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음악은 그런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마력을 만든 밴드가 바로 레너드 스키너드다.
‘레너드 스키너드’라는 팀 이름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들이 학창 시절, 머리가 길다고 괴롭히던 선생의 이름이 ‘레너드 스키너’였다.
그 선생의 이름을 비꼬아서 만든 팀 이름이 바로 ‘레너드 스키너드’다. 나중에 퇴직한 선생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구두 가게를 열었는데, ‘레너드 스키너드’의 명성을 타고 가게가 대박이 났다.
반면에 한참 잘나가던 멤버들은 안타깝게도 비행기 사고로 절반이 사망하고, 절반이 크게 다쳤다. 그리고 자연스레 팀은 해체됐다.
짧았던 그들의 음악 인생은 그들이 노래했던 프리 버드처럼 거침없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프리 버드가 되어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음악과 자유로움은 고스란히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세계 곳곳엔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추모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노래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프리 버드뿐만이 아니라 심플 맨(Simple Man)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말했죠.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는 어린 아들에게 세상을 심플 맨으로 살라고 말하는 엄마의 조언이 담겨 있다.
이 가사는 경쟁을 강요당하는 많은 학생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부자가 되려고 돈을 좇지 말라고,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는 엄마는 대한민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엄마였다.
그래서 심플 맨의 가사는 학생들에게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같았다.
이 음악을 듣고 있자면, 레너드 스키너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로 돌아가서 그들의 밴드에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음악에 열광하고 싶어진다.
수철도 클럽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심플 맨의 기타 인트로가 떠올랐다.
한번 들은 사람은 꼭 다시 듣게 되는 아르페지오가 매력적인 곡이다.
‘이쯤 어디인 거 같은데?’
수철은 홍대입구역에 내려서 걸어가다가 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간판을 확인하고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쿵. 쿵. 쿵칙. 팍칙.
계단을 내려갈수록 들려오는 사운드에 수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도어스와는 달랐다. 두껍고 둔탁한 소리가 밑에서부터 올라오며 심장을 두드렸다. 수철은 묘한 전율을 느꼈다.
쿵! 쿵! 쿵칙! 빡칙!
두꺼운 방음문을 열고 들어서자 터져 나오는 사운드는 수철의 심장을 밟고 뛰어다녔다.
스피커로만 듣던 음악과는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라이브였다.
“소리 질러! 예에~!”
현란한 조명 아래서 보컬이 몸을 젖히며 고성을 질러 댔다. 그 옆에서 기타는 몸을 굽힌 채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좌석이 없이 뻥 뚫린 홀에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맥주병을 들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소리를 지르며 점프했다.
“앵콜! 앵콜!”
사람들의 앵콜 요청에 밴드는 마지막 한 방울의 열정까지 다 쏟아 냈다.
“와―!”
열정의 밴드가 사라지자, 잠시 후 새로운 밴드가 등장했다. 조금 전 밴드와는 사뭇 다른 구성이었다. 바이올린도 있고 플루트를 든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는 키보드 앞에 서 있는 다혜도 보였다.
역시 뮤지션은 무대에 있어야 생기가 돈다. 다혜도 그랬다. 살짝 긴장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안녕하세요. 그루브 케이(Groove K)입니다.”
인사를 한 보컬이 눈짓하자, 바로 음악이 시작됐다.
쿵! 칙. 팍! 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