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찰떡궁합
시간이 촉박한지라 오디션 결과를 나중에 통보하고 그런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보컬은 다수결로 뽑지만 우선 선택권은 다혜에게 있었다.
“알았어.”
다혜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혜도 이미 마이클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열정적인 그의 끼에 끌렸다. 밴드가 하는 펑키한 음악에도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됐다.
“너희 의견이 그렇다면 나도 좋아.”
다혜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투로 말했다. 누가 봐도 대세는 마이클에게 기운 상황이었다. 멤버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수철은 이미 마이클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노래 잘 들었어요. 쿵칙. 팍칙. 리듬감도 끝내줬어요.”
드럼 소리까지 흉내 내며 마이클을 칭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수철은 마이클의 리듬감이 좋았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박자에 시원함을 느꼈다. 고딩 때 친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디션이 모두 끝나고 다혜가 한 명씩 불러서 결과를 알려 주려 하자, 수철이 다혜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
“……?”
“마지막에 오디션 본 저 두 명도 잘하는데, 두 명 다 뽑자.”
다혜는 수철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뭔 소리야? 정신 챙겨.”“나, 정신 말짱해.”
“아까는 마이클 뽑자며?”“그래, 마이클도 뽑고, 저 두 명도 뽑자고.”“그게 뭔 소리야? 보컬 트리오를 하자고?”“트리오가 아니라, 저 두 명은 코러스.”
“코러스?”
다혜는 그제야 수철의 속내를 파악했다. 수철은 마이클 뒤에 노래 잘하고 외모가 뛰어난 두 명의 여자 코러스를 세우고 싶은 것이다.
수철의 답도 그랬다.
“쌤이 그림 만들라고 했는데, 저 두 명이 코러스 하면 확실히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노래 실력도 좋고.”
“음.”
수철의 말에 다혜의 눈이 급하게 움직였다. 복잡했던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잠시 말을 멈추고 서성였다. 다시 수철을 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멤버가 늘어나면 네가 받는 돈이 줄어드는데 괜찮아?”
“상관없어.”
“웬일이야?”
“어차피 이번에 잘하면 많이 벌 거잖아.”
“누가 그래?”
“쌤이.”
“쌤이?”
“그래, 이번에 잘하면 초청 공연이 많이 들어 올 거라고 하시던데?”“역시 용수철은 계산이 있었네.”
다혜가 씨익 웃더니 다른 멤버들을 돌아봤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괜찮을 거 같아. 수철이 말대로 그림은 확실히 나오겠네.”“내 생각도 그래, 마이클이 앞에서 뛰어다니고, 뒤에서 저 두 명이 코러스로 받쳐 주면, 딱 봐도 답 나오네, 관객 분위기 쩔겠어.”“오케이, 그럼 다 찬성한 거지?”
“응.”
이로써 다종족
밴드가 완성되었다.
음악 천재와 마이클 잭슨, 파랑 머리 베이시스트와 온몸이 문신인 드러머. 그리고 팀의 리더 겸 건반의 다혜,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두 명의 여자 코러스까지.
굳이 그림을 만들지 않아도 눈에 띄는 조합이었다.
* * *
“우린 매일 3곡씩 3일을 공연하게 될 거야. 앙콜 곡까지 합치면 4곡이 되겠지. 그리고 매일 같은 곡만 하기는 그러니까 한두 곡 변화를 줘서 총 7곡을 연습할 계획이야.”
팀이 구성되자, 다혜는 빠르게 페스티벌에 관해 설명했다.
“연습 곡이 생각보다 많네?”“원래 우리 팀이 하던 곡을 섞으면 3곡만 새롭게 하면 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7곡을 다 해야 하지만.”“원래 하던 곡이면 펑크 스타일?”“그래, 와일드 체리와 스티비 원더 곡들로 채우고, 나머지 3곡은 서로 상의해서 정하면 될 거 같아.”“나머지 3곡은 보컬에 맞추는 게 좋지 않을까? 보컬이 워낙 강하니까 말이야. 무대를 뒤집을 거면 확 뒤집어 버리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
팔뚝에 문신을 드러내고 있는 드러머가 강하게 얘기했다.
다혜도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나머지 3곡은 마이클에 맞추는 게 좋을 거 같아. 다른 의견이 있으면 지금 얘기해.”
