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1화 (11/239)

#11화. 친구가 되다

다혜 팀의 음악은 조금 전 팀과는 많이 달랐다. 사운드가 더 풍부하고 펑키했다.

드럼, 기타, 베이스, 신디사이저, 바이올린, 플루트, 보컬. 모두 하나같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밴드는 학생의 풋풋함과 프로 뮤지션 같은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직 어린 밴드지만 고정 팬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음악은 점점 더 그루브해졌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양에 안 차는지 밴드는 더 펑키한 음악을 뽑아냈다.

“Hey, do it now Yeah― hey…….”

와일드 체리(Wild Cherry)의 ‘플레이 댓 펑키 뮤직(Play That Funky Music)’이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려 온 모습이었다. 밴드의 펑키한 연주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았다.

“와―!”

짝짝!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밴드는 바로 마지막 곡을 꺼내 들었다.

스티비 원더의 ‘슈퍼스티션(Superstition)’이었다.

“예―! 와아!”

관객들은 다시 열광했다.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아까보다 더 높이 점프했다.

빨강, 파랑. 현란하게 움직이는 조명은 이들의 펑키한 음악을 더 펑키하게 만들었다. 밴드도 관객들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훗.’

어둠 속에서 수철의 미소가 보였다.

“앙코르! 앙코르!”

마지막 곡이 끝나자 관중들은 환호하며 앙코르를 외쳤다. 하지만 뒤의 팀이 기다리고 있어서 앙코르 곡은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박수를 쳤다.

수철이 생각했던 것보다 다혜 팀의 실력은 꽤 좋았다. 음악학교 학생다웠다.

수철은 잠시 후 무대를 내려온 다혜 팀을 보고 돌아섰다. 환호하는 관중을 뒤로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 * *

“네, 금방 틀어 드릴게요.”

며칠 후, 손님이 신청한 음악을 틀고 있는데 다혜가 가게에 들어섰다. 다혜는 들어오자마자 곧장 수철이 있는 바(bar)에 다가와 앉았다.

“안녕하세요.”

다혜가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어서 오세요.”

수철도 반갑게 인사했다.

다혜가 수철의 얼굴을 휙 한번 보더니 말을 붙였다.

“좋은 일 있어요?”

“왜요?”

“기분이 좋아 보여서요.”

수철은 대꾸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공연 얘기를 꺼냈다.

“다혜 씨, 잘하던데요?”

“……뭘 잘해요?”

“슈퍼스티션, 느낌 있더라고요.”“슈퍼스티션이요? ……공연장에 왔었어요?”

“네.”

눈을 크게 뜨고 묻는 다혜에게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요?”

“지난주에요.”

“왔으면 보고 가야지 왜 그냥 갔어요? 알았으면 내가 콜라라도 한 잔 줬을 텐데.”“가게에 빨리 와야 해서요.”

“아…….”

다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악기 구성도 좋고, 편곡도 신선했어요.”“오, 완전 전문가처럼 얘기하네요.”“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수철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다혜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 보셨어요. 우린 학생이니까 새롭게 구성하는 걸 좋아해요. 밴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매번 구성원도 바뀌고요.”

“아, 그렇군요.”

수철은 며칠 전 무대에 서 있던 다혜 팀들이 생각났다. 밴드가 신선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사장 형이 나타났다. 가게에 들어오다 다혜를 발견했다.

“어, 다혜 씨, 오랜만이네?”“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사장님 보러 왔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수철 씨, 맞죠? 저 지난번에 왔었죠?”

다혜는 자신이 아직 도어스의 단골임을 수철을 통해 확인했다.

“네, 맞아요.”

수철은 사장 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 씨? 둘이 벌써 인사했나 보네, 그런데 동갑내기끼리 수철 씨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다.”

사장 형은 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동갑이구나, 비슷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다혜도 수철의 나이를 예상했다는 눈치다.

“수철은 빠른……. 으흠, 어쨌든.”

사장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자칫하면 말이 헛나올 뻔했다. 급하게 말을 돌렸다.

“다혜 씨, 학교는 재밌어?”

“네, 재밌어요.”

“실력 엄청 늘었겠네.”“아직 일학년인데요, 뭐. 따라가기 바쁘죠.”“그래도 다혜 씨는 음악성이 탁월하니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가가 될 거야.”“감사합니다. 제가 이래서 사장님을 좋아해요. 헤헤.”

