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3화 (23/239)

#23화. 소리가 주는 카타르시스

“애들한테 장비 옆에 콜라 좀 놓지 말라고 주의 줘. 라면도 그만 찾아 먹고. 보물찾기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특히 마이클 말이야, 개 코도 아니고.”

박 대표가 그간에 쌓인 불만을 토로했다. 수철을 보면서 얘기하다가 수철이 멀뚱거리자 다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건 다혜, 네가 얘기 좀 해.”“네, 제가 얘기할게요. 마이클이 먹은 컵라면도 다 채워 놓을게요.”

“굿.”

박 대표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그럼 간만에 드라이브나 함 가자. 오늘은 어디로 갈까?”“양평 가 보고 싶어요.”“오케이, 시디 챙겨.”

* * *

이틀 후,

클럽 ‘롤링 버튼’ 앞에 컬러풀 SA 멤버들이 나타났다.

“여긴 입구부터 분위기가 다르네.”

다른 클럽들과 다르게 입구에 신기한 형상을 한 조각들이 붙어 있고, 복도 벽에는 세계 유명 뮤지션의 사진과 앨범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의 출연팀=

1. 하드 엑스.

2. 컬러풀 SA.

3. 미나리 밴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검은 보드 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출연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몇몇은 가방을 들고 몇몇은 악기를 멘 채로 보드 판을 바라봤다.

특히나 다혜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하는 첫 공연이 감격스러운지 보드 판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와. 진짜 크다.”

클럽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보통의 클럽보다 무대는 높았고, 무대 맞은편 천장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오퍼레이팅 룸이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엔지니어는 무대와 관객석을 내려다보며 음향과 조명을 컨트롤했다.

유리창 너머로, 사장의 모습도 보였다.

‘롤링 버튼’은 홍대의 흔한 클럽과는 달랐다. 중형 공연장에 가까웠다.

“조명 죽이네.”

천장에 로봇처럼 매달려 있는 조명은 역동적인 공연장의 분위기를 실감하게 했다.

앰프와 악기들, 스피커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빵빵했다.

생각보다 잘 갖춰진 클럽 모습에 멤버들은 긴장감이 올라왔다.

악기를 내려놓고 내부를 둘러보는데 스텝이 다가왔다.

“준비되시면 말씀하세요. 사운드 체킹 먼저 시작할게요.”“네, 감사합니다. 여기 정말 좋네요.”

다혜는 클럽의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특히나 독특하게 꾸며진 벽면은 딱 다혜의 취향이었다.

“요즘 여기서 유명 연예인들 팬 미팅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저렇게 화려하게 꾸며 놨어요.”

벽면과 천장에 재미난 아이템들이 붙어 있는 이유가 있었다.

* * *

박 대표는 클럽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오퍼레이팅 룸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최 사장, 잘 지냈어?”“어서 오세요, 형님. 오랜만이에요.”

최 사장도 박 대표가 내민 손을 반갑게 맞잡았다.

최 사장은 박 대표가 학창 시절 하던 밴드의 막내였다. 어릴 때부터 군기가 들어서인지 아직도 박 대표에게 깍듯하게 대한다. 박 대표에겐 친동생 같은 후배다.

“별일 없고?”

“네, 전 잘 지내고 있어요. 형님은 잘 지내셨어요?”

“나야 늘 똑같지.”

“여전하시군요, 형님. 아무리 바빠도 연락 좀 하고 살아요.”

최 사장은 박 대표가 팀을 떠나서 공부에 집중하는 사이 세션맨을 전전하다가 결혼하고 먹고살려다 보니 클럽을 하게 됐다.

그나마 음악 판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세션도 유학을 다녀온 젊은 인재들에게 밀려났고, 학원도 잠시 운영을 했지만, 그 또한 적자만 보고 문을 닫았다.

“형님, 저 클럽 한번 해 보려고요.”

“클럽?”

처음 최 사장이 클럽을 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박 대표는 반기지 않았다. 최 사장이 음악 판을 떠나서 다른 삶을 살길 바랐었다.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찾아봐도 별로 할 게 없더라고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도 요즘은 유학 갔다 오는 게 기본이라서 제가 설 자리가 없어요. 솔직히 실력도 제가 밀리고요.”

박 대표는 걱정스러웠지만, 딱히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성공을 빌며 거금을 담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라도 보태 써.”“잘 쓸게요. 형님.”

