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참교육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은 교수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어서 오세요.”
수철도 인사를 하며 교수 앞으로 메뉴판을 밀었다. 교수는 다혜에게 먼저 물었다.
“다혜야, 넌 뭐 마실래? 마시고 싶은 거 시켜, 내가 살게.”
“전 호가든이요.”
교수는 다시 메뉴판을 돌려주며 주문했다.
“저도 같은 거로 주세요.”“네, 금방 갖다드릴게요.”
수철은 맥주를 꺼내 오며 다혜의 옆에 앉은 사람을 다시 봤다.
‘누구지? 남자친구는 아닌 거 같은데.’
주방에서 팝콘을 담아 와 맥주와 함께 내밀었다.
“여깄습니다.”
“고맙습니다, 용수철 씨죠?”
“네?”
수철은 자신의 이름을 아는 사내를 보다 다혜를 봤다.
“교수님이셔.”
다혜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
수철은 갑자기 나타난 교수가 불편했다. 다짜고짜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저는 다혜의 전공과목 교수예요. 학생들에게 낸 문제를 한 번에 총보까지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왔어요.”“아, 그건 그냥 다혜에게 준 건데요?”“알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학교에 한번 와 주실 수 있나요?”
“왜요?”
“수철 씨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아서 학교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요.”“싫어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수철은 교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는 교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저기요! 여기 주문 좀 할게요!
테이블에서 손님이 손을 들자 서둘러 가 버렸다.
“왜 학교에 오기 싫어하지?”
교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옆에 앉은 다혜에게 물었다. 교수들에게 인정받을 좋은 기회를 거절하는 수철이 이해 안 됐다.
“저도 모르겠어요. 불편한가 봐요.”
“쩝.”
교수는 난감했다. 학교로 불러서 재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데, 거절하니까 마땅한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 LP판이 많네? 나도 예전에 LP 많이 모았었는데.”“지금도 갖고 계세요?”“지금은 많이 없어, 요즘은 다 MP3로 들으니까. 턴테이블 바늘도 고장 났고.”
‘……!’
잔뜩 꽂혀 있는 LP를 보던 교수는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재능을 확인해 볼 방법이 떠올랐다.
등을 돌려 수철이 뭐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수철은 자리가 불편한지 서빙을 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수철이 돌아오자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적어 놓은 쪽지를 내밀었다.
“저도 음악 한 곡 신청할게요.”
“네.”
수철은 쪽지를 들고 LP를 찾아서 음악을 틀었다.
음악이 나오자 교수가 물었다.
“이 음악, 들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고개를 저었다.
“이 음악은 제가 학생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에요. 참 좋죠?”
“네, 좋네요.”
교수의 말에 수철이 귀를 세우고 들어 보더니 공감했다.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교수가 다시 물었다.
“지금 이 부분에 관악기가 들어오면서 키(Key)가 바뀌었는데 어떤 키로 바뀌었는지 아시겠어요? 그리고 지금 나오는 콘트라베이스 솔로 부분은 어떤 스케일이 어떤 리듬의 형태로 시작됐을까요? 혹시 첫마디에 몇 개 음이 들어갔는지 아시겠어요?”
교수가 마음이 급했는지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헐.’
수철은 황당했다. 교수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할 말을 잃었다.
옆에 앉은 다혜도 교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흠…….”
아무 대꾸 없이 교수를 보던 수철은 교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을 테스트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수철의 얼굴에 불쾌한 미소가 드러났다.
교수는 수철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자, 잘 아는 음악을 신청해서 수철을 테스트해 보려고 했다. 일단 재능부터 확인하고 그다음을 계획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앞서 버렸다.
“한 번 더 들어 볼게요.”
음악이 끝나자 수철은 같은 음악을 한 번 더 틀었다. 이번엔 좀 더 귀 기울여 들었다.
음악이 끝나자 수철은 잠시 교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네.”
“이 음악은 총 4번 반복됐죠?”
“그렇죠.”
교수는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수철을 빤히 쳐다봤다. 수철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인트로 12마디는 하모닉 마이너였고요, 그다음 8마디에서 들어온 드럼은 트리플로 시작했어요.”
“맞아요.”
그 정도는 교수도 알고 있었다.