멤버들은 대놓고 그를 마이클이라고 불렀다. 그의 본명은 광필이다. 고광필.
“다시 말하지만, 나랑 베이스랑 드럼은 원래 같이했으니까 3곡만 하면 되는데, 수철이랑 마이클은 부지런히 해야 해. 7곡을 다 해야 하니까. 코러스 두명은 나중에 맞추면 되고.”
“오케이.”
모두 자신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안에 다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 바로 시작하자.”“왜 일주일이야? 10일 남았잖아.”“쌤이 클럽 공연 잡아 주신다고 리허설 겸 모니터링하래.”
“모니터링?”
“무대 그림 잡으라고.”“아, 뭔 말인지 알겠어.”
그때 수철이 나섰다.
“연습을 일주일씩이나 하게?”
그 말에 다혜가 미간을 구겼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아는데, 우린 다 너 같지 않아. 너만 특이한 거지. 우린 이게 정상이라고. 그러니까 같이하기로 했으면 네가 우리 스피드에 맞춰.”
다혜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단호하게 얘기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너희는 이미 4곡은 할 줄 안다며?”
“그런데?”
“그럼 마이클이랑 나만 맞추면 되잖아. 코러스는 그다음에 붙여도 되니까.”
“그래서?”
“그럼 우리 둘이서 4곡 연습해 올게. 내일까지.”
“내일까지?”
다혜가 다시 미간을 좁혔다. 수철이 자신의 스피드에 맞추려고 마이클을 혹사하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때 수철이 뒤를 돌아보며 마이클을 불렀다.
“헤이. 마이클.”
멀찍이 떨어져서 흥얼거리며 웨이브 연습을 하던 마이클이 고개를 들었다.
“와썹 맨~?”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너, 오늘 나랑 둘이서 연습할 수 있지?”
“와이 낫 맨~!”
“굿! 마이클, 넌 가사만 외워 와. 그러면 4곡 금방 맞출 수 있어.”
“오케이 맨~!”
마이클은 언제나 즐겁다.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다혜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다.
“넌 알바도 해야 하는데 언제 연습하려고?”“오늘은 가게 끝나고 도어스에서 하고, 내일은 일찍 와서 여기 작업실에서 하면 되지.”“그러다 마이클 쓰러지겠다.”“아닐걸? 마이클도 좋아할 거야.”
수철은 뭔가 숨겨 놓은 비법이라도 있는지 확신했다.
그래도 다혜는 뭔가 탐탁지 않은 눈치다.
“네 생각은 알겠는데, 팀워크도 쌓고 하려면 같이 연습하는 게 좋지 않을까?”“같이 연습한다고 팀워크가 쌓여? 그 시간에 순대랑 떡볶이 먹는 게 팀워크가 더 쌓일 거 같은데?”“쩝, 그렇긴 하지.”
“내 말은 시간만 늘리지 말고 집중해서 끝내자는 거야. 어차피 목적은 페스티벌에서 인기 끄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그 목표만 맞추면 되잖아. 걱정 안 시킬 테니까. 믿어 봐.”
수철의 생각은 명확했다.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자는 거였다.
다혜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알았어, 대신 확실하게 해야 해!”“걱정 마, 곡만 정해서 알려 줘. 금방 다 맞출 테니까.”“알았어, 나머지 3곡은 마이클이랑 상의해서 네가 정해.”
“내가?”
“응, 네가 음악도 많이 알고, 마이클이랑 연습도 같이할 거니까 네가 정하는 게 좋지. 3곡 모두 마이클한테 맞춰서 정해.”“알았어, 그럼 빌리진(Billie Jean), 빗 잇(Beat It), 그리고 나머지 한 곡은 분위기를 바꿔서 유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으로 할게.”
“헐…….”
다혜는 서슴없이 말하는 수철을 보며 혀를 찼다.
“뭐가 그렇게 후다닥이야?”“뜸 들일 거 뭐 있어? 답 나왔는데.”“그래도 천천히 좀 해, 따라가기 힘들어. 마이클이랑도 상의해야 할 거 아니야.”
수철이 등을 돌려 다시 마이클을 불렀다.
“헤이, 마이클!”
“와썹, 브라더?”
“빌리진, 빗 잇, 유아 낫 얼론. 오케이?”