다혜는 사장 형의 칭찬에 입이 벌어졌다.

“하하, 나도 다혜 씨 보면 기분이 좋아. 수철아, 너도 다혜 씨랑 친하게 지내봐, 작곡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거든.”“아, 네, 그렇군요.”

“에이, 사장님.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한데, 제가 선수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다혜는 사장 형의 칭찬에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기네스 3병 더 주세요. 신청 곡 쪽지도 주시고요.

“네, 금방 갖다 드릴게요.”

수철이 손님에게 서빙 하는 동안 다혜는 사장 형과 얘기를 나눴다. 다혜의 붙임성 좋은 성격 탓에 사장 형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대화하던 사장 형이 의자를 반쯤 돌려서 서빙하는 수철을 봤다.

“수철이 저 녀석, 멋있는 녀석이야. 다혜 씨도 친하게 지내봐.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어.”“네, 그렇게 보여요. 음악도 엄청 많이 알더라고요.”

사장 형의 말에 다혜도 공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다혜는 늦은 시각까지 남아 있었다. 수철이 바쁘면 사장 형이랑 수다를 떨었고, 사장 형이 다른 손님과 얘기하면 음악을 신청했다.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네, 안녕히 가세요.”

시간이 가면서 손님들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사장 형도 손님들이랑 많이 마셨는지 얼큰한 모습이었다.

“다혜 씨, 오늘은 늦게까지 있네?”“네, 오늘은 좀 더 놀려고요.”“그래, 동갑내기끼리 좀 더 놀아. 나 먼저 들어갈게.”“네, 안녕히 가세요.”

다혜가 사장 형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간이 안 좋아졌는지 조금만 마셔도 확 올라오네.”

사장 형은 수철을 보며 중얼거렸다.

“형,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그래, 먼저 들어갈게. 내일 봐.”

“네, 들어가세요.”

사장 형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우리 동갑이라고 했지? 말 놓고 친구 하자.”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온 수철에게 다혜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 알았어. 네가 먼저 말 놓자고 한 거니까, 후회하지 마.”

다혜는 그 말뜻을 몰랐다.

“후회를 왜 해?”

“뭐, 별거 아니야. 편하게 수철이라고 불러. 오빠라고 해도 되고.”

“뭐?”

수철의 농담에 다혜가 귀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사실 알고 보면 다혜가 누나다.

다혜의 표정을 보며 수철이 빙그레 웃었다.

“왜? 말 놓기로 한 거 후회돼?”

“좀 그러려고 해.”

“친구 된 기념으로 네가 좋아할 만한 음악 하나 틀어 줄게.”

“무슨 음악?”

“들어 봐.”

수철이 LP판을 뒤져 낡은 LP 한 장을 꺼냈다.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들어서 놓자, LP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와!”

음악이 나오자마자 다혜의 입이 벌어졌다. 놀란 눈으로 수철을 봤다.

“너, 내가 이 곡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도어스에서 알바 하려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와…… 너, 진짜 대단하다. 이 곡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흘러나온 음악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더 두 밥 송(The Doo Bob Song)’이었다.

이 음악은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가 힙합 레이블과 손잡고 녹음한 앨범에 들어 있다. 그래서 그만큼 이 음악은 그루브하다. 하지만 정통 재즈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갈렸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모던재즈의 선두 주자다. 이 앨범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마지막 앨범이다. 그는 이 음악을 녹음하고 앨범이 나오기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런 말이 있다.

‘마일즈의 트럼펫 소리를 듣지 마라.’

한번 들으면 토끼 굴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와, 여기서 이렇게 들으니까 색다르네.”

가게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트럼펫 소리에 다혜의 표정이 환해졌다.

“맘에 들어?”

“응, 마일즈 아저씨의 트럼펫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아. 특히 여기, 도어스 스피커는 정말 좋아. 이것 때문에 더 자주 오게 되는 것 같아.”

다혜는 등을 돌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들을 쭉 한번 훑어봤다.

“스피커 좋지. 나도 그래서 여기서 계속 알바하게 되는 것 같아.”

“픽.”

수철의 농담에 다혜가 웃었다.

잠시 수철을 바라보던 다혜는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 병을 꺼내왔다.

“자, 이거 너 한 병 마셔.”

“갑자기 왜?”

수철은 다혜의 돌출 행동에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좋은 음악도 틀어 주고 공연에도 와 줬으니까 내가 한 병 사는 거야. 부담 갖지 말고 마셔. 부담되면 너도 한 병 사든지.”