“기타는 드럼에 맞춰 팬타토닉으로 두 개 음씩 반복하면서 음정을 높여 갔고, 피아노의 화성은 모두 9도, 13도였어요. 즉흥연주 첫마디는 도리안 모드(Dorian Mode)였고요.”
“맞아요!”
교수의 날카롭던 눈빛이 바뀌었다. 재능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듣고 이 정도 파악했다면 정말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철은 교수가 생각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계속 이어진 질문은 교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이 정도는 교수님도 아실 거예요. 그럼 제가 다시 물어볼게요, 콘트라베이스가 솔로 파트에서 8마디 동안 몇 개 음을 쳤는지 아세요?”
“……?”
예상치 못한 역공에 교수가 눈을 껌뻑였다.
수철은 계속 질문을 날렸다.
“피아노는 즉흥연주 때 첫 8마디에서 몇 개의 화성을 누르고, 몇 개 음을 쳤을까요?”
“…….”
“드럼은 솔로 파트 때 어떤 비트의 박을 몇 번이나 쳤죠?”
교수의 얼굴빛이 다시 바뀌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철의 질문은 교수의 용량을 초과해 버렸다.
교수는 질문을 던지는 수철의 입만 멍하니 쳐다봤다.
“42번째 마디에서 기타의 스케일이 달라졌는데 어떤 스케일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반복 때 첫 마디를 8개의 화성으로 나눴던데 그 8개가 뭔지 기억하나요?”
교수는 완전히 얼어붙어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교수를 보며 수철이 물었다.
“계속할까요?”
“아, 아니, 됐어요. 그만하세요.”
교수는 파랗게 질려 버렸다.
곡을 만든 작곡자도 이렇게까지 알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8마디에 몇 개의 음을 쳤는지까지 알 필요는 없다.
수철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교수가 자신을 테스트하려고 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저기요!
교수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테이블에서 손님이 손을 들었다. 손님이 손을 들지 않았으면 교수는 화장실로 도망가 세수를 했을 것이다.
수철은 메뉴판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제가 물은 거 맞추면 교수님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교수는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눈알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얼굴은 파랗다 못해 까매졌다.
수백 번을 들었던 음악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디테일하게 알지 못했는데 저 어린 알바생은 두 번 만에 음악을 꿰고 있다.
마치 음악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어항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듯이 음악을 보고 있다. 믿기 어려운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아…….”
그제야 교수는 수철의 메시지를 깨달았다. 함부로 자신을 테스트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까불지 말라는 말이었다.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의 테스트는 무의미했다. 자신과 레벨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수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교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혜도 말이 없었다.
수철이 자리로 돌아오자 교수는 자세를 바꿔 정중히 사과했다.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미안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
수철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의 불편함은 좀 사라졌다. 교수가 계속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한번 듣고 악보를 그렸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그랬어요. 꼭 한번 만나고 싶어서 다혜를 통해서 부탁했는데 거절하니까……. 어쨌든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비긴 거로 하시죠.”
“……?”
“강의를 엿듣고 악보를 그린 건 제 실수니까요. 헤드폰 준다기에 그냥 재미 삼아서 해 본 건데, 그건 죄송해요. 교수님도 저를 마음대로 테스트하려고 했으니까 비긴 거로 하죠.”
“네, 좋습니다.”
그제야 교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수철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실 말씀 있으면 여기서 하세요. 학교까지 가는 건 좀 그렇거든요.”“여기서는 좀 곤란한데…… 학교 오는 게 많이 불편한가요?”“네, 그런 것도 있고, 가게도 바빠서요.”
그때 다혜가 끼어들었다.
“그건 걱정 마, 내가 대신 알바할게. 사장님께도 허락받을게.”“그건 아니지, 그리고 나 알바 빠지면 시급에서 깐단 말이야. 돈 벌어야 해.”
수철이 다혜의 호의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교수가 끼어들었다.
“알바비는 제가 드릴게요. 제가 부탁하는 거니까 당연히 제가 드려야죠.”
교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수철이 물었다.
“얼마나요?”
“얼마면 될까요?”
“먼저 말해 보세요.”
흥정을 시작했다.
“10만 원?”