“클럽 잘 키워서 나중에 큰 공연장 하나 만들어 봐. 나도 대관 공연할 테니까.”“네, 형님. 꼭 그렇게 할게요.”

그 후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자리를 잡아서 홍대에서 손꼽는 클럽이 됐다.

인디밴드 앨범만 손을 안 댔으면 집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박 대표만 만나면 죽는소리다.

“장사 좀 돼?”

“어려워요. 공연으론 매일 적자고, 그나마 대관으로 먹고사는 거죠.”“클럽이 다 대관으로 먹고사는 거지. 요즘 티켓 팔아서 돈 버는 데가 어딨어?”“그렇긴 하죠. 그런데 클럽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관객은 한정돼 있는데 클럽만 늘어나서 경쟁이 치열해요.”“그건 좀 그렇겠네.”“네, 만만치가 않아요. 보세요. 여기에 딸린 식구가 몇 명인데요.”

일하는 직원들을 가리켰다.

“말이 좋아서 사장이지, 하루하루가 전투예요.”“다 그렇지 뭐. 그래도 너희는 잘나가는 편이잖아. 힘내.”“네, 형님. 오랜만에 형님 보니까 반가워서 옛날 버릇이 나와 버렸네요. 죄송해요.”

대화하던 최 사장의 눈에 ‘컬러풀 SA’ 멤버들이 보였다.

“근데 저 친구들은 누구예요? 형님이 키우는 거예요?”“그런 건 아니고, 학생들인데 페스티벌에 나가기 전에 그림 좀 보려고. 학교 제자도 있고, 내가 요즘 주의 깊게 보는 녀석도 있어.”

다혜가 스텝과 함께 카메라를 설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상 찍을 거면 미리 말씀하시죠. 여기도 영상 장비 다 있는데.”“애들이 스스로 하게끔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긴 돈 받잖아.”“형님이 하는데 내가 무슨 돈을 받겠어요? 재룟값과 인건비만 받는 거죠.”“그거 몇십만 원 하잖아.”“그렇죠. 편집까지 다 해서 주니까.”

* * *

‘컬러풀 SA’ 팀은 리허설 없이 간단히 사운드 체킹만 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전체 리허설을 다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오늘은 평일이라 관객들이 많지 않아서 공연을 리허설처럼 해도 된다는 스텝의 말을 따랐다.

30분 후,

앞선 밴드의 공연이 먼저 시작됐다.

챙! 챙! 챙! 쾅! 쾅!

하드락 밴드였다.

보컬의 두껍고 탁한 목소리가 거친 기타 사운드와 함께 뒤섞여 튀어나왔다.

헉. 헉.

공연 내내 소리를 질러 댄 보컬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꽤 힘들어 보였다. 무대는 앙콜 요청도 없이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팀인 ‘컬러풀 SA’가 무대에 나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스텝의 말대로 관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몇 명만이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태어난 따끈따끈한 아기 밴드 컬러풀 SA입니다. 먼저 잭슨 형님의 빌리 진부터 가겠습니다.”

마이클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드럼이 바로 따라붙었다.

쿵! 칙. 팍! 칙.

박 대표는 최 사장과 함께 오퍼레이팅 룸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음…….”

박 대표는 수철이 주도하는 팀의 사운드가 궁금했다. 작업실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공연장에서 볼 생각으로 참았었다. 그래서 오늘 공연은 박 대표도 관심이 크다.

음악이 시작되자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최 사장이었다. 놀란 눈이 붕어처럼 툭 튀어나왔다.

“와! 저거 뭐예요? 쟤네 20살 맞아요? 저 보컬 끼 좀 봐, 애들 미쳤네!”

“잘하지?”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뭐, 전문가 뺨치네요. 마이클 잭슨도 놀라겠어요, 진짜 음악 맛깔나게 하네.”

최 사장의 탄성이 끊이지 않고 쏟아졌다.

공연을 많이 보는 클럽 사장인데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이 상기됐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빌리진? 너무 싫증 나지 않아? 그래 봤자 마이클 잭슨 흉내나 내겠지.’

그런 생각을 완전히 깨부쉈다.

음악은 원곡과 달랐다. 원곡은 멜로디만 남아 있고, 다른 구성으로 편곡되어 있었다. 더 펑키하고 그루브했다.

첫 곡이 끝나자, 최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확실히 달라요. 우리가 20살 때는 악기만 잡아도 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요즘 애들은 기본적으로 연주력이 다 좋아요. 지금 저 친구들도 전문가 수준이잖아요? 그림도 잘 나오고. 페스티벌에 가면 인기 좀 끌겠어요.”

