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4화 (24/239)

#24화. 아일랜드 뮤직 페스티벌

“쌤도 수고하셨어요.”“홍대에 왔으니까 너희는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 오 선생 전집 강력 추천이야. 가서 모둠전에 막걸리 마셔 봐, 완전 장난 아냐.”

박 대표도 모둠전이 생각나는지 입맛을 다셨다.

“쌤은 같이 안 가세요?”“난 클럽 사장이랑 한잔해야 해.”“네, 그럼 재밌는 시간 보내세요.”

“그래, 너희도.”

아이들과 헤어지고 박 대표는 최 사장과 오랜만에 포장마차에 마주 앉았다.

“형님, 요즘 음악 판이 말입니다.”

늘 그렇듯 최 사장은 한잔 들어가자 대한민국 음악 판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댔다. 그러다 취했는지 박 대표에게까지 도발했다.

“형님, 제작자 세미나 가서 싸우지 좀 마세요. 이 바닥에 형님 소문이 파다해요. 독불장군이라고.”“내가 왜 독불장군이야? 주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음악 하는 사람만 많겠죠. 비즈니스 하는 사람은 없고.”“쩝, 그렇긴 하지.”

“맨날 싸워서 정부 지원금도 못 받고. 형님도 이젠 인생을 좀 타협하면서 사세요.”

계속되는 잔소리에 박 대표가 욱했다.

“얘가 갑자기 입이 터졌나? 뭔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너는 타협해서 여기 있는 거야? 너야말로 타협 좀 하고 살아. 처자식도 있는 녀석이 그렇게 자존심이 세서는. 쩝.”“하하, 형님 또 욱하셨네, 자 얼른 마시고 맥주 한잔 더 하러 가시죠.”“넌 이 기분에 술이 넘어가냐?”

박 대표는 오랜만에 최 사장과 만난 자리라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만나면 꼭 이야기하게 되는 어린 시절 밴드 레퍼토리까지 쏟아 내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하하. 맞아, 생각난다. 그땐 그랬었지.”“네, 전 아직도 형님이랑 같이 밴드 할 때가 그리워요. 그때는 정말 잘나갈 줄 알았는데.”“그래, 그땐 우리도 꽤 괜찮았었지.”

“네, 괜찮았었죠.”

최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끄러미 뭔가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반쯤 취한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형님.”

“왜?”

“아까 기타 치는 녀석 말이에요.”

“그래, 수철이.”

“이름이 수철이에요?”

“응.”

“아까 수철이 기타 치는 거 보니까, 예전에 형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무슨 말?”

“한 조각 멜로디도 살아서 움직이게 하라고.”

최 사장은 취한 눈으로 박 대표를 쳐다봤다. 박 대표도 마주 봤다.

“내가 그랬었나?”

“네, 형님이 마지막 합주 때 그랬었잖아요.”

* * *

박 대표는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담배를 사서 꺼내 물었다. 건강 생각에 며칠 끊었던 담배였다.

‘후…….’

길게 연기를 내뿜는데 예전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성준아.”

“네, 교수님.”

“네가 보기엔 어떤 사람이 음악을 오래 할까?”“어떤 사람이라니요?”“끼가 많은 사람과 재능이 많은 사람. 둘 중에 말이야.”“그건 당연히 끼가 많은 사람이죠.”

박 대표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의 많은 친구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는 교수가 묻지 않았지만, 박 대표는 그에 대한 답도 알고 있었다.

‘결핍.’

박 대표가 만난 많은 사람 중에 끼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그래서 결핍을 채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덤벼들었다. 물론 박 대표 자신도 그랬다. 그래서 유학까지 갔다.

몸 안에 끼는 넘치는데, 그걸 뽑아낼 구멍은 너무 작아서 항상 몸이 달아올랐다. 그러다 한 번씩 구멍이 커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미친 듯이 끼를 뽑아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발광, 혹은 광기라고 불렀다.

음악가들은 알고 있다. 그게 미친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런 모습을 부러워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래서 끼를 가진 음악가는 몸 안에서 튀어나오지 못해 울부짖는 끼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너무 힘들어서 음악 판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끼라는 거, 그거 저주받은 피야.”

대학 선배인 한 음악가는 술에 취해 소리까지 지르며 힘들게 음악 판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다시 음악 판에 돌아와 주변을 맴돌았다.