교수가 금액을 제시하며 수철의 얼굴을 살폈다.
수철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20만 원?”
수철이 반응을 보였다.
“몇 시까지 가면 돼요?”“오후 5시 이후면 좋아요.”“오전에 가면 안 되나요?”“오전은 스튜디오를 학생들이 사용하니까요.”
“스튜디오요?”
“네, 거기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알았어요, 내일 가면 되죠?”
아까와 다르게 적극적인 수철의 모습에 교수는 당황했다.
“네, 그럼요. 내일. 저도 좋습니다.”
코너에 몰려서 난감했던 교수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자, 다시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수철의 성격이 파악이 안 되는 눈치다.
수철이 다혜를 봤다.
“사장님께는 내가 말할 테니까 다혜, 넌 나 대신 알바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알았어.”
수철은 다혜의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
“그럼 전 이만.”
교수는 수철에게 약속을 받아 내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갈게요.”“네, 안녕히 가세요.”“다혜야, 먼저 갈게.”“네, 교수님. 학교에서 봬요.”
교수는 다혜가 마신 거까지 계산하고 돌아섰다.
“근데 아까.”
밖으로 나가려던 교수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섰다.
“아까 나한테 물었던 거 답이 뭐예요? 그 8마디에 들어간 음이요.”
“아, 그거요?”
수철은 문제를 낼 때와는 달리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베이스는 8마디에 98개의 음을 쳤고요, 피아노는 즉흥연주 때 18개의 화음과 102개의 음을 쳤어요. 드럼은 32bit 음표 512개 쳤고, 16bit 64개, 8bit 16개, Tripple 12개였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쉼표겠죠.”
“……그렇군요.”
교수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네.”
“내가 만든 음악은 어땠나요?”
교수는 자신이 만든 곡에 대한 수철의 평가가 궁금했다.
“잘 모르겠어요. 헤.”
수철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쩝, 알겠어요.”
교수는 웃음의 의미를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교수가 가고 나자 다혜가 수철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너, 좀 무섭다.”
“왜? 난 네가 더 무서운데?”
“내가 왜?”
“아무래도 헤드폰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이지.”
수철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얘는 진짜 무당 끼가 있나?’
“알았어, 솔직히 말할게. 받았어. 받았는데, 내가 먼저 써 버렸어. 속여서 미안해, 새것 사서 줄게.”“그냥 돈으로 줘도 되는데.”“싫다는 말은 안 하네, 그렇지, 네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 * *
‘또 왔네.’
수철이 지하철 출구를 나와 다시 학교 앞에 섰다.
오늘은 말끔한 차림이다.
이번에도 건물을 한번 올려다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는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귀한 손님을 맞는 모습으로 일찌감치 내려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수철이 나타나자 교수는 반갑게 맞이했다.
“네, 안녕하세요.”
수철도 인사를 했다.
“이쪽으로 가시죠.”
수철이 한참 어린데도 교수는 수철을 깍듯이 대했다.
스튜디오는 5층에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잠금장치가 있어서 구경해 보지 못했던 곳이다.
교수가 목에 메고 있는 카드를 대자 ‘삐.’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교수를 따라 들어간 스튜디오는 사진에서나 보던 곳이었다.
컴컴하면서도 군데군데 박혀 있는 조명들이 눈을 편안하게 했고, 고요함은 침 삼키는 소리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컨트롤 룸이 있었고, 맞은 편에는 두꺼운 방음문으로 닫혀 있는 부스가 보였다. 부스는 컨트롤 룸에서 유리창으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저, 구경 좀 해도 되나요?”“네, 그렇게 하세요. 그동안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수철은 자신이 스튜디오에 오게 된 이유를 까먹은 채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보컬이나 성우 녹음을 하는 마이크만 있는 작은 방도 있었고, 녹음하기 전 서로 맞춰 보는 연습실도 있었다.
이곳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것 같았다.
수철은 자신이 만든 곡을 잘하면 여기서 녹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마치고 수철이 다시 콘트롤 룸으로 돌아오자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차를 내밀었다.
“불편하진 않죠?”
“네.”
예상과 달리 수철은 이 공간이 편했다. 마디 오래전부터 알던 공간 같아서 계속 있고 싶을 정도였다.
교수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