박 대표도 최 사장의 생각에 공감했다. 설레발이 심하지만 공연을 보는 눈은 정확한 최 사장이다.

마이클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 곡은 스티비 원더 형님의 노래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고!”

드럼 인트로가 시작되자 마이클은 몸을 들썩이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관객들도 덩달아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드럼을 따라 들어온 수철의 기타는 사람들의 흥을 바짝 끌어 올렸다.

멜로디를 치면서 리듬을 같이 치는 기타 연주는 박 대표의 입맛까지 다시게 했다.

“Very superstitious, writing’s on the wall.”

노래가 시작되자 최 사장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햐~ 그루브 죽인다. 스티비 원더가 울고 가겠네.”

최 사장의 말에 박 대표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마이클의 끼도 장난이 아니었다. 무대 체질이었다. 큰 공연장에서 관객을 잔뜩 채우고 노래하면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잠시만, 형님이 말한 친구가 저 친구예요? 기타 치는 친구?”“맞아, 어떤 거 같아?”

최 사장은 밴드에서 기타를 쳤기 때문에 기타를 보는 눈은 박 대표보다 한 수 위다. 물론 수철이 기타리스트는 아니지만, 최 사장의 평가가 궁금했다.

귀를 기울여 기타 소리에 집중하던 최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리 자체가 다르네요. 음에 대한 집중력이 엄청나요. 그냥 흘려보내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

“네, 저렇게 빠른 곡을 슬로우로 치듯이 정확하게 조이고 있어요. 엄청나네요.”

역시 최 사장의 눈은 예리했다.

“나도 볼 때마다 놀라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돼.”

박 대표의 눈에 수철은 연주자라기보단 사운드 디자이너로 보였다. 즉흥적으로 음악을 편집하며 허술한 곳을 채워 넣고 있었다. 그것도 코드 한두 개, 멜로디 한두 개로 말이다. 정말 감각적이었다.

최 사장이 오퍼레이팅 룸 안에 있는 모니터로 수철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비주얼도 좋네요, 기획사 눈에 띄면 아이돌 만들겠다고 달려들겠어요.”“저 녀석은 그쪽이랑은 거리가 멀어. 관심도 안 두더라고.”“신기하네요, 다들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자, 점프! 점프! 다음 곡은 와일드 체리의 펑키한 곡을 연주해 보자! Play that funky music!

―와!!

‘컬러풀 SA’는 무대 위에서 연습한 기량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관객들도 무대 앞에 모여서 흥에 겨워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스태프들도 한데 모여서 환호했고, 출연한 다른 팀들도 관객석에 나와 구경했다.

“정말 음악 감칠맛 나게 하네요. 귀가 다 시원해요.”

클럽 안은 열댓 명의 관객과 스텝들의 환호 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의 모습만 보면 공연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제가 잘 아는데, 관객들이 괜히 저러는 게 아니에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예요. 소리가 주는 카타르시스 말이에요.”

최 사장의 말대로 사람들은 소리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암튼 정말 물건이네요. 보통이 아니에요, 앞으로 이 바닥이 떠들썩하겠어요.”“떠들썩 정도가 아니라, 난 저 녀석이 음악 판을 어떻게 흔들지가 궁금해.”“그럴 거 같네요. 근데, 아직 관심 두는 기획사가 없어요?”

최 사장이 수철에게 욕심이 생기는지 슬쩍 물어왔다.

“없어. 있다 해도 어디에 소속될 녀석이 아니지.”

“프리맨 스타일?”

“응.”

“형님이 그냥 키우지 그러세요?”“난 그냥 친구일 뿐이야.”

“친구?”

최 사장이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서포터 정도라고 해 둘게.”“에구, 또 자원봉사 시작한 거예요?”

“뭐가 또야?”

“형님은 맨날 그러고 있잖아요. 실속은 못 챙기고 조력자 역할만 하는.”“그렇지 않아, 그리고 저 애들한테서 무슨 실속을 찾아?”

* * *

짝짝짝! 짝짝짝!

마지막 준비한 앙콜 곡까지 끝나자, 관객들은 정신없이 박수를 쳤다.

짝짝거리는 박수 소리가 클럽의 넓은 공간을 울렸다.

“수고했어.”

박 대표는 클럽 밖에서 기다리다 멤버들이 나오자 한 명씩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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