끼라는 것이 그랬다. 그 선배의 말처럼 저주받은 피 같았다. 음악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끼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은 달랐다. 음악에 별 결핍이 없었다. 그래서 쉽게 다른 분야로 갈아타기도 했다. 특히 클래식 쪽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벌어졌다.

결혼해서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새롭게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외국으로 이민 가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끼로 똘똘 뭉쳐진 음악가들과는 다르다.

음악은 누가 잘하냐고?

당연히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질문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까?

누가 더 음악 판에 많을까?

누가 더 세상을 뒤흔든 음악을 많이 만들었을까?

그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답은 끼를 가진 음악가다. 그것이 아직도 박 대표가 음악 판에 남아 있는 이유다.

물론, 수철이처럼 예외도 있다. 끼와 재능을 다 가진 사람 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천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음악가는 둘 중 하나다.

끼를 가졌거나, 재능을 가졌거나.

둘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둘 중의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은 아름답다. 하지만 음악 바닥은 아름답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필드에서 뛰고 있는 뮤지션에겐 그렇지 않다. 치열한 정글이다. 몇몇 잘나가는 뮤지션들을 제외하곤 모두 그렇다.

그들에게 음악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존이다.

‘후…….’

박 대표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깊게 빨아들였다가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페스티벌 현장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상황 체크 바란다. 오버.

“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끝나는 대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오버.”

무전기를 든 요원들이 축제 현장을 바쁘게 다니며 마지막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세워 주세요.”

음향팀들은 스피커를 쌓아 놓고 사운드 체킹을 하고 있었고, 조직위 요원들은 출연진 체크하고 스케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무대 앞엔 카메라가 설치되어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섬 곳곳엔 페스티벌의 흥을 돋우기 위해 설치된 갖가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아일랜드 뮤직 페스티벌은 올해로 벌써 13회째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최고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문광부까지 나서 문화관광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아일랜드 뮤직 페스티벌, 줄여서 ‘아뮤페’는 매년 경기도에 있는 작은 섬에서 열린다.

축제가 시작되면 이 작은 섬은 하나의 공연장이 된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면 섬은 관객들의 함성으로 뒤덮인다. 해가 지고 화려한 조명이 섬 전체를 비추면 이곳은 말 그대로 신비의 섬으로 변한다.

[음악으로 만드는 신비의 섬. 제13회 아일랜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당신의 함성을 들려주세요.]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와. 이것 봐 봐, 밴드만 50팀이야.”

공연의 규모도 엄청났다.

6시부터 10시까지 7개의 무대에서 동시에 공연이 벌어지다 보니 참여하는 밴드의 숫자도 엄청났다.

해외 초청 팀까지 합하면 밴드만 50팀이나 됐고, 참여 아티스트들도 150명이나 됐다.

음악의 장르도 그만큼 다양했다. 하드락부터 재즈까지. 실험 음악을 하는 유럽 뮤지션들도 있었다. 축제 위원회의 홍보문구처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협찬 기업들도 하나같이 잘나가는 기업들이었다.

국내 최고의 페스티벌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이쪽에 보시면 재밌는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도 많아요. 그래서 3대 거리라고 이름 붙였죠.”

진행 요원의 안내처럼 공연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아직 점심때지만 일찌감치 축제를 즐기러 온 축제족들은 벌써 손에 맥주와 소시지 꼬치를 들고 있었다.

“자, 오셔서 한번 쏘고 가세요! 선물이 팍팍 쏟아집니다!”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하는 행사 요원들은 재밌는 복장을 하고 분주하게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섬은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이었다.

“작년에도 3일 동안, 5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축제 현장을 가득 메웠어요. 호응도 엄청났었고요. 그래서 우리 조직위는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올해는 더욱 생동감 있고 열정적인 무대를 준비했어요. 여러분이 그 오프닝을 담당하게 되는 거죠.”

진행 요원과 함께 온 조직위 관계자는 멤버들을 출연자 대기실로 안내하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런 현장에 첫발을 내딛는 멤버들의 얼굴도 상기되었다.