“퍼펙트 맨~!”
마이클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봤지?”
“허…….”
다혜는 마이클과 수철의 짝짝 맞아떨어지는 궁합에 헛웃음이 나왔다.
“마이클의 보컬 능력은 생각한 거야?”“물론이지. 리듬감, 음역, 발음, 보컬 톤까지 고려하면 이 3곡이 딱이야. 아마 마이클은 이 3곡을 이미 부를 줄 알걸? 그러면 연습 시간도 줄어들고 좋잖아. 확인해 볼까?”
수철이 다시 마이클을 부르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혜가 팔을 잡았다.
“아니야, 됐어. 쩝.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그럼 이 3곡도 마이클이랑 연습하면서 먼저 맞춰 볼게. 그리고…….”“헐, 좀 천천히 해.”
다혜가 수철의 스피드에 숨이 막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끊었다.
“급하다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넌 참…….”
뭐라 할 말이 없는지 수철을 보며 고개만 저었다. 천재적인 재능에 스피드까지 빠르니 당해 낼 재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반면에 수철은 급하다면서 시간을 끄는 다혜가 이해가 안 됐다.
“어려울 게 뭐 있어? 그냥 하면 되는 건데.”“그렇지, 넌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네가 우리 같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
“네 스피드에 머리가 빙빙 돌 거 같아. 암튼, 음악은 네가 알아서 하고, 진행 상황만 알려 줘.”“알았어. 오늘은 둘이서 연습하고, 내일 점심때부터 팀 연습 시작하자. 마이클도 잠은 자야 할 테니까.”
“너도 잠 좀 자.”
“알았어.”
“그럼. 연습실 사용 일정은 내가 쌤한테 얘기할게.”
“그래.”
수철이 마이클과 맞춰 오면 다음 날부터 밴드 연습을 하기로 했다. 코러스로 뽑힌 두 명은 나중에 따로 연습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 * *
“쌤! 저희 왔어요!”
다음 날, 다혜가 베이시스트와 드러머와 함께 작업실에 들어섰다.
박 대표가 답이 없자 작업실 안을 두리번거렸는데, 부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창 너머로 마이클과 수철이 연습하는 것이 보였다.
“슈퍼스티션, 에인 더 웨이~ 예, 예!”
수철의 기타 반주에 맞춰 마이클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헉! 이거 뭐야?”
순간 드러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놀라서 다혜를 쳐다봤다.
“이거 실화야? 이게 가능해?”
베이시스트도 놀란 눈으로 다혜를 바라봤다.
거짓말같이 단 하루 만에 둘의 음악이 짝짝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둘이서 만들어 내는 펑키한 사운드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너무 흥겨워서 군침이 돌 정도였다.
둥둥. 빠밤. 둥둥둥. 빠바밤!
수철은 어쿠스틱 기타의 베이스 줄을 튕기며 기타 코드와 베이스를 같이 치고 있었다. 마이클은 거기에 맞춰 몸을 흔들며 발성을 짝짝 갖다 붙였다.
둘의 사운드는 다른 악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는 입을 벌린 채 서로 쳐다봤다.
“할 말이 없네, 우린 그냥 얹혀 가면 되겠는데?”“정신 차려! 우리가 리듬 파트인데 어떻게 얹혀 가?”“말이 그렇다는 거지.”
둘의 대화를 듣는 다혜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 수철과 같이하기로 결정했을 때 다혜는 더는 놀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더 놀랄 일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연습을 끝내고 나오는 마이클에게 드러머가 물었다.
마이클은 웃으며 대꾸했다.
“수철이 하라는 대로 한 거뿐이야.”
* * *
첫 연습이 끝나고 모두 작업실 소파 앞에 모여 앉았다.
다혜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밴드 이름 생각해 봤어?”
클럽 공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얼른 팀 이름을 정해서 페스티벌 주최 측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홍보를 시작한다.
다혜는 팀이 결성되자마자 멤버들에게 적당한 이름을 지어 오라고 했다. 지어 오면 다수결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멤버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다혜의 물음에 모두 난감해했다.
“너무 어려워. 난 못 짓겠어.”“나도 떠오르는 게 없어.”“난 프렌즈(Friends)밖에 생각이 안 나.”
모두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다혜를 쳐다봤다.
다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철을 봤다.
“수철이,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