“부담 안 돼.”

수철은 병뚜껑을 돌려 따서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캬, 시원하네.”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맥주병을 부딪쳤다. 다혜의 취향에 맞춰 음악 장르도 몇 번 바뀌었다.

문득 수철이 조용해진 음악을 틈타 말했다.

“너희 팀 느낌 좋던데? 실력도 괜찮고.”“우리가 좀 하지. 호호.”

술 탓인지, 원래 성격인지 겸손이 사라졌다.

“재즈를 배우면서 왜 펑크를 해?”“그거야 좋으니까 하는 거지. 신나잖아. 그리고 학교에서 재즈 하는 애들 별로 없어. 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지. 재즈 싫어하는 애들도 많아.”“그럴 거면 비싼 돈 주면서 학교는 왜 다녀?”“왜 다니냐니? 음악 잘하려고 다니는 거지.”“지금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그 정도?”

다혜는 수철의 표현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흠, 이론을 알아야지 음악이 더 발전하고 탄탄해져. 너도 관심 있으면 다녀 봐. 음악은 끝이 없어.”“등록금이 얼만데?”

“비싸.”

“얼마나?”

“3백만 원 넘어.”

“와, 내 친구들 학교보다 더 비싸네.”“친구들이 음악 해?”

“그런 건 아니고.”

“원래 음악학교가 다른 데보다 비싸.”

다혜의 말에 수철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농담처럼 툭 내뱉었다.

“백만 원만 줘, 내가 가르쳐 줄게.”

“뭐?”

다혜가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호호. 얘가 은근 개그 끼가 있네? 오케이, 기개는 인정. 그런데 너. 화성학이 뭔지는 알아?”

수철은 대꾸 없이 씨익 웃었다. 다혜 앞의 빈 맥주병을 집어 흔들었다.

“맥주 한 병 더 줄까?”

“응.”

수철이 맥주를 갖고 돌아오자 다혜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너, 우리 학교 우습게 보지 마.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실용음악과 중에서는 우리 학교가 탑이야. 경쟁률이 얼만 줄 알아?”

“나야 모르지.”

“암튼, 모두가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학교라고. 교수님도 다 빵빵해, 모두 유학파에 기본 석사까지 다 했어. 클래식 쪽은 나도 잘 모르지만, 그쪽 교수님들도 대단하다고 들었어.”

다혜는 수철에게 자신이 얼마나 좋은 학교에 다니는지 설명했다. 자신이 그런 학교에 다니니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수철은 열띤 학교 홍보를 하는 다혜를 멀뚱히 쳐다봤다. 설명이 끝나자, 다혜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줬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음악을 잘하는 거였구나.”

수철의 말에 다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꼭 그렇다는 거는 아니고.”“그게 아니면 원래 천재라는 말인가?”“에이, 천재까지야. 그런데 너, 장사 좀 한다?”

다혜가 맥주병을 입에 물면서 눈을 맞췄다.

수철은 가게를 마칠 시간이 되어서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다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수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마칠 시간이야.”“벌써? 난 아쉬운데.”“영업시간이라는 게 있잖아.”“딱 한 병만 더 마시면 안 돼?”“그래, 한 병은 괜찮아. 카드 줘, 먼저 계산해 줄게.”“그럼 두 병 계산해 줘.”

“안 돼.”

“이잉.”

느닷없이 앙탈을 부렸다.

“한 병 더 먹고 싶으면…….”

“……?”

“요기 앞에 가면 편의점 있어. 거기 파라솔도 있으니까 거기 가서 마셔.”

“에이.”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혜는 수철이 가져다준 마지막 한 병을 아껴 마셨다. 하지만 곧 바닥이 드러났다.

똑. 똑.

맥주병을 거꾸로 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혓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면서 수철을 봤다. 혹시 한 병 더 줄까 해서다. 하지만 수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간판을 끄고, 음악도 끄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혜가 싫어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에이, 단골을 쫓아내다니.”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잘 마셨어. 음악도 잘 들었고. 나중에 학교에 한번 놀러 와. 음악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시켜 줄게.”

“언제?”

“아무 때나.”

“내일?”

“성격도 급하네, 그래, 내일도 괜찮아.”

“한 시?”

“알았어.”

* * *

‘여긴가?’

지하철에서 내린 수철은 출구를 확인하고는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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