“벌써 사람들이 이 정도면 오후 공연 때는 정말 기대된다.”“그러게 오프닝 무대에도 사람들이 꽤 모이겠는걸.”“오프닝이 7개 무대에서 동시에 시작하니까, 저 사람들은 나뉘겠지.”“그렇다고 해도 클럽이랑은 비교도 안 될 거 같은데?”“당연하지. 클럽이랑 여기를 비교하면 안 되지. 아무리 오프닝이고 7개의 무대로 관객이 나뉜다고 해도 백 명은 넘게 모일걸?”

멤버들의 말대로 열심히 홍보한 탓인지, 아니면 이름 있는 페스티벌의 유명세 탓인지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얼른 리허설하고, 공연 전까지 구경 다니자.”“좋지, 우리도 축제를 즐겨야지.”

‘연습은 공연처럼, 공연은 연습처럼.’

교수의 흔한 말처럼 팀 ‘컬러풀 SA’는 어제 박 대표의 작업실에 모여 클럽 공연을 모니터링하며 연습을 마무리했다. 영상으로 보이는 작은 동선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오늘 공연이 기대된다.

“이쪽으로 가실게요!”

멤버들은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단독으로 만들어진 출연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리허설은 30분 후, 3시부터 하시면 되고요. 음향팀 스텝분이 모시러 올 거예요.”

“네.”

“그리고 본공연은 6시 정각에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까 축제를 구경하시더라도 20분 전엔 꼭 출연자 대기실로 다시 돌아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시작하면 식사하시기 어려우니까 미리 드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식당은 관계자 전용 식당을 이용하시면 되고요, 그리고 여기.”

진행 요원이 식사 쿠폰을 내밀었다.

“매니저분까지 총 8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학교에서 뮤직 매너지먼트를 전공하는 다혜의 친구가 매니저를 하겠다고 따라붙었다. 축제를 경험하며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요청에서였다.

멤버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가끔 잔심부름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행 요원은 8장을 세어서 다혜에게 내밀었다. 팀 정보란에는 다혜가 리더로 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이 쿠폰을 사용하시고,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네.”

“그리고 음료와 차는 저쪽 테이블 위에 있고요, 뜨거운 물은 생수통을 이용하시면 되고…….”

진행 요원은 마지막으로 출연자 대기실의 비품까지 확인했다.

“그럼 멋진 공연 부탁드릴게요.”“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행 요원이 떠나고 출연자에게 제공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있는데, 음향 스텝으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5분 후에 리허설 진행할게요. 나오셔서 준비해 주세요.”

“네.”

팀원들은 들고 온 가방을 매니저에게 맡기고, 가져온 악기를 들고 무대로 올라갔다.

―자, 스네어 드럼 한번 더 쳐 주세요.

빡! 빡! 빡!

―좋습니다. 다음은 베이스 체크할게요.

둥두, 둥두, 둥두, 둥두

무대 정면에 단을 쌓아 만든 곳에서 엔지니어가 음향 시스템으로 사운드를 점검하고, 악기의 소리를 조율했다.

―모니터 스피커는 어떠세요?

무전기로 들리는 엔지니어의 목소리에 멤버들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좋다는 뜻이었다. 멤버들은 TV에서나 보던 음향 장비에 만족했다. 사운드도 클럽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학교는 등록금 받아서 뭐 하나, 좋은 장비라도 좀 구입하지.”“그러게 말야, 등록금은 올리면서 장비는 구닥다리. 선배들이 그러는데, 10년 전에도 그대로였대.”“쩝, 돈 모아서 유학이나 가자. 외국은 좋다던데.”

멤버들은 축제의 장비가 샘나는지 툴툴거렸다. 장비는 주최 측의 것이 아니고 음향 렌탈 업체의 것인데 말이다.

간단한 사운드 체킹을 마치고 곧바로 리허설이 시작됐다.

빠바바밤! 빠바밤! 쿵쾅! 쿵쾅!

“Just beat it~ beat it! beat it!”

멤버들은 실전 공연에 임하듯이 오늘 하기로 한 4곡을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했다.

“우, 아, 에~”

코러스도 진지하게 집중해서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런데,

리허설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헉, 이게 뭐야?”

“설마, 우리 공연을 보러 온 거야?”

“그럴 리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나? 사람들이 왜 우리 무대 앞에 모여 있지?”

공연을 20분 남기고 출연자 대기실로 돌아오는데, 